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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발견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기

조회수 2018. 6. 26. 13: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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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
여행에서 꼭 뭔가를 얻거나
의미심장한 사람을 만나야 하고
어딘가를 가야 할 필요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드러누워 있어도 된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여행.

한순간이라도 움직여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뒤쳐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소개

류시형

(silchristal@gmail.com)



행복하기 위해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현실보다는 이상을 꿈꾸며 해야 하는 일보단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며 사는 여행하는 요리사.




운명처럼 발견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내서


헝가리 부다페스트, 친구 빈센트의 집에서 우연히 『대시베리아 철도Trans- Siberian Railway 안내서』(흔히 ‘시베리아 횡단 열차’라고 부름)를 집어 들면서부터 귀국 여행 계획이 세워졌다. 때는 세계 무전여행 막바지. 유럽행 편도 항공권을 끊고 날아와 벌써 석 달이나 흘렀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디에서 출발하는 항공권을 사야할지, 돈은 어디에서 뭘 해서 모을지 고민하던 차에 만난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운명과도 같았다. 고생도 많았지만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멋진 추억을 남기고 있는 이 장기 여행의 마무리로, 허무하게 ‘슝’ 날아가는 비행기보다 몇 배는 더 멋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발견했으니 유레카를 외칠 만도 했다. 게다가 차분한 마음으로 열차에 올라 6일을 이동하면 그간의 길고 긴 여정을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렴한 여행의 마무리로 비행기의 절반 가격밖에 되지 않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웹 사이트에 들어가서 가격을 알아보곤 했다. 그러길 100일이 지난 2007년 2월, 세계 무전여행을 마무리하며 꿈에 그리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랐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려면 몇 가지 준비가 필요했다. 러시아어를 전혀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골치 아플 수 있었기에 특히나 많은 정보를 얻으려 노력했다.



우선 기차에서의 기나긴 6일을 덜무료하게 보낼 무언가가 필요했다. 조리학도였던 나는 핀란드에서 잠시 들른 후배의 집에서 세계적인 요리사 해롤드 맥기Harold McGee가 지은 아주 두꺼운 책을 빌렸다. 일주일이 아니라 두세 달을 붙잡고 있어도 다 읽기 어려운 책. 이거면 충분하다.


두 번째 준비는 먹거리였다. 열차 내에서는 조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빵이나 햄, 살라미 등을 챙겨간다. 다행히 열차마다 뜨거운 물이 계속 나오는 정수기가 비치되어 있다는 말에 난 컵라면을 잔뜩 샀다. 총 5일하고도 6시간을 가는 일정의 열다섯 끼니 중에 컵라면으로만 열 끼를 먹을 예정이었고, 빵과 스낵을 약간 더 챙겼다. 먹거리와 시간을 때울 거리, 그거면 충분했다. 나머지 시간은 오랜만에 돌아가는 집에 대한 그리움과 처음 타보는 침대 열차에 대한 설렘으로 채워갈 생각이었다.




오래된 것들의 따뜻함, 그 묘한 매력을 가진 시베리아 횡단 열차


우여곡절 끝에 올라탄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놀라웠다. 우선 상상했던 포근한 침대칸이 아니라 통일호나 비둘기호쯤 되어 보이는 낡은 열차였다. 낡고 해어져 원래보다 더 얇아진 모포, 너무 좁고 답답해서 잠자는 게 고문일 것 같은 2층 침대, 손으로 잡고 있어야 물이 나오는 화장실을 보니 샤워실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영어 단어 한 마디도 통하지 않는 러시아 사람들과 춘절을 보내러 고향으로 가는 중국인들로 가득한 열차 안은 묘하게 아늑했다.


내가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서 카메라를 내밀며 부탁했더니 마치 카메라를 처음 본 사람처럼 거꾸로 쥐고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은 정겹기까지 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승객 중에서 여행자들은 대부분 바이칼 호수를 낀 몇몇 유명한 구간만 타거나, 관광지에서 내려 관광을 하고 다시 다음 열차를 탄다.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한 번에 가는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고향으로 가거나 일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주 완벽한 준비물을 가지고 다녔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바로 해먹을 수 있는 찐 밥, 닭백숙 등은 기본이고 다양한 반찬에 냄비를 포함한 먹거리만 싼 것이 대형 이민가방하나로 가득이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카드와 잡지도 있었으며 간식은 대부분 해바라기 씨였다. 내가 탄 4인용 칸에는 러시아어, 중국어가 오갔으니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시간대에 끼니를 챙기다보니 자연스레 먹거리를 공유하고 친해졌다. 나는 이들이 신기했고, 이 사람들은 나를 신기해했다. 무겁고 두꺼운 요리책 따위는 필요 없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3일 넘게 달려왔는데 아직 절반도 못 갔다니, 이 광활한 나라가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다. 겨울이라 항상 쨍하니 맑은 하늘, 거의 녹지 않은 흰 눈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리 지루하진 않았다. 오히려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푹 가라앉으며 지난 여행의 추억들이 하나하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동안 만났던 한국 사람들도 생각났고 도움을 줬던 외국인 친구들도 그리워졌다.


참 무모했던 여정이 한순간의 꿈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다시 돌아갈 수 없단 생각에 울컥하기도 했다. 거의 일주일 동안 교통수단을 갈아타지 않아도 되고, 끼니를 시간 맞춰 혼자 챙기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를 만나 잠자리를 부탁하지 않아도 되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의 일상은 여유롭고 자유로웠다. 오랜 여행을 추억하며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같은 열차 다른 느낌, 두 번째 시베리아 횡단 열차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세계 무전여행의 마침표를 찍은 후, 4년이 지나서나는 이 열차를 또 한 번 타게 됐다. 그때 난 ‘김치버스’라는 캠핑카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겠다는 포부를 품고 길을 나섰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치버스와 함께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랐다. 매도 한 번 맞아본 놈이 낫다고,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4인실에 하나밖에 없는 콘센트를 대비해 멀티탭도 챙겼고, 하루에 10번 정도 30분씩 정차하는 역마다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식료품도 이틀 치만 챙겼다. 러시아 바이칼 호수에만 서식하는 어종인 오물Omul과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쏙과 비슷하게 생긴 가재 등도 사 먹었고, 식당 칸도 이용했다. 일행이 있어서 수다 떨 상대가 있었고, 노트북과 스마트폰 덕분에 열차에서의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때처럼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단지 아쉬웠던 것은 이 열차를 타는 일이 여행이 아니라 그저 ‘이동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달리면서 시차가 계속 바뀌는 낡은 열차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 이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6일간의 적절한 고립 속에 여행을 정리하고 또 여행을 생각하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어떤 여행지에서도 그런 시간을 갖기란 쉽지가 않다. 눈에 보이는 것들, 할 수 있는 것들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으니까. 그러니 가끔은, 많이 보고 느끼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여행은 어떨까.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내서

1. 준비물

세면도구 : 수건 포함. 샤워는 하기 어렵지만 머리 정도는 감을 수 있다.

음식 : 뜨거운 물은 항상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컵라면이나 즉석 밥, 차나 커피 등 기호식품도 함께 챙기면 좋다. 정차하는 역에서 빵이나 살라미, 맥주 등의 음료, 전통 음식, 과자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식당 칸은 가격대가 2만 원 내외로 많이 비싸진 않지만 자주 사먹기엔 부담될 수 있으니 경험상 한두 번 이용하는 것이 좋다.



텀블러 : 깨지지 않는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 컵이 좋다. 차장에게 20루블 정도를 내면 유리잔을 받을 수도 있다.



반소매와 반바지, 슬리퍼 : 열차 밖은 맹추위이지만 열차 안은 굉장히 덥다. 항상 20°C 이상을 유지하다 보니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반소매, 반바지 옷이 필수. 그리고 실내에서 계속 생활하려면 실내화가 편리하다.



멀티탭과 어댑터 : 객실마다 전기 콘센트는 1개뿐이므로 멀티탭을 챙기면 좋다. 전압이 다르므로 플러그에 꽂아 쓸 어댑터(돼지코)가 필수다.



심심풀이 : 달리는 열차 안은 매우 지루하다. 책이나 노트북, 카드놀이 등 다양한 심심풀이를 챙길 것.



침낭 : 기차에서 제공해주는 시트와 모포를 사용해도 좋지만 혹시 청결이 걱정되면 꼭 챙길 것.



2. 비용

열차표 가격은 열차 등급에 따라 다르다. 001~993호 열차까지 다양한 편이 있으며 숫자가 낮을수록 시설이 좋고 가격도 비싸다.



■ 블라디보스토크 → 이르쿠츠크(바이칼 호수) 2등석 기준 약 320$ ~ 630$

■ 블라디보스토크 → 모스크바 2등석 기준 약 667$ ~ 1,333$



하지만 시기와 요일, 판매 대행사마다 가격 차이가 심하니 참고할 것. 현지에서는 가격 변동이 심하고, 대행사를 통하면 20만 원 이상 더 비싸다. 한국에서는 여행사를 통해서 구매하는 것이 안전하고 정확하다.1등석과 2등석의 가격은 거의 두 배가 차이난다.



그렇다고 1등석 공간이 훨씬 넓은 것은 아니고 단지 2인실에 사워실을 이용할 수 있고, 안에서 문을 잠글 수 있어서 안전을 고려하는 여행자에게 적당하다. 하지만 가성비, 지루함, 새로운 친구와의 교류 등을 생각하면 2등석이 더 낫다는 평도 많다.



음식의 경우 컵라면, 빵, 맥주 등은 식당 칸이 아닌 상 한국보다 저렴하다. 2006년 당시 라면 7개와 차 20팩, 팔뚝만한 살라미, 껌, 물 1통, 케이크, 쿠키 등을 샀는데 1만 원이 조금 넘었다. 2011년의 2.5L 맥주는 2800원 정도 수준이었다.

※ 유용한 사이트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내: www.seat61.com/Trans-Siberian

러시아 철도청 : pass.rzd.ru

러시아 여행 카페 : 처음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정보들을 이곳에서 수집했다. 정모도 자주 있으니 한국에서 미리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다양한 경험들을 전수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cafe.naver.com/rusco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의 시간에

그저 여행이 좋아서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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