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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상처 준 사람을 억지로 용서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조회수 2019. 10. 31. 09: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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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사람 때문에 상처 입고 더러는 죽이고 싶을 만큼 사람을 미워했던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특히 40대, 50대라면 사람 때문에 마음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마음속에 분노를 하나둘쯤 갖고 살게 마련이지요.


멀리 볼 것도 없습니다. 

배우자에 대해 용서할 수 없는 기억을 품고도 이혼하지 않고 사는 중년 부부도 많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남편의 외도를 잊을 수 없고 그것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중년 여성이 있는가 하면, 자신은 처자식을 위해 돈도 제대로 못 쓰고 정신없이 일만 했는데 아내는 바람을 피우는 것도 모자라 애인에게 수천만 원짜리 시계까지 선물했다며 그런 아내를 죽이고 싶다는 중년 남성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럭저럭 큰 문제 없이 살지만 아직도 그 일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고 늘 가슴에 칼을 품고 사는 부부도 많습니다.


믿었던 직원이 돈을 횡령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중년의 회사 대표의 경우는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자기가 부정을 저지르고도 그것을 문제 삼는 즉시 회사 비리를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는 직원 때문에 큰 상처를 입은 회사 대표도 있습니다.


평생 시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달마다 찾아오는 종갓집 제사를 꼬박꼬박 다 지내고도 정작 시부모님 돌아가실 때는 유산 한 푼 못 받았다는 여성도 있습니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고통받아야 했던 사례들을 들으면서 ‘인간의 영혼이란 죽을 때까지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성난 난봉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흔이 넘으면 어쩔 수 없이 배신당하고 상처 입는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사람에게 상처 주는 방법을 엄청나게 많이 아는 것이 아닐까’라는 암울한 결론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용서하며 살아가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인생의 행복도 가질 수 없다고 합니다. 무조건 용서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용서하기 어렵거나 도저히 용서해줄 수 없는 일을 겪습니다. 그래서 “나는 피해자고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까?”라고 항변하듯 물어옵니다. 


용서란 본디 어려운 법입니다. 아니, 용서는 불가능합니다. 용서는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해줄 자격조차 없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많은 흠결을 갖고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저지르고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인간이 다른 누군가를 벌하거나 꾸짖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내가 당신을 용서하겠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용서할 수 있는 대상은 자기 자신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 밖에 있는, 아무런 흠결도 갖고 있지 않은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용서할 수 있다는 자기애적 착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분노를 멈출 수 있습니다.


이것을 타인을 용서하지 말라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곤란합니다. 누군가를 억지로 용서하려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거나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자신을 탓하는 일은 그만두라는 뜻입니다. 억지로 용서하려고 생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미움 때문에 마음이 요동치게 내버려두지 말고, 매 순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흔의 문제에는 선명한 해법이나 단순한 원리가 없습니다.


타인이 거쳐간 길은 그것이 아무리 좋고 옳아 보여도 절대로 내것이 될 수 없으니까요. 마흔의 마음 공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마음 공부가 필요할까요?


바로, 마음 공부의 핵심은 상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전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서른에게, 동시에 마음은 아직도 서른에 머물러 있는 마흔을 위한 이야기를 글에 담아두었습니다.


마흔의 길목, 없어질 것만 보지 마세요.

당신에게 아직 남아 있는 소중한 것이 더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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