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의 듣기

조회수 2020. 8. 4. 10: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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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노트 pt.1

평론가가 듣는 것

평론가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건지 옆에 앉아서 구경을 해보면 오디오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물어보면 의외로 자잘한 오해가 많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일반적인 사례들이고, 그건 아마 개인포스팅과 웹진 등 정돈되지 않은 다양한 컨텐츠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소위 평론가라는 사람의 듣는 방법과 쓰는 방법에 대해 하나의 포맷으로 예를 들어보는 필요를 느낀다.


듣기와 쓰기, 오디오 평론가는 듣고 그리고 쓴다. 나중에 글로 옮길 것을 염두에 두고 들으며, 얼마 전 들었던 내용을 소환하고 스토리를 구상해서 써나간다. 그 이벤트의 시작이 되는 듣기는 다분히 오디오파일적인 원초적 접근이다. 나중에 글로 옮겨야 할 것을 염두에 두는 습관이 붙어다니지만, 평론가 또한 음악을 틀어놓고 새로 나온 그 오디오를 그냥 듣는다.

종종 평론가에게는 몇 가지 편견이 따라다닌다. 뭔가 귀가 특별해서 일반인들이 듣지 못하는 게 들리는, 혹자들이 말하듯 황금귀를 가진 것인지. 귀는 일반인과 별다를 게 없는데 말과 글로 소비자를 현혹시켜서 판매자를 대행하는 호객꾼인지. 혹은 둘 다인지. 어느 쪽이든 간에 일반적인 사실에서 조금 비껴난, 멀리서 띠엄띠엄 보다보니 굴절된 모습들이다. 뭐든 획일화가 문제이다. 소비자도 소비자 나름이고, 평론가도 평론가 나름이다.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잘해서 서로에게 바람직한 상황으로 이끌어가지만, ‘사고는 두 대의 자동차가 일으킨다’ 라는 < 위대한 개츠비 >의 문구처럼 항상 문제가 생기는 건 편견 대 편견이 맞닥뜨리는 순간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뛰어난 청력을 가진 평론가들이 있다. 하지만 황금귀는 애호가들 중에도 많으니 그게 평론가의 필수조건은 아니고 평론가 본연의 듣기는 귀에 음악이 들린 다음부터이다. 일반적으로 평론가는 조건반사처럼 뇌를 작동시켜서 ‘지금 듣고 있는 소리는 무엇이다’ 라는 정의를 하나씩 내려서 정리해 나간다. 마치 카메라에 막 촬영된 사진의 메타데이터가 생성되듯, 귀에 들리는 동안 그게 파악이 안된다면 둘 중 하나이다. 그 제품에 문제가 있거나 평론가가 다른 생각을 하느라 집중을 못하고 있거나.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그렇다면 평론가는 오디오에서 무엇을 듣는걸까? 앞서 카메라에 비유했듯이 평론가는 귀에 들려서 입력된 정보를 지표별로 정돈하면서 듣는다. 제대로 된 시청이라면 이 범위는 꽤 넓다. 음악을 재생하는 각 특성은 물론이고 음악이 감동을 주느냐의 여부, 어떻게 감동적이냐에까지 평가가 미치곤 한다. 그래서 같은 곡을 여러 번, 서로 다른 구간을 시청하기도 하며 다른 환경에서 테스트해보기도 한다. 무엇을 어떻게 듣고 있는 지 하나씩 살펴보자.

■ 음악으로 듣기

오디오평론가는 일반적인 음악을 소재로 해서 시청을 한다. 이 점은 음파신호로 계측을 하는 공학적 접근과 다르다. 또한 음악 자체를 듣는 게 아니라 사운드특성을 지표로 해서 듣는다. 이 방식은 음악평론가의 접근과 다른 점이다. 오디오 기기와 관련된 글에서 음악이 어떻게 들리는 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건 읽는 사람 대다수가 알고있는 음악일 때이다. 그래서 필자의 시청곡 중에는 20년이 넘게 반복해서 등장하는 테스트 곡이 섞여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한다해도 독자의 범위가 워낙 넓고 다양해서 애국가의 표준 녹음이 아니고서는 대동소이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시청곡의 링크를 공유하는 방식이 꽤 유효하다. 특히 유튜브는 특정 음원서비스에의 가입여부와 무관하게 시청기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채널이 되곤 한다. 평론가가 들었던 것과 같은 품질에 접근하는 그 다음 단계는 독자가 선택하면 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다양한 테스트곡을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 오래 듣기

한 테마 전체를 들어야 하는 곡들이 있다. 약음에서부터 가장 큰 소리까지 다이나믹 레인지가 넓은 곡이나 낮은 음부터 높은 음까지 넓은 대역에 걸쳐 있는 곡들의 경우 그 부분을 연속해서 다 시청해야만 그 제품의 다이나믹 특성을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바칼로프의 ‘미사탱고’ 첫 곡 Kyrie의 코러스는 마치 멀리서 서서히 일어나는 미세한 모래바람처럼 약음에서 시작해서 눈앞에 우뚝 다가와 솟아오르는 트랜지언트에 이르기까지 촘촘한 그라데이션으로 표현되는 다이나믹 에너지변화의 추이를 관찰해야 한다. 생상의 교향곡 3번 ‘오르간’의 경우는 1악장 b의 낮은 대역에서 시작해서 절반 정도를 듣고 나서 2악장 b의 파워풀한 풀오케스트라 합주로 이어서 시청을 하면 대역과 다이나믹스를 모두 파악하기에 좋다.

■ 짧게 듣기

특정 구간만을 짧게 시청해도 충분한 경우가 있다. 반복되는 비트의 폭을 파악하기 위한 불과 몇 초를 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전후를 비교한다 해도 30초를 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부분만을 시청해야 하는 요령이 필요해서 이것저것 들려오는 대로 듣기 시작하면 요점이 흐려져서 음악감상이 된다. 예를 들어 캐나다 출신 래퍼 드레이크의 ‘One Dance’의 경우는 보컬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처음 10초만 필요하다. 보컬이 등장한 후에는 어떻게 변하는 지까지 관찰한다 해도 15초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 면에서 트리포노프가 연주하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환상곡’ 8번 변주 같은 곡이 피아노의 다이나믹 테스트에 적당하다. 전체 연주가 30초 남짓 밖에 안되고 테스트에는 처음 10초만 들으면 충분하다.

■ 깊이 듣기
Massive Attack - Unfinished Sympathy
곡의 해상도와 분해력을 평가하거나 복합된 음색을 파악하기 위한 곡들은 곡의 구성도 복잡하거나 미묘한 변화를 여러 번 거듭해서 여러 지표와 추이를 비교해가면서 시청해야 한다. 한 가지 지표를 판단하기 위한 오래 듣기와 다르다. 안드리스 넬슨스가 보스턴 심포니를 지휘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3악장 라르고는 현악 합주로만 일관하는 얼핏 단순한 곡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이 연주와 녹음 특유의 음영과 대비가 제대로 표현되고 있는 지 느끼려면 뇌와 심장에 시간이 좀 필요하다. 최소한 첫 주제부 연주가 한 번 다 지나가서 잠시 숨을 돌릴 때까지는 이 연주를 따라가야 한다. 매시브 어택의 ‘Unfinished Symphony’ 같은 곡은 술 한잔을 기울이며 음악으로 감상할 때와 테스트를 위해 들을 때의 기준과 상황이 다소 달라진다. 이 복잡한 구조와 감성이 뒤섞인 곡은 어느 경우나 생각으로 측정이 좀 필요하다.
■ 가볍게 듣기

복잡한 음악을 잘 들려주면서 평범하고 단순한 음악은 그저 그런 시스템이 있다. 그럴 리가 있겠냐 하지만 은근 많다. 천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모니터 스피커에서 간단한 뉴에이지 피아노가 밋밋하게 나오면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좋은 시스템 조합은 정확하기도 해야하지만 어느 음악, 녹음을 들어도 듣는 재미를 선사해주는 미덕도 겸비해야 한다. 집중해서 듣지 않고 무심히 틀어놓고 돌아다니면서 들어도 듣기에 좋은 소리야말로 모두를 즐겁게 할 것이다. 히사이시 조의 저패니메이션 곡들이나 빌 더글라스, 케빈 컨의 곡들이 이런 테스트에 적당하다. 시청도 굳이 자리에 앉아서 하지 않아도 되고 처음 제품 전원을 올리고 나서 워밍업시키는 동안 가볍게 틀어놓고 서성거리면서 무심히 들어본다.

■ 비교해서 듣기

기기와 공간 등을 조합을 달리해서 비교해서 시청해본다. 실현가능한 단계가 조금씩 달라서 항상 가능한 건 아니지만 여러 기기가 있는 지정된 시청실에서 고정으로 시청을 하는 경우의 장점이 이럴 때 발휘된다. 특정 스피커를 테스트하는 경우, 앰프를 교체해서 들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스피커로 교체해서 비교하며 시청하기도 한다. 소스기기는 물론이고, 좀더 일이 커지면 케이블을 교체하기도 하는데 케이블에 한 번 손을 대면 인터커넥터는 물론이고 스피커 케이블과 디지털 케이블까지 이어지는 ‘큰 일’이 되기도 한다. 시청 위치를 바꿔서 들어보기도 한다. 특히 스피커의 경우 높이와 지향각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에 특징이 있다면 필수작업이다. 스피커의 위치와 토우인을 바꿔가며 비교를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경우에 대해 필요한 건 시간과 집중력이다.


잘 듣기 위해 필요한 것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제품의 시청은 특정 장소에서 한 번만 시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물리적으로도 환경을 잘 갖춰서 들어야하지만 시청을 위한 감성적 환경도 영향을 미친다. 기본적으로 잘 만들어진 제품만큼이나 심리적으로도 플랫한 상태로 시청을 하는 것도 관건이다. 피곤하거나 화가 나 있거나 불안하거나 혹은 기분이 너무 업된 상태도 그리 좋지 않다. 방금 누군가와 막 다투고 와서 시청을 하거나 은행에서 돈 내놓으라는 독촉전화를 받고 나서 시청을 하면 상기와 같은 품질의 시청은 어려울 것이다. 음악회에 가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시간을 정해놓고 시청하기 전에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서 미국의 전문지 스테레오파일의 평론가들은 일회성 평가가 아니라 오랜 동안 자신의 공간에 제품을 두고 시청을 하는 방식으로 리포트를 한다. 주로 공급사의 사정상 이런 조건을 갖추기도 어렵고 이 방식이 반드시 장점만 있는 건 아니지만 충분한 반복 시청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지정된 시청실에서 제품을 지속적으로 두고 시청하는 경우가 유효하다.


이런 조건들이 갖춰졌다면 그 다음에는 편한 시청을 위해 몇 가지 오디오 메이트들이 있으면 좋다.

■ 음료

커피는 언제나 오디오의 좋은 친구이다. 휴일 아침 늦은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커피향과 함께 듣는 음악은 일반 애호가에게 최고의 순간 중의 하나이지만 테스트를 위해 시청을 할 때도 그렇다. 한 두 시간을 뻣뻣하게 가만히 앉아서는 음악이 잘 들리지 않는다. 따뜻한 차나 커피는 음악적 감성을 열어주고 물리적 감각을 활성화시켜 줄 것이다. 간혹 늦은 시간에 시청을 하느라 저녁을 겸하게 된다해도 와인이나 알콜은 금물이다. 알콜이 들어가고 나서의 시청은 쉽게 왜곡될 거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 의자

의자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면 서로 다른 의자에 앉아 소리가 어떻게 바뀌는 지 비교해보면 흥미로울 결과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의자나 소파의 재질과 높이, 각도에 따라서 소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오디오파일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앚기에 안락하지만 몸이 너무 깊이 파묻히거나 낮게 내려가고 작은 진동에도 흔들리는 의자는 테스트 시청에 맞지 않다. 앉았을 때 스피커의 트위터가 귀높이와 수평이 맞는 전용의자가 필요하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가는 얘기지만, 필자의 예전 동호회 시절에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음악을 듣는 선배가 있었다. 물론 테스트를 위한 시청은 아니지만 그게 과한 액션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상황이다.

■ 조명

조명 또한 음악의 뉘앙스 전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너무 밝거나 어둡지 않게 해야하며 화려하거나 특이한 색감의 조명은 피하고 약간 따스한 톤의 조명이 좋다. 멋이 있다고 해서 열이 많이 나는 조명도 피해야 하고 또한 조명에서 험이 나지 않아야 한다. 미세한 잡음을 내는 조명들이 은근히 많은데 모르고 그냥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조명에서 작은 소리가 난다고 해서 들리는 소리 전체가 달라지지는 않지만 특정 대역을 왜곡시켜 들리게 한다.

■ 메모

시청하면서 하는 메모는 매우 중요하다. 머리 속에는 시청한 내용이 있지만 들은 내용을 그 순간 적어놓지 않으면 나중에 시청기를 쓸 때 두 배는 힘이 든다. 다소 소리가 나서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능률을 따지면 노트북을 펼치고 자판을 두들겨서 메모를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긴 하다. 필자는 오랜 동안 종이에 만년필로 메모를 해왔었고 한동안은 태블렛에 전용 펜으로 메모를 하곤 했는데, 나중에 옮겨적는 게 일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음악을 반복해서 다시 듣더라도 타닥거리며 입력을 해서 메모를 한다. 메모의 방법은 음악을 듣는 동안 눈 앞에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것을 적는다. 어차피 누구를 보여주는 리포트가 아니라 내가 다시 보고 정리할 때 바로 그 현장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세세한 기록일 수록 좋다.


평론가 되어보기

잠시 오디오 평론가의 시청 모습을 따라다니면서 지켜보면 은근히 손이 많이 가고 있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평론가는 황금귀가 아니라 황금팔과 엉덩이, 그리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뇌와 심장 등 전방위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신제품 오디오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게 쌓여있는 숲속과 같은 오디오 시장에 처음 들어서면 내게 필요한 오디오에 대한 실마리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훌륭히 저널을 공유하는 일부 평론가들에게는 배울 게 많다. 가능한 가까이 지내서 유익한 오디오적 구루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쓰는 이유 중의 하나는 스스로 평론가처럼 시청을 해볼 것을 권하기 위해서이다. 음악을 즐길 때가 있지만,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특정 기기 혹은 시스템의 소리를 판별하기 위해서 이런 방식을 한 번 동원해보기 바란다. 나중에 글로 써보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다음 편에는 쓰기에 대해 얘기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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