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저씨 대여회사' 대표 "아주머니도 대여하고파"

조회수 2018. 8. 9.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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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사키 켄. 48세. 젊은 사람들이 많은 IT업계에서 일하고 있음. 취미는 장기와 바이올린입니다. 장기 상대가 필요하시다면 사양 말고 지명해 주세요. 바이올린 연주 요청도 받습니다. 대여료는 시간당 1000엔(약 1만 원), 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사람을 소개하는 것 같다가 마지막에는 물건처럼 ‘배송비’ 운운하며 끝나는 이 소개글은 일본 남성 사사키 켄(48)씨의 자기소개 페이지에 올라온 ‘상품 설명’ 입니다. 사사키 씨는 자기 자신은 물론 비슷한 또래의 중년 남성들을 빌려 주는 회사 ‘아저씨 렌탈(おっさんレンタル)’ 대표입니다.


출처: '아저씨 렌탈' 웹사이트
머리에 넥타이를 야무지게 두른 '켄 아저씨'

아저씨 렌탈 홈페이지에는 회사원, CEO, 자영업자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중년 아저씨 수십 명의 프로필이 등록돼 있습니다. 마치 일반 쇼핑몰처럼 ‘인기’, ‘세일중’, ‘신상품’ 딱지도 붙어 있습니다. 사사키 씨는 CNN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고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아저씨들을 ‘대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2012년 처음 문을 연 ‘아저씨 렌탈’은 6년 간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고객에게 시급을 받고 대여된 아저씨들이 하는 일은 주로 인생 상담이나 말벗 되어주기입니다. 이삿짐 나르기 등 일손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저씨를 빌려 가기도 합니다. 


사사키 씨는 “인간관계, 일 때문에 고민하는 직장인들이나 남편과의 관계로 고민 중인 아내들이 주 고객”이라고 밝혔습니다. 고객 중에는 여성이 대부분이며 신체 접촉은 엄격히 금지돼 있습니다. 

출처: '아저씨 렌탈' 웹사이트
사사키 켄 씨의 '상품소개' 페이지. 물건을 파는 쇼핑몰처럼 '이 상품은 무료배송입니다', '카트에 담기'같은 표현이 인상적이다.

■ ”어쩌다 아저씨 이미지가 이렇게 안 좋아졌을까”


사사키 씨가 아저씨를 빌려주는 사업을 구상하게 된 것은 본인이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뒤부터였습니다. 그는 “어느 순간 ‘아, 나도 아저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주변을 보니 아저씨 이미지가 너무 안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지하철에서 여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중년 남자는 냄새 난다, 지저분하다, 귀에 털이 나서 징그럽다’며 깔깔대는 걸 듣고 충격 받았습니다. 아저씨 이미지가 그렇게까지 안 좋을 줄은 몰랐거든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과거 ‘가장’으로서 존경 받던 일본 중년 남성들의 위상은 사회 변화와 함께 점점 내려갔습니다. 버블경제 시기가 끝나고 침체기를 겪으며 ‘아내와 아이 두 명을 둔 잘 나가는 샐러리맨’ 이미지는 점차 흐려졌습니다. 각종 미디어에서도 아저씨는 따분하고 시대에 뒤처진 사람들로 그려졌습니다. 중년 남성들 스스로도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고객에게는 만족감을, 아저씨들에게는 자신감을 주는 것이 사사키 씨의 목표입니다. 현재 ‘아저씨렌탈’에는 일본 전역에 걸쳐 80여 명의 아저씨들이 등록돼 있습니다. 아저씨들의 연간 출장 회수를 합치면 1만 회가 넘습니다. 사사키 씨는 깔끔한 용모로 고객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며 아저씨들에게 ‘패션에도 신경 쓰라’고 주문한다고 합니다.

출처: '아저씨 렌탈' 웹사이트
출처: CNN

■ 젊고 아름다운 시절이 지나가도 인생은 계속된다


수많은 고객들을 만나 인생 상담을 해 준 사사키 씨 본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 출장 경험은 무엇이었을까요. 


바이올린 연주 경력 30년인 그는 “학생들이 ‘친구 생일파티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해 달라’고 해서 클래식 연주인 줄 알고 나갔는데, 아이들이 한국 아이돌 스타의 엄청난 팬이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베토벤, 시벨리우스 등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들의 곡 대신 낯선 케이팝을 열심히 연주하고 돌아온 사사키 씨는 “아이들이 정말 스타를 만난 듯 호응해 줬어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사키 씨는 ‘아주머니 렌탈’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중년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함께 즐겁게 활동하면 세상이 더 즐거운 곳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저와 같은 중년, 더 나아가 노년들이 ‘나도 가치 있고 멋진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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