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운 할매템, 외국에선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

조회수 2019. 9. 6. 13: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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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 외국인이 수십 년간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평범한 빨간색 우체통을 DSLR로 정성 들여 찍고 있었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라도 그 길의 가로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듯, 매일 지나다니던 길에 놓인 우체통에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다. 나는 있는지도 몰랐던 우체통을 외국인은 보물이라도 만난 듯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길 위를 다른 마음으로 걸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남은 일을 하기 위해 사무실로 복귀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외국인은 멀리 여행을 떠나와 설레는 마음으로.


아닌 게 아니라 해외여행만 가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가. 나만 해도 경복궁과 광화문 같은 위대한 문화유산이 집근처에 있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외국 관광지에만 가면 감탄사를 연신 쏟아낸다. 눈을 반짝거리며 하나라도 놓칠까 골목골목을 샅샅이 둘러본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내가 우체통을 찍는 외국인을 보며 그랬듯이 별것 아닌 것에 감탄하는 나에게 오히려 감탄할지 모른다.


광고 촬영을 하다 보면 같은 곳도 다르게 담아내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받는다. 해외 촬영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국내 로케이션의 경우 괜찮은 곳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신선한 맛이 떨어진다. 더구나 이 좁은 땅에서 광고는 하루에도 몇 편씩 온에어되는데 거기서 거기인 장소를 새로운 신으로 담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때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광고 한 편을 만났다.

위든+케네디 도쿄가 제작한 나이키 광고 ‘승리의 룰’

2014년 외국 광고대행사 위든+케네디 도쿄WIEDEN+KENNEDY TOKYO가 제작한 나이키 광고 ‘승리의 룰’ 시리즈였다. 한국인이라면 익숙한 일상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삼각지역 근처의 한 웨딩홀. 화면 가득 잡힌 웨딩홀 옥상에서 박지성이 테니스를 치다가 날아온 테니스 공을 헤딩으로 넘겨버린다.

웨딩홀 옥상을 저렇게 역동적인 공간으로 볼 수도 있구나 싶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등장하고 우리나라에서 촬영했는데도 더없이 이국적으로 보인다. 학교 교실부터 시작해 분식점, 아파트, 경비실, 동네 골목까지 우리 주변의 흔하디흔한 풍경을 담았을 뿐인데 소위 ‘때깔’이 다르다. 외국인 감독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은 말 그대로 ‘타국’이었다.


분명 같은 공간과 풍경인데 이렇게 다른 그림이 만들어질 수가 있나? 왜 나는 수도 없이 지나치던 집 근처, 회사 골목 풍경을 이런 마음가짐으로, 이런 눈길로 바라보지 못했을까?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것은 익숙한 개념에서 낯선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공간이나 사물은 하나의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익숙한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들을 놓치는 것뿐이다.
결국 어떻게 바라보느냐, 그 태도가 새로움을 결정한다.

최근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에서는 ‘호미’가 히트 상품이 되기도 했다. 


EBS <극한직업>이라는 방송에도 소개된 경북 영주의 대장간 장인이 직접 만들어 판매 중인 호미는 아마존닷컴 원예 톱 10에 이름을 올릴 만큼 인기가 높다. 


국내 판매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임에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해외에서 연일 주문이 들어와 대장간에서 잔업을 해도 물량을 뽑아내지 못할 정도라고 하니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출처: amazon 홈페이지
미국 아마존에서 10배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는 '영주 대장간 명장이 만든 호미'
네이버 뉴스 검색 화면 캡처

호미는 주로 시골에서 밭일을 할 때 쓰는 농사 기구 정도로 인식되어 있다. 일반인은 크게 관심도 없고 실제로 사용할 일도 많지 않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정원을 가꿀 때 쓰는 손삽보다 호미가 더 실용적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호미는 목부분이 ㄱ자로 꺾여 있어서 서양 손삽보다 힘을 덜 들이고 훨씬 편하게 땅을 팔 수 있었다. 그렇게 호미는 서양의 혁명적인 원예 도구로 자리 잡았다. 호미의 존재가 그들에게는 위대한 발견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호미를 단 한 번이라도 위대한 도구로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조선시대 배경의 좀비 드라마 <킹덤> 역시 해외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보다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핫한 모자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너무도 익숙한 ‘갓’이다. 


외국인들이 “드라마 속 사람들이 모두 멋진 모자를 쓰고 있다”와 같은 리뷰를 올리면서 한국의 전통 모자는 유례없는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갓 역시 아마존닷컴에서 히트 상품으로 자리했다.

사극에서 늘 볼 수 있어 아무런 감흥도 없던 갓에 외국인들은 “오 마이 갓!” 하며 연일 감탄사를 쏟아낸다. 우리에게는 그저 전통 소품에 불과한 갓에 외국인들은 멋진 디자인이라고 찬사를 보내며 실제로 구매까지 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갓을 사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독특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몸뻬, 발을 후끈하게 만들어주는 재래시장 최고의 인기 상품 요술버선, 이태리타월이라고 불리는 때수건, 엄마와 아이를 따뜻하게 하나로 묶어주는 포대기, 냄새를 완벽하게 잡아주는 스테인리스 반찬통, 음식의 온기를 오래오래 전해주는 돌솥, 구수한 감칠맛으로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쌈장, 시골 할머니 댁 필수 아이템인 촌스러운 무늬의 극세사 호랑이 담요까지. 우리에겐 지나치게 흔해서 귀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물건들을 외국인들은 독창적인 디자인과 실용성을 높이 평가해 사들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외국인들은 한글까지도 달리 본다. ‘옷’이라는 글자는 사람으로, ‘훗’이라는 글자는 모자 쓴 사람으로 보인단다. ‘꽃’은 왼쪽을 보는 사람, ‘우유’는 춤추는 두 사람, ‘웁’은 욕조에 들어간 사람처럼 보인다고 하니 우리에게는 글자지만 그들에게는 그림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멋진 풍경과 멋진 물건, 멋진 아이디어를 놓치며 살고 있진 않은가?


놀라움은 꽁꽁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떡하니 널려 있다.

결국 바라보는 태도가 전부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일깨워준 외국인 렌즈를 나의 눈에 장착해보자.

‘스위스’가 산과 산 사이에 창을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익숙함이 새로움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이 책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하우만을 담지는 않았다. 묵묵히 하다 보니 단련으로 이어진 나의 일상과 생각을 한자 한 자 써나갔고 꾸준히 쓰다 보니 한 권의 책이 되었을 따름이다. 오직 크리에이티브만을 향한 발악을 진솔하게 담았으니 나름 건질 만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습관은 평범하지만 과정은 평범하지 않았던 나날들의 진심이 투명하게 전해진다면 더없이 좋겠다. 아무쪼록 재미나게 읽어주길 바란다.

- 오롯이 혼자 되는 새벽녘에 이채훈(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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