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의 쓰기

조회수 2020. 8. 21. 10: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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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노트 pt.2

오디오평론가의 쓰기는 매우 당연하게도 듣기에서 시작된 특정 제품의 리뷰를 완성시키는 일이다. 좁은 의미의 ‘리뷰’ 작업이라 할 수 있으며, 소요시간으로나 작업량으로도 전체 작업의 60-70%에 해당하는 일이다. 평론가의 진면모는 바로 이 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듣기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지만, 쓰기를 전제로 한 사전 채취활동의 구간이다. 쓰기는 제작활동 그 자체이고 듣기는 제작에 필요한 주성분으로서의 원재료가 된다. 여기에 더해 귀로 들은 그 제품에 대한 여러 정보내용을 수집하고 적절히 배합해서 써야한다.


쓰기는 듣기와 여러 면에서 많이 다른 활동이다. 어쩌다 듣기와 전후로 이어져 있는 일이 오디오평론이지만, 둘은 사실 거의 정반대편에 있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몇 가지만 얼핏 살펴봐도 바로 파악된다. 듣기는 여럿이 함께 할 수도 있으나 쓰기는 전적으로 혼자 해야 하는 일이다. 듣기는 고정된 소리를 감각하는 일이지만, 쓰기는 정해진 게 하나도 없이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 듣기는 내가 원치 않아도 들려오는 수동적 메커니즘의 흐름이지만, 쓰기는 스스로의 의지가 없으면 결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가다가 한 번 멈추면 언제 다시 움직일 지 보장이 없다. 그래서 듣는 시간은 거의 정해져 있으나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예측할 수가 없다. 필 받으면 한 시간에도 일사천리 달리기도 하고, 한 번 쓰기 시작한 글이 쓰다 말다 지지부진하면 일주일이 넘게 이어질 수도 있다.


다만, 듣기와 쓰기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둘 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집중력을 매개로 해서 듣기부터 쓰기까지 이어진다면 이상적이다. 마치 인코딩한 것을 디코딩하듯 평론가는 귀로 들었던 작업을 역으로 재생시켜 최초의 소리에 접근할 수 있다. 들었던 내용이 인상적이지 않다거나 해서 집중력을 자극하지 못했다면 글로 쓰는 작업도 힘들어진다. 간혹 읽는 사람이 느끼기에도 뭔가 소설같은, 핵심없이 겉도는 시청기가 있는데 집중해서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글을 쓰는 일은 꽤나 보편적인 활동이다. 방대한 부문에 걸친 오랜 인류의 흔적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오디오 평론이라는 건 그 중의 아주 작은 영역에 해당할 것이다. 다만, 오디오 평론이 다소 독특한 점이라면 보고 만지고 맛을 본 내용에 대한 게 아닌 귀로 들은 소리에 대해 글을 쓴다는 데 있다. 사실 귀로 듣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들은 것으로 무언가를 해야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쓰고 싶다고 해서 써지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써야해서 적어놓은 것이 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할까? 어떤 게 바른 시청기이나 오디오평론일까? 기본적으로 오디오평론가의 쓰기는 자신이 들었던 제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오디오 뿐만 아니라 그 글을 읽고 대상을 판단하게 될 대부분의 제품리뷰가 그렇다. 그래서 평론가는 자신이 돈을 주고 산 자신의 물건처럼 진지하게 대하고 평가하면 일단 진정성있는 글의 카테고리에 들어설 수 있다. 그게 지나치게 개인적이어서 맞고 틀리고를 따지기 이전에 그런 진정성을 갖추었다는 데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며 보편적인 시각으로 조명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내게는 그렇게 들리고 보였는데 나와 다른 취향으로 보았을 때는 저렇게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누구에게는 잘 맞고 누구는 싫어할 수 있겠다’는 종합적인 판단까지 갈래를 타주면 좀더 완성도높은 제품평가가 된다.


한편, 리뷰 혹은 시청기에도 용도와 성향에 따라 여러 형태가 있다. 그런 글들을 일괄해서 ‘리뷰’라고 부르곤 하는데 어떻게 다른 지 살펴보자.


■ 공학적 리뷰

과학적 접근을 통해 일반화시킬 수 있는 측정이나 실험을 해서 제품을 기계적 물리적으로 분석하고 자료로 만들어낸다. 다양한 표와 그래프가 등장해서 실험을 통한 귀납적 정의로 대상을 해석하곤 한다. 예를 들어, 인간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할 때, 수분이 얼마 뼈가 얼마 근육이 얼마 이런 식으로 물리적 함량을 측정하고 계수화시키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의 맹점은 데이터화될 수 없는 영역 - 심리적 대응이나 뇌의 반응, 감성적 변화 등 측정이 불가능한 - 에 대해서는 설명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 감성적 리뷰

공학적 접근과는 상반된 형태로서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대로의 대상을 마치 일기를 쓰듯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수필 형식으로 자유롭게 쓴다. 공학적 접근이 해석하지 못하는 정신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객관적 근거를 갖추기 어렵고 주관적 감성의 흐름에 따라 대상을 해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일한 관찰자의 접근이라 해도 대상에 접근할 때마다 각기 다른 결과치가 나올 수도 있어서 일관성을 갖춘 자료가 되기 어렵다. 다만, 보편적인 그룹에게는 공학적 방식보다 쉽게 이해되고 공감대의 폭이 훨씬 넓을 수 있다. 블로그나 기타 소셜 네트워킹에 쓰여지는 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 저널적 리뷰

리포트적인 관점에서 작성한 리뷰를 말한다. 감정을 이입하지 않은 채로 특정 기기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어조로 서술하는 본원적 리포트라고 할 수 있다. 기승전결의 굴곡보다는 6하원칙이나 상황적 근거 등을 기반으로 글이 흐르다 보니 제품에 대한 정보전달은 상당히 명쾌하고 분명한 편이다. 하지만 음악을 매개로 하는 오디오 제품의 특성상 감성적 영역에 대해 설명하려면 특유의 건조한 프레임을 풀지않고서는 기술의 한계가 있다. 제품 전체를 설명할 수 없는 공학적 리뷰와 더불어 대표적인 정보전달 리뷰이다.

■ 문학적 리뷰

문학이라는 표현은 다소 과할 수 있지만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프리스타일로 쓰는 감성적 접근보다는 정식으로 체계를 갖춰 완성도 높은 글을 시도한다. 얼마만큼 달성이 되는 지는 또 다른 얘기이지만 말이다. 내용의 품질이 얼만큼이냐에 따라 빛이 나기도 하고 주객이 바뀌어 맥이 없기도 하지만, 글에 멋을 부리기도 하고 현학적이거나 작위적인 표현을 끌어오는 등의 윤색을 하기도 한다. 저널적 접근이 서사적이고 감성적 접근이 서정적이라고 한다면 문학적 접근은 그 둘을 큰 프레임안에 혼합하고 구성을 해서 진행한다. 오디오평론의 분량이나 내용을 두고 이렇게 거창한 접근을 하는 경우를 두고 종종 문학적 리뷰라는 빈축을 사기도 한다.


상기와 같은 다양한 리뷰 형태가 존재해서 그 중 하나만으로 일관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상기한 여러 스타일들이 혼합되어 리뷰로 완성되는데 어떤 요소가 얼마나 배합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로 나타난다. 평론가, 필자에 따라서 그 중에 어느 성향이 중심이 되는, 더 많이 배합된 글을 쓰느냐에 따라 버라이어티한 리뷰가 나타난다. 관건은 쓰는 사람의 입장이냐, 읽는 사람의 입장이냐에 달려있다. 어떤 경우에도 읽는 사람이 그 제품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감정이입이 될 만큼 선명하게 전달하느냐에 쓰기의 기술이 달려있다.


오디오 평론가의 쓰기

평론가의 쓰기는 듣기의 결과물만을 들고 바로 착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귀에 들렸던 내용을 마치 메타데이터처럼 자료화하고 여타 감각기관에 공유해서 정돈을 해야하며 여기에 그 제품에 대한 정보를 혼합해야 한다. 그래서 각 데이터마다 해당 정보가 커플링이 되어 내용으로 흐르도록 연결시켜야 한다. 그 과정을 어떤 식으로 써나가는 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자료를 읽는다

시청한 제품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다. 평론가는 제품을 시청할 때 처음 대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제조사나 유통사가 공식적으로 배포한 제품정보를 가능하면 시청하기 전에 확인해서 제품의 실물을 살펴볼 때 참조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 작업은 제품의 설명에 도움이 되는 좀더 다양한 얘기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공식 배포자료 이외에 온라인 검색을 통해 해외 저널에서의 평가를 찾아보면 유용하다. 다만, 평론가가 경계해야 할 점은 이런 해외저널의 얘기를 참조 수준에서 자신의 글 속에 소화를 시켜야지 어느새 그 저널을 마치 자신의 시청기처럼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면 평론가로서의 생명력은 미약해진다.

■ 퍼즐을 맞춘다

오디오 제품에 관한 글을 쓰면서 이 작업은 종종 간과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자신이 들은 내용과 수집한 제품자료를 나열해서 서로 조합을 맞춰보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같은 브랜드의 과거의 제품, 혹은 유사한 타사의 제품 등의 레퍼런스들이 나타날 것이다. 없는 걸 굳이 끄집어 낼 필요는 없지만, 퍼즐을 맞추다보면 대략 80-90%의 제품은 그런 입체적인 히스토리와 스토리들이 튀어나올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필자가 오디오 경험이 많지 않은 경우이다. 열심히 섭렵해야 할 것이다.

■ 들은 것을 쓴다

어떤 경우에도 특정 필자의 리뷰에서 핵심이 되는 건 자신의 귀로 들은 내용이다. 그것만이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신이 들었던 그 상황속으로 최대한 다시 들어가서 글을 쓸 수록 좋다. 필요하면 다시 시청을 해서라도 그렇게 해야한다. 제품의 자료와 시청 때 느낀 포인트들을 떠올려가며 사전 퍼즐을 조합해본 이후라면 좀더 큰 반경으로 자신이 들었던 내용을 써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자신이 그 제품의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어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 한 번의 스트록으로 쓴다

내용이 충실하다고 해서 글이 일사천리 달리는 것은 아니다. 특정 제품에 대한 글은 쓰기 시작한 이래 종종 멈추어 선다. 하지만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띠엄띠엄 쓰다보면 내용이 일관되게 흐르지 않고 산만해진다. 마치 하나의 큰 천으로 덮는 게 아니라 여러 조각을 붙인 누더기처럼, 쓴 사람도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건지 파악이 안될 만큼 흐트러진다. 이런 상황이 되었다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한다. 시상에 떠올랐을 때, 영감을 받았을 때 바로 써야한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시청한 시점부터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는 게 좋다.

■ 구매자를 떠올리며 쓴다

들었던 내용을 최대한 이끌어내서 창의적으로 쓰되, 상상력이 개입한다거나 하지 않게 경계해야 한다. 리뷰가 한웅큼의 상상을 허용하면 읽는 사람은 눈사람만한 크기로 생각을 키워낼 수 있다. 종종 오디오 기기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하나 멋지게 듣고싶은 소망을 담은 대상이다. 그 소망들이 어떤 식으로든 염두에 두는 것이 그 제품의 시청기, 사용기, 그리고 리뷰이다. 그 제품을 몽매에도 구하려고 하는 구매자를 떠올리며 글을 쓰면 좀더 진정성있는 리뷰가 될 것이다.


글쓰기 친구들

평론가도 사람인지라 몸이 괴롭고 마음이 불편하면 글이 손에 잘 안잡힌다. 여기에 태생적으로 인간이라서 오는 게으름이 더해져서 초읽기에 들어가야만 비로소 글이 써지는 경우가 많다. 글을 완성해야 하는 시기가 임박하면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짓도 많이 한다. 학창시절 시험때가 되면 맨벽만 봐도 재미가 있다했던가? 괜히 손톱을 정성스레 깎는다거나 잘 먹지도 않던 게 먹고싶어진다거나 보는 것 듣는 것 새삼 하고싶어지는 게 몰려온다. 임시적으로 상실된 자유에 대한 획득 의지? 참으로 괴이한 잠재본성이다. 마감을 두고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음악만 듣고 느끼는 것으로 감동을 종료하면 되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 부류일까 싶으면서 말이다.


글쓰는 과정이 그러하다는 이 글을 쓰면서도 필자는 글이 잘 써지면 잘 써지는 대로, 안써지면 안써지는 대로, 얼마나 자주 자리에서 일어나서 서성이며 시간을 보냈는 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마침 글쓰기를 시작하던 무렵에 담배를 끊었으니 망정이지 한참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다면 담배를 평생 끊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고충은 마치 배설을 오랜 동안 못하는 괴로움처럼, 어떤 경우에는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짧은 글을 쓰는데 뭘 그리 힘을 들일까? 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머리와 가슴, 손을 자연스럽게 동작시켜 글을 쓰게 하는 윤활유와 같은 메이트들이 필요하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어떤 것들이 있는 지 살펴보자.

■ 만년필 & 키보드

최근에는 대부분의 글을 컴퓨터로 쓰고 있지만, 여전히 손으로 원고지에 글씨를 쓰는 필자들이 있다. 다른 경우이지만 소설가 김 훈 선생님은 여전히 연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고 지우개로 지워서 교정을 한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오랜 동안 카페 주방 옆 테이블에서 하루 평균 A4 용지 다섯 장 분량의 원고를 만년필로 써왔다. 오디오 관련 월간지들은 원고료라는 표현을 쓰고, 원고지 한장을 기준으로 원고료를 책정한다. 결국 컴퓨터로 옮기기도 하지만 손으로 글씨를 써야 글이 나오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경우는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필기도구가 매우 중요하다. 너무 매끄럽거나 투박해서도 안되고 딱 적정한 글라이딩과 손에 맞는 그립의 필기도구는 없던 생각도 떠오르게 할 것이다. 똑같은 상황으로 대입시켜보면 키감이 좋은 키보드와 노트북 컴퓨터의 경우 또한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키보드의 터치감이나 소리가 영감을 주기도 하며 모니터에 떠있는 글자 디자인과 문장의 배열이 영향을 주기도 한다.

■ 커피

음악을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글을 쓸 때에도 커피는 머리엔 좋은 영감을, 마음엔 평안과 약동하는 감성을 선사한다. 커피의 향과 맛, 온기 등이 몸 속에 전도되는 동안 머리 속엔 이미 여러 말들이 팝콘처럼 튀어오르고 있을 것이다. 은은한 색감과 그립감이 좋은 커피잔은 그 감성을 고조시켜준다. 커피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으나 커피애호가 필자에게는 마치 무슨 영양제처럼 커피가 주입되어 순환하는 동안 글이 써지며 그게 서서히 식어가고 양이 줄어들면 다시 채워줘야 한다.

■ 책상

듣기에는 의자가 큰 활약을 한다면 쓰기에는 좋은 책상이 공신이다. 쓸 때는 의자보다 책상이다. 공간을 절반도 쓰지 않더라도 책상은 여유로운 곳이어야 한다. 가능한 넓고 흔들림이 없는 글쓰기 전용 책상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한 때 필자가 아껴쓰는 책상이 이사를 하면서 사라진 경우가 있었는데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보다 더 비싼 책상에 앉아도 글이 잘 나오지 않았으며, 광화문에 있는 스타벅스의 여럿이 앉는 넓은 테이블에 앉으니 비로소 다시 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잘 쓰건 못 쓰건 글을 움직이는 드라이버로서 책상의 의미는 이렇게 미묘하게 작용한다.

■ 신발

신발?이 왜 쓰기에 필요한걸까. ‘모든 생각은 발끝에서 나온다’는 니체의 말이 힌트가 된다. 글쓰기는 공부와 달라서, 하루 종일 앉아서 의자와 씨름을 하는 게 글쓰기의 관건은 아니다. 필자 각자의 해결방식이 다르겠지만, 생각과 감성이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벽에 막혀있다고 느껴지면 주저없이 일어나서 걷는 게 좋다. 단지 발을 땅에 딛고 걷는 것만으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던 생각이 정돈되고 새로운 생각들이 내려앉곤 한다. 직업작가가 더 크고 긴 슬럼프에 빠져있는 경우라면 그만큼 더 크게 움직이면 된다. 작가는 아니지만 퓨전 기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손꼽히는 알 디 메올라가 공연차 내한했을 때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곡이 잘 안써지거나 연주가 늘지 않으면 곧바로 여행을 떠난다고.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 못했다.


평론가 되어보기

‘듣기’편에서 언급한 내용을 환기시켜보자면 이런 장황한 ‘쓰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누구나 나도 한 번 써보라는 것이다. 내 오디오로 시청을 할 때도 내가 들은 내용을 A4 한 장에 쓸 것을 전제로 듣기 시작하며 듣고 나서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가며 써본다. 어느새 듣는 방식과 들려오는 소리가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글을 쓰지는 않더라도 가장 큰 효과는 최소한 내가 내 오디오를 고르는 혜안이 생겨나 있을 거라는 점이다. 그리고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내 속에 숨겨진 베스트셀러 작가가 튀어나올 지도.


이런 시청사이클이 습관이 되는 어느 날 스스로 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것이다. ‘오디오 평론? 개나 주라고 해. 나도 이제 그 정도는 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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