폭염 현장 찾은 공무원들, 굳이 민방위 잠바를?
올여름 기록적 폭염이 이어지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수차례 대책회의를 가졌다. 장관과 지자체장들은 수시로 폭염 현장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조직 수장과 공무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민방위 잠바를 입었다. 왼쪽 윗부분에 민방위 마크가 박힌 연노랑 잠바다.
폭염에 긴팔 잠바라니, 분명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7월 말 긴팔 잠바를 입고 폭염 현장을 찾은 한 기초자치단체장은 ‘덥지 않냐’는 질문에 웃기만 할 뿐이었다.
국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민방위 잠바를 입는 것은 의무일까?
행정 규칙인 ‘민방위 복제 운용 규정’에는 재난 현장을 찾거나 민방위 훈련과 교육 등을 할 때 ‘착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바꿔 말해 꼭 입어야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공무원 A 씨는 “일종의 관례인 것 같다. 공무원 생활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고 말했다.
재난 대응을 주관하는 행정안전부에 민방위 잠바를 폭염에 입어야 했느냐고 물었다. 행안부는 그런 지적이 지난달 말 회의 때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8월 행안부가 배포한 폭염 대책회의 사진 대부분에는 장관을 비롯해 공무원 모두 잠바를 입고 있다. 지자체들 역시 민방위 잠바를 입고 폭염에 맞선 사진을 경쟁하듯 공개했다.
매년 여름이면 공공기관에서 냉방 설정 온도를 28도로 지키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을 다룬 기사가 보도된다. 대다수 반응은 ‘괜히 업무효율 떨어뜨리지 말고 시원하게 해서 일이나 잘해라’이다.
많은 공무원들은 현실과 안 맞는 냉방 규정 속에서 굳이 잠바까지 입어가며 폭염 대책을 짜내고 있다. 대책 이전에 짜증부터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정부와 지자체가 밝힌 재난 상황에서 민방위 잠바를 입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재난 대응 인력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고 재난에 대한 경계심을 스스로 갖기 위해서다.
폭염 속 민방위 잠바를 입은 모습을 담은 사진이 넘쳐났던 올여름, 한 자치구가 보내온 사진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반팔 티셔츠에 봉사활동 때 입는 조끼를 입고 현장을 돌고 회의를 했다.
그들의 재난 대응 자세가 부족해 보이지는 않았다. 폭염 속 민방위 잠바가 주는 끈적끈적함이 옷 한 벌에 국한된 느낌은 아니기에 더 씁쓸할 수밖에 없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이 글은 동아일보 '폭염에 웬 민방위 잠바?'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