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 떠났지만 내 생애 최고의 휴가, 발리 여행기

조회수 2018. 7. 2. 14: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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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

‘청춘’ 하면 떠오르는 흔한 이미지.

에너지 만렙을 자랑하고

 밥 굶고 잠 안 자도

끄떡없이 몇 날 며칠 쌩쌩할 것이다?



하지만 청춘들도 굶으면 

배고프고 힘 쓰면 지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달픔을 참아가며 

살아가는 청춘들,

노력해도 안 되는 좌절감이 

수시로 미래를 어둡게 하는

지금 이 시대의 청춘들. 

우린 지금 강렬하게 ‘힐링’에 목말라한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수많은 이유 중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휴식을 통해 지친 마음을 달래고

새로운 즐거움과 추억으로 삶의 활력을 

되찾고 싶은 기대감이 아닐까.


작가 소개

박진주
(l_b_v@naver.com) 



10권 이상의 여행서를 쓴 베테랑 여행작가로 활동 중. 짧게 가는 여행에 목마름만 더해져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그것을 업으로 삼는 행운까지 얻게 되었다.




도망치듯 떠났지만 내 생애 최고의 휴가


사회에 나와서 처음 돈을 번 일은 작은 사업이었다. 호기심에 재미 삼아 시작한 일이 운이 좋게도 잘 풀리면서 어린 나이에 벌기 어려울 만큼 돈을 벌었지만, 만족도는 정반대였다. 그 일은 몇 년 동안 하면 할수록 내 적성과 맞지 않았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외롭고 불안하고 힘겨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해봐도 이렇게나 사업이 잘 되는데 고작 그 정도 스트레스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그 정도는 힘들다 등등. 내 주위 사람들은 내 행복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내 유일한 낙은 오직 여행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 어렵게 시간을 내면 1년에 한두 번, 5일이나 6일 정도 기회가 생겼고 그 여행만이 내 삶의 활력소이자 구세주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여행만 다니면서 살고 싶다고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하지만 현실은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전쟁같은 일상을 치러야 하는 처지. 그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여행만 하고 산다’는 것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막연했다. 마치 미스코리아가 되고 싶다는 어린아이의 꿈처럼 누구나 한번쯤 꾸는 허상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도전해볼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며 살았다.

그즈음 난 돈 버는 기계처럼 일을 하고 있었고 작은 문제에도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하루하루 매출에 따라서 내 기분은 들쑥날쑥 널을 뛰었고, 심적으로도 불안정해졌다. 어려움을 이겨낼 만큼 일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부족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는 지금 일을 그만두면 분명히 후회할 거라고 말렸지만 나는 더 버틸 수 없었고 결국 포기하고야 말았다. 과감히 일은 그만뒀지만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난 이제 뭘 해야 할까?’

아무 계획도 없이 덜컥 그만둔 다음에 찾아온 후폭풍은 막막함이었다. 답이 없는 고민에 빠져 있던 중, 발리가 떠올랐다. 


일하느라 바빠서 겨우 4박 6일 동안 다녀왔던 곳. 그동안 다녀온 여행지 중에서 유난히도 잔상이 많이 남아 언젠가는 꼭 한 번 오래 머물고 싶었던 곳. 


망설일 것도 없이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항공권만 겨우 사서 도망치듯 발리로 떠났다. 고작해야 3박 5일, 4박 6일이던 여행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한 달 동안의 장기 여행이었고 혼자만의 여행이었다.



그렇게 떠난 탓일까. 발리는 도착하자마자 실수의 연속이었다. 급하게 산 항공권이 경유 편이라 추운 공항에서 오들오들 떨며 노숙을 해가면서 겨우 발리에 도착했다. 


어리숙하게 환전을 시도하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바가지를 쓰기도 했으며 숙소는 설명과는 전혀 다르게 낡고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아 덜덜 떨면서 샤워를 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정도면 발리가 싫어질 만도 한데, 아침 해가 뜨고 날이 밝으면 뭐가 그리 행복한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침이면 꾸따 비치에 나가 산책을 하고 스미냑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걸으며 온몸으로 발리를 만끽했다. 


종일 해변에 앉아 비치 보이들과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선셋 타임을 기다렸다가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밤에는 숙소 스태프들과 시원한 빈탕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를 마감하곤 했다.


에어컨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게 낡아 문짝마저 덜렁거리는 고물 버스를 타고 동부의 짠디다사로, 북부의 로비나로 자유롭고 씩씩하게 유랑했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 오한으로 온몸을 덜덜 떨면서도 돌고래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새벽같이 일어나 로비나 바다 한가운데로 배를 타고 떠나기도 했다. 턱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춥고 온몸이 구석구석 아팠지만 날 반겨주듯 바다 위로 폴짝폴짝 뛰어 올라 인사하는 돌고래를 보고 얼마나 기뻤던지!


또 발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멘장안까지 혼자 달려가 환상적인 발리의 바닷속까지 누비고 다녔다. 난 한 달 동안 참으로 열심히, 용감하게 발리 곳곳을 탐닉했다. 


월화수목금금금 죽도록 일하는 틈틈이 그렇게도 꿈꿔왔던 여행을 지금 이 순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매순간 가슴 벅찼다. 이런 순간을 얼마나 꿈꿨던가.


그렇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한 달을 보냈다.


발리는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다시 여행했지만 이렇게 황홀하고 강렬한 시간들은 두 번 다시 없었다. 


하기야, 이제는 땀을 몇 바가지나 흘리면서 몇 시간씩 에어컨도 없는 고물 버스를 탈 자신도 없고 혼자서 겁도 없이 발리 방방곡곡을 다닐 무모함도 사라진 것 같다. 앞뒤 재지 않고 이런 고생도 추억이라며 신나게 여기저기 누볐던 그 시간은 내가 청춘이었기에 가능했던 여행이다.


언제든 떠올리면 가슴이 저릴 정도로 벅찬 내 청춘의 한 페이지. 길고 긴 인생에 점과 같이 짧은 한 달이었지만 가장 값지게 보낸 한 달이었다. 


시간이 이대로 여기서 멈췄으면 좋을 만큼 행복한 날들을 보냈지만 치열하게 몰두했던 일을 그만두고 왔기 때문일까, 여행이 끝나갈수록 마음은 막막해졌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지?’

‘일을 하느라 대학은 졸업도 안했는데 공부는 언제 마칠 수 있을까?’

‘공부를 마치고 나면, 그땐 무슨 일을 할 수 있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끝없는 물음표에 다시 마음이 혼란스러워졌고 떠날 날이 가까워질수록 초조하고
불안해져 잔뜩 찌푸린 얼굴로 한숨만 쉬곤 했다. 

“무슨 일 있어? 일주일 전만 해도 매일 즐거워 보였는데 요즘은 슬퍼 보여.”
매일 시답지 않은 농담 따먹기를 하던 숙소의 스태프 데위가 물었다.

“한국에 가면 이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여행이 끝나가니 현실적인 걱정들 때문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

“그럼 계속 걱정을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그건 아닌데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걱정해도 답이 없는데 그렇게 걱정만 하는 건 너무 바보같아. 여기는 발리야. 이렇게 아름다운 발리에서 울상 짓고 걱정만 하는 바보는 너밖에 없을 거야.”

깔깔거리며 웃는 데위에게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래, 맞다. 나는 이 머나먼 발리까지 와서 혼자 방에 처박혀서 걱정만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가. 일단 걱정을 접어두고, 남은 여행이나 더 신나게 즐기기로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두 발로 열심히 걸으며 이곳의 풍경, 공기, 사람들, 모든 것을 마음 깊이 담았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들을 여행기로 남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펜을 잡고 노트에 기록을 했다.


그렇게 기록한 이야기들과 사진들을 발리의 어느 PC방에서 느려 터진 컴퓨터로, 발리에서 만난 여행자 언니의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저 일기라고 생각하며 소소하게 남긴 나의 좌충우돌 발리 여행기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봐주었고, 그 응원과 댓글에 힘입어 나는 더 신나게 여행기를 올렸다.


인생이란 정말이지 알 수 없는 길이다. 그토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한 긴 터널에 갇혀있던 나에게 거짓말처럼 행운의 기회가 왔다. 


한 달간 혼자서 여행한 좌충우돌 발리 여행기를 여행 커뮤니티에 올렸던 것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마침 그때 커뮤니티를 도울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 스태프로 뽑히게 되었다.


직장처럼 보수를 받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에 관련된 일을 돕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신나고 행복했다. 아마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기쁨을 맛보았던 것 같다. 


그것을 계기로 꾸준히 몇 년간 활동을 하다 보니 여행 커뮤니티에서 출간하는 여행 가이드북에 저자로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고 어엿한 여행 작가가 되는 행운까지 얻었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만난 기적 같은 행운이었다. 만약 내가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무작정 발리로 떠나지 않았다면? 발리에서 여행기를 쓰는 대신 방에서 혼자 우울해하기만 했다면? 여행 커뮤니티에 스태프로 지원하지 않았다면? 아마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기적이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에 시작한 나의 사소한 행동이 나비 효과처럼 번져, 너무나 멀고도 꿈같은 이야기라 장래희망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던 진짜 꿈, 여행 작가가 된 것이다. 


인생에서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이제 난 뭐 먹고 사나 하는 고민을 하며 눈물로 마무리했던 발리 여행이 아예 꿈도 못 꿨던 여행 작가로 만들어준 거다.


난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여행 작가가 되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왜 좀 더 빨리 더 적극적으로 도전해 보지 않았는지 후회가 될 때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꿈을 지나치게 빨리 포기했던 것 같다. 여행과 사진을 좋아했으면서도, 그런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인데 내가 감히 그 일을 할 수는 없을 거라고, 그건 허황된 생각일 뿐이라고 여겼다.


사진학과를 목표로 입시 준비를 해보고 싶었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어처구니없게도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이었는지 모르겠다. 뭔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덮어놓고 모른 척했던 꿈을 뒤늦게나마 쫓게 되었고, 멀리 돌아가기는 했지만 결국 그 길을 걷게 되었다. 지레 겁먹고 꿈도 꾸기 전에 포기하는, 나 같은 누군가에게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장 그 꿈을 향해 떠나 봐. 원하는 것이 있다면 뒤도 보지 말고 일단 돌진해 봐. 비록 지금 당장 그 바람이 이뤄지지 않을지라도 분명 그 길에는 크고 작은 행운들이 있을 테니까.

세계의 요리와 식문화를 

배우고 싶어서 무전여행을 떠난 류시형,

지친 일상을 벗어나 힐링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 박진주,

인생의 전환점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기 위해 일본 열차에 오른 오상용,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아마존으로 간 이동진,

오롯한 나를 느끼려 

사막과 무인도를 찾아 나선 윤승철.



이들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며 위로받기도 한다.



타인의 여행 이야기를 보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것이 아닐까.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어떤 감정들이

그들이 만난 수많은 사람과 여행의 이야기 속에서 

발견되기도 하니까.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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