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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만수르 유노윤호, 광고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

조회수 2019. 8. 30. 11: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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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려고 듣는 게 아닌데도 이상하게 귀에 쏙쏙 박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삼청동에서 광고 촬영을 하다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점심시간이 꽤 지난 뒤라 식당은 한적했다. 옆 테이블에서는 두 명의 여자 손님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동방신기의 ‘유노윤호’ 이야기였다. 듣자 하니 유노윤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열정적인 댄스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모닝 댄스로 열정을 예열한다”는 표현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실 2011년에 유노윤호를 모델로 면세점 브랜드 광고 촬영을 진행한 적이 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이었음에도 친근한 성격으로 스태프들을 편하게 대해주어 인상에 오래 남아 있었다. 촬영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았을 때 삶을 대하는 태도도 참 긍정적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본 두 여성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듯했다.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나 혼자 산다 캡처본
열정 만수르
“유노윤호 좀 별난 것 같은데, 어쩐지 멋있어. 별명이 ‘열정 만수르’잖아. 웃자고 하는 소린 줄 알았는데 진짜 열정 부자야.” 

“성격도 좋아보이던데? 친구도 많을 것 같아. 인싸의 기운이 느껴진달까.”

“맞아, 맞아. 유노윤호 띵언(명언) 들어봤어? 인생에서 중요한 금 세 가지가 있는데, 예전에는 황금, 소금, 지금이었대. 근데 요즘은 현금, 입금, 지금이래.”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그렇다. 황금, 소금, 지금이다.

소개팅 상대로 유노윤호가 나왔는데 홀라당 넘어간 사람처럼 디테일하고 솔직한 대화가 쏟아져 나왔다. 이야기를 듣는 사이 그가 연예인이라기보다는 보통의 좋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나이 어린 팀원들에게 유노윤호의 이미지와 평판에 대해 물으니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나 혼자 산다>에서 유노윤호 방송분을 찾아봤다. 예전에 만났던 모습 그대로, 티 없이 순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멋진 사람이었다.


직업상 광고 모델로 연예인을 기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히 연예 뉴스도 관심 있게 보는 편이다. 하지만 기사나 방송, 광고를 통해 보는 이미지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가장 좋은 자료는 소비자 개개인의 평판이다. 그날 귀로 본 대화는 ‘살아 있는’ 리뷰였다.


준비 중이던 맥스웰하우스 콜롬비아나의 신제품인 ‘마스터’의 모델로 유노윤호를 제안할 때도 그날의 대화를 살짝 인용했다. 신제품인 만큼 돌출도가 중요한 광고였는데, 유노윤호라는 이름을 들은 광고주의 안색이 대번에 밝아졌다.

“열정맨과 대용량 커피, 딱 맞아떨어지네요!”

좋은 모델을 제안해줘서 고맙다는 칭찬도 덤으로 들었다. 


보통 광고 모델 후보를 찾을 때는 모델 에이전시에 연락한다.“새로운 커피 광고에 잘 어울릴 만한 연예인 좀 추천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식이다. 


요청을 받은 에이전시에서는 모델의 사진과 함께 필모그래피, 키, 생년월일, 계약 단가가 쭉 적힌 리스트를 보내준다. 그렇게 가공된 정보만 나열된 리스트를 받아 들고 선택을 고민할 때, 그날 들은 대화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의 생생한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맥스웰하우스 커피 CF , 유튜브 챕처

실제로 유노윤호만의 에너제틱한 매력은 새로 출시되는 커피 제품과 ‘찰떡’이었다. 촬영 현장에서 다시 만난 유노윤호는 여전했다. 성실한 자세로 좋은 컷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촬영하며 최선을 다해 연기에 집중했다. 


충분히 좋은 컷이 나왔으니 다음 컷으로 넘어가자고 하자, “한 번만 더 갈게요!”라고 외치는 모습은 8년 전 그대로였다. 게다가 긴 시간 촬영을 하면서도 애드리브를 멈추지 않는 ‘열정 만수르’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만족스러운 광고가 나온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 우연히 귀를 쫑긋해 듣게 된 가수의 이름을 머리 한구석에 담아두었다가 실제 광고 모델로까지 쓰게 된 것이다. 귀가 눈 못지않은 맹활약을 한 셈이다.


비단 모델뿐만이 아니다. 광고 카피도 사람들 말 속에 다 들어 있다.


한번은 술을 마시는데 옆 테이블에 목소리 큰 20대 남자 여섯 명이 앉았다. 그중 한 명이 최근에 한 소개팅이 잘돼가고 있다며 상대 여성에 대해 자랑하듯이 말하자 나머지 친구들이 크게 반발했다.

"아주 소설을 써요. 진짜 소설 쓰고 있네!”

그 멘트를 듣자마자 ‘교보문고’나 ‘밀리의 서재’ 같은 책 관련 브랜드의 광고 카피로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비밀 노트에 바로 적어놓았다. 일상에서 들려오는 말들에는 이렇게 책이나 뉴스 같은 데서 얻기 힘든 ‘날것’의 매력이 있다.


고수는 남의 말을 귀담아듣고, 하수는 남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재해석하고 싶다. 눈앞에 있는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고, 양옆과 뒤, 좌우 사방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진짜 고수라고. 친구와 통화 중인 여고생의 수다에 10대를 꿰뚫어볼 수 있는 인사이트가 녹아 있고, 과일 가게 아저씨와 수박을 사는 아줌마의 대화에서 인정이 묻어나는 생생한 스크립트를 건져올릴 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에서는 두 명의 댄서와 한 명의 공연 기획자가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리스본, 런던, 베를린, 아비뇽 등지에서 공연한 경험이 있는 남자 댄서는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공연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는 리스본의 노란 전차 안에서 발을 튕기며 공연 연습을 하던 시절을 회상하고 있었다. 아주 잠깐 귀를 열어두었을 뿐인데 춤의 세계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가 말하는 몸짓들을 귀로 담으며 춤을 추는 무대 위 댄서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 위에 예전에 가본 적 있는 리스본, 런던, 베를린, 아비뇽의 거리를 덧입혔다. 청각에서 시작해 온몸의 감각이 발동한 것이다. 한 댄서의 이야기가 언제 어떤 형태로 광고에 담길지는 모를 일이다. 언젠가 새로운 광고 캠페인을 준비할 때 노란 전차 위에서 남녀 댄서가 격렬한 춤을 추는 모습을 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귀를 쫑긋 세우고 귀로 세상을 본다.


"이 책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하우만을 담지는 않았다. 묵묵히 하다 보니 단련으로 이어진 나의 일상과 생각을 한자 한 자 써나갔고 꾸준히 쓰다 보니 한 권의 책이 되었을 따름이다. 오직 크리에이티브만을 향한 발악을 진솔하게 담았으니 나름 건질 만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습관은 평범하지만 과정은 평범하지 않았던 나날들의 진심이 투명하게 전해진다면 더없이 좋겠다. 아무쪼록 재미나게 읽어주길 바란다."

- 오롯이 혼자 되는 새벽녘에 이채훈(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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