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아주 현실적인 방법

조회수 2020. 7. 31. 19: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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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못부터 따질 문제는 아니다.

행복한 어린 시절, 아직 늦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더라도 자존감에는 어린 시절에 생긴 구멍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잘잘못부터 따질 문제는 아니다.

양육에 있어 이론적으로 완벽한 부모를 둔 아이라 할지라도 불완전한 자존감을 가진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 한 사람의 자존감은 학과 공부, 사회적 요인, 건강 문제들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어떤 것도 자존감이 낮은 부모 밑에서 자란 것보다 해롭지는 않다.

과보호하는 부모는
부모 자체가 자존감이 낮다는 것

애정과 배려가 가득한 환경에서 성장한 어린이라도 부모가 과보호를 하면 정서적으로 문제를 겪을 수 있다.


과보호는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모든 측면에 공포와 두려움의 분위기를 주입하고, 이에 어린이들은 과도하게 자의식이 세지고 불안해진다. 알다시피 두려움은 분노의 전조다. 


그런 어린이는 보통 거부에 민감하고, 정서적으로 유약하고, 자신감이 낮은 성인으로 성장한다. 의도는 좋지만 과보호 행위는 부모 자체가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보호하는 부모에게는 다음과 같은 징후가 하나 이상 나타난다.

(1) 아이가 두려워하거나 상처받는 것을 참지 못한다(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을 투사함).


(2) 훈육을 하면 아이가 자신을 사랑 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화를 낼까 봐 두려워한다.


(3) 아이가 자신의 친구가 되기를 바라고, 아이에게 책임감 있는 적절한 권위를 행사하는 데 불편함을 느낀다.


(4) 아이가 부모에게 영원히 의지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쓸모 있다는 느낌과 아이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서적 구멍을 메우고 싶어 한다.

위와 같은 과보호의 정서적 부작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인의 자존감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괴로움인 경우가 많다. 자아 위주의 존재인 어린이들의 경우 부모가 보이는 행동의 원인을 자신의 내적 결핍에서 찾기 쉽다. 

일곱 살짜리가 ‘회사에서 그렇게 큰 손해를 보셨으니 울분을 토하고 나에게 화풀이를 할 만도 하지. 뭐 그래도 괜찮아.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걸 아니까. 아빠는 그냥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었던 거야’라고 생각할까?


부모가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아이는 부모의 분노를 ‘나는 아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라는 식으로 해석한다. 애정 어린 부모와 살아도 아이들이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많은 아이들이 그렇다) 하물며 학대하는 부모 밑에서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거나 나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기가 얼마나 쉬울지 생각해보라.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은 아이의 한계가 아닌 본인의 한계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그것이 자신과 관계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엄마라면 아이들을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할 능력이 결핍된 엄마라면 순진무구하고 얌전한 아이도 엄마가 표출하는 반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엄마가 사랑을 베풀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성인들조차 자신의 가치를 부모가 어떻게 자신을 대하는지와 쉽게 연결시키곤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내 가치를 반영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내 가치를 반영한다.’ 


자아는 늘 이런 공식을 만들어내지만, 진실은 그렇지가 않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사랑할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가 부족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그 사람이 일어나서 걸을 수 없다는 이유로 가치가 덜하지 않다. 


정서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내게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개하는 것이 이치에 닿는가? 어머니나 아버지가 과거에 혹은 지금까지도 우리를 사랑하지 못한다고 해서 계속 분노에 매달려 있고 싶은가? 가지고 있지 않다면 베풀 수 없다. 부모의 영혼이 아이에게 사랑을 주기를 절실히 원해도 말이다.

모를 포함한 누군가가 우리를 대하는 방식은 그 사람이 느끼는 자기 가치를 반영하는 창이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실제 가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린 시절에 진정하게 훌륭한 대우를 받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일까?”


그 모습이 어떻든, 그것이 진정한 당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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