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대만, 홍콩, 마카오는 중국과 어떤 관계일까

중국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홍콩과 마카오
출처 : 1997년 7월 1일, 중국과 영국의 홍콩 정권 인수인계식(출처: 바이두)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홍콩과
1999년 중국에 반환된 마카오

중국은 청나라 때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면서 홍콩섬과 주룽반도 (九龙半岛)를 영국에 내주었다. 당시 중국과 영국은 1898년 베이징조약에서 ‘영국이 99년간 홍콩을 임차한다 ’ 라는 협정을 맺었는데, 시간이 흘러 임차 만료 기간이 다가오자 영국은 1984년 ‘홍콩반환협정’을 통해 1997년 7월 1일, 홍콩 을 중국에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1997년 7월 1일, 홍콩은 기대와 불안이 교차되는 분위기 속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중국에 반환되었다.


오늘날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라 불리는 마카오는 원래 중국 광둥성의 일부였다. 포르투갈인들은 1500년대에 젖은 화물을 말린다는 명목으로 마카오로 들어왔다. 마카오가 중국 대륙과 교역할 무역 거점으로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에 포르투갈인들이 이곳을 탐내고 꼼수를 부린 것이다. 


마카오로 들어온 포르투갈인들은 부패한 중국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며 마카오의 거주권을 획득해 체류하기 시작했고, 결국 매년 뇌물을 건네는 조건으로 마카오를 넘겨받았다.


그 후로 마카오는 장장 440여 년을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유지되다가 1986년에 베이징에서 마카오반환협정을 체결하고 1999년에 중국에 반환되었다. 긴 시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마카오는 동서양의 문화가 적절히 혼합된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 1990년대부터 국제적인 관광지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마카오에 해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카지노가 발달했고, 오늘날 카지노는 마카오 경제의 60%를 차지할 만큼 급속히 성장했다.

출처 : 1999년 12월 20일 0시, 마카오 문화센터에 오성홍기가 게양되 었다.(출처: 신화사)
2049년까지 하나의 국가, 마카오와 홍콩

홍콩과 마카오는 비록 영국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긴 했지만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 다시 중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1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 살아왔던 홍콩과 마카오가 하루아침에 중국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카오는 포르투갈 점령 당시 마카오에서 출생했거나 포르투갈 배우자와 혼인한 시민에게 포르투갈 국적을 부여했다.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될 무렵, 포르투갈과 중국 양국 정부는 공동성명을 통해 기존의 포르투갈 국적자들이 포르투갈 여권으로 계속 마카오에 거주하거나 원하는 경우 중국 국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1999년 12월 20일에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된 이후 대부분의 마카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국적을 중국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홍콩의 중국 반환은 마카오와 사정이 달랐다. 영국은 홍콩을 반환하면서 홍콩 시민들을 외면했다. 홍콩 시민들은 국적 선택권이 없어 홍콩의 중국 반환 시기가 다가오면서 일부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중국으로 반환되는 것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50년(영국의 식민지 기간)의 시간 속에서 홍콩 시민들은 영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성장했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홍콩을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시켰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사회주의의 중국에 흡수되는 것이 홍콩 시민들로서는 불안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카오와 홍콩이 반환협정에 의해 50년간 기존의 민주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마카오와 홍콩은 2049년까지 하나의 국가이지만 2가지 사회 체제가 존재하는 일국양제6의 시스템인 것이다.


화해 모드로 무르익은 대만과 중국의 관계

'대만은 독립된 국가'라고 주장하는 대만과 그에 반대하는 중국

그러나 대만은 홍콩이나 마카오와는 사정이 다르다. 대만은 외세의 침략이나 무력으로 빼앗긴 영토가 아니라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에게 패배한 국민당이 대만이라는 섬으로 도주하여 세운 독립정부다.


중국 공산당은 대만이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당연히 중국 대륙의 일부라고 여기고 있고, 대만의 국민당은 중국 입장에 동의하지 않고 독립된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대만의 입지는 매우 난처하다.


국제적 영향력이 커진 중국이 대만과 외교 관계를 갖는 국가는 중국과의 외교를 단절해야 한다고 으름 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당연히 중국과의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선택하고 대만과 외교를 단절했다. 


대만은 국제적으로 독립국가로 인정 받지 못하고 외교적으로도 고립된 것이다. 그러나 외교를 빼면 대만은 정부뿐 아니라 군대, 자체 화폐를 보유하는 등 독립국가로서 갖춰야 할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정치적 이념이 다른 대만과 중국이 항상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만 있던 것은 아니다. 한국과 북한이 하나가 되어 눈물 흘리며 시청했던 방송이 있다. 바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방송이다. 방송을 보는 동안 우리는 총칼을 앞세운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한솥밥을 먹었던 가족이었다. 중국과 대만도 그러했다.


중국과 대만에서 떨어져 지내던 일부 국민은 정부에 고향 방문과 이산가족 상봉을 요청했고 , 중국과 대만이 이를 받아들여 대만과 중국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중국과 대만의 인적 교류는 점차 무역으로 확대되었다.

앞으로 대만의 미래는?

1992년, 중국과 대만은 양국 간 교류를 위한 실무회담에서 ‘하나의 중국’이 되자는 것에 합의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눈에 불을 켰던 적대적 관계가 ‘하나의 중국 ’이 되었으니 중국과 대만 양쪽에 매우 큰 사건이었다.


이 협약은 1992년에 하나의 중국을 공통으로 인식했다고 하여 ‘92공식(九二共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92공식은 공식적인 합의문을 거쳐 이루어진 협상 결과가 아니라 협상 과정에서 구두로 나온 합의이기 때문에 중국과 대만의 해석이 조금 다르다. 92공식을 양측이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했든 중국과 대만 사이에 숨통이 트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과거의 양안관계에 있어서 양쪽의 정치 지도자 성향에 따라 긴장과 이완의 관계를 반복했던 것만큼 앞으로 양안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2008년 대만 총통선거에서 대만 국민들이 자주정책을 추구했던 천수이볜(陈水扁) 전(前) 총통이 아닌 중국과 경제 협력을 공약으로 내세운 마잉주 (马英九)를 총통으로 선택한 것을 보면 대만 국민들도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호적 관계를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국제 사회에서 대만의 입지와 외교 관계 등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대만도 '하나의 중국’이라는 슬로건 아래 홍콩이나 마카오와 같이 일국양제의 형태로 자연스럽게 중국에 흡수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중국 비즈니스에 꼭 필요한 중국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를 한 권으로 끝낸다!

<중국 상식사전>

해시태그

놓치지 말아야 할 태그

#전참시

    많이 본 TOP3

      당신을 위한 1boon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