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의 옹고집 개발자들

조회수 2018. 3. 21. 12: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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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넨 다 좋은데..대화 좀 해줬으면 좋겠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게이머들의 평가는 매우 좋습니다.  

항상 좋은 게임을 제작하기 위해 온 회사원이,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모조리 폐기하고 또 긴 시간을 들여 또 다른 게임을 만들어 내죠. 자신들의 게임을 브랜드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도 탁월합니다.


    

그 뿐인가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성실한 고객 서비스와 오래된 게임도 새 것처럼 만들어 주는 기가 막힌 업데이트도 꾸준히 해 주며 사후관리도 철저한 회사로도 유명합니다.

▶ 7년 개발했으나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단칼에 폐기한 프로젝트 타이탄
▶ 사내 동아리 수준의 모임에서 시작한 하스스톤, 타이탄 폐기로 탄생한 오버워치, 리마스터링으로 환골탈태 예정인 스타1

세계 최대 게임회사 중 하나로 떳떳하게 이름을 올린 블리자드.


    

이 자리에 오기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개발 철학을 항상 잊지 않고, 뚝심으로 지켜왔습니다. 내놓은 게임 중 단 하나라도 '블리자드'스럽지 않은 것들이 없도록 말이죠.


     

개발부터 시작해 운영 전반에 이르기까지, 블리자드는 항상 자신들의 색깔이 바래지 않도록 여러모로 공들여 왔습니다.

    
그런데, 좋은 말로 하니 철학이지...


   

어쩔 땐 정말 옹고집 영감으로 보이는 게 한 두개가 아닙니다.


   

팬들이 하지 말라고 아우성이더라도, 결코 좋은 소리 못 듣는 게 뻔히 보여도 끝끝내 계획을 밀어붙여 상처 주고 상처 입은 적이 꽤 많아요. 

백 번 잘하다가도 몇 번씩 게이머들의 눈에 눈물 떨어지게 만든 고집불통 블리자드.


    

잘 될 거라고 밀어 붙였다가 본전도 못 뽑고 이미지도 잔뜩 깎아먹게 된 못말리는 옹고집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모아봤습니다. 


칠뜨기도 이 정도는 못 했다!

손대는 것마다 망하게 하는 밸런스의 귀재

데이비드 킴의 스타크래프트2 패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다국적 회사이기에 블리자드표 게임만 만들 수 있다면 국가와 인종에 관계 없이 능력자들을 적극 채용하는데요.


    

이렇게 모인 개발진들 중에는 자랑스럽게도 한국인과 재미교포 등 우리나라의 개발력을 보여주는 인재도 몇십명 있습니다. 

▶ 겐지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분도 한국인 홍경호 애니메이터

...그런데 한국계 미국인인 이 개발자는 좀 달라요.


    

1982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의 대학 입학에 성공,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해 북미 게임계에 진출한 1.5세대 재미교포.


   

워해머,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등 렐릭 게임의 밸런스 디자인을 담당했고 현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게임 중 하나인 '스타크래프트' 밸런스를 좌우했던 실세.


    

말만 들으면 엄청난 명성과 업적을 이뤄 낸 사람같겠지만, 이 분의 영어 이름을 들으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David Kim.

줄여서 DK라 불리는 그 분입니다. 

▶ 스타크래프트2 멀티플레이어 리드 디자이너 DK

DK가 수행한 기똥찬 밸런스 패치 내역, 이에 따르는 유저들의 쌍욕(...)을 죄다 적으면 스크롤이 나일강에 버금 갈 정도로 길어질 겁니다.


    

스타2 팬들에게 DK는 시선에서 OUT되어야 할 천하의 나쁜 놈이었고, DK가 스타2에서 손을 뗀 지금도 그의 이름과 업적(?)은 흑역사 취급을 받고 있을 정도죠. 

   

캐나다에 있으면서 렐릭에서 일하던 그 시기부터 DK는 자신의 미래를 어느 정도 미리 경험해봤습니다.


   

워해머: 다크 크루세이드던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던 간에 그의 손을 거치기만 하면 특정 종족이 미친 듯한 개사기 능력을 펼치며 게임 전체를 쌈 싸먹었거든요. 


유저들의 항의는 장난 아니었고, 가장 큰 브랜드 게임인 워해머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의 이름에도 흠집날 위험에 쳐하자 회사는 과장 급이었던 DK의 직급을 수석 밸런스 디자이너에서 사원 급으로 강등시켜 버립니다.  


    

사실상 퇴사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겠지요. 

▶ 그렇게 렐릭 생활도 흑역사 적립...

그렇게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고 백수로 살던 DK에게 2007년 어느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시간이 남아 미국 스타크래프트 리그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는데, 꿈의 직장에서 손짓한 겁니다.


   

극초반 벙커링 전략을 펼치며 한국식 매운 맛을 상대편에게 선사하며 많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 DK. 

그 수준높은 게임 실력(;)은 리그를 관전하던 스타2 리드 디렉터 더스틴 브로더의 마음에 쏙 들었고, 입사를 위해 면접을 받아 보는 게 어떻겠냐고 손수 권유까지 했던 모양이에요.
 


    

탈모 이후 인생의 최대 암흑기를 자기 손으로 불러 들인 더스틴 브로더(일명 빡빡이). 자신의 프로젝트, 스타2가 7년 뒤 어떤 꼬라지가 될 지 상상이나 했을까요.


   

애지중지하던 프로젝트가 본인이 아끼던 후배동료의 손에서 망가지리라고 조금이라도 예상해 봤을까요... 

▶ 탈모는 사실 DK의 뒤치닥거리때문이 아니었을까?

2010년이 되어 스타2가 출시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DK가 유저들의 피드백을 들어가면서 밸런스를 맞추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가 된 거죠. 

뭐, 발매 바로 이후의 밸런스는 개판이라도 괜찮았어요.


   

게이머들의 연구와 분석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만큼 밸런스도 종잡을 수 없이 변하던 시기였으니까요.


   

하루가 멀다 하고 유닛의 힘이 세졌다 약해졌다 하는 격변기였기에 DK의 활약상(?)은 그렇게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 아직은 때가 아니야...내 본모습을 보여 줄 때가 아냐...

그로부터 3년 뒤, 확장팩 '군단의 심장'이 발매되면서 DK의 존재감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테란의 몇몇 유닛에게 과도한 힘을 불어 넣어주면서, 발매되자마자 테란만 승승장구하는 등 밸런스 붕괴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한쪽이 강해지자 다른 두 종족의 힘을 맞춰 올려 봤지만 그것 역시 밸런스를 더욱 붕괴하는 지름길일 뿐.


   

순간만 모면하고 먼 미래를 내다 볼 줄 모르는 DK의 밸런싱에 군단의 심장은 점점 썩어들어갔습니다.  

▶ 움직이는 모든 걸 불태워 버렸던 화염기갑병느님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릴 때도 있었습니다. 6개월 만에 갑자기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때만큼은 DK를 까던 유저들도 찬양 모드로 돌아섰고, 렐릭에서의 저평가가 아직도 DK를 괴롭힌다는 동정론도 일어납니다.


   

달콤한 꿈은 딱 한 달 갔습니다.


   

온갖 스타리그에선 프로토스가 활개를 치고, 확장팩 발매 초반에 미친듯한 파워를 자랑했던 테란은 천연기념물이 되어버렸어요.


   

테란보다 살림살이는 좀 낫지만, 저그 역시 프로토스에겐 꼼짝 못하고 빌빌댔고요. 

▶ 차원분광기만 있으면 어떤 상황이든 극뽁-!

그렇게 밸런싱 실패→밸런스 긴급 부분 조정→밸런스 붕괴→조정→붕괴의 패턴으로 보낸 암흑과 같았던 2년...


그 사이 e스포츠 승부조작도 터지고 그들의 선배 격인 스타1 승부조작러들이 인터넷 방송에서 활개치고 다니면서, 곧 출시될 다음 확장팩인 '공허의 유산'이 묻혀 버릴 위기에 쳐해집니다.  

▶ 한 달만 있으면 출격하는데...왜 알려지질 못하니...ㅠ

진짜 DK의 활약이 무엇보다도 절실했던 상황이었어요.


   

온갖 외부 사건과 말도 안되는 게임내용에 질려 돌아서 버린 겜심을 다시 잡고, 유저들을 스타2로 복귀시키려면 제대로 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밸런스 작업이 꼭 필요했죠.


   

그렇게 2015년 11월, 공허의 유산이 발매됩니다.


   

그리고 딱 한 달 걸렸습니다.


   

남은 유저들 마저도 분노하고 슬퍼하며 스타2를 떠나가게 되기까지요.


   

클릭질 몇 번만 하면 발로도 승리하는 프로토스의 오버 파워에 다른 종족들은 뭐 힘 한 번 못 써보고 GG를 치는 막장이 계속되었고, 이 막장 밸런스는 근근히 명맥만 유지하던 스타2 리그에서조차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 오죽하면 안상원 선수가 상대에게 분광사도 빌드로 이긴 후 '밸런스 팀 좀 보라고 썼다. 5년 전부터 지금까지 피드백 너무 안 받는다' 며 공개적으로 비판할 정도...

유저들이 화를 내고 쌍욕을 하더라도 DK의 프로토스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공허의 유산 메인 종족이 프로토스라 그런지 게임으로 홍보할 생각이었나 봅니다.


    

유닛 한 기를 좀 너프시켜도 살만한 것을 두 달 넘게 질질 끌면서 얼마 남지 않은 게이머들의 인내심을 시험합니다. 

▶ 사도만 살짝 너프시키면 되는데 왜 그러질 못하니

그리고 가장 약체인 테란의 전략을 강화시키겠다고 또 뻘짓을 예고하더니 게이머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멋대로 적용시켜버립니다(...).


   

지난 5년 간 고통의 연속이었던 게이머들은 분노에 찬 비명을 지르며 DK를 압박해 뻘짓을 다시 원상복구 시키긴 했으나, DK의 커리어는 원상복구되지 못했죠.


   

그 후로도...올해 4월까지 밸런스가 완벽했던 점은 단언컨대 없습니다.


   

한국의 게이머들은 활발한 e스포츠 리그 개최로 인해 밸런스에 민감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게임하다 티타임되면 홍차 마시러 가는 서양 게이머들조차 DK OUT을 외치며 막장 밸런스를 비판합니다.

▶ 한국도 궁금해 하고
▶ 북미도 궁금해 한다

얼마 남지도 않은 스타2 게이머들은 계속되는 DK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 게임에 관심을 끊어버리고, 프로리그도 폐지되면서 약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스타크래프트의 브랜드 가치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게임 전체도 모자라 브랜드 가치까지 몽땅 무너트리긴 쉽지 않은데, DK는 그걸 해냈습니다.


   

WoW의 밸런스 붕괴를 촉진시켜 PvP생태계를 파괴하는 1등 공신으로서 유저들의 쌍욕을 먹고 사는 톰 칠튼(일명 칠득이)도 이런 업적을 세우진 못했습니다... 

▶ 시무룩

유저들의 의견만 잘 살펴봤어도 이제껏 먹은 욕의 절반 이상은 듣지 않았을 텐데...


   

DK 특유의 불통과 옹고집이 블리자드에겐 20년 가까이 지속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가치 하락을, DK에겐 그 동안 쌓아 온 커리어의 몰락을 가져 온 겁니다.


   

결국 DK는 2017년 4월 부로 스타2 수석 밸런스 디자이너의 자리를 내려 놓고, 스타2 작업을 중단합니다.


    

모두가 바라 마지 않는 퇴사는 아니지만,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할 예정이라 적어도 스타2에 간신히 매달린 호흡기까진 손대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 스타2에 묻은 DK를 털었다며 모두가 기뻐했다

뉴스가 뜨자마자 얼마 남지 않은 스타2 커뮤니티에선 그야말로 광복절이 재현됐습니다.


   

지난 5년 간 쉴새없이 돌아가며 고통받았던 만큼 DK의 스타2 업무 중단 소식은 만병 통치약이나 다름 없겠지요.


   

그리고 그 고통은 이제 슬슬 보답받고 있습니다. 새로 구성된 밸런스 팀은 DK가 그토록 사랑하던 프로토스를 업무 시작 단 1주일 만에 너프시켜줬거든요

▶ 체력을 80에서 70으로 줄여버렸다

발매부터 불안했는데 이젠 들숨날숨만 연명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스타크래프트2.


   

이젠 새로운 밸런스 팀과 돌아온 유저들과 함께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야생은 정말 멋질 거야!

어-썸하게 남의 말 안 듣는 망언의 대가

벤 브로드가 만든 하스스톤의 야생

4년 전, 하스스톤의 발표 당시만 해도 그 무한한 가능성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입문하기 어렵다는 카드게임인데다, 동호회 수준의 인원으로 부담없이 만든 소규모 게임이었기 때문이지요.


    

블리자드에서 얼마 남지 않았던 신뢰의 이름, 롭 팔도 부사장(지금은 퇴사)이 '단언컨대 기대해도 좋을 신작'이라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블록버스터같은 신규 게임을 꿈꿨건만, 내놓은 건 조그마한 카드게임이니... 

그 조그마한 게임이 이토록 잘 될 줄이야.


   

2014년 3월 정식 발매된 하스스톤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뛰어난 접근성과 잘 짜여진 전략, 게임의 곳곳에 녹아 있는 깨알같은 재미가 있었고, 무과금으로도 그럭저럭 게임을 즐길 수 있어 라이트 유저들에게 엄청나게 사랑받았습니다. 

그 영광을 만들어 낸 몇 명의 개발진 중, 이 이야기의 주인공 벤 브로드가 있습니다.


    

WoW의 디자인을 담당하면서 덕심으로 WoW 카드게임을 깨작깨작 만들던 게 발단, 하스스톤 개발이 결정되면서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 인물입니다.

▶ 2003년의 풋풋한 벤 브로드

2003년에 입사해 상대적으로 꼬맹이(!) 직급이었던 그는 하스스톤과 함께 무럭무럭 성장해 현재 메인 디렉터로 승진해 하스스톤팀의 팀장이 되었습니다.


    

이젠 정말 어-썸한 하스스톤의 지배자가 된 겁니다. 

▶ 야생의 팀장은 정말 멋질꺼야!

창의력이 넘치는 젊은이의 패기로부터 시작된 소규모 프로젝트가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둔 기적의 이야기라 포장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좀 다릅니다.


   

서비스된 3년 간 상당히 많은 사건이 일어나면서 성장을 조금 주춤하게 만들었거든요.


   

그 중에서도 2016년 초 벤 브로드가 속한 하스스톤 팀의 고집으로 게임 자체가 휘청일 뻔한 대형 사건이 있었습니다.  

야생은 정말 멋질 거야!
Wild is Awesome!

갑작스런 통보로 유저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가, 이유도 제대로 설명 안 해줘서 화나게 했다가, 약속과는 다르게 하나도 안 어-썸해서 유저들에게 실망만을 안겨 준 희대의 옹고집이었죠.


    

발단은 2016년 2월 3일 새벽 올라온 공지였어요. 

신규 확장팩인 '고대 신의 속삭임'의 예고와 게임 시스템 변경 등을 알려주는 내용으로 이전의 공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는데, 뭔가 걸리는 내용이 있던 거죠. 

▶ ??????

이게 뭔 소리인가 하면, 2년 전 하스스톤의 초반을 함께 했던 성능 좋은 카드들을 이젠 1부 리그인 정규전에서 쓰지 못하게 됐고, 고생해서 만든 카드들은 2부 리그라는 야생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요, 하스스톤은 완전 무료 게임이 아닙니다.


    

시간이 없다면 돈을 들이고, 돈이 없다면 시간을 들여야만 웬만큼 게임을 즐길 준비를 갖출 수 있습니다.


    

그 준비의 척도는 쓸만한 카드를 얼마나 많이 확보했냐는 겁니다. 

▶ 필수카드부터 차근차근 모아야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상대에 따라, 카드의 보유 상황에 따라 무궁무진한 전략이 가능하기에 최대한 카드를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이 승리를 위한 지름길이지요.


   

그렇기에 이제까지 게이머들은 필수라 불리는 키 카드와 이를 뒷받침해 주며 시너지를 이끌어 낼 카드들을 고생고생해서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시간을 들여 플레이하며 재료를 모으거나, 아니면 현금 주고 사거나... 

▶ 카드를 열심히 으깨서 가루를 왕창 모으던지
▶ 현질하고 카드 많이 뽑던지...

공지가 선고될 당시만 해도 키 카드나 효율좋은 카드의 대부분은 2년이 훌쩍 넘은 상태였습니다.


    

특히나 WoW에서 10년 넘게 존재했으나 흔한 퀘스트 몬스터 한 마리 정도만 취급받아 서러웠던 '박사 붐'은 하스스톤으로 넘어 오면서 키 카드 of 키 카드로 인생 쫙 폈고요. 

▶ 이랬던 우리 박사님이
▶ 이렇게 달라졌어요

지나가다 보이는 흔한 몬스터 한 마리였던 암흑기에서 벗어나 이제야 빛 좀 받아보나 했더니...1년 반도 안되어 야생으로 가게 생긴 겁니다.


   

박사 붐 하나 만들거나 뽑겠다고 수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한 사람들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야생전은 등급을 아무리 높게 찍어봤자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플레이하는 보람도 없고, e스포츠 리그 등 정규 대전은 무조건 정규전으로만 치르기 때문에 거의 찬밥 신세였습니다. 

▶ 박사 붐 너무 좋아서 온갖 굿즈도 만들어 조공했더니...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워낙 필수 카드, 오버 파워 카드가 판을 치며 대전이 고착화되던 상황이었는데, 이러한 카드들의 삭제와 새로운 카드 추가로 좀 더 다양한 전략 수립이 가능할 거라는 게 그 이유였죠.  

난 최신형 BMW를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돈 많이 주고 샀어.
   
근데 Fxxk,
   
시간이 좀 지나니 갑자기 약관과 다른 말을 하는 거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도로에선 이 차를 사용할 수 없고, 우리집 뒷마당에서만 레이스를 할 수 있대.
   
니들은 Fxcx, 지금 이 상황에서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낄 것 같냐 아니냐?
   
난 느끼고 있다...

그러나 하스스톤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 지난 2년 넘게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박탈감은 어떻게 보상될 수 없었습니다.


   

몇 백만원, 몇 백시간의 노력이 모두 야생으로 돌아가 거름으로 변해버린 마당에, 누가 의욕있게 게임을 하겠냐고 울부짖었죠.


   

신규유저들이 지레 겁 먹고 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도 매우 컸어요.


   

지금 카드를 만들어봤자 2년 뒤엔 못 쓴다는 안정성의 부재. 즉 2년마다 일정 수준의 현질이 강요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부담감이 있다는 거죠.


  

이에 유저들은 공지가 뜨자마자 벤 브로드의 SNS에 걱정과 실망에 가득 찬 메세지를 날리며 제대로 된 설명과 구체적인 보상 및 개선안을 이야기해 주길 바랐습니다.


   

그 때 벤 브로드가 말 한 게 바로 이거였죠.

야생은 정말 멋질 거야!!!!!!

지금이야 팀장이긴 하지만, 당시의 벤 브로드는 부팀장 정도의 위치였기에 상부의 지시 없이 함부로 게임 업데이트에 대한 내용을 말하긴 곤란했을 겁니다.


    

하스스톤 개발의 1등 공신으로, 카드게임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개발 초기부터 지금까지 하스스톤에 관련된 온갖 인터뷰와 브리핑, 강연을 진행해 오며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쌓은 게 오히려 독이 된 겁니다. 

▶ 하스스톤 행사때마다 얼굴을 비추길래 책임자인줄...

많은 유저가 공식적인 자리에 하도 많이 나오는 벤 브로드를 하스스톤 총 책임자로 알았기에 책임을 물었는데, 정작 벤 브로드는 권한 밖이라 알려줄 수 없는 상태였다는 거죠.
    

그렇게 오해는 쌓였고, 아무런 대답도 제대로 못하는 벤 브로드는 거하게 공격당했습니다. 모두가 '어-썸'을 외치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실은 진짜 책임자는 따로 있던) 벤 브로드를 비꼬았지요. 

▶ 야생 대책은 말 안하고 e스포츠 추구만 연신 얘기하는 걸 비꼰 수제 황금 카드!

사실 유저들도 아무 이유없이 다짜고짜 벤 브로드의 멱살을 잡은 게 아닙니다.


   

이전부터 유저들에게 항상 무관심했고, 말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하스스톤 유저들도 알게 모르게 울화통이 터진 적이 많았거든요.


   

대표적인 피해자가 사제를 주 직업으로 사용하던 유저들입니다.


  

사제는 회복과 정신 교란, 지배 등으로 변수를 만들어 상대방의 전략 수행에 혼란을 주는 게 특징인데요.


   

성공하면 그 어떤 클래스보다도 짜릿한 쾌감을 얻지만, 너무 수동적인데다 운도 엄청나게 따라줘야 해서 대부분 패배하는 비운의 캐릭터입니다. 

▶ 자꾸 카드 뺏어가고 훔쳐가니 대외 이미지는 굉장히 구리지만, 알고보면 승률 50%도 못 넘는 최약체다 ㅠㅠ

서비스 내내 9개의 전 직업 중 승률 최하위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지요.


    

그런데도 사제 유저들의 힘듦과 고통은 눈 감고 귀 막은 채 모른 체 하면서, "정신지배로 상대방이 기분 상하게 할 수 있다. 약한 게 아니다", "사제로도 전설 등급 찍는 플레이어들 많으니 약하지 않다."며 그들의 복창을 두세번쯤 터트렸습니다. 

거기다 정규전/야생전으로 나누게 된 계기 중 하나, 획일화된 대전 전략의 주범이었던 슈퍼오버파워 카드들의 너프를 계속 요구받고 있으면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해줄까 말까 수준이었습니다.


    

이처럼 남의 말은 안 듣고, 무시하다가 벌어진 문제들을 설득 한 번 없이 독단적으로 해결책을 내 놓고, 바꿔 줄 생각 없으니 알아서들 하라고 통보를 하는 불통의 모습에 일찌감치 많은 유저가 화가 난 상태였습니다. 

▶ 대답을 회피하고 주제에 벗어난 얘기만 반복해서 하는 벤 브로드를 찰지게 비꼰 글

솔직히 조금 어르고 차분하게 설명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야생의 어-썸함을 받아들였을 지도 모릅니다.


   

오랜 시간 굳어져 버린 메타도 새롭게 변화하고, 필수 카드 역시 자주 변화할 테니 굳이 몇 가지 카드만 노리고 게임하는 피로는 확 줄게 되니까요.


   

실제로 몇년 간 키 카드의 효율적인 활용을 연구하고 훈련했던 프로게이머들조차 야생전 도입과 카드 사용 금지 룰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습니다.


   

갑작스럽게 바꿔 아직 완전히 적응을 하지 못했을 뿐, 장기적으로 봤을 땐 게임 수명을 더 오래 가게 할 수 있는 긍정적인 패치라고요. 

▶ 레닷에서도 열띤 토론이 내내 이어졌고,

이런 말을 벤 브로드와 개발진이 해 줬음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고, 결국 하스스톤에 결제한 금액을 전액 환불받고 게임을 떠나는 걸 선택하는 유저들이 아주 많이 늘어 났습니다.


   

항상 벤 브로드의 무관심 속에서 눈물 흘리던 사제 유저들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직업 전용 키 카드가 거의 없어 공용 카드 만들어 써야 했던 사제 입장에서 자신의 사용 카드 중 60~70% 이상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건 게임하지 말란 소리나 다름 없었거든요.


   

유저의 반은 찬성, 반은 반대하며 혼돈과 파괴의 시간이 계속 되었지만, 벤 브로드와 개발진은 고집대로 그들의 계획을 밀어 붙였습니다.


   

정규전에서 사용이 금지된 45장의 카드는 야생으로 사라졌고, 달콤한 인생을 잠깐이나마 누렸던 박사 붐도 그 곳에 잠들었습니다. 

▶ 항상 해맑던 안녕로봇도 안녕....

그러나 호언장담했던 어-썸함은 아직까지도 크게 와닿지 않고 있습니다.


   

2016년 4월, 업데이트된 바로 직후에나 좀 혼란스럽고 변화가 크게 일어났지, 곧바로 정규전은 고요하고 침착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전략의 고착화가 이뤄지고 말았습니다.


   

야생전은 오픈 당시에는 오랜 시간 기다려야 간신히 매칭될 정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 정규전이 재미없어지자 야생전으로 뛰어 드는 사람이 늘면서 개발진의 뜻대로 되는가 싶었는데요.


    

아쉽게도 큰 효과는 없습니다. 더 많은 카드로 각종 예능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재미는 있지만, 정규전 등급표시에 밀려 야생전의 등급은 제대로 노출도 안 되어 진정으로 승부하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고등급일 경우 여전히 매칭이 잘 안되고 했던 사람과 또 붙게 되는 등, 야생전이 주 콘텐츠가 되는 일은 요원합니다.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의 판단으로 완성하고 유지하고 싶다는 열망,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능력이 뛰어나고 자존심과 성공욕구가 강한 개발자일수록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진 게임을 원하는 건 당연하죠.


   

그러나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작품 하나에 자신의 시간과 돈을 쏟으며 애정을 표하는 고객, 게이머가 존재한다는 걸 말입니다.


   

개발자의 가벼운 욕심에서 시작된 조그마한 변화라도, 게이머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게 할 수도 있고 눈가에 눈물이 맺히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게임을 사랑하는 만큼,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의견을 많이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좀 더 고객을 이해하고, 설득하려 노력하고, 더 많이 의견을 들어 주면서 게이머와 개발자 모두가 만족할 만한 예쁘고 멋진 게임을 가꿔나가는 업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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