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은 업무가 아니다' 정부발표 후 번개회식 더 늘어"

조회수 2018. 8. 3. 16: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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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불쌍하다. 퇴근했는데 이게 뭐야.”


7월 30일 오후 7시 경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카페에서 여성이 맞은편에 앉은 남자친구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정장을 입은 남성은 “주 52시간 근무제는 무슨…” 이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는 회사 PC전원이 자동으로 꺼지자 노트북을 들고 회사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문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출처: ⓒGettyImagesBank
일 싸들고 퇴근하는 사람들

소프트웨어 개발자 홍모 씨(45·남). 그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후에도 바쁜 시기에 야근하는 건 이전과 똑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탄력근로제 덕에 근로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홍 씨는 “야근하고 나면 반차가 생겨서 주말 앞뒤로 붙여 쓰면 사흘 넘게 쉴 수도 있습니다. 나들이 가기 편해졌죠”라고 했습니다.


직원 300명 이상 기업에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상당수 근로자들은 과로에서 탈출해 ‘저녁 있는 삶’을 찾았다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퇴근 후 카페를 전전하며 몰래 야근한다는 탄식도 들려옵니다.

“업무 집중도 높아졌지만 성과 부담도 커졌다”


대기업 사무실이 몰린 서울 중구와 강남구 일대 카페. 예전에는 업무 미팅을 하는 사람들로 평일 오후에도 빈자리가 거의 없었지만 이제 낮에는 한가해졌습니다.


김모 씨(42·남)는 “회사가 야근을 최소화하려 오후 2~4시를 ‘업무 집중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이 시간엔 카페 회의도 자제하고 자기 자리에서 집중적으로 일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퇴근시간인 오후 6시가 넘으면 노트북을 든 회사원들이 카페로 속속 들어옵니다. 정모 씨(26·남)는 근무시간 안에 처리하지 못 한 일을 종종 집으로 가져간다고 합니다. 업무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집에 가서도 ‘비자발적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과 삶의 균형 맞추기가 가능해졌다”


본의 아니게 초과근무를 하는 직장인들도 있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취지에 맞게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누릴 수 있게 됐다며 환영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중견 제약회사 직원 장모 씨(29·여)는 7월 초 집 근처 체육관에 수영 강습 신청을 하려다가 ‘정원이 이미 다 찼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고 합니다.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일하는 홍모 씨(26/여)도 큰 변화를 느꼈습니다. 예전에는 오후 6시 30분 정도 돼야 가득 차곤 했던 버스가 이제 6시만 돼도 빈자리가 없습니다.


KB국민은행 직원 김모 씨(32·남)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긴 업무 공백을 컴퓨터가 메우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날의 영업 실적을 직원이 일일이 세지 않아도 컴퓨터가 자동으로 계산해 주는 시스템이 생겼습니다. 대한적십자사 직원 A씨(27·여)도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되기 전 미리 쓸데없는 서류 작업 등을 조사해서 없앤 덕분에 연장근로가 줄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회식은 근무가 아니다’ 발표 나자 오히려 회식 늘어” 


다만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구분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고용노동부는 흡연시간과 티타임도 근로시간에 해당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회사마다 지침이 달라 근로자들은 상사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직원 이모 씨(27·남)는 “담배를 피우려면 회사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출입카드를 찍어야 해서 당분간 자제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소 보험사 직원 고모 씨(27·여)는 “회식은 근무가 아니라는 정부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오히려 ‘번개 회식’이 더 늘었습니다”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직장인들은 달라진 제도에 맞춰 직장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조소진 인턴기자 고려대 북한학과 4학년


※ 이 기사는 동아일보 <저녁있는 삶은 늘었지만… 업무성과 부담에 “일 싸들고 집으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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