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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의사가 전한 열사병과의 전쟁… “사람을 학살하는 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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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점 작성일자2018.08.11. | 3,074 읽음

2018년 여름. 대한민국을 달구던 폭염은 이제 한풀 꺾인 듯 하다. 하지만 폭염이 남기고 간 상처는 깊다. 에어컨을 틀며 전기세를 걱정하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사회 취약계층들은 여름 내 우리를 괴롭힌 폭염 앞에 고스란히 내던져 졌다.

서울 이대 목동 병원에서 근무하는 응급 의학과 전문의 남궁인 씨는 열사병으로 실려오는 환자들을 보며 ‘바깥에서 정말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글을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남궁 씨는 주변 응급실 의사들도, 자신도 이렇게 많은 열사병 환자를 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근래 내원한 열사병 환자 중 16명의 사례를 추려 소개했다. 응급 현장의 최전선에서 바라본 여름은 어땠을까.

사진은 본문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출처 : 동아일보DB

그는 폐지를 줍다가 폭염에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오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한 80대 여성은 폐지가 담긴 리어카 앞에서 기절해 있다가 발견돼 병원으로 실려왔고, 또 다른 80대 여성도 폐지를 차곡차곡 쌓아놓고 기절한 채 발견되어 응급실을 찾았다. 또 한 명의 80대 여성 역시 폐지를 줍다 병원으로 실려왔다. 남궁 씨는 “비슷한 환자가 너무 많이 오자 검색을 통해 폐지 가격이 1Kg당 50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200Kg의 폐지를 모으면 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오늘 병원비는 폐지 몇 톤을 모은 돈일까 잠시 생각해보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말기 암 투병 중이던 80대 여성도 집에서 의식을 잃고 발견됐다. 집에는 에어컨도 없었고, 더위를 이겨보려 ‘꿀물’을 보양식으로 먹었다고 했다. 의식은 회복됐지만 앓고 있던 병의 경과가 급격히 나빠졌다. 남궁 씨는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있는 집에서 발견된 환자들에 대해 “비슷한 케이스가 너무 많다”고 했다. 심지어는 선풍기조차 없는 집에서 기절한 채 발견된 사례도 있다고 언급했다.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더위에 지쳐 앉아있는 노인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출처 : 동아일보DB

육체 노동을 업으로 하는 한 30대 중국인은 에어컨 없는 반지하방에서 기절한 채 발견돼 병원으로 실려와 12시간이라는 긴 회복 시간을 거쳐 퇴원했다. 시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다른 60대 남성은 육체 노동을 하고 퇴근하던 중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실려왔다. 남궁 씨는 몇 시간 만에 깨어난 그가 중국어로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버린 여러 사연들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반 지하방에서 발견된 한 90대 노인은 체온이 42도, 안타깝게도 발견 시점에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등산로에서 발견된 지적장애를 앓던 50대 남성도 며칠간의 사투 끝에 사망했다. 길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온 80대 노인은 사망이 확정적인 상태로 퇴원했다. “보호자도 없고 연고지도 없고 가진 돈도 없는” 한 60대 노숙자는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 처리되었다며 “확실히 사망이 예견된다”고도 썼다.

여러 사례를 소개하며 남궁 씨는 “일사병과 열사병을 나누는 기준은 의식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환자에게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만약 내원 당시 의식이 전혀 없는 열사병이라면 그야말로 사망률은 50%에 육박한다. 이미 뇌에 열 손상을 입은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번 폭염이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기에 충분한 대처를 하기 어려웠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꼼꼼히 환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열사병은 전형적으로 사회경제적 위기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직면한 질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의 이들만이 고통받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쓴 뒤 ‘지적장애’, ‘폐지’, ‘80~90대’, ‘선풍기’,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반 지하’ 등의 단어를 나열했다.

뒤이어 “매년 가장 먼저 고통받을 이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도 자명하다”며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고통에서 먼 사람들이 대신 내 주기를 바란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실제로 여러 선진국들은 정부 차원에서 폭염 피해에서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전략을 수립,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고온 건강 경보 체계와 응급의료 서비스를 강화해 노년층을 돌본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에어컨 없는 집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해 ‘냉방 대피소’를 열기도 한다.

우리나라 역시 당정 모두 취약계층에 대한 폭염 피해 대책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 7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사회적 배려계층에 대한 냉방지원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 했다. 다만 더위가 몰려오는 속도 보다 빠른 걸음이 필요한 시점이다.

황지혜 동아닷컴 기자 hwangj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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