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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에게 투표했던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이유


■ 글쓴이

세계 최고의 정치 연구가이자
미국 정치 컨설팅 싱크탱크
‘유라시아 그룹’ 회장 이안 브레머 Ian Bremmer

글로벌 정치 리스크 연구 및 컨설팅 기업 유라시아 그룹의 설립자 겸 회장.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최연소로 후버연구소 교수로 임명되었고, 2007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영 글로벌 리더로 선정되었다. 월스트리트 최초의 정치 리스크 인덱스(GPRI)를 만들었으며, 국제 정치 질서에서 리더가 사라지는 ‘G-Zero(지-제로)’ 개념, 특정 국가의 개방성과 안정성과의 상호관계를 보여주는 ‘J-Curve(제이 커브)’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계경제포럼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관한 글로벌 의제 협의회’ 창립 위원장이자 활발한 대중 강연가이기도 하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의 전(前) 편집장으로, 현재까지도 <타임>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하는 유명 칼럼리스트이며, <파이낸셜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뉴스위크>,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포린어페어스>에도 기고하고 있다. CBS, CNN 등 전미 주요 언론사 뉴스의 주요 패널로 국제 정치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고, CNBC, 폭스뉴스, 블룸버그TV,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 BBC 등에도 정기적으로 출연한다. 저서로는 《리더가 사라진 세계》,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이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갈등을 교묘하게 이용해 사람들의 표를 갈취해왔다.

도널드 트럼프를 찍은 사람 중에 현지 미국이 더 안정적이고 더 번영하는 국가로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동연령 남성 중 실업자가 취업자의 3배나 되고 실업자 남성 중 절반이 매일 진통제를 복용하는 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변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운명이 외면 받을 경우에 미국인들이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지 상상이 잘 안간다.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의 결점을 찾기는 쉽다. 그는 비호감이고, 부정직하고, 무능하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우리 대 그들'을 만든 것은 아니다. '우리 대 그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만들었고, 그의 지지자들을 무시하는 자들이 미국을 망가뜨리고 있다.

그들은 어리석거나 비열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을 혐오하지 않는다. 그들 중에도 가난한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상당수가 지식이 상식을 압도할 때가 너무나 많다고, 많은 국민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혜택만 생각하고 누가 그 비용을 감당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너무나 많은 정치인이 미국의 노동자와 그 가정보다 보편적 이상주의에 더 관심이 많다고, 그들이 알고 있던 국가가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한때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포함해 지난 대선에서 많은 사람이 트럼프에게 표를 준 이유는 변화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선거 홍보물에 공약으로 적힌 변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원했다. 미국의 육체노동자 계층은 자유무역으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 미국의 인프라는 허물어지고 있고, 교육 시스템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의료 시스템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고, 형법 체계는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런 실패 사례는 미국 기성 정치권 전체의 책임이다. 국민들은 정치인, 주류 미디어, 재계 엘리트, 은행가, 저명한 지식인들에게 속았거나 무시당한 기분이다. 그들은 이런 현실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짜고 치는 게임이라 믿고 있고, 그런 믿음에도 일리가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도 그 자체로 침식되고 있다. 미국의 적법 유권자 중 약 45퍼센트가 아예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중 일부는 자신의 표가 망망대해에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투표소에 나오지 않았고, 일부는 선거 결과가 뻔한 주에 살고 있었다. 게다가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민주주의 저널Journal of Democracy>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미국 젊은이 중에서 민주국가에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비율은 1930년대에는 91퍼센트였지만 현재는 57퍼센트로 크게 줄었다.

미국 젊은이 중에서 민주주의체제에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명 중 1명이 채 안 된다.

1995년에는 미국에 군사정권이 들어서면 “좋을 것”이라거나 “매우 좋을 것”이라고 하는 미국인이 16명 중 1명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6명 중 1명이었다. 트럼프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는 정부와 미디어에 대한 지지자들의 태도를 더욱 오염시켰고, 미국과 우방국들의 관계에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을 상처를 냈고, 전 세계인 앞에서 미국이 망신 당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일부러 미국인들끼리 싸움을 붙였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유권자의 양극화 현상을 잘 보여준다. 지지자들은 다른 정치 관료였다면 정치 생명이 끝장났을 갈등과 논란 속에서도 그를 꾸준히 지지하고 있고, 반대자들은 설령 그가 자신을 불타는 건물에서 구해준다고 해도 고마워하지 않을 수준이다.

하지만 비판자들은 트럼프라는 인물만 볼 뿐 그가 백악관에 입성하는 원동력이 됐던 근본적이고 긴급한 문제들은 도외시함으로써 ‘우리 대 그들’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그들은 장벽을 세우기는 더 쉽게 만들고, 도움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더 어렵게 만든다. 도널드 트럼프를 조롱하고, 그의 과격한 언행을 헐뜯고, 그의 지지자를 희화화하기는 쉬워도, 수많은 미국인이 자신에게 미래가 없고 남들은 그런 데 관심이 없다고 믿게 만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국경 개방을 우려하는 사람들을 난민에게 무심하고 이슬람교인을 혐오하는 인종주의자 냉혈한이라고 악마화하기는 쉽다. 자기 나라의 정부가 EU 본부의 관료들에게 너무나 많은 권력을 이양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무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민자를 무한정 받아들인다면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 자녀와 함께 목숨을 건 여정에 오르라고 손짓을 하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국토가 좁은 유럽 국가는 넘치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해 애를 먹게 되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말대로 모든 이민자가 진짜 난민은 아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국을 떠나게 만들면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독재자들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을 허용하는 꼴이 된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때때로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인종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 공통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위험이 또 하나 있다. 매년 인간은 지난해보다 많은 데이터를 생산한다. 이제는 우리가 하는 선택, 특히 온라인에서 하는 선택 덕분에 알고리즘이 우리의 관심사, 욕구, 필요를 친구나 가족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것에 쉽게 휘둘린다.


이미 인터넷에서 생성된 가짜 뉴스가 아직은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원리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있고, 앞으로는 디지털 기술로 정교하게 조작된 가짜 사진과 영상이 대거 유포 되어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권력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돈을 노리는 기술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우리를 더 잘 이해하고 조종할 수 있게 되어 모든 나라에서 국민의 정치적 영향력이 훼손되는 세상이 오는 것도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이다. 물론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므로 시간이 가면 똑같은 속임수를 쓰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사람들은 냉소주의에 빠지기가 쉽고, 그러면 많은 사람이 정치에 완전히 등을 돌려버림으로써 가장 화가 많이 난 사람들과 가장 고집이 센 사람들이 선거 결과를 결정 짓는 세상이 될 수 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장벽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사회계약을 재작성할 것인가?

두 가지 전략 모두 많은 나라에서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 두 가지 전략 모두 정부가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할 능력과 자원이 있어야만 실행 가능하다. 장벽을 세운다고 정부가 모든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것은 아니다. 장벽은 디지털 시대의 아파르트헤이트가 되어 일부는 좋은 대접을 받고 나머지는 아예 대접을 받지 못하게 할 뿐이다. 이스라엘이 좋은 예다. 그리고 미국도 점점 그렇게 되는 추세다.


사회계약을 재작성하는 것은 앞으로 한동안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직 위기의식이 충분히 고조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너무나 많은 세계주의자가 여전히 현행 시스템에서 이익을 보고 있고, 다양한 유형의 장벽이 그들을 실질적인 위험으로부터 일시적으로는 보호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빠져야만, 특히 승자들마저도 그렇게 느낄 때가 돼야만 비로소 다른 모든 사람들의 상황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세계주의의 가장 큰 패착이다.


실험이 가능한 여건이 갖춰진다면 사회계약을 재작성하려는 노력으로 가장 쉽게 결실을 볼 수 있는 곳은 사회의 동질성이 비교적 크고, 국경에 가해지는 압박이 비교적 약하고, 계속해서 경제의 생산성을 확대할 수단이 마련된 국가들이다. 하지만 그밖에도 정치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성격의 합의가 가능한 나라라면 어디서든 사회계약 재작성이 효과를 발휘 할 수 있다. 장벽을 건설할 때보다는 국민과 정부의 관계를 재형성할 때 가장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안정과 번영을 누리게 될 확률이 훨씬 높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나 개인적 경험으로 보나 사람들은 최선이 요구될 때 최선을 행한다. 그렇게 최선이 요구되는 날이 우리의 생각보다 일찍 도래할 것이다. 전쟁을 원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비용을 직시하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인간은 타고난 창의성으로 생존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낸다. 지금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모두 함께 어울려 살아갈 방법을 새로이 마련해야 한다.


"내가 최고로 꼽는 지정학의 거두가 세계주의의 추락과 표퓰리즘의 부상을 불러온 요인을 과연 거장다운 예리함으로 분석한다." 

— 애덤 그랜트, 《오리지널스》, 《옵션 B》 저자 [애덤 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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