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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중 하나인 '얼그레이', 알고보니 중국 차의 짝퉁?

조회수 2020. 12. 8. 11: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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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백작이 집착할 만큼 특별했던 차

처음 부모님 집에서 나와 오피스텔에 혼자 살게 되었을 때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자주 봤습니다. 


밤에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화양연화(花樣年華)」에 나온 음악을 계속 들었습니다.


어둡고 좁은 골목.

국수통을 들고 어깨를 부딪힐 듯 엇갈리는 남자와 여자.  지나치게 화려하게 입어서 더 외로워 보이는 장만옥의 뒷모습. 웃고 있어도 울 것 같은 양조위의 눈빛. 


‘유메이지의 테마(Yumeji’s Theme).’

쓸쓸하게 마음을 울리는 첼로 선율이 반복됩니다.


평범 한 퇴근길이었지만 낮고 묵직한 첼로의 선율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 인생이 영화가 된 듯했습니다.

그런 음악이 있지 않나요? 

일상을 영화로 만드는 음악. 


처음으로 혼자 산다는 정서가 멜랑콜리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와 맞아떨어졌나 봅니다.


자취를 시작하며 자취방 냉장고에 맥주와 소주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름도 고운 서양의 차들을 사다놓았습니다. 


혼자만의 차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양 차는 대부분 홍차라 홍차에 관한 이야기를 열심히 찾아봤습니다. 


많이 들어본 홍차 중 하나인 얼그레이가 알고 보면 중국 차의 짝퉁이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출처: 찰스 그레이 백작

19세기 영국 수상이었던 그레이 백작, 중국에서 만든 정산소종이라는 홍차를 마셔 보고 특유의 과일향에 반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이 차를 만드는 비법을 알려주지 않았고, 백작은 어쩔 수 없이 일반 홍차에 베르가모트 향을 인공적으로 첨가해 정산소종(홍차)과 비슷한 가향 홍차를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얼그레이는 전 세계적으로 정산소종보다 더 잘 알려진 불멸의 패러디가 된 것이죠.  


중국에서 온 홍차는 이렇게 서양에서 크게 사랑받았고 차의 르네상스를 가져왔습니다.

그레이 백작이 집착할 만큼 특별했던 차, 정산소종은 어떤 차일까.


이야기를 알고 나면 당연히 궁금해지겠죠. 


정산소종 중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 어린잎으로 만들어서 금빛 새싹이 섞여 있는 소종 ‘금준미’를 마셔봤습니다. 

왜 그레이 백작이 베르가모트(운향과에 속하는 감귤류 베르가모트 나무의 열매)를 떠올렸는지 알 수 있는 상큼함이 느껴집니다. 


차생활을 시작한 지 딱 1년 째 되는 봄, 차가 좋아서 중국의 차나무 숲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찻잔을 채운 수많은 차만큼 그사이 나에게도 많은 일이 지나갔습니다.

금빛 노을이 내리는 조용한 숲. 수백 수천 년 됐다는 고수 차나무 들을 보러 갔습니다. 


차란 참 신비로운 식물이라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만 잘 자랍니다. 


이국의 저녁 해가 나뭇잎 사이로 눈부시게 침투했습니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모르죠? 옛날엔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고 진흙으로 봉했다죠.


왕가위, 「화양연화」, 2000


이 숲에 나의 비밀을 묻고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오지 않을, 가장 좋은 시절로 기억될, 혼자이지만 충만했던 날들. 


왕가위의 영화 색깔처럼 쓸쓸했던 그 시절 혼자 차를 마시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차나무 사이에 나의 화양연화를 묻어두고 왔습니다. 화려한 시간은 필히 외로움을 동반합니다.   


붉고 달게 우러나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홍차 한잔과 닮아 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느끼며 

감각이 소란스러워지는 동안

머릿속은 오히려 조용해집니다.


일상에 차 마시는 시간을

 들이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차의 시간만이 줄 수 있는 것들.

지금부터 그런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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