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미소녀] 센티멘탈 그래피티의 12소녀들

조회수 2019. 9. 23. 15: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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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지났으니 40대..?!

때는 바야흐로 1999년, 막 질풍노도의 시기로 넘어가려던 즈음이었다. 둘 다 용돈 받는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PC 패키지를 선뜻 사긴 어려웠고, 그래서 게임잡지 부록으로 주는 타이틀이 무엇인지가 정말 중요했다. 잡지는 패키지보다는 훨씬 저렴했지만 여러 권을 동시에 사는 건 힘들었기 때문에..

출처: 올드피시게임즈 박물관
일명 PCGM 창간 1주년 기념호
디아블로 2가 기대작이던 시절이다

다행히 게임덕후 형제를 둔 덕으로 큰 부담 없이(사실 내가 산 적은 없었다) 다양한 부록 타이틀을 플레이해볼 수 있었지만, 핫하다는 RPG 타이틀은 바로 해볼 수는 없었다. 손위형제가 다 플레이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동안 나는 컴퓨터 뒤에 쪼그리고 앉아서 공략집을 읽었다. 덕분에 당시 읽었던 게임잡지의 기사들은 대부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수많은 타이틀 중에서도 먼저 해볼 수 있는 장르가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미소녀 게임들이었다. RPG에 더 취미가 있었던 손위형제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스포일러 없이 플레이할 수 있었는데...

출처: 올드플레이
당시 부록 CD

연애 게임에 딱히 취미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피지컬이나 순간적인 판단력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그렇다...그때도 필자의 피지컬은 나빴고 나이가 들면서 더 나빠졌다(묵념). 그 중 가장 필자를 도전정신으로 불타오르게 했던 게임이 바로 '센티멘탈 그래피티' 였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추억의 세가새턴

NEC 인터채널에서 제작한 이 게임은 거대한 미디어믹스 프로젝트를 목표로 기획됐다. 말하자면 근래의 '아이돌 마스터'나 '러브라이브' 급 프로젝트를 꾸려갈 꿈을 꿨다는 뜻이다. 


발매 1년 전인 1997년에 캐릭터 보이스 더빙을 위한 성우 오디션을 개최했으며 출시 전부터 각종 이벤트와 기획물로 덕질거리를 수없이 제공했다.

거기에 미연시의 꽃, 일러스트 역시 엄청난 수준이었다. 당시로서는 셀식 채색(명암을 단순하게 한 일본 애니메이션풍의 채색)이 미연시 일러스트의 주류였고 '동급생'의 도트 그래픽에서 탈피해 발전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공개된 수채화풍의 감성적인 일러스트는 유저들을 현혹시키고도 남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1998년 게임이 출시되자 기대작이었던 명예로움은 어디 가고 유저들에겐 허망함만이 남고 말았다. 공개된 일러스트와 달리 인게임 그래픽은 흔히 보던 셀식 채색이었으며 게임의 설정상 스토리라인이나 전개가 매우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빠도 너무 바쁘다
고3이 이래도 되냐

센티멘탈 그래피티에 등장하는 미소녀는 총 12명으로, 일본 열도의 각 지역에 한 명씩이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1년이 채 못 되어 전학을 가는 생활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미소녀들과 어린 시절 친구관계가 되었던 것이다(여기서부터 비현실적).

어느날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갑자기 분위기 베라모드)라고 적힌 발신인 불명의 편지를 받게 된 주인공은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추억 속 소녀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물론 기획상으로는 매우 매력적이기 그지없다. 각 소녀들의 교복 디자인이 전부 다르다는 점(오오)과 더불어 개인 이벤트가 지역 특색에 맞춰져 있다는 점도 그렇다. 일러스트도 마찬가지이며, 실제로 해당 지역의 실사 사진을 참고해서 제작되었다고.

하지만 게임으로 하려면...얘기가 좀 달라진다. 일단 고등학교 3학년인 주인공은 그리 자금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고 열도 각지의 미소녀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아무데나 가도 상관이 없으니(...) 히치하이크 따위를 쓸 수도 있지만 공략대상이 정해지고 난 다음에는 그럴 수도 없다. 게다가 일편단심 공략을 했다가는 큰일나는 이상한 미연시다.

필자는 일러스트를 처음 봤을 때부터 취향의 이데아 같은 소녀를 만나 한우물을 파는 식으로 플레이를 했다. 이시카와현에 사는 안경속성 그녀 호사카 미유키였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이시카와는 그다지 멀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그녀를 보러 갔다. 


다른 소녀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세 번이나 개인 이벤트도 보지 못한 채 배드엔딩을 맞자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공략집을 샀다(...).

공략집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써 있었는데... 어떤 캐릭터가 되었건 해피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12명을 전부 만난 후 6명과 관계를 유지하고 다시 3명, 1명으로 줄여가는 식의 플레이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히로인이 많은 게 이런 식으로 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12명을 다 만나는 것조차 당시의 필자에게는 너무도 스트레스받는 일이었다. 물론 3번이나 실패했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엔딩을 보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 명 더 공략하기에는 너무도 지쳐 있었다.


꿈만 컸다 꿈만

게임은 유저의 기대를 저버린 결과 성공하지 못했지만, 본편 발매 직후 같은 장르의 애니메이션인 '센티멘탈 저니'가 1쿨(12화) 분량으로 방영되었으며 소설판도 출간되었다. 


하지만 코믹스 연재는 게임의 인기도가 급락세를 탄 탓이었는지 연재중단 이후로 재개되지 못했고 덕분에 지금은 찾아보기조차 어려워졌다.

정말 슬픈 얘기지만 각각의 캐릭터들은 속성 분배도 잘 되어 있는 편이고 디자인도 훌륭해서, 한명 한명의 스토리를 풀어 보면 꽤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게 게임으로 하면... 지나친 스트레스와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현실의 압박(피로도라든가...돈이라든가...)으로 인해 캐릭터들의 매력을 하나하나 온전히 느껴본 사람은 아쉽게도 얼마 되지 않을듯.

기대작의 거품이 인어공주마냥 꺼져 버리고 말자 차례차례 나오기로 했던 기획도 무너져버렸는데 이 중에는 한국판으로 완전 현지화를 거친 버전의 센티멘탈 그래피티도 있었다. 


한창 진행중이던 시기에 일본문화 개방이 이뤄지면서, 작업을 하다 만 듯한 느낌도 있었고... 한글화는 덕분에 완성된 형태는 아니었고 일부만 진행된 덕에 국내 유저들은 어쩐지 만들다 만 느낌의 게임을 해야 했다는 후문.


팬들이 만들어준 20주년

결국 당초 예정되어 있던 소설판도 완벽하게 발매되지는 못했고, 그렇게 20년 넘게 묻혀버린 미연시가 되는 듯 했다. 20년이나 지난 덕분에 제작사인 NEC 인터채널이 사라진 후였고, 판권이 '퍼즐앤드래곤'의 개발사 겅호 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갔다고는 하지만 팬디스크를 만들거나 리메이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개발사나 판권 보유사가 아닌 당시의 성우진들이 20주년 행사를 제안했고, 타베타 토시오 프로듀서가 저작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결과 겅호 엔터테인먼트의 승인을 받아 20주년을 맞은 지난해 2018년에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20주년 기념 트위터 계정 개설과 공식 사이트 오픈이 이루어졌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20주년 행사 이벤트 모금을 진행했다. 판권료 및 기타 행사 부대비용, 상품 제작비를 포함해 1,000만 엔을 목표로 했는데, 시작한지 9분만에 목표액 100%를 채웠을뿐만 아니라 최종에는 3470만 1,700엔으로 종료됐다.


타이틀의 인기가 출시 전 기대만큼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센티멘탈 그래피티'에 애정을 갖고 있는 팬들이 많았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펀딩 성공 결과로 올해 초인 1월 19일에 드디어 20주년 행사가 개최되었으며 당시의 담당 성우(이미 은퇴한 분도 있었다)들도 참가해 자리를 빛내 주기도 했다.


이후에도 수많은 미연시가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센티멘탈 그래피티만큼 필자를 괴롭혔던 타이틀은 없었다. 게임 플레이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던 관계로 화보집과 공략집을 탐독하며 덕질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주년 행사로 판권도 정리되었겠다, 이 김에 난이도 좀 어떻게 해서(...) 리마스터를 내 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지만, 완전 묻힐 줄 알았던 이 타이틀이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다시금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하기도.


연애 어드벤처 혹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가 하락세를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요즈음이지만(미소년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언젠가는 미연시의 시대가 다시 올 거라는 가능성 없어 보이는 희망을 품으며 글을 마친다.

필자/김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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