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레인지 AMT 헤드폰이 전해준 음의 민낯 - HEDDphone AMT 헤드폰

조회수 2021. 1. 28. 18: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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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T 드라이버의 세계

AMT(Air Motion Transformer)는 독일의 오스카 하일(Oscar Heil) 박사가 1960년대 말에 발명, 1974년에 특허를 받은 스피커 유닛 작동원리다. 주름 모양으로 접힌 얇은 진동판에 음악신호를 보내 마치 아코디언처럼 펴졌다 오므려졌다 함으로써 공기를 밀어내거나 빨아들여 소리를 낸다. 물론 영구자석이 만들어낸 자기장 안에 전기신호가 흐르는 진동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로렌츠의 힘).

▲ AMT 드라이버 작동원리

어쨌든 AMT는 전기신호를 이렇게 공기의 움직임으로 바꾼다고 해서 ‘에어 모션 트랜스포머’다. 진동판은 통상 캡튼(Kapton) 폴리이미드 필름에 음악신호가 흐르는 도체(conductor)로서 얇은 알루미늄 박을 입힌다. 핵심은 1) 진동판이 접혀져 있어서, 2) 공기를 밀어내거나 빨아들이는 면적이 일반 콘형이나 돔형 진동판에 비해 훨씬 넓고, 3) 이 덕분에 음악의 디테일을 보다 정확하게 드러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헤드폰에 이 AMT 드라이버를 쓴 경우는 드물다. 저역의 에너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진동판이 어느 정도 두께가 있어야 하는데 캡톤 필름이 워낙 얇기 때문이다. AMT 드라이버가 지금까지 주로 스피커에서 트위터로만 쓰인 이유다. 예를 들어 필자가 쓰고 있는 스캔소닉의 MB1 스피커도 트위터는 AMT, 미드우퍼는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채택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지금까지 헤드폰은 포칼이나 젠하이저 등의 다이내믹 드라이버(Dynamic Driver), 미국 오디지가 히트시킨 평판형 드라이버(Planar Magnetic Driver), 전용 앰프가 필요한 정전형 드라이버(Electrostatic Driver), 주로 이어폰에 많이 쓰이는 밸런스드 아마추어 드라이버(Balanced Armature Driver)가 대세였다.


헤드오디오와 AMT 드라이버

▲ HEDDphone AMT 헤드폰

이번 시청기인 독일 헤드오디오(HEDD Audio)의 HEDDphone(헤드폰)은 이러한 AMT 유닛을 과감히 헤드폰 드라이버로 채택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들이 밝힌 헤드폰의 주파수응답특성이 10Hz~40kHz이기 때문에 광대역의 풀레인지 헤드폰인 것이 맞다. 따라서 비교적 낯선 브랜드인 헤드오디오는 둘 중 하나다. AMT 유닛에 일가견이 있거나, 이번 헤드폰에 특별한 기술을 투입했거나.

헤드오디오는 물리학자 클라우스 하인즈(Klaus Heinz)가 2015년에 설립했다. 사명 HEDD는 ‘Heinz Electro-Dynamic Designs’(하인즈 일렉트로 다이내믹 디자인)의 약자. 그런데 독일 오디오에 관심이 있는 애호가들은 클라우스 하인즈라는 이름이 낯이 익으실 것이다. 맞다. AMT 트위터로 유명한 아담오디오(ADAM Audio)의 공동 설립자 중 한 사람이 바로 클라우스 하인즈다.


슬슬 퍼즐 조각이 맞춰진다. 클라우스 하인즈는 1999년 동료 엔지니어 롤랜드 슈텐츠(Roland Stenz)와 함께 아담오디오를 설립했다. 사명 ADAM은 ‘Advanced Dynamic Audio Monitors‘(어드밴스드 다이내믹 )의 약자. 아담오디오는 무엇보다 클라우스 하인즈가 오스카 하일 박사의 AMT 유닛 작동원리에 기반해 개발한 ART(Accelerating Ribbon Technology) 유닛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그러다 클라우스 하인즈가 다시 독립해 그의 아들 프레데릭 크노프(Frederik Knop)와 함께 세운 회사가 바로 헤드오디오다.


따라서 헤드오디오는 AMT 유닛 제작이 핵심이다. 현재 라인업을 보면, 서브우퍼와 조합하는 메인 스피커 시스템(HEDD Tower Mains)과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 시리즈(MK2 Stuio Monitor), 그리고 헤드폰(HEDDphone)으로 구성됐는데, 이들 모두 AMT 유닛을 전가의 보도처럼 쓰고 있다. 또한 필자가 예전부터 인터넷에서 찾아본 결과, AMT 유닛 제작과정을 동영상으로 가장 잘 보여준 곳이 헤드오디오였다. 참조하시기 바란다.

클라우스 하인즈의 AMT 유닛 사랑은 대단해서 이미 1980년대에 오스카 하일 박사의 연구실이 있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 알토를 수차례 방문, 자문을 받았을 정도다. 물론 이는 전기신호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트랜스듀서(transducer)로서 AMT 유닛의 음향적 우수성이 그만큼 돋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축적된 클라우스 하인즈의 AMT 유닛 제작기술이 마침내 풀레인지까지 커버하게 됐으니 그것이 바로 이번 헤드폰(HEDDphone)이다.

 


HEDDphone 외관과 착용감, 스펙, 설계

▲ HEDDphone AMT 헤드폰의 포장과 본제품

필자의 사무실로 배달된 헤드폰(HEDDphone)은 무척 컸다. 필자가 쓰고 있는 오디지의 LCD-2 클래식 헤드폰도 제접 덩치가 나가는데, 헤드폰(HEDDphone)에 비하면 귀여워 보일 정도다. 무게는 718g. 머리에 써보면 역시나 중량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헤드밴드 안쪽과 이어패드에 폭신한 쿠션이 들어가 있고, 슬라이드 조절도 가능해 착용감은 괜찮은 편이다.


함께 배달된 순정 HPC1 케이블은 한쪽에 헤드오디오 특주 6.3mm 언밸런스 잭이 달렸고, 다른쪽 2곳에 뉴트릭(Nuetrik)의 REAN 미니 XLR 커넥터가 달렸다. 헤드오디오에 따르면 도체 저항 자체가 낮고 쉴딩 역시 꼼꼼히 이뤄져 음악신호를 손실없이 AMT 드라이버에 전해준다.

 

▲ HEDDphone AMT 헤드폰으로 모니터링 하는 모습

헤드폰(HEDDphone)은 기본적으로 AMT 풀레인지 드라이버를 채택한 오픈형 오버이어 헤드폰. 실제로 음악을 재생해보면 4,5m 떨어진 곳에서도 헤드폰 바깥으로 음악이 들린다. 제작사에서도 양질의 헤드폰앰프 매칭을 추천하고 있는 만큼, 이 헤드폰은 역시 실내 전용으로 봐야 한다. 공칭 임피던스는 42옴, 감도는 87dB, 주파수응답특성은 10Hz~40kHz.


고역 특성이 좋은 AMT 드라이버답게 고역이 40kHz까지 플랫하게 뻗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솔깃한 것은 역시 10Hz라는 초저역대까지 떨어지는 저역 하한인데, 이를 가능케 한 헤드오디오의 독자기술이 바로 VVT(Variable Velocity Transform) 기술이다. 제작사에서 구체적인 언급은 안하고 있지만, 캡톤 진동판의 접힌 주름의 두께를 달리해(variable) 저역 주파수 재생능력을 키운 것으로 짐작된다.


시청

▲ HEDDphone AMT 헤드폰으로 시청하였다.

시청에는 최대 6W, 500mA까지 출력해주는 마이텍의 Manhattan II DAC을 헤드폰 앰프로 동원했다. 음원은 주로 룬(Roon)으로 코부즈(Qobuz)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먼저 헤드폰의 음 특성 파악과 적정 볼륨 확보를 위해 필자의 귀에 익숙한 오디지 LCD-2 클래식과 번갈아 가며 들어봤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필을 지휘한 모차르트 레퀴엠 중 ‘Dies Irae’와 ‘Tuba Mirum’을 잇따라 들어보면, 확실히 오디지 평판 헤드폰에 비해 볼륨을 20% 이상 많이 먹는다. 재생음의 첫인상은 소릿결이 비단처럼 매끄럽다는 것. 음의 에너지감은 오디지가 나았고, 해상력이나 SN비, 이미지의 선명함은 헤드오디오의 헤드폰이 좋았다.

Dave Brubeck Quartet ‘Take Five’(Time Out)

역시 음상의 색번짐이 거의 없는 헤드폰이다. 그러면서 헤드스테이지의 입체감이라든가, 알토 색소폰에서 터져나오는 뜨거운 연주자의 입김 등이 잘 느껴진다. 특히 알토 색소폰의 고음은 거의 죽음 수준. 피아노와 드럼의 반주음도 곳곳에서 생생히 들린다. 특히 왼쪽 귓가에 자리잡은 드럼과 필자 사이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진동판의 존재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처럼 시야가 깨끗하고 투명한 점이 AMT 드라이버를 풀레인지로 쓴 이번 헤드폰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보인다. 우려했던 저역의 부족이나 아쉬움은 크지 않은 상황. 그보다는 탁 트인 개방감이나 일관된 음색, 세세한 디테일이 헤드폰이라기보다는 거치형 스피커로 듣는 것 같다는 인상이 더 세다. 어법 자체가 일반 헤드폰과는 다르다.


Norah Jones ‘Those Sweet Words’(Feels Like Home)

첫 음이 나오는 순간, 정신이 번쩍 났다. 노라 존스의 이미지가 마치 젖은 휴지를 똘똘 뭉쳐 벽에 세게 던진 것처럼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가상의 헤드스테이지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녀의 입김이 필자의 정수리에서 불어오는 것 같다. 이같은 초근접 샷을 찍는 듯한 쾌감이 대단하다. 이밖에 재생음이 건조하거나 메마르지 않은 것도 특징. 퍼커션의 탄력적인 연주는 진동판이 아니라 실제 악기가 내는 소리 같다. 보컬과 코러스의 분리도 역시 높았는데, 이는 AMT 드라이버 진동판이 내준 음이 귀에 와닿는 면적이 넓기 때문이다. 이어 합창곡 ‘O Holy Night’를 들어보면, 녹음 공간의 앰비언스가 잘 느껴진다. 이 헤드폰은 고음이 잘 뻗는다, 이런 수준이 아니다. 정보량이 엄청나게 많아서 배음, 음색, 앰비언스 등을 모조리 들려주는 그런 헤드폰으로 봐야 한다. 풀레인지 AMT 드라이버의 위력이다.

Sting ‘Shape Of My Heart’(Ten Summoner’s Tales)

요즘 오디오 테스트곡으로 자주 듣는 곡이지만 헤드폰 리뷰용으로는 처음 들었다. 확실히 헤드폰으로 들으니, 곡 자체가 새롭게 변주돼 다가온다. 무엇보다 음 하나하나가 그 표면이 뜨겁게 느껴지는 점이 압권. 역시나 헤드오디오의 헤드폰은 축축하거나 눅눅하거나 아니면 축 늘어진 음과는 거리가 멀다. 빠르고 정확한 음이 계속된다.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는 드럼의 박력과 타격감이 기대 이상이었고, 보컬은 필자의 바로 옆에서 들숨과 날숨을 모조리 들려줬다. 음이 야위거나 약하지 않은 점이 의외라면 의외고, 손장단과 드럼 연주의 원근감은 이 정도인가 싶을 만큼 대단하다. 마이클 잭슨의 ‘Jam’은 예상 외로 무대의 뒷공간이 활짝 열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좀 더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음은 끝내 나와주지 않았다.

Mario Joan Pires, Augustin Dumay, Jian Wang ‘Piano Trio No.1’(Brahms Piano Trios Nos 1&2)

결과적으로 헤드오디오의 헤드폰으로 들은 최고의 곡이었다. 칠흑처럼 조용한 배경, 첼로 현의 섬세한 터치와 떨림, 첼로보다 훨씬 왼쪽에서 등장한 바이올린의 모습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 특히 피아노 왼손 반주음에서 녹음 공간(뮌헨대 강당)의 공간감이 느껴져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피아노의 저역이 강당 마룻바닥을 타고 동심원으로 퍼져나간다는 인상까지 받았다. 하여간 헤드오디오의 헤드폰은 이같은 마이크로 다이내믹이나 여린 음들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장기인 것 같다. 아까 들은 마이클 잭슨의 ‘Jam’을 더 잘 들려줄 헤드폰은 이 세상에 많지만, 이 브람스 곡을 헤드오디오의 헤드폰처럼 들려줄 제품은 흔치 않을 듯 싶다. 명연주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역시 재생기기 역시 명품이어야 한다.


총평

▲ HEDDphone AMT 헤드폰

간만에 헤드폰을 며칠 끼고 살았다. 초근접 거리에서 음이 출발하는 모습과 귀에 닿는 촉감을 즐기는 이 재미는 헤드파이만의 특권이다. 헤드폰은 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재생되는 오디오 기기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SN비가 중요한데, 헤드오디오의 헤드폰(HEDDphone)은 이런 점에서 첫 출발이 좋았다. 이어 두드러진 것은 AMT 유닛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과 풍성한 음수, 깊숙한 공간감. 매크로 다이내믹스나 해일같은 에너지감은 몇몇 곡에서 아쉽기도 했지만, 이는 저역에 특화되다시피한 필자의 오디지 헤드폰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수준이다. 풀레인지 AMT 헤드폰의 탄생을 뜨겁게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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