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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대장, 언제 왔어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은지(가명·10)가 ‘대장’을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김광현 WE모두나눔봉사단 단장(47)과 눈이 마주치가 은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대장’은 A아동복지시설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김 단장을 부르는 별명입니다. 

부모와의 이별을 경험한 아이들은 누구를 만나든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2016년 6월부터 이곳에서 봉사를 시작한 김 씨도 얼마 전에야 아이들로부터 ‘대장’소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김 씨는 스스로를 ‘무명 배우’라고 불렀습니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그는 ‘아는 여자’, ‘범죄도시’등 영화에서 단역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학창 시절 4번 타자로 활약한 김 씨는 1994년 OB베어스 포수로 프로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삼성 등에서 활동하다 2000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 출범 사태로 사실상 방출됐습니다. 

20년간 야구밖에 몰랐던 김 씨는 그 뒤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실패했습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었고, 우울증까지 찾아왔습니다.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은 아픔이 ‘무명 배우’라는 단어에서 묻어났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심해졌어요. 그 순간 저를 일으켜 세운 건 바로 봉사였어요. 나처럼 혼자 버려진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이들에게 손을 내민 적이 있나,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죠.”

프로야구 선수 시절 구단 차원에서 봉사활동을 다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지인을 따라 봉사활동을 시작한 그는 2014년 무명 영화·연극배우들을 모아 WE모두나눔봉사단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으로 향한 곳은 경기 여주시 밀알선교장애인쉼터였습니다.

“한국이 자살률 세계 1위인데, 여주시가 전국 1위라고 하더라고요. 홀몸노인, 장애인 등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래요.”

매달 한 번씩 쉼터를 찾아 건물 보수, 청소 및 미용 봉사를 했습니다. 단원들이 직접 삼계탕을 끓여 장애인들과 나눠 먹기도 했습니다. 계속된 단원들의 봉사에 이곳에 머물던 장애인이 20여 명에서 50여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들의 사연을 알게 된 여주시가 열악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쉼터 형편도 나아졌습니다. 2016년부터는 아이들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봉사단이 출범했을 때 회비는 3만 원이었습니다. 무명 배우들의 벌이가 변변치 않다 보니 단장인 김 씨조차 회비가 밀리곤 했습니다. 지금은 정식 회원이 60명으로 늘어났고 회원들의 처지를 고려해 회비를 1만 원으로 내렸습니다. 후원금이나 물품으로 도와주는 이들도 생겼습니다.

김 씨는 사회에 진출한 아이들을 돕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달랑 500만 원 가지고 사회에 나간다는데, 얼마나 힘들겠어요. 배우가 되고 싶다면 연기를 가르치고, 미용사가 되고 싶다면 미용 기술을 가르치는 ‘멘토’가 되고 싶어요.”

미용버스 곁에서 바비큐 파티를 위해 고기를 굽는 김 씨와 단원들 주위로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마당이 금세 ‘깔깔’ 웃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이름도 없고, 돈도 없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어른이 되려고요. 외롭지 않도록요.”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후원·봉사 문의 WE모두나눔봉사단

※ 이 글은 동아일보 기사 <가난해도 행복한 아이들의 ‘대장’… “꼭 필요한 어른 되고싶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