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따라하기

경기경찰청 범죄분석팀 프로파일러는 강호순을 상대로 사이코패시 진단표(PCL-R) 검사를 진행했다. 두 차례 검사에서 결과는 27점과 28점이 나왔다.

PCL-R 검사는 사이코패스 검사 또는 그 개발자인 캐나다의 정신과의사 로버트 헤어의 이름을 따서 헤어 진단표로도 알려져 있다. PCL_R은 전체 20개 항목별로 사이코패스 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0점), 부분적으로 존재한다(1점), 확실히 존재한다(2점)로 점수를 매긴다.

검사에서 40점 '만점'을 받은 사람은 명백한 사이코패스다. 30점이 진단을 내리는 경계선이지만, 25점을 기준으로 할 때도 있따. 점수는 보통 임상의가 피험자와 면담하는 동안에 검사 등급 진단 훈련을 받은 사람이, 때로는 전과와 병력과 제3의 보증인을 참고하여 매긴다. 이 평가는 피험자를 잘 아는 누군가가, 피험자가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릴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반사회적인격장애는 사이코패시와 관계는 있지만 그보다 훨씬 흔하고 성격에 근거한 문제보다는 밖으로 드러나는 파괴적 행동을 척도다. 반사회적인격장애가 높더라도 사이코패시는 아닐 수 있다. 사이코패시 점수는 범죄의 상습성, 심각성, 고의성을 더 잘 예측한다. 

영화와 책에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묘사가 가득하지만, 어떤 묘사는 정확하고 어떤 묘사는 덜 정확하다. <아메리칸 사이코> 속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먼은 지나치게 폭력적이어서 현실감이 없다. 이들은 희화화한 인물일 뿐, 아무리 폭력적인 범죄자라 해도 그토록 명백하게 제정신이 아닌 사례는 드물다.

어느 정도 합당한 인격 묘사로는 〈좋은 친구들 Goodfellas〉에서 조 페시가 연기한 토미 드비토, 〈블루 벨벳 Blue Velvet〉에서 데니스 호퍼가 연기한 프랭크 부스를 들 수 있다. 둘 다 비교적 평범하게 생긴, 당신이 길거리에서 지나친다 해도 두 번 다시 떠올리지 않을 사내들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심각한 정신장애자로서 결국에는 타고난 공격성을 제어하지 못한다. 자신의 폭력적인 행동에 후회나 동정을 내비치는 일도 거의 없다. 토미와 프랭크는 PCL-R 점수도 높을 것이다. 토미는 주위의 흥을 돋우면서 자신의 매력을 발산한다. 그러다가 문득 정색하며 “지금 내가 웃기다는 거야?”라는 질문을 던져 상대방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한다. 어차피 정답 따윈 없다. 

사이코패스는 사람들을 방어할 수 없는 처지에 빠뜨릴 수도 있다. 토미가 한 남자의 발을 쏜 다음 그에게 그까짓 걸로 유난을 떤다고 욕을 해대며 카드 게임을 하는 장면도 있다. 또한 사이코패스는 살인을 한 뒤, 흔히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한 것처럼 느낀다거나, 희생자가 방아쇠를 당기게끔 자기를 부추겼노라고 말한다.

그들 자신에게서 분리되어 저도 어쩔 수 없는 힘에 떠밀려 행동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토미 역시 남자의 발을 쏜 사건을 ‘사고’라고 부른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충동적이거나 물리적인 폭력성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일부는 토미와 프랭크처럼 행동한다.

범주가 완전히 다른 사이코패스들도 있다. 이들은 PCL-R 점수는 높지 않지만, 그래도 고전적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지녔다는 강한 징후를 보인다.

윌리엄 피터슨이 연기한 〈맨헌터〉의 영웅, 그러니까 FBI 프로파일러 윌 그레이엄과 같은 사람이 이런 부류다. 그레이엄은 자신이 렉터와 같은 충동을 지녔고 또 렉터처럼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함을 깨닫는다. 살인자는 아니지만 사실상 사이코패스거나 적어도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사람으로, 내가 즐겨 부르는 말인 사이코패스 아류 psychopath lite에 해당한다.

그레이엄은 PCL-R로는 15점, 아니 어쩌면 23점을 받을지도 모른다. 완전한 사이코패스로 진단받는 경계 점수인 30점에 조금 못 미치는데, 그것만 빼면 당신은 그가 완전히 정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의 아내 다이앤과 함께 1986년에 〈맨헌터〉를 보았을 때, 아내는 그레이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 당신이네.”(당시 그 말에 약간 아찔했지만, 나는 아내가 그레이엄을 정말 상냥하고 속 깊은 사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명백한 사이코패스, 다시 말해 헤어의 PCL-R 점수가 30점 이상인 사이코패스는 지금껏 테스트 대상 여성의 약 1퍼센트와 남성의 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PCL-R은 분류 체계가 광범위함에도, 어쩌면 그 점 때문에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돼왔다. 이는 의학이나 과학의 새로운 분야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폭넓게 가지를 친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끼리 과학을 주제로 모일 때마다 그리고 복도와 술집에서 우연히 대화를 나눌 때마다 피할 수 없이 그 증세의 본질을 놓고 논쟁하게 된다.

한 가지 비판은 PCL-R이 계급과 민족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범죄가 들끓는 LA 도심에 있는 하류계급 동네에서의 규범적 행동과 미네소타 상류계급 동네에서의 규범적 행동은 다르다. PCL-R이 폭력성을 얼마나 잘 예측하는가를 둘러싸고도 논쟁이 있다.

즉, PCL-R은 사이코패스를 확인하는 데서 훌륭한 출발점이긴 하지만 완벽한 척도는 아니다. 나라면 0～2점 가운데 한 값을 가진 스무 가지 특성을 합산하는 대신, 각각을 0～5점으로 채점하고 수학적 모델을 써서 특성별로 가중치를 다르게 줄 것이다. 점수나 모 아니면 도인 ‘예-아니오’ 식 진단 결과 외에 개인별 프로필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키와 몸무게만으로 건강이나 비만을 판정할 순 없다. 운동을 하는지, 무얼 먹고 마시는지에 따라 당신은 과체중이지만 대단히 건강할 수도 있다. 당신을 잘 아는 의사라면 그 모두를 따져볼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묻는 질문이 있다. 바로 소시오패스 sociopath와 사이코패스에 차이가 있느냐는 것이다. 많은 심리학자가 둘 다의 존재를 부인한다는 사실을 제쳐두면, 임상 배경의 차이는 순전히 그 의미에 있다. 로버트 헤어가 지적했듯이, 사회학자는 장애가 환경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조정이 가능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자 소시오패시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반면,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는 진단을 내릴 때 사회 요인뿐만 아니라 유전, 인지, 감정 요인 또한 포함하기를 선호해서 사이코패시를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