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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탱크' 속 기묘한 전차들, 과연 실존했을까?

조회수 2018. 4. 23. 13: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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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렇게 생긴 전차가 있을까?

워게이밍의 ‘월드 오브 탱크’에는 다양한 전차가 등장한다. 이 중에는 도저히 실존했을 것 같지 않은 기묘한 모양의 전차들도 있다. 과연 그런 전차들이 실제로 존재했을까, 아니었을까? ‘월드 오브 탱크’에 등장하는 기괴한(?) 전차들을 살펴보았다.

일본 육군의 망상, 5식 중전차

월드 오브 탱크 일본 중전차 10티어에 ‘5식 중전차(Type 5 Heavy)’가 등장한다. 덩치가 커 ‘독돼지’로 불리는 독일 중전차와 구축전차도 능가하는 거대한 크기, 풀 업그레이드 시 15cm 주포에 고폭탄을 사용하는 특이한 중전차다. 월드 오브 탱크 내 게임 기준으로 무게는 최대 160톤에 달한다.

월드 오브 탱크에서 5식 중전차를 처음 접해본 사람들은 육군 병기가 부실하기로 악명 높은 일본군이 도대체 무슨 기술로 이런 전차를 만들었나 황당해 할 수도 있다. 그 생각 그대로 월드 오브 탱크에 등장하는 ‘5식 중전차’는 실존했던 전차는 아니다. 간단한 묘사 외에 실제 제대로 된 설계도가 있었는지조차 불명확하다.

▶ 게임 내에서 보면 진짜 크다

그러나 ‘5식 중전차’는 완전한 허구의 전차도 아니다. ‘5식 중전차’의 기원을 찾아보면 1939년 소련과 일본 사이에 벌어졌던 국경분쟁이자 국지전이었던 할힌골 전투(일본에서는 노몬한 사건이라 부른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만주를 장악하고 있던 관동군과 몽골 사이의 국경 분쟁이 원인이 된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 육군은 예상 외로 큰 피해를 입고 분쟁을 끝내야만 했다.

▶ 할힌골 전투 당시 전차를 앞세우고 진격하는 소련군

일본은 할힌골 전투를 노몬한 사건이라 부르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 했지만, 할힌골 전투가 준 교훈은 명확했다. 국지전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일본 육군은 소련과의 직접적인 충돌이 벌어질 경우 처참한 꼴을 당할 것이 뻔했다. 할힌골 전투가 끝난 후 충격을 받은 일본군은 관동군 수뇌부를 대규모로 교체하고, 전투의 교훈을 반영하기 위한 여러 보고서를 작성했다.


     

일본군이 작성한 할힌골 전투의 보고서 중 일부는 일본 육군 기갑 전력의 빈약함과 대전차 능력의 부재를 지적했다. 할힌골 전투 당시 일본군이 보유하고 있던 전차인 89식 중전차나 97식 중형전차는 숫자를 떠나 그 성능 자체가 썩 좋지 않았다. 소련군이 동원한 BT 전차나 T-26이 매우 얇은 장갑만 갖춘 경전차에 해당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 월드 오브 탱크에 등장하는 97식 중형전차 치하. 3단계 중형전차다.

할힌골 전투의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육군은 소련을 상대하기 위한 전술 연구에 나섰다. 소련군의 지상전력에 대항하기 위한 초중전차 계획도 함께 시작되었다. 실제 일본의 초중전차 계획이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1940년 초부터는 개발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개발의 주도자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설은 당시 육군성 대좌였던 이와쿠로 히데오가 육군기술본부에 95식 중전차(약 26톤)의 최소 2배 이상 체급을 갖춘 초중전차의 설계를 명령했다는 것이다. 소련의 T-35 다포탑 중전차에 자극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일본의 초중전차 계획은 점차 커져 100톤 이상의 체급을 갖춘 다포탑 초중전차로 발전해 나갔다.

▶ 오이의 단면도

이후 일본군의 초중전차 계획은 육군기술본부가 설계를 맡고, 미쓰비시가 제작하는 형태로 결정되었다. 육군이 오이차(大イ車), 미쓰비시가 미토차(ミト車)라 부른 이 초중전차는 1941년 말 완성을 목표로 실제 제작에 들어갔다. 하지만 제작은 자꾸만 지연되었다. 육군은 이 계획에 대단한 열의를 보이지 않았고, 물자 부족 등 여러 이유가 겹쳤기 때문이다.


    

1942년 초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차체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고, 92식 105mm 45구경장 포를 장착한 포탑의 생산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실제 ‘오이’ 초중전차의 포탑 생산은 물자 부족으로 계속 보류되었다. 1943년에 들어서야 ‘오이’ 초중전차의 시험주행이 실시되었지만, 8월 주행시험 과정에서 차체가 일부 파손되었고 이후 계획은 흐지부지 되었다.

▶ 오이의 상상도?

월드 오브 탱크에 등장하는 5식 중전차는 이 오이 초중전차의 파생형 중 하나로 추정되는 ‘2605식’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전차다. ‘추정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오이 초중전차 자체도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데, 그 개량형이라는 2605식 초중전차가 실제 개발은 고사하고 설계도라도 있었을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실존했던 프로토타입을 기반으로 창작한 전차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통곡의 벽은 실존했다? 미국 T95 구축전차

월드 오브 탱크 미국 9티어 구축전차로 T95가 등장한다. 납작하고 큰 덩치에 생긴 그대로 미련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305mm라는 무식한 전면장갑을 갖추고 있는 구축전차다. 주포 업그레이드시 155mm 주포로 적에게 큰 아픔을 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등장했던 다른 전차와 별로 닮지 않은 이상한 모양이지만, T95는 엄연히 실존했던 전차다.

T95의 개발은 1943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은 추축국과 전쟁 중이었고, 육군은 그 중 독일에 특히 큰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만간 유럽에 다시 상륙한다면 미 육군에게 골치가 될 수 있는 것이 독일이 무적의 방어선이라 선전하던 지크프리트 방어선(Siegfried Line)의 존재였다. 단단한 대전차장애물과 요새, 지뢰 등으로 잘 무장되어 있다고 알려진 지크프리트 방어선은 큰 출혈을 강요할 것이 분명했다.

▶ 지크프리트 방어선. 혹은 서부방벽(Westwall)

결국 미 육군은 지크프리트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한 특수한 전차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T95 초중전차 계획이다. T95의 설계와 생산은 PACCAR에서 맡았다. T95는 철저히 목적에 맞게 설계되었다. 305mm에 달하는 두터운 전면장갑은 방어선에서 쏟아지는 화력을 받아낼 수 있었고, 주포로 선택된 105mm T5E1은 콘크리트 시설에 대해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포였다.

▶ 웃기게 생겼지만 실존한 전차다

그런데 1944년 초 T95의 제작 승인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T95는 고정식 포탑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의 분류상 ‘전차’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T95는 105mm 자주포(Gun Motor Carriage) T95로 명칭을 변경해야 했다. T95는 1945년까지 총 5대를 생산할 예정이었다. 이미 이 시점에서 개발 시작 당시의 25대 양산 예정에서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T95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T95 프로토타입이 생산되는 동안, 1944년 6월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유럽에 상륙했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했다. 뚫을 수 없는 무적의 요새라던 지크프리트 방어선은 결국 허상에 불과했다. T95의 본래 용도는 이미 사라져 있었고, 결국 1945년 하반기에 실행할 예정이던 일본 전면 침공 계획 ‘몰락 작전(Operation Downfall)’투입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했다.

이 몰락 작전조차 실행되지 않았다. 1945년 8월, 원자폭탄 2발을 맞은 일본이 항복해 버렸기 때문이다. 첫 T95 프로토타입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양산 계획은 초기 25대에서 5대로, 일본의 항복으로 다시 2대로 줄었다. 1946년 6월, T95의 이름은 다시 T28 초중전차로 변경되었다. 1947년에는 시험 주행 중이던 T28 한 대가 엔진 화재로 폐기처분 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고 T28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살아남은 한 대는 계속 테스트를 받고 있었지만, 너무 느린 속도와 86톤에 달하는 무게 그리고 고정식 포탑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47년 10월 결국 T28 계획은 종료되었고, 이 특이하게 생긴 전차는 그대로 잊혀졌다.


    

1974년, 미국 버지니아 포트 벨부아(Fort Belvoir)에서 들판에 버려져 있던 T28이 발견되었다. 본래 1947년 계획 종료 당시 남아 있던 T28은 해체 후 고철로 매각할 계획이었는데, 27년동안 행방이 묘연하다 갑자기 발견되었다. 이후 T28은 켄터키 주 패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가, 2020년에 완공 예정인 조지아주 포트베닝(Benning)로 옮겨 전시할 예정이다.

▶ 애니메이션 '걸즈 앤 판처 극장판'에도 T95가 등장했다. 게임에서는 지원되지 않지만 T95의 바깥 궤도는 실제로 분리 가능하다.

이유 있는 대갈장군, FV4005 Stage 2

월드 오브 탱크 영국 10티어 구축전차로 등장하는 ‘FV4005 Stage 2’는 차체에 비해 거대한 포탑을 장착하고 있어 ‘대두’로 불린다. 비록 생긴 모습은 웃기지만 183mm 주포를 탑재하고 있어 한 발에 최대 1750라는 무지막지한 대미지를 자랑한다. 티어를 가릴 것 없이 어지간한 체력의 전차는 한 방만 제대로 박혀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위력이다.

▶ 머리가 진짜 크다

게임 속에서 FV4005 Stage 2의 무식하게 큰 머리(?)를 보고 있으면 아무리 세상의 흉악한 것은 다 만드는(?) 영국이라지만 이렇게 전차를 실제로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이 FV4005 Stage 2 역시 실존한 구축전차다. 이상한 외모와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 시기가 아닌, 1950년대 개발된 구축전차이기도 하다.


    

FV4005 Stage 2는 당대 영국의 주력전차인 센추리온 mk3을 기반으로 1951년 개발이 시작되었다. 원래 FV4005은 FV215 중전차 계획에서 파생되었다. FV215 중전차는 소련의 IS-3 중전차에 맞설 수 있는 위력의 중전차를 생산하려는 계획이었고, 이 과정에서 FV215의 차체에 강력한 포를 얹은 자주포 컨셉의 차량이 제안되었지만 도중에 개발이 중단되었다.

▶ BL 7.2인치 곡사포. 길이 7m, 무게는 10톤에 달한다.
▶ 기동 중인 센추리온 전차. 한국전쟁 당시의 모습이다.

대신 센추리온 mk3의 차체에 BL 7.2인치 곡사포(BL 7.2-inch Howitzer)를 장착하려는 새로운 계획이 입안되었다. BL 7.2인치 곡사포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 설계된 오래된 물건이었지만 7.2인치(약 183mm)라는 대구경임에도 불구하고 명중률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런 위력 좋고 명중률 좋은 포를 센추리온의 차체에 얹어 강력한 구축전차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문제가 있다면 이 BL 7.2인치 곡사포 자체가 기본형이 10톤, 기갑차량에 탑재하기 위해 개량한 버전인 L4도 기본 4톤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무게를 자랑했다는 점이다. 사격 시 발동하는 반동도 약 87톤에 달했다. 사용 탄약은 HESH(High Explosive Squash Head, 점착유탄)였는데, 포탄 하나의 무게도 104kg나 됐다. 탄약수 두 명이 달라붙어도 이론상 발사속도는 분당 6발에 불과했다.


    

어쨌든 이 괴물 같은 포를 얹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센추리온 Mk.3 차체에 스페이드를 장착해 포의 강력한 반동을 흡수하고, 104kg에 달하는 포탄 장전을 조금이라도 쉽게 하기 위해 비커스-암스트롱(Vickers-Armstrongs)사가 개발한 장전 보조 장치를 도입했다. 이러한 개량은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FV4005 Stage 1

그러나 183mm 구경을 자랑하는 거대한 포에 장전 보조 장치까지 합쳐지자 시스템 자체가 포탑에 집어넣을 수 없는 크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별도의 포탑 없이 포와 운용자가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형태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이 시점에서 FV4005 Stage 1으로 불리는 첫 시도는 일단 종료되었고, 월드 오브 탱크에 등장하는 FV4005 Stage 2가 후속 개발로 등장한다.


     

FV4005 Stage 2는 ‘월드 오브 탱크’에 등장하는 것처럼 실제로도 상자처럼 생긴 포탑을 장착했다. 그러나 이 포탑은 최대 장갑이 14mm에 불과한 말 그대로 껍데기에 불과했다. 껍데기만 씌운 수준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크고 무거운 183mm 포 때문에 완성된 전차는 차체에 비해 엄청나게 큰 포탑을 단 꼴이 되었다.

▶ 과연 영국...

얇은 포탑 장갑은 어차피 구축전차의 특성 상 원거리에서 ‘저격’을 하면 된다고 쳐도, 무겁고 큰 포 자체는 끝까지 말썽을 일으켰다. 포탑에 탑재할 수 있는 포탄은 12발에 불과했고, 이론상 FV4005 Stage 2의 포탑은 360도 회전이 가능했지만 실제로는 좌우 90도로 제한되었다. 지면의 상태에 따라 그 이상의 각도를 주고 포 발사 시 무게중심을 잃고 전복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V4005 Stage 2의 위력 자체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많은 부분을 희생했지만 183mm HESH탄의 위력은 확실했다. 하지만 마지막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시대의 변화였다. 훨씬 가볍고, 위력도 강한 대전차 미사일 체계가 등장하며 대구경포를 장착한 구축전차나 대전차 자주포는 구세대의 유물이 되었다.

▶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FV4005 Stage 2

그 결과 1955년 FV4005 Stage 2 딱 한 대가 시험용으로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57년 183mm 포를 장착한 기갑차량의 개발은 전면 취소되었다. 현재 FV4005 Stage 2는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1955년 당시의 모습은 아니다. 센추리온 Mk.3 차체 대신 센추리온 Mk.8 차체에 FV4005 Stage 2포탑을 얹은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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