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작은 고추는 더 맵다
지금까지 작은 스피커에 놀란 적이 몇번 있다. 대표적인 것이 키소어쿠스틱의 HB-X1과 하베스의 P3ESR이다. 이 들은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저역 확장력과 펀치력, 양감, 큰 무대 스케일(HB-X1), 모든 악기들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선명히 들리는 중역대 보컬(P3ESR)이 거의 이해불가 수준이었다. 좋은 스탠드와 앰프를 물려주면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오디오적 쾌감을 즐길 수 있는 스피커들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다. 핀란드 앰피온(Amphion)의 Argon 0(아르곤 0)과 Helium 510(헬륨 510)이다. 그동안 앰피온 스피커는 꽤 많이 들어봤지만 정식 리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덩치만 놓고 보면 헬륨 510이 약간 더 크지만 앰피온 라인업으로는 아르곤 0이 상급기다. 뒤에서 자세히 쓰겠지만 실제 소리 만족도도 아르곤 0이 높았다. 어떻게 이런 스피커 소리를 지금에서야 들었는지 안타까웠을 정도로 두 스피커는 낭중지추라 할 만했다.
안씨 히뵈넨 앰피온 CEO “웨이브 가이드로 3,4마리 토끼를 잡았다”
앰피온 스피커, 특히 스탠드마운트 스피커는 트위터를 둘러싼 옅은 혼 스타일의 웨이브 가이드와 좁은 배플, 트위터와 미드우퍼를 바싹 위아래로 붙인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두 스피커 트위터의 넓은 웨이브 가이드를 바라보다, 예전 인터뷰했던 안씨 히뵈넨(Anssi Hyvonen) 앰피온 대표 말이 떠올랐다. “트위터에 달린 웨이브 가이드로 3,4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내용인데, 기억을 더듬을 겸 당시(2016년 12월) 인터뷰를 들춰봤다. 핵심은 이렇다.
= 앰피온은 1998년 설립됐다. ‘앰피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안티오페의 아들인데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브랜드 이름으로 채택했다.
= 앰피온 라인업은 모두 기체 이름이다. 최상위 크립톤(Krypton), 중견 아르곤(Argon), 엔트리 헬륨(Helium) 모두 화학적으로 안정된 기체들이다.
= 스피커 설계시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트위터와 미드우퍼를 가능한 한 유닛처럼 통합(cohesive units)시킨 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로스오버에 신경을 쓰는데 핵심은 사람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역대(2kHz~5kHz)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앰피온 스피커는 트위터 웨이브 가이드를 통해 크로스오버를 1.6kHz로 낮출 수 있었다. 이는 웨이브 가이드가 트위터 앞에 공기를 가둬두는 역할을 해 미드우퍼처럼 더 많은 공기를 밀어낼 수 있고, 이로 인해 저역 하한선이 대폭 내려갔기에 가능했다.
= 세미 혼 스타일의 웨이브 가이드는 또한 트위터를 보다 인클로저 안쪽에 위치시켜 미드우퍼와 보이스코일 위치가 똑같게 만들어줬다. 이로써 두 유닛간 시간축 일치(time alignment)가 가능해졌다.
= 웨이브 가이드 직경이 미드우퍼와 똑같은 것은 2개 유닛에서 나온 소리가 동일한 패턴으로 방사되게 하기 위해서다.
= 웨이브 가이드는 트위터의 비직선성을 완화해 청음공간의 영향을 덜 받게 하는 장점도 있다(UDD. Uniformly Directive Diffusion).
= 앰피온 스피커는 배플이 좁은 대신 안길이를 늘려 필요한 용적을 확보했다.
= 트위터 진동판 재질로 실크 대신 티타늄을 쓴 것은 티타늄이 개방적이고 풍부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사운드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실크 돔은 소리가 휘어 나가는 것처럼 들린다.
= 패시브 라디에이터는 아르곤 3LS와 3S 모델에만 있다(이후 7LS 모델 추가).
결국 앰피온 스피커는 티타늄 트위터와 하는 일 많은 웨이브 가이드, 핵심 중역대를 건들지 않는 크로스오버 주파수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는 이번 시청기인 헬륨 510과 아르곤 0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여기에 하나를 보태자면 상급 아르곤 시리즈에는 노르웨이 시어스(Seas)의 알루미늄 콘 미드우퍼가 투입됐다는 정도다.
현행 앰피온 스피커 라인업은 안씨 히뵈넨 대표 말 그대로 크립톤, 아르곤, 헬륨으로 짜였는데, 그 구체적 모델들은 다음과 같다.
= 크립톤 : Krypton3(3웨이 5유닛 플로어스탠딩)
= 아르곤 : Argon 7LS(2웨이 3유닛 플로어스탠딩+패시브 라디에이터 2), Argon 3LS(2웨이 2유닛 플로어스탠딩+ 패시브 라디에이터 1), Argon 3S, Argon 1, Argon 0(이상 2웨이 북쉘프)
= 헬륨 : Helium 520(2웨이 플로어스탠딩), Helium 3, Helium 510, Helium 410(이상 2웨이 북쉘프)
Argon 0 vs Helium 510
시청기인 두 스피커 모두 작다. 이중 아르곤 0은 더 작아서 높이가 259mm, 폭이 132mm, 안길이가 220mm, 무게가 4kg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헬륨 510은 높이가 316mm, 폭이 160mm, 안길이가 265mm, 무게가 7kg이 나간다. 물론 앰피온 스피커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좁은 배플과 상대적으로 긴 안길이, 메시 그릴을 포함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은 역시나 북유럽 감성이다. 인클로저 재질은 MDF.
두 스피커는 또한 2웨이, 2유닛, 베이스 리플렉스 스피커다. 아르곤 0은 1인치 티타늄 돔 트위터와 4.5인치 알루미늄 콘 미드우퍼를 달아 50Hz~25kHz(-6dB)를 보이고, 헬륨 510은 1인치 티타늄 돔 트위터와 5.25인치 페이퍼 콘 미드우퍼를 달아 48Hz~25kHz(-6dB)를 보인다. 헬륨 510의 미드우퍼 크기와 내부용적이 조금 더 큰 만큼 저역 하한이 조금 더 내려간다.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두 스피커 모두 후면 싱글 와이와이어링 단자 밑에 있다.
두 스피커의 스펙도 공통점이 많다. 일단 두 스피커는 모두 공칭 임피던스 8옴에 감도 86dB인 스피커로 감도가 그렇게 높지 않다. 때문에 이런 스피커를 작은 음량으로 들으면 제 실력을 10%도 맛볼 수 없다. 장르와 곡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능한 한 높은 볼륨으로 들어야 곡도 살고 스피커도 즐거워 한다. 파워핸들링 수치는 최대 120W로 동일하며, 크로스오버는 안씨 히뵈넨씨 말처럼 핵심 중역대를 건들지 않는 1.6kHz에서 이뤄진다.
두 스피커 비교에서 알 수 있듯이 아르곤 시리즈와 헬륨 시리즈를 구분짓는 것은 미드우퍼 진동판 재질이 아르곤은 알루미늄, 헬륨은 페이퍼라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차이는 아르곤 스피커의 모든 미드우퍼는 노르웨이 시어스(Seas) 제품이라는 사실. 헬륨 시리즈의 페이퍼 콘 미드우퍼는 확실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역시 외주를 준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비해 1인치 티타늄 트위터는 아르곤과 헬륨 모두 앰피온에서 디자인해 프랑스에서 만들어진다.
시청
시청에는 오렌더의 네트워크 뮤직서버 A30과 프라이메어의 DAC 내장 인티앰프 I35를 동원했다. A30에도 DAC 이 들어있지만 USB로 출력, I35 내장 DAC(AK4497)을 활용했다. I35는 클래스D 증폭으로 8옴에서 150W, 4옴에서 350W 출력을 낸다. 시청은 오렌더 앱으로 타이달 음원을 들었다.
총평
필자의 경우 지금 자택에서도 소형 북쉘프 스피커를 하나 사용중이다. 덴마크 스캔소닉의 MB-1이라는 모델인데 리본 트위터와 4.5인치 카본 미드우퍼를 쓴다. 같은 4.5인치 유닛을 쓴 아르곤 0과 비교해보면 고음의 화사함과 저역의 양감은 MB-1이 낫지만 저역의 단단함과 무대의 스케일은 아르곤 0 손을 들어주고 싶다. 헬륨 510의 그 상대적으로 수더분하고 편안한 사운드도 잊혀지질 않는다. MB-1은 이미 손에 들어왔고, HB-X1은 비싼 가격에 그냥 바라볼 뿐이어서 아르곤 0(그리고 헬륨 510)은 정말 고민된다. 맞다. 작은 고추도 핀란드산이 더 맵다.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