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빡센'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

조회수 2018. 5. 8. 15: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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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에 울고 웃었던 게임들

게임은 난이도를 통해 유저들과 소통해왔다. 사람들은 징그럽게 어려운 게임을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론 묘한 매력을 느낀다. 어려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지만, 깨고 난 후의 성취감 또한 남다르다.


    

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 줄 알면서도 어려운 게임에서 손을 때지 못할까. '난이도'는 게임의 역사를 어떻게 변화시켜 왔을까. 난이도에 울고 웃었던 게임들의 이야기다.

타이거 로드
트로잔
건스모크. 당시 미친 난이도의 유명했던 게임이자, 필자가 원코인 클리어 한 게임들(자랑 아님). 지금 하라면 절대 못한다!!

외우고 외워라, 원 코인 클리어의 추억

초창기 오락실 게임들은 대부분 난도가 높았다. 지금 에뮬레이터로 그 시절 게임들을 돌려보면 정말 이런 걸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다.


    

이 당시 게임은 참 독했다.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동전을 긁어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 게임을 어렵게 만들었다. 철저하게 반복해서 패턴을 외우고 연습해야 겨우 보스 근처까지 갈 수 있었다. ‘실력 있는 녀석들만이 나에게 도전하라’라는 듯 엄청난 난이도로 플레이어를 좌절시켰던 게임도 많았다.


    

당시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대표적 고난도 게임은 마계촌 시리즈다. 그냥 ‘마계촌’도 어려운데 ‘대마계촌’, ‘극마계촌’, ‘초마계촌’ 등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초마계촌(이름부터가 살벌한 난이도를 암시한다)'으로 가면 인간의 손을 거부하는 듯 한 미친 난이도를 보여준다.


    

복잡한 패턴과 까다로운 조건으로 난이도를 높였다. 마계촌에선 점프 타이밍을 한 템포만 놓쳐도 게임오버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마지막 보스를 제대로 클리어하려면 가장 열악한 무기인 '십자가'로 깨야 한다는 조건까지 달았다.

어려운 게임의 전설! 마계촌과
대마계촌. 당시 이 게임 원코인으로 깬 사람 동네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깰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외우고 숙달하는 것이다. 이런 게임들은 유저들에게 고도의 암기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게임은 직선적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정해진 패턴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때문에 적의 패턴을 꼼꼼히 외우고 익히면 쉽게 깰 수 있다. 게임을 많이 할수록 실력은 자연스레 늘게 마련이다. 가끔 랜덤하게 패턴이 바뀌지만 순발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실력 차는 얼마나 더 많이 외우냐에 달렸다. 아니, 동전을 더 많이 넣느냐에 달렸다.


    

최종 보스만 잡는다고 진정한 고수가 되는 건 아니다. 동전 하나만 넣고 보스까지 잡는 ‘원 코인 클리어’ 경지까지 올라가야 고수로써 인정을 받는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사람들의 탄성을 받으며 실력을 자랑하는 것도 그 옛날 오락실의 추억이다. 

어려움에 집착해 몰락해 버린 게임

그렇다고 무조건 외워서만 깰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단순한 패턴 게임에서 허전함을 느꼈다.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게임을 원했다.


    

어려움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한 나머지 스스로 마이너가 되어버린 게임들도 있다. 바로 슈팅게임이다. 사실 슈팅게임은 가장 대중적인 장르였다. 게임의 역사 자체가 슈팅에서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슈팅게임은 공부할 게 없다. 미사일과 폭탄, 두 개의 버튼만 알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단순함을 갖췄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갤러그’, ‘제비우스’, ‘1942’ 등 한때 슈팅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초창기 오락실의 터줏대감은 슈팅게임이었다. 

1980년대 오락실의 전성기를 가져온 갤러그와
1942. 슈팅 장르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게임이었다

하지만 슈팅게임은 대중성을 너무 쉽게 놓아버렸다. 1990년대 중반부터 슈팅게임의 명성은 땅에 떨어졌다. 가정용 게임기 시대가 오면서 쉬운 게임들의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슈팅의 자리를 위협한 장르는 RPG와 어드벤처다. 반사 신경이 필요하지 않고, 공략만 보면 누구든 깰 수 있다.


    

RPG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동안 슈팅은 어려움에만 집착했다. 반사 신경이 뛰어난 극소수의 플레이어만 깰 수 있는 장르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유저 간의 실력 차가 너무 벌어졌다. 못하는 다수는 아예 게임을 하지 않았고, 잘하는 소수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더 극단적인 난이도를 원했다. 이것이 슈팅게임 몰락의 시작이다.

1945 스트라이커
라이덴
에어로 파이터. 슈팅게임의 몰락 이후 그나마 오락실 한편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게임들. 극장 옆 게임센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게임

현기증 나는 총알 세례! 구토 유발 게임들

어려움에 대한 극단적인 형태가 탄막 슈팅게임이다. 탄막 슈팅게임은 쏘고 피하는 원초적인 슈팅의 재미를 극대화한 장르다. 화면은 그야말로 총알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수준이다. 쏘는 게 아니라 뿌린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총알의 위치를 외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조금만 흐름이 끊기거나 변수가 생기면 그 즉시 게임오버다. ‘동방프로젝트’, ‘벌레공주’, ‘도돈파치’ 같은 게임은 초보자가 플레이하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한다.


     

이런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어려움이 미덕이다. 게임을 즐긴다기 보다 역경을 즐기는 편이 맞다. 어렵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도전하는 기분으로 게임기에 동전을 넣어야 한다. 때문에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극명하다. 총알 사이의 비좁은 틈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고수의 플레이는 신기에 가깝다.


     

반대로 초보자는 엄두도 못 낼 플레이다. 탄막 슈팅게임들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극악의 난이도로 덧칠했다. 개발자들은 '이건 도저히 못 깨겠지'라고 조롱하는 듯 총알을 예술적으로 뿌려댔다.


     

마치 일반 스포츠에 질린 사람들이 위험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슈팅게임이 어려움에 집착할수록 일반 대중들과 멀어졌다. 어려운 취향을 선호하는 그들만의 게임으로 전락했다.  

탄막슈팅게임의 대표작 동방프로젝트
도돈파치. 어려움에 집착한 슈팅게임은 점점 마니악한 장르로 변해갔다. 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참을 수 없는 RPG의 불편함

어느 장르든 난이도 밸런스와의 전쟁에서 예외는 없었다. RPG 장르에서 난이도를 결정하는 기준은 불편함이다. 캐릭터를 성장시켜야 하는 게임의 특성상 ‘불편함’은 게임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초창기 RPG는 일부러 플레이어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RPG가 불편한 이유는 게임의 목적 자체가 성장과 모험에 있기 때문이다.


     

요즘 게임들은 지도에 목적지와 루트가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마을 NPC들에게 일일이 길을 물어가며 목적지를 유추해야 했다. 이런 고생이 모험의 취지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유저들은 그 불편함을 게임 콘텐츠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즐겼다. 그것이 롤플레잉이니까.


   

게임은 시작부터 불편함 천지다. 스탯을 어디에 쓰고 언제쯤 찍어야 할지, 기술을 어떻게 조합하고 언제 사용해야 할지, 아이템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재료를 모아야 할지, 지도의 어느 지점으로 가야 보물이 있을지, 엄청나게 복잡한 던전의 출구가 어디인지… 게임을 하는 순간순간이 이런 고민들의 연속이다. 

고전 RPG 마이트앤매직 6.
울티마 7. 고전 RPG들은 플레이어에게 불편함을 주면서 게임의 난이도를 높였다

정보의 불편함도 난이도를 높이는데 한몫한다. 아케이드 게임처럼 패턴을 암기하거나 반사 신경에 의지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게임에 대한 사전 지식도 있어야 한다. 세계관을 공부하고 캐릭터 특성을 연구하고, 심지어 게임 세계의 언어까지 알아야 한다.  


    

초기 RPG는 슈팅게임과는 달리 진입장벽이 높았다. 설령 호기심으로 했다가도 제대로 엔딩을 본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울티마’, ‘소서리안’, ‘마이트앤매직’ 등 초창기 RPG 명작들은 대부분 난해한 게임으로 알려졌다. 그런 불편함과 난해함이 RPG 마니아들의 자부심으로 통했다.


    

초창기 RPG들은 TRPG와 같이 게임을 하는데 있어 상당량의 '기본지식'이나 '상식'들이 필요했다. 일반 유저가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불친절한 부분들이 많았고, 이런 상식을 게임에서 설명해주지 않았다.


    

물론 TRPG에서 RPG 게임으로 넘어간 게이머들은 색다른 재미와 랜덤성 탐험하는 재미에 쉽게 빠져들었지만, 초보자에게 RPG는 호기심이나 근성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게임이었다.

D&D 룰북. RPG 마니아들에게는 필수다

친절한 엘더스크롤, RPG '룰의 혁명'

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맞았던 정통 RPG는 2000년대 들어 급속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마니아적 성향 때문이다. 대신 디아블로 같은 액션 RPG가 캐주얼 유저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RPG 개발사들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그런 점에서 베데스다의 ‘엘더스크롤’ 시리즈는 RPG의 대중화를 이끈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초기 엘더스크롤 시리즈는 불편한 게임성으로 악명(?)을 떨쳤다. ‘대거폴(2편)’, ‘모로윈드(3편)’까지는 전통적인 RPG의 불편함을 그대로 답습했다.


    

엘더스크롤 개발자는 유저들의 취향이 바뀐 것을 직감했다. 사람들은 심오한 세계관이나 복잡한 룰을 몰라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원했다. 게임은 스스로 불편함을 보완했다. 지도에 마크를 찍어 친절하게 길도 알려주고, 스탯이나 기술을 통합하거나 간소화 시켰다.


    

세계관이나 룰 따위에 얽매이기보다 유저들의 자유로운 플레이를 더 존중했다. 엘더스크롤 오블리비언부터는 RPG 특유의 보수성마저도 버렸다. 모드를 통해 게이머들에게 콘텐츠를 개방했다. 누구든 게임 세계에 들어가 룰을 바꿀 수 있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것은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엘더스크롤 2편 대거폴
모로윈드. 이 작품들까지만 해도 RPG 특유의 마니아적 성향이 강했다.

우선 모드 설치가 굉장히 자유롭다. 유저들은 각양각색의 UCC 모드를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공유했다. 이렇게 쌓인 창의적인 모드들은 게임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여성 캐릭터의 외모가 마음에 안 들면 미소녀 캐릭터 모드를 설치하면 되고, 돈이 부족하면 은행에 돈을 예금해 이자를 받아먹는 고리대금 모드를 설치하면 된다.


    

심지어 캐릭터를 누드로 만드는 성인 모드가 유포되어 미국 심의기관이 게임등급을 높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데스다는 게이머들의 모드 제작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심지어 5편 스카이림 개발 때는 모드 제작 경험이 있는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각종 룰에 갇혀 있는 RPG의 재미를 풀어놓은 것이다.


    

사실 개발자가 유저에게 콘텐츠를 재창조할 권리를 준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오블리비언처럼 모드 제작 열풍은 의외의 히트작을 낳는다는 점에서 게임사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오블리비언은 나오자마자 흥행에 성공했다. 발매 3주 만에 1백만 장이 판매됐고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정통 롤플레잉 장르가 1백만 장 이상 팔리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엘더스크롤 4편 오블리비언
5편 스카이림. 다양한 모드 지원과 자유도 높은 진행으로 RPG의 진입장벽을 낮춘 명작들.

'보수냐? 진보냐?' 스카이림의 실험

엘더스크롤 혁신의 원동력은 만드는 사람의 철학에 있다. 전통적으로 엘더스크롤 시리즈는 켄 롤스톤, 토드 하워드 두 거장이 개발을 지휘했다. 두 사람은 각자 게임에 대해 지향하는 바가 달랐다.


    

롤스톤이 정통 RPG 방식을 고수하는 보수적 개발자였다. 하워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게임도 변해야 한다는 진보적 성향의 개발자다. 롤스톤은 자신이 전공했던 TRPG의 세계를 게임에 충실히 구현하는 게 우선 과제였다. 하워드는 보다 재미있고 편한 게임을 만드는 게 먼저였다.


    

결국 두 사람의 개발 이념은 차기작 오블리비언에서 충돌했다. '보수냐? 진보냐?' 게임 개발에 사활이 걸렸다. 결국 롤스톤이 오블리비언 개발 도중하차하면서, 하워드 혼자서 시리즈를 책임져야 했다. 토드 하워드가 개발을 총지휘하면서 게임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이다.


     

토드가 만든 스카이림은 더욱 유저 친화적인 게임으로 나왔다. 인터페이스나 스킬 등 여러 가지 시스템적 부분에서 편의성이 가장 먼저 고려됐다. 유저들은 부담 없이 게임 세계를 즐겼다. 모드 제작도 더욱 활발해졌다. 유저들이 직접 제작한 수백 가지의 모드가 게임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스카이림은 2014년까지 전 세계 이천만 장 이상 팔렸다. 천 만장 팔린 오블리비언의 두 배다. 엘더스크롤 이후 폴아웃, 드래곤에이지, 매스 이펙트, 위쳐3 등 유저 편의를 고려한 RPG들이 대박을 쳤다. 복잡한 룰과 불편한 난이도를 버리고 가장 대중적인 장르로 거듭난 것이다.


   

RPG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켄 롤스톤, 순수한 게임으로써의 재미를 추구하려 했던 토드 하워드. 옳고 그름을 떠나 두 사람의 개발 이념은 엘더스크롤 시리즈를 RPG의 대명사로 만든 밑거름이 됐다.

엘더스크롤 창시자 켄 롤스톤(좌)과 토드 하워드(우). 캔은 전통적인 RPG 룰을 따르려 했고, 토드는 쉽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려고 했다. 결국 캔은 떠나고 토드는 새로운 엘더스크롤 스카이림을 만들었다.

스타의 혁명, 보는 게임의 시대

비슷한 시기 RTS 시장도 난이도 혁명이 일어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 RPG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나 다름없었다. 듄2의 성공 후 수많은 전략 게임들이 시장에 나왔다. 지금은 좀 낯설지만 당시 ‘KKND’, ‘미스’, ‘다크레인’, ‘홈월드’ 같은 게임은 입에서 욕이 나올 정도로 높은 난이도를 자랑했다.


    

낯선 인터페이스, 제한된 자원, 복잡한 컨트롤은 웬만한 유저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파생된 RTS는 복잡함이 미덕이었다. 과거 턴제 전략 게임 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어려운 장르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게임을 인위적으로 쉽게 만드는 치트키까지 나왔을까. 당시 RTS는 치트키 공개가 기본이었다. 그 유명한 스타크래프트의 'show me the money(자원을 늘려주는 치트키)'는 한국에선 관용어가 됐다. 실력이 모자라면 치트키를 쓰더라도 깨야 했다.


    

그러나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가 나오면서 게임의 룰은 달라졌다.


    

스타크래프트는 단숨에 RTS 시장을 정리했다. 스타가 내세운 건 쉽고 편리한 게임성이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편리한 게임성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게임이 보여준 건 난이도의 혁명이다.


    

스타는 난이도의 양극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일반 플레이와 하드코어 플레이가 확실히 구분됐다. 게임의 스토리 모드는 상당히 쉽다. 몇 번 플레이하면 어려울 것 없이 엔딩을 볼 수 있다.

1990년대 RTS 전성기를 수놓은 미스
KKND
홈월드. 명작이지만 정말 징글징글하게 어려웠던 게임으로 유명했다.

재미있는 건 같은 게임인데도 플레이하는 사람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 유저는 배틀넷을 통해 라이트 한 게임을 즐기고, 하드코어 플레이는 e 스포츠 선수들이 대신한다. 숙달된 선수들은 일반인이 흉내도 못 낼 고난도 컨트롤과 전술적 플레이를 보여준다. 게임은 유저들에게 고난도 플레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였다.


    

밤을 새우며 기술을 공부할 필요고 없고, 손에 쥐가 나도록 패턴을 숙달할 필요도 없다. 어려운 플레이는 선수들이 대신해준다. 그냥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즐기면 된다. 이른바 보는 게임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보는 게임의 시대는 게임 역사의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이때부터 고난도 게임들은 게임 방송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소비됐다.


    

사람들은 징그럽게 어려운 게임을 남이 대신 깨주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도저히 하지 못할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선수들을 통해 대리 체험했다. 유저들은 더 이상 고난도 플레이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보는 게임의 시대는 e 스포츠라는 거대한 산업을 만들었다. ‘리그오브레전드’, ‘오버워치’ 등 하는 것보다 보는 게 즐거운 게임이 늘 게임 시장의 정상을 차지했다. 

스타크래프트와 e 스포츠. 스타는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의 시대를 열었다.

'나는 빡센 게임이 좋다' 다크소울의 기묘한 흥행

필자는 다크소울 시리즈가 이렇게 흥행할 줄 몰랐다. 2000년대 이후 어려운 게임은 몰락했다. 사람들은 마치 마녀사냥을 하듯 어려운 게임을 기피했다. 그리고 쉽고 편리한 캐주얼 게임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게임이 왜 이렇게 어렵냐며' 외면받았다. 웰메이드 게임의 조건은 화려한 그래픽과 편리한 인터페이스였다.


    

그런 점에서 다크소울은 확실히 시대역행적인 게임이다. 이 게임, 정말 징글맞게 어렵다. 개발자도 대놓고 어려운 게임이라고 선포했다. 게임은 인내심 테스트의 종합 판이다. 플레이어에게 너무 불친절하다. 제대로 된 튜토리얼도 없이 바로 게임 시작이다. 죽어가면서 게임을 익혀야 한다.


    

적은 왜 이렇게 센지... 보스는커녕 졸개들도 버겁다. 죽으면 여지없이 이전 장소에서 다시 시작한다. 이런 '고전적인 불편함'은 과거 아케이드 게임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어느 구석으로 보나 흥행과는 거리가 먼 게임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이 게임에 열광한다.

다크소울. 어려운 게임이 이렇게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자체가 하나의 신드롬이었다.

게임은 대박을 쳤다. 그것도 보통 대박이 아니다. 3편까지 전 세계 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웬만한 블록버스터 게임을 능가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두터운 팬덤이다. 팬들은 게임의 지독한 난이도에 친밀감을 표시한다. 어려운 게임이 이렇게 폭넓은 사랑을 받는 사례는 지금까지 보지 못 했다.


    

다크소울의 기묘한 흥행. 그 비결은 무엇일까.


    

‘다크소울’은 유튜브로 스타가 됐다. 1편이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사람들은 시큰둥 했다. 그래픽, 스토리, 세계관 등 어디를 보나 특별한 구석은 없었다. 하지만 2편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미친 난이도를 즐기는 고수들이 유튜브를 통해 게임을 중계하면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입소문은 호기심을 유발했고, 판매로 이어졌다. 

내가 죽으면 짜증이지만 남이 죽으면 개그

대정령 다크소울 방송 장면. 인터넷 유명 BJ들이 다크소울 방송을 하면서 게임은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고, 흥행으로 이어졌다.

다크소울의 흥행은 게임 플레이 패턴의 변화를 보여준다. 지금 게임을 소비하는 신세대 게이머들은 과거 오락실 키드와는 다르다. '하는 게임'보다 '보는 게임'에 익숙한 세대다. 그런 세대에게 다크소울의 불친절한 난이도는 그 자체가 볼거리이자 호기심의 대상이다. 지금은 거의 화석이 된 미친 난이도의 게임이 이들에게는 새로운 재미로 다가왔다.


    

이들에게 어려운 게임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소통하며 즐기는 놀이문화다. 캐릭터가 죽으면 좌절하기 보다 함께 공략법을 연구해가며 즐긴다. 지금도 유튜브나 트위치 등 인터넷 방송에선 어려운 난이도를 내세워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들이 많다. 과거 유저들에게 어려운 게임은 기피 대상이었다.


    

슈팅처럼 어려움에 집착해 몰락한 장르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대충 해도 엔딩을 보는 말랑말랑한 게임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미친 난이도의 게임들은 새로운 플레이 환경에서 재평가 받고 있다. 난이도의 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최신작 다크소울3. 전 세계적으로 시리즈 천만 장을 팔아치웠다. 이런 어려운 게임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다는 자체가 게임 환경의 변화를 보여준다.
다크소울 개발사가 만든 블러드본
다크소울의 동양판 버전 인왕. 다크소울이 예상 밖 성공을 거두면서 미친 난이도를 내세운 게임들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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