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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저주?' 신의 경지에 도달하고 떠난 이 사람들

교향곡 9번 이상을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작곡가들이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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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교향곡의 저주?

루트비히 판 베토벤

베토벤은 <교향곡 제9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대한 작곡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이 작품은 신의 경지에 도달한 걸작이었습니다. 후대 작곡가들이 이 작품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일까요.


교향곡 9번 이상을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작곡가들이 참 많습니다.


말러, 슈베르트, 드보르작, 브루크너 등. 오죽하면 ‘9번의 저주’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1909년 여름, 말러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티롤에 위치한 조그만 별장으로 향합니다. 말러는 그곳에 머무르며 <교향곡 제9번>을 작업했고 뉴욕으로 돌아와 이듬해 1910년 4월 1일에 곡을 완성합니다. 오스트리아와 미국을 오가며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작곡을 이어간 셈이죠.


9번 교향곡을 작곡하기 전후를 시간 순으로 되짚어 보겠습니다


구스타프 말러

말러가 사망하기 전의 5년


1907년 47세

• 7월 12일 장녀 마리아, 디프테리아로 사망(4세)

• 10월 5일 빈 국립오페라극장 감독직 사임 발표

• 12월 20일 뉴욕으로 이주. 이듬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지휘자로 취임 


1908년 48세

• 1월 1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지휘자 데뷔

• 여름 휴가지에서 <대지의 노래> 작곡


1909년 49세

• 여름 휴가지에서 <교향곡 제9번> 작곡

• 11월 4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로 데뷔


1910년 50세

• 4월 1일 뉴욕에서 <교향곡 제9번> 모음 악보(스코어) 완성

• 7월 3일 <교향곡 제10번> 작곡에 착수


1911년 51세

• 2월 24일 발열 증상으로 건강 악화. 심내막염 진단

• 4월 8일 빈으로 귀환

• 5월 18일 빈 교외의 병원에서 사망(향년 50세)

작곡 전후의 상황을 살펴보세요. 이 모든 사건이 불과 5년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교향곡 제9번>을 작곡하기 전에 말러가 번호를 붙이지 않은 교향곡을 만든 사실을 아시나요?


<대지의 노래>가 그것입니다. 테너와 메조소프라노가 교대로 구슬픈 독창을 주고받으며 삶과 죽음을 노래하는 이 작품에는 말러 특유의 염세적인 우울함이 짙게 배어있는데요. 본래 이 작품이 교향곡 제9번이 되어야 했지만 말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9번의 저주가 두려웠나 봅니다.


<대지의 노래>를 발표한 이듬해, 그는 곧바로 새로운 교향곡을 쓰기 시작해 반년 만에 완성합니다. 말러도 이때는 어쩔 수 없이 제9번이라고 붙여야 했죠. 순수하게 음악만으로 이루어진 곡이라 제목을 억지로 달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런데도 여러 작곡가들이 교향곡 9번을 쓴 다음 죽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는지, 말러는 곧장 <교향곡 제10번>에 착수합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9번의 저주는 말러를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열 번째 교향곡을 작곡하는 도중에 돌연 병으로 사망합니다. 결국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은 제9번이 된 셈이지요.


구스타프 말러 - 대지의 노래

말러의 교향곡에 대해, 일본을 대표하는 지휘자 오타카 다다아키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러는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숱한 격무를 보면서도 경이로울 만큼 완성도 높은 교향곡들을 잇달아 작곡합니다. 모든 교향곡이 몹시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교향곡 제9번>은 말러 교향곡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지휘자의 진두지휘 아래 모든 악기들이 일사불란하게 연주하기보다는, 오케스트라가 각자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음악을 이끌어나갑니다. 실내악처럼 말이죠. 마지막 악장에서는 죽음을 노래하는데 그야말로 천상의 소리, 그 자체입니다.”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의 마지막 음은 CD로 들으면 알아차리기가 힘듭니다. 심연에 빠져들 듯 적막감 속에 소리가 천천히 잦아드니까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뱉는 숨결처럼요. 연주회장에서 이 곡이 연주될 때는 통상 마지막 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비로소 박수가 울려 퍼진답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다른 작곡가들은 평생 동안 몇 곡의 교향곡을 작곡했을까요?

(순서대로) 안톤 브루크너, 프란츠 슈베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음악가별 교향곡 작곡 수


슈베르트(1797~1828) 8곡

수십 곡의 교향곡 작곡에 착수했으며 <미완성 교향곡> 이외에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작품이 많다. 완성 작품은 총 7곡.


브루크너(1824~1896) 9곡

번호를 매긴 9곡 이외에 번호가 없는 <교향곡 제00번>, <교향곡 제0번>을 작곡해 실제로는 총 11곡. 제9번은 제4악장이 미완성으로 브루크너도 ‘9번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브람스(1833~1897) 4곡

완성하는 데 무려 21년이나 걸린 제1번에 비해 제2번은 4개월, 제3번은 5개월 만에 완성했다. 제4번은 2년이 걸렸다.


차이콥스키(1840~1893) 6곡

번호를 매긴 작품은 6곡이나 번호가 없는 <만프레드 교향곡>을 포함하면 총 7곡.


드보르작(1841~1904) 9곡

베토벤처럼 제1번을 20대에 완성하고 평생 동안 총 9곡을 작곡했다.


말러(1860~1911) 9곡

<대지의 노래>를 포함하면 10곡이지만 제3악장까지 악보가 남겨진 미완성 제10번을 포함하면 총 11곡.


시벨리우스(1865~1957) 7곡

합창곡을 첨부한 <쿨레르보 교향곡>을 포함하면 총 8곡.

제8번을 완성했으나 1945년에 스스로 폐기했다.


본윌리엄스(1872~1958) 9곡

영국 출신으로는 드문 근현대 교향곡 작곡가로 총 9곡을 남겼다.


프로코피예프(1891~1953) 7곡

러시아 혁명 후에 미국으로 망명했으나 1936년에 구소련에 귀국했다. 번호를 붙인 작품은 7곡이나 번호 없는 작품까지 포함하면 총 10곡.


쇼스타코비치(1906~1975) 15곡

공산주의 체제의 혹독한 검열 속에서도 15곡의 교향곡을 작곡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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