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끝에 오는 공포- 아라하 이은도의 저주

조회수 2020. 1. 10. 15: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공포는 무섭습니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느낌도 싫고 긴장으로 승모근이 뻐근해지는 것도 싫어합니다.


공포영화는 물론 잘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자친구를 사귀면 진도 빼기가 더딥니다. 게임은 국산 호러 명작 제피 이후로 거의 하질 않았습니다. 공포의 탈을 쓴 액션물인 바이오 하자드도 무서워 잘 안 합니다. 그런 제가 제피 이후 오랜만에 공포 게임에 도전했습니다. 

▶이은도는 이름이 아닙니다. 섬 입니다



외딴 섬의 폐병원에서 누나의 흔적을 쫓아라


아라하 이은도의 저주(이하 이은도)에서 이은도는 사람이름이 아닙니다. 섬 이름이죠. 이 섬에는 지금은 문을 닫은 병원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 병원에서 누나의 흔적을 쫓아야 합니다. 누나는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신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동생(주인공)은 석연치 않은 누나 실종의 비밀을 최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병원에서 찾으려 하죠.

▶장례 화환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갑작스러운 사건이 생겼나 봅니다



인간에게 가장 공포를 안겨주는 것은 시각이 제한되었을 때입니다. 인간이 정보를 판단하는데 있어 시각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공포스러운 환경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은도는 이러한 공포의 법칙을 영리하게 잘 표현했습니다. 시각을 극도로 제한하고 대신 청각의 자극을 극대화시켰죠.


주인공은 랜턴 하나로 어둡기 그지없는 폐병원 이곳저곳을 뒤져야 합니다. 분위기는 영화 곤지암 같습니다. 보이는 부분이 한정적이고 1인칭 시점이기 때문에 뒤로 돌기 전까지는 뒤에서 귀신이 지켜보고 있는지 춤을 추고 있는 알 수가 없다는 점이 공포감을 배가 시킵니다.

▶시야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계단도 무섭습니다



이은도는 사운드를 상당히 잘 사용했습니다. 귀신 등장을 알리는 소리는 기분이 나빠질 정도로 잘 만들어 졌습니다. 당연히 이 소리가 들리면 공포감은 극대화되죠. 또한 처음 병원에 들어서자 마자 놀라게 하는 것은 귀신이 아닌 댕댕거리는 궤종시계의 알람 소리입니다. 초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려주는 적절한 기획입니다.


랜턴 배터리를 늘 신경 써야하는 점도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가뜩이나 좁은 시야가 더 줄어들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그래서 항상 시간에 쫓기게 하는 스릴을 안겨줬습니다.


한국적 소재가 전무하다시피한 국내 게임에서 한국적 소재를 활용한 점은 그것의 좋고 나쁨을 떠나 박수 받아 마땅하다 생각됩니다. 그리고 무속신앙, IMF로 대변되는 시대배경 등이 잘 표현되어 게임의 몰입감을 살려주고 있습니다.


불편함을 견딜 수만 있다면


이은도는 인디게임입니다. 2인 개발로 4년에 걸쳐 개발했다고 합니다. 사실 인디게임은 인디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게임을 바라보는 유저의 시선 자체가 일반 상업 게임과는 다르죠. 질이 좀 떨어진다해도, 약간 불편함이 있다해도, 인디라는 보호막 때문에 너그럽게 넘어가 줍니다.


그런데 이은도는 아무리 인디게임이라 해도 너무 불편합니다.


이은도는 마치 방탈출을 게임으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지도 않고 친절하게 다음 단서를 얻는 방법을 제공해 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모든 사물을 샅샅이 뒤져 스스로 단서를 찾고 조합해야 합니다. 그런데 방탈출과 다른 점은 시야가 너무 좁다는 것에 있습니다. 방탈출의 특성상 모든 벽, 책상, 서랍 등 보이는 사물은 모두 조사해야 다음으로 진행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야가 좁다 보니 놓치는 경우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그렇게 단서를 놓치게 되면 계속 헤매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 더해 힌트가 되는 메모들은 가질 수 없어 외우거나 따로 적어 둬야 합니다. 물론 지도 역시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벽에는 붙어 있습니다) 길을 잃는 경우도 다반사죠. 결국 길을 외울 지경까지 끊임없이 헤매야 진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뭔가 단서가 될 만한 메모인 듯 한데 지닐 수 없어 다시 보기 위해선 발견 장소로 되돌아 와야 한다


또 하나 불편한 점은 카메라 즉 시점을 움직일 때 혹은 이동에 있어 잔상이 너무 생긴다는 점입니다. 1인칭 게임을 하면 멀미가 난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 게임은 멀미를 하는 사람들은 절대 못할 것 같네요.


차라리 창모드로 크기를 조정하고 마우스 감도를 올리고 사양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그래픽 옵션을 낮게 설정하니 좀 나아졌습니다.

▶마우스 감도는 꼭 조정하시길



공포로 긴장한 상태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모든 사물을 뒤져야 하는 데다가 잔상마저 아른거리니 피로감이 너무 심하게 왔습니다.


초반 지하로 내려갈 때 까지가 이은도의 최대 허들 구간입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적응이 안된 단계이기 때문도 그렇고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지루한 부분이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만 잘 극복하고 지하층의 문을 여는 순간 굉장한 공포와 만날 수 있습니다. 

▶놀람은 지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호러 장르를 좋아하고 1인칭 멀미가 없으며 인내심이 조금 있는 유저라면 이은도는 상당한 만족감을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꼭 헤드폰 없으면 이어폰이라도 끼고 게임하시길 적극 추천합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