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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안 되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것

싸다고 해서 똑같은 책만 읽기를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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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고전 <국부론>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 있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제빵업자나 푸줏간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상인들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건 동네 사람들이 제빵업자나 푸줏간 주인이 먹고살 만큼의 적정한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인물소개
  • by. 고재민 교수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집 근처에 있는 빵집이나 푸줏간은 문을 닫게 될 테니, 빵이나 고기를 먹으려면 며칠 전부터 계획과 준비를 하든지 저녁에 갑자기 먹고 싶으면 멀리 있는 빵집이나 푸줏간에 다녀오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산자 관점의 이기심을 말한 애덤 스미스의 주장을 소비자 관점으로 바꿔 말하면, 우리가 언제든지 저녁 식탁에 빵과 고기를 올릴 수 있으려면 제빵업자나 푸줏간 주인의 최소한의 이기심을 채워주어야 한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제빵업자나 푸줏간 주인이 적정한 이윤을 얻을 수 있을 만큼의 값을 치르는 것도, 소비자들이 그들에게 베푸는 ‘자비심’이 아니라 자신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 싶은 ‘이기심’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는 한 푼이라도 더 깎아서 싸게 사는 것이 이기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빵집과 푸줏간이 망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문을 닫게 할 정도로 값을 깎는 ‘단기적 이기심’은 어쩌면 어리석음이라고 이르는 게 맞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 우화에서 거위의 배를 가르는 농부의 어리석음과 비슷할지 모르겠다. 이에 반해 빵집과 푸줏간의 적정이윤을 보장해주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장기적 혹은 합리적 이기심’이라 할 만하다.

도서정가제가 폐지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최근 도서정가제 폐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사가 붙인 책값 그대로 전국 어디서나 동일하게 파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는 10% 할인, 5% 적립을 허용하는 반쪽짜리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 한도마저 없애 할인 폭을 늘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폐지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우선은 책을 싸게 살 수 있어 좋다. 이것이 도서정가제를 폐지하자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동네책방과 작은 출판사들 또한 망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동네책방은 대형 온라인 서점보다 책을 비싸게 공급받고 있어, 할인을 더 해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동네책방은 이미 천연기념물 수준이 되었지만, 이제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은 아니다. 오며 가며 책을 구경하고 읽을 수 있는 쉼터 역할은 물론이거니와, 북 콘서트를 열어 저자와 독자가 좁은 책방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책 속에 파묻혀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북 스테이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 셰익스피어&컴퍼니 책방 전경사진

영화에 여러 번 나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파리의 ‘셰익스피어 & 컴퍼니’ 책방을 떠올려보라. 동네책방이 사라지면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 삶의 숨구멍도 그만큼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돈은 안 되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들을 내는 작은 출판사들 또한 이익이 줄어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싸다고 해서 똑같은 책만 읽기를 바라는가?

나는 자비심 넘치는 이타주의자가 아니다. 내 행복이 더 중요한 이기적 존재지만, 다만 무엇이 진짜 나를 위한 것인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이득을 동네책방과 작은 출판사가 사라진 삭막해진 동네, 황폐해진 사회와 비교해서 따져보자.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더 싸다고 해서 온 국민이 한두 개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만든 똑같은 빵만 먹기를 바라는가? 

런던이나 뉴욕 한가운데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드넓은 풀밭에 오래된 아름드리나무들이 솟아 있는 공원들은 또 어떤가. 이제라도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마천루를 지으면 막대한 개발이익으로 시민들이 내야 하는 세금도 낮출 수 있을 텐데, 왜 그들은 내버려두는가? 그들이 환경론자라서인가? 공원을 개발하는 이익보다 공원이 주는 무형의 가치가 더 크기 때문이고, 이야말로 환경에 대한 자비심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진짜 이기심이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자.

해당 콘텐츠는 한겨레 기고글 [기고] 도서정가제와 센트럴파크 / 고재민 원저작자 고재민 교수의 허락 후 재편집하여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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