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90년, 전략 게임이 풍성했던 한 시절

조회수 2017. 8. 17. 11: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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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성장기를 지나 1990년, 전략 게임은 전성기로
전략 게임의 성장

지난 기사에서 잠깐 설명했듯 1980년대는 전략 게임 장르의 여명기이자 성장기였다. SSI, 마이크로프로즈, 그리고 SSG(Strategic Studies Group)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회사들이 80년대를 풍미하며 전략 게임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역사적인 전투를 배경으로 한 전략 게임이 많았지만, 장르가 성장해 가면서 판타지와 공상과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배경의 전략 게임이 속속 등장했다.

▶ 코에이의 '징기스칸' 북미판 표지

한편, 일본에서는 코에이가 전략 게임 명가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었다. 코에이는 ‘노부나가의 야망’을 시작으로 1985년 ‘삼국지’, 1987년 ‘징기스칸’, 1989년 ‘노부나가의 야망2’ 등 전략 게임을 잇달아 내놓으며 호평을 받았다.


 

코에이의 행보 중 독특한 점이 있었다면, 이들은 일찌감치 자신들이 내놓는 전략 게임을 영어 버전으로 내놓으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한 예로 ‘징기스칸’ 북미판은 북미 게임 잡지인 컴퓨터 게이밍 월드로부터 ‘이보다 만족스럽고 풍성한 전략 게임이 없다’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80년대 말이 되면 이제 전략 게임은 단순히 보드게임을 컴퓨터 게임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장르를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 유행의 한 축을 이루던 말초적인 액션 게임이나 롤플레잉 게임 외에, 느긋하게 머리를 쓰는 ‘현대의 체스’를 원하는 게이머가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에 접어들자 말 그대로 폭발했다.

 

90년대 초, 전략 게임이 풍성했던 그 시절

1980년대 초중반 다양한 기종이 난립해 혼란스럽던 PC 시장은, 80년대 말에 접어들자 IBM 호환 PC로 ‘통일’되었다. 잡다한 기종에 일일이 맞춰 게임을 개발하던 시대는 갔다. 이 시기 수많은 게임 장르가 본격적으로 정립되었고, 그 사이에 전략 게임도 끼어 있었다.


 

특히, 전략 게임은 그 특성 상 콘솔 게임기의 패드 보다는 PC의 마우스와 키보드가 훨씬 유용했기 때문에 큰 수혜를 입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와도 될 정도이던 턴 전략 게임의 대기 시간도 PC 성능의 발전에 힘입어 점점 더 짧아져 갔고, 조악하던 유닛의 묘사도 그래픽 하드웨어의 발전과 함께 더 정교해졌다.

▶ 왕의 하사품

그렇게 80년대가 저물고 90년대가 밝았다. 1990년대 초반은 전략 게임 장르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기념비적인 전략 게임이 매 년 등장했다. 1990년에는 ‘왕의 하사품(King's bounty)’이 등장했다. 이 게임은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의 시조격으로 여겨지는 게임으로, 판타지 세계관과 전략 게임을 혼합한 방식의 게임이었다.

▶ 파이어 엠블렘 암흑룡과 빛의 검

‘왕의 하사품’과 같은 해, 일본에서는 닌텐도의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가 막을 올렸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파이어 엠블렘 암흑룡과 빛의 검’은 일본에서 본격적인 SRPG 시대를 연 게임으로 평가 받았다. 실시간 전투 방식이었던 ‘보코스카 워즈’(1983)와 달리 턴 전략 게임과 RPG를 혼합했으며, RPG의 스토리와 캐릭터성을 강조해 큰 인기를 끌었다.

▶ 시드마이어의 문명

1991년에는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략 게임이 등장했다. ‘시드마이어의 문명’(Sid Meier's Civilization)이다. 이 전략 게임 하나에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등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요소가 들어 있었다. 고대시대에서 시작해 험난한 발전을 겪어 마침내 우주로 향한 진출까지 장대한 여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문명’은 특별했다. 이후 ‘문명’ 시리즈는 지금까지 20년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의 게이머를 열광시켜 왔다.

 

실시간 전략 게임의 아버지 ‘듄2’

그리고 1992년, 전략 게임 아니 게임의 역사를 영원히 바꿔놓은 특별한 게임이 등장했다. 실시간 전략 게임의 아버지로 자리매김 한 ‘듄2(Dune2)’다. ‘듄2’는 황량한 모래 행성 ‘아라키스’의 지배권을 놓고 벌이는 아트레이드, 하코넨, 오르도스 세 세력의 암투를 다루고 있는 실시간 전략 게임이다.


 

본래 ‘주시자의 눈’ 같은 RPG를 만들던 웨스트우드는 우연한 기회에 프랭크 허버트의 SF소설 ‘듄’의 라이선스를 따 게임 제작에 들어갔다. ‘듄’은 어드벤처 게임으로 먼저 나왔으므로, 웨스트우드가 만드는 전략 게임의 제목은 자연스럽게 ‘듄2’가 되었다.


 

엄밀히 말해 실시간 전략이라 부를 수 있는 게임은 ‘듄2’가 최초는 아니다. 지난 기사에서 잠깐 언급한 ‘Stonkers(1984)’나 이후 등장한 ‘Herzog Zwei(1989)’등 전략 게임에 실시간 요소를 도입한 게임은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은 어디까지나 ‘별난 전략 게임’으로 취급 받았고,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듄2’는 등장과 함께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완전히 확립했다. 현재까지 내려져오고 있는 실시간 전략 게임의 기본 구도인 자원 수집, 건물 건설, 병력 생산 및 운용은 ‘듄2’에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는 아니지만 완전하게 한 장르를 성립했다는 점에 있어 ‘듄2’의 가치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전장의 안개, 건설에 따른 테크 트리, 진영에 따른 특성 부여, 유닛 상성 같은 RTS의 필수 요소도 ‘듄2’에서 시도되었다. 특히, ‘듄2’가 정립한 실시간 전략 게임의 구도는 게임 진행에 마우스와 키보드를 전제 조건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이후 실시간 전략 게임은 PC만의 특화된 장르로 자리잡게 된다.


 

‘듄2’, 나아가 실시간 전략 게임의 흥행 비결은 두뇌 게임인 전략 게임과, 액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소위 ‘컨트롤’(micromanagement)의 조합에 있었다. 실시간 전략 게임은 전략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전체적인 밑그림이 필요하다. 가령, 적이 A라는 유닛을 주력으로 쓴다면 나는 B라는 유닛으로 맞받아 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턴 전략 게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느긋하게 사색하며 즐길 수 있는 턴 전략 게임과 달리, 실시간 전략 게임은 게이머가 순간 순간의 판단으로 유닛을 운용하는 것도 게임의 승패를 좌우한다. 단지 두뇌만 있어서는 안되며, 순발력도 따라줘야 하는 것이다. 그 순발력이 게임에 긴장감을 더해주었고, 이전까지 전략 게임의 템포가 너무 느려 관심이 없던 게이머도 끌어들였다. ‘듄2’를 계기로 더 많은 게이머와 회사가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불안한 미래?

한편, 비슷한 시기 턴 전략 게임도 분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시드마이어의 문명’을 계기로 본격적인 4X 전략 게임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4X란 eXplore, eXpand, eXploit, eXterminate를 말하는 것으로 각각 탐험, 확장, 개척, 절멸을 의미한다. 즉, 게임의 구조가 거대한 맵을 탐험하고, 세력을 확장하며, 새로운 지대를 개척하고 적을 절멸시키는 것이 목적인 전략 게임을 말한다.

▶ 마스터 오브 오리온

4X라는 용어는 마이크로프로즈사의 ‘마스터 오브 오리온(Master of Orion, 1993)를 리뷰하며 ‘컴퓨터 게이밍 월드’가 이와 같은 게임 플레이를 요약해 4X 게임이라 정의한 것에서 기원한다. 물론 4X에 해당하는 게임 자체는 이전부터 있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위에서 설명했던 ‘시드마이어의 문명’ 시리즈다. 이후 4X 게임 방식은 ‘시드마이어의 문명’ 시리즈, SSG의 ‘워로드’ 시리즈, 그리고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 등으로 계승되며 또 다른 전략 게임의 줄기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렇게 좋았던 한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턴 전략 게임의 미래는 밝지만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친구인 실시간 전략 게임의 등장은 턴 전략 게임을 구식 게임의 자리로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무엇보다도 1990년대 중반, PC게임의 혼돈기가 찾아오려 하고 있었다.

▶ 물론 턴 전략의 인기가 완전히 식은 것은 아니었다. SSI의 팬저 제너럴(Panzer General, 1994)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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