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 국가대표, 뼈에 금 간 줄도 모르고 '금메달'

조회수 2018. 8. 9. 11: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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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 체중관리를 위해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는 충북 진천선수촌 복싱장.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후끈한 기운과 함께 땀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이런 곳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지내는 건 누구나 고역이겠지만 선수들은 냄새나 더위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바쁘게 움직입니다. 

출처: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그 사이로 유난히 말라 보이는 선수 한 명이 자기 얼굴보다 큰 글러브를 내뻗고 있습니다. 166cm 57kg의 크지 않은 체구, 아무렇게나 묶은 짧은 머리에 그을린 얼굴을 한 이 선수는 아시아경기 57kg급 금메달을 노리는 임애지(19·한국체대)입니다.


임애지는 2017년 11월 인도 구와하티에서 열린 세계여자유스복싱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한국 여자선수가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개최국인 인도를 비롯해 복싱 강국 불가리아 등 쟁쟁한 선수 다섯 명을 연달아 꺾은 임애지는 당시 왼쪽 정강이 뼈에 금이 간 줄도 모르고 경기했다고 합니다.


“웨이트 트레이닝 하다가 바벨에 정강이를 찧었어요. 그냥 멍이 좀 크게 든 줄 알았는데, 한국 와서 병원 가 보니 뼈에 실금이 간 상태였더라고요.”

출처: AIBA 홈페이지 캡처

놀란 의사는 ‘걸을 때마다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느냐’고 다그쳤습니다. 임애지는 “파스를 넓게 뿌리면 다리 전체가 아려서 아픈 줄 몰라요”라며 자신만의 부상 대처법(?)을 진지한 얼굴로 설명했습니다.


아시아경기 대표선발전 코앞까지 깁스를 착용해야 했던 임 선수. 실전 감각이 떨어졌을까 봐 걱정했지만 무사히 선발전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는 “운이 좋아서 그랬어요”라며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었습니다.


전남 화순서 나고 자란 임애지 선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집 근처 체육관 마당에서 훈련하던 선수들을 보고 복싱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딱 한 달만 다니겠다고 부모님을 졸라 등록한 체육관에서 중고등학교 6년을 보낸 임애지는 ‘선수 할 것도 아닌데 왜 계속 다니냐’는 다그침에 ‘선수 할 거다’라고 받아쳤고, 그 길로 진로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임애지는 “재미있는데 못 하게 하니까 그랬다”며 웃었습니다.


밥 굶는 것은 참아도 운동 모자란 건 못 참는다는 임애지는 완벽주의 성격 때문에 긴장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경기를 앞두고 부담감에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지만 링 위에 올라가면 마법처럼 두려움이 싹 사라진다고 합니다.


“링 올라갈 때 계단이 세 개거든요. 한 발 디딜 때마다 ‘내가 제일 빠르다, 내가 제일 세다, 내가 이긴다’ 생각해요. 그러면 정말 긴장이 다 풀리면서 차분해져요.”


세계선수권이 열린 인도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지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임애지. 그는 “경기장에 모인 외국인들이 애국가를 듣는 모습이 여전히 떠올라요. 아시아경기에서도 애국가를 틀고 싶습니다”라며 당차게 포부를 밝혔습니다.


진천=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 이 기사는 동아일보 <임애지 “정강이 실금도 모르고… 금메달 땄었죠”>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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