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오브 메단', '깜놀'만 남은 공포 게임

조회수 2019. 9. 10. 15: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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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맨 오브 메단', 언틸 던을 이어받은 후속작

게이머라면 ‘공포 게임’, ‘인터랙티브 무비’ 두 가지 단어만 듣고도 ‘언틸 던’이라는 게임을 떠올릴 것이다. ‘슈퍼매시브 게임즈’의 ‘언틸 던’은 당시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바뀌는 스토리,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버튼 입력, 영화 같은 연출, 사실적인 캐릭터 묘사 등 좋은 평을 받았던 공포 게임이다. 그리고 ‘슈퍼매시브 게임즈’는 ‘언틸 던’이라는 과거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은 후속작을 발표한다.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맨 오브 메단 (이하 맨 오브 메단)’이라는 게임이다.

  

게이머들이 ‘언틸 던’에 좋은 반응을 보인 데에는 ‘인터랙티브 무비’라는 장르의 독특함도 한몫했다. ‘인터랙티브 무비’는 플레이어에게 선택권을 주고, 그 선택으로 인해 스토리의 전개와 결말이 바뀌는 방식이다.

  

이 장르는 플레이어에게 ‘옳다, 그르다’의 선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플레이어의 선택이 인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로 인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것뿐이다. 선택의 갈림길이 나오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전제하에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한때는 주목받지 못하는 장르로 묻혀 있었지만,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언틸 던’ 같은 좋은 작품들이 나오면서 나름의 팬층을 확보한 장르다.

  

’맨 오브 메단’ 역시 플레이어의 선택이 나비효과로 돌아와 스토리와 결말에 영향을 주는 게임이다. ‘언틸 던의 후속작’, ‘69가지의 결말’, ‘세 편의 이야기’로 이미 출시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은 게임인 만큼 과연 그 첫 번째 작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또 어떤 순간의 선택들이 어떻게 반영될지의 궁금함을 안고 직접 플레이해봤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인형 놀이’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공개할 수 있는 수준의 줄거리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의문의 사고로 침몰당한 함선과 이 배를 탐사하는 5명의 인간’ 정도다. 이미 눈치챈 게이머도 있겠지만, ‘2차 세계 대전의 비밀’이라고 한다면 장르 불문하고 이미 많은 게임에서 다뤄온 소재다. 특히 ‘비밀의 고대 유물과 이를 노리는 어둠의 집단’은 ‘인디아나 존스’와 ‘툼레이더’를 통해 한 번쯤 경험해 본 내용들이다.

  

‘공포’라는 제한적인 조건을 생각해 본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유령이 나오는 저택이나, 침몰한 옛 함선, 잊힌 동굴과 피라미드. 이런 공간들은 공포를 콘셉트로 한 모든 장르의 무대로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맨 오브 메단’역시 ‘과거 황금을 싣고 침몰한 보물선’이라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만한 고전적인 콘셉트를 선택한다.

‘인터랙티브 무비’는 유저가 직접 조종하는 캐릭터와 다른 캐릭터 간의 관계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게이머의 행동을 통해 주변 환경의 변화와 인물 간의 피드백이 이 장르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뭐 이런 캐릭터가 다 있나’ 혹은 ‘아니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지?’ 하는 느낌을 받을수록 몰입감은 높아진다. 물론 그 뒤에는 ‘앞뒤가 들어맞는’ 개연성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아쉽게도 ‘맨 오브 메단’에서는 그런 캐릭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캐릭터마다 독특한 개성이 없고,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현실과 비교하자면 ‘혼자 하는 인형 놀이’에 가깝다. 사실 이는 ‘언틸 던’부터 이어져 온 ‘전지적 작가’ 시점의 단점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캐릭터의 성격이나 행동을 플레이어가 설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성격까지 모두 플레이어에 의해 결정된다. 한마디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등장 캐릭터 모두를 이야기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맨 오브 메단’에서는 ‘브래드, 알렉스, 줄리아, 콘래드, 플리스’ 총 5명의 캐릭터 모두를 플레이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굳이 이 5명을 번갈아 가며 움직일 필요가 있나 싶었다. 캐릭터의 성격까지 모두 플레이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맨 오브 메단’의 확실한 단점이 드러난다.

  

다른 인터랙티브의 장르에서는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하는 캐릭터마다 ‘신중함, 호전적임, 무모함’ 등의 다양한 성격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맨 오브 메단’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플레이어에 의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모든 캐릭터를 조종하다 보니 과감했던 캐릭터를 소심하게 만들기도 하고, 아무런 의견도 없는 인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거품만 가득, 익숙한 공포

공포 게임의 재미도 별로다. 공포 게임은 캐릭터가 무서운 게 아니라 ‘놓여진 환경’이 무서워야 한다. 캐릭터의 밋밋함은 주변 요소들을 활용한 이야기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맨 오브 메단’의 분위기는 어떨까?

  

죽음 혹은 생존에 이르는 결말, 캐릭터들의 운명이 다양하다는 것은 좋지만, 총 플레이 시간을 놓고 봤을 때 그 알맹이가 되는 내용은 적다.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필요 이상으로 길다. 딱 잘라 요약하자면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주된 분위기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느낌이다.

 

플레이어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해 흐름이 길게 늘이고 템포를 늦춘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래선 ‘공포 분위기’가 제대로 살지 않는다. 게임의 절반은 답답한 함선의 통로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좁은 통로에서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벽을 비벼 대는 경험은 ‘공포’보다 ‘답답함’을 먼저 느끼게 한다. 게임 스토리 전체를 관통하는 ‘불안 요소’, 소위 ‘쪼는 맛’이 없다는 것이다. 익숙한 배경과 플레이어의 통제 하에 있는 캐릭터가 합쳐져 ‘대충 이런 그림 나오겠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 이런 예상은 대부분이 들어맞는다.

사실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는 스토리에 기반을 둔 게임인 만큼, 박진감 넘치는 게임을 주로 하는 게이머에게 지루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아이템을 줍거나, 상대방과 전투를 하거나 퍼즐을 푸는 방식이 없기 때문이다. ‘맨 오브 메단’ 역시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고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런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이야기의 단서가 될 만한 오브젝트를 넣은 것은 좋은 시도다. 그러나 이런 장치들이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영향력이 약하다. ‘상호작용’이 공포 분위기를 만드는지, 이야기에 몰입감이 될 만한 요소인지는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넣었네’의 느낌을 받았다.

  

상호작용할 수 있는 주변 환경 대부분은 ‘의문의 존재가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라고 열심히 설명한다. 여기에 불필요한 오브젝트도 종종 보인다. 스토리의 비밀을 알게 되는 장치로 활용되기보다 ‘막상 보니깐 뭐 없네’ 정도로 그친다. 게임 초반의 프롤로그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부연 설명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심지어 ‘전조’라는 방법을 통해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미리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토록 뻔한 공포감의 ‘맨 오브 메단’이 게이머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임팩트’는 ‘깜놀’뿐이다. 풀어진 텐션을 조이는 것은 배경이나 캐릭터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이 아닌 단순히 깜짝 놀라게 만드는 불쾌함이다. 공포 게임에서 불쾌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데서 오는 긴장감 아니라 ‘어우 깜짝이야! 뭐야 이거!’쪽에 가깝다.

  

천천히 조여오는 맛, 비밀에 다가갈 때마다의 불안함, 그리고 결국 맞이하게 되는 공포의 정체. 이렇게 차근차근 쌓아온 감정이 절정에서 터질 때의 놀라움이 아니라 단순히 본능적 반작용이다. 언젠가는 터질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 단순히 풍선을 바늘로 찔러서 터트리는 것은 다르다.


의외의 구원투수 ‘멀티플레이’

‘맨 오브 메단’은 기대했던 것에는 못 미치는 게임이다. 그런데도 ‘맨 오브 메단’을 다시 플레이한다면 그 이유는 ‘멀티플레이’ 일 것이다. 아마 공포 게임에서의 멀티플레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에 이 게임의 재미가 숨어 있었다.

  

‘맨 오브 메단’에서의 멀티플레이는 등장하는 캐릭터를 따로 플레이하는 것이다. 자신이 모든 캐릭터의 역할과 성격을 정해주는 ‘인형 놀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싱글 플레이와는 또 다른 재미와 긴장감을 준다. ‘멀티플레이’에서는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같은 장소에 있을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장소에 놓여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다. 당연히 선택은 되돌릴 수 없으며, 다음 분기점까지 가서야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캐릭터를 의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혹은 살릴 수도 있다.

  

싱글 플레이와 다르게 자신의 선택을 상대방이 알 수 없다는 것은 또 다른 긴장감을 유발한다. 특히 음성 채팅을 주고받는다면, 상대방의 비명을 직접 들을 수 있고, 서로의 선택을 알려주지 않거나 잘못된 결과에 대한 비난을 대놓고 할 수도 있다. 혼자 했을 때 모르고 지나쳤던 비밀을 발견하거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을 보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멀티플레이’를 제외한다면, ‘맨 오브 메단’ 만의 재미와 분위기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히 ‘인터랙티브 무비’의 본질인 ‘선택에 의한 결과’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막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의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났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앞으로 준비된 다른 이야기에서는 많은 부분이 보완되고 개선될 것이라 믿는다. 후속작에서는 단순히 ‘깜놀’에 의존하는 공포가 아니라 치밀하게 구성된 이야기 속의 긴장감을 기대해본다. 앞으로의 후속작들도 ‘맨 오브 메단’과 같은 모습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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