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대를 의심케 하는 선명하고 깨끗한 음

조회수 2019. 7. 23. 14: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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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oll PH-100 포노 프리앰프

집으로 택배가 왔다. 프랑스 아톨(Atoll Electronique)의 유일한 솔리드 스테이트 포노앰프인 PH100이다. 지난 5월 비슷한 가격대의 아톨 DAC100 Signature(시그니처)를 워낙 좋게 들었기에 이번 PH100도 기대가 컸다. 자택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쓰고 있는 진공관 포노와 바톤 터치를 한 후 귀에 익숙한 LP를 앉은 자리에서 연이어 들었다. 고역이 상당히 선명하고 깨끗한 아날로그 사운드였다. 저역은 다소 의기소침하게 들렸지만 프리앰프 볼륨을 높이니 평소 익숙한 저음이 나왔다. 가격대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음이었다.


PH-100 외관과 스펙, 인터페이스

▲ Atoll PH-100 Phono Amplifier
▲ (좌) 스테판(Stephane) , (우) 엠마뉴엘 뒤브뢰유(Emmanuel Dubreuil)

아톨은 1997년 스테판 (Stephane) 과 엠마뉴엘 뒤브뢰유 (EDmmanuel Dubreuil) 형제가 설립했다. 설립목표는 ‘예산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오디오파일을 위한 하이엔드 오디오를 만든다’는 것이었고, 이 같은 전략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초창기 인티앰프(IN50, IN80)와 프리앰프(PR100), 파워앰프(AM50, AM80()가 지금도 SE 버전으로 생산되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었다는 증거다. 공장은 프랑스 노르망디의 브레쎄(Brecey)에 있으며, 스테인리스 섀시(브리타니), 알루미늄 전면 패널(로렌), PCB(페이 바스크), 전원부(론) 등 ‘메이드 인 프랑스’ 부품만 쓰는 것도 아톨의 특징이다.


아톨의 포노앰프는 시청기인 PH100이 유일하다. 5년 동안 베스트셀러로 군림했던 P200 SE는 지난 2018년 이 모델이 나오면서 단종됐다. PH100은 기본적으로 MM/MC 카트리지에 모두 대응하는 포노 스테이지로, 아날로그 디스크 EQ는 RIAA 커브에만 적용된다. 또한 카트리지 부하 임피던스를 47k옴과 100k옴에서 고를 수 있는 점, 부하 커패시턴스를 100pF로 놓거나 또는 오프시킬 수 있는 점, 그리고 MC 게인을 카트리지 출력에 맞춰 하이(high)와 로우(low)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외관은 심플하기 짝이 없다. 하프 사이즈의 P200 SE에서는 별도로 마련됐던 파워서플라이가 한 섀시로 통합됐기에 더욱 심플하다. 전면에는 두께 4mm의 알루미늄 패널이 붙어있고, 섀시는 비자성 처리를 한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 실버 또는 블랙 색상 중에서 고를 수 있는 전면 패널에는 전원 인가 여부만을 알려주는 작은 LED만 박혀있다. 후면은 왼쪽부터 RCA 입출력단 1조씩과 MC 게인과 부하 임피던스/커패시턴스를 선택할 수 있는 DIP 스위치(채널당 1세트), 그리고 전원 인렛단과 온오프 스위치 순이다. 접지 단자도 마련됐다.


스펙은 2,3배 비싼 포노앰프에 비해서도 크게 꿇리지 않는다. 게인은 MM이 40dB, MC가 47dB(High. 고출력 MC카트리지 사용시)와 60dB(Low. 저출력 MC카트리지 사용시)를 보이며, THD는 0.05%, SNR은 80dB, 크로스토크는 -82dB 이하, 주파수응답특성은 20Hz~20kHz(0.1dB)에 이른다. 개인적으로는 크로스토크와 주파수응답특성에 눈길이 간다. 가로 폭은 320mm, 높이는 65mm, 안길이는 65mm, 무게는 2.5kg. 두터운 고무발 4개로 지지되는 덕에 시청 내내 무게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고 외부 진동에 덜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PH-100 설계디자인

▲ PH-100의 내부사진

DAC100 Signature에서도 확인한 것이지만 아톨은 이번 PH100의 설계디자인에서도 정공법과 ‘메이드 인 프랑스’를 선택했다. 공개된 내부사진을 보면, 일단 내부면적의 반을 차지하는 파워서플라이 파트를 케이스로 쉴딩했고, 나머지 반을 차지하는 아날로그 증폭 및 RIAA 커브 보정 회로, 출력 회로를 완벽히 듀얼 모노로, 그것도 OP앰프 등이 일절 없는 디스크리트 회로로 짰다. 이 가격대에서는 좀체 접하기 힘든 구성이다.


파워서플라이 역시 2개의 전원트랜스가 좌우채널 각각을 책임지는 디스크리트 아날로그 설계. IC 형태의 전압 레귤레이터가 채널별로 2개씩 투입된 것을 비롯해 평활 커패시터가 다수 투입됐다. 전원부 역시 완벽한 듀얼 모노임을 알 수 있다. 듀얼 모노 구성의 디스크리트 회로로 짜인 오른쪽 아날로그 증폭단에는 채널당 4개의 트랜지스터가 투입됐다. 하지만 RIAA 커브 보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셋업 및 시청

개인적으로 포노앰프가 재미있는 것은 유저가 여러 가지를 건드릴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53년 확정된 RIAA(미국레코드산업협회) 커브 이전의 모노 음반이나, 그 후에 나왔지만 RIAA 커브를 따르지 않은 영국 데카나 미국 컬럼비아 LP를 그 커브값에 맞춰 보정하는 재미가 생각 이상으로 쏠쏠하다. 정말 음이 확확 바뀐다. 여기에 카트리지에 따라 부하 임피던스(MC)와 부하 커패시턴스(MM)를 조절해 가장 최적화한 음을 얻어내는 과정도 매력적이다.


PH100에도 유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우선 MC 게인을 카트리지 출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시청에는 출력이 0.5mV, 내부 임피던스가 7옴인 오토폰의 Quintet RED MC카트리지를 동원했으므로 게인을 LOW(60dB)에 맞춰 들었다. 각 채널별 3번, 4번 스위치를 모두 ON 시키면 된다. 만약 고출력 MC카트리지라면 3번 스위치는 ON, 4번 스위치는 OFF 시키고(47dB), MM카트리지라면 3번, 4번 스위치를 모두 OFF 시키면 된다(40dB). 


부하 임피던스는 1번 스위치가 담당한다. ON 시키면 47k옴, OFF 시키면 100k옴이다. 2번 스위치는 부하 커패시턴스 담당. ON 시키면 100pF, OFF 시키면 0pF가 된다. 통상 포노앰프의 부하 임피던스는 카트리지 내부 임피던스보다 높아야 하는데(통상 5배), 이는 카트리지가 읽어 들인 음악신호를 손실 없이 전해주기 위해서다. 결론적으로 이번 시청에서는 부하 임피던스는 47k옴, 부하 커패시턴스는 100pF, MC 게인은 LOW(60dB)로 세팅했다.

Janos Starker ‘Boccherini Sonata’(Starker Plays Italian Sonatas)
프리앰프 볼륨을 평소 위치에 놓고 들은 첫 인상은 음이 조금 얇다는 것, 하지만 해상력이 무척 높다는 것이었다. 체감상 노이즈도 거의 없었다. 특히 고역쪽이 선명하고 스피커에서 나올 때 마찰이나 거리낌 같은 것이 일절 없다. 첼로 뒤쪽 아래에 자리한 피아노의 거리감과 전체적으로 무대가 낮고 넓게 그리고 깊게 깔리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한마디로 프랑스 포노앰프가 만들어낸 입체적이며 홀로그래픽한 무대라 할 만하다. 아톨 PH100이 뒷단인 프리앰프에 음을 조금도 뭉개지 않고 보내주는 모습도 대단하다. 하지만 고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역은 잘 안 나오는 편. 좀더 음에서 묵직한 압력이 느껴졌으며 어땠을까, 그리고 음에 온기와 혈색이 좀더 돌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큰 불만은 없는 재생음이다.
Fritz Reiner, Chicago Symphony Orchestra ‘The Hut On Fowl’s Legs’(Mussorgsky Pictures At An Exhibition)
확실히 저역 수비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평소보다 프리앰프 볼륨을 조금 더 올려 처음부터 다시 들어봤다. 세상에, 갑자기 거의 모든 음들이 왕성해진다. 팀파니가 비로소 필자의 가슴을 풍압으로 때리고 무대의 스케일이 돋보기를 들이댄 것처럼 커졌다. 맞다. 에너지감이 이 정도는 돼야 오케스트라를 듣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팀파니는 탄력감을 완전히 회복했고, 트럼펫도 덩달아 신났는지 쭉쭉 잘 뻗는다. 평소보다 볼륨을 높인 만큼 플로어 노이즈는 약간 높아졌지만, 이 박력 넘치고 찰진 소리가 바로 LP에서 기대하는 아날로그 사운드다. 그러면서도 여린 음들을 살뜰하게 보살피고 각 악기들의 연주 뉘앙스를 섬세하게 파헤치는 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짐작컨대, 저출력 MC카트리지에 대응하는 아톨 PH100의 MC게인(60dB)만으로는 약간 힘에 부치는 상황인 것 같다. MC카트리지에서 음을 제대로 뽑아내기 위해 승압트랜스나 헤드앰프를 쓰는 이유일 것이다.
Madeleine Peyroux ‘Bye Bye Love’(The Blue Room)
필자의 이런 추론은 게인이 비교적 높은 상태로 녹음된 마들렌 페이루의 LP를 들으면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볼륨을 다시 평소대로 줄였는데도 처음부터 만족스러운 에너지감이 확보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플로어 노이즈까지 ‘전람회의 그림’ 때보다 낮아졌으니 오디오적 쾌감이 대폭 늘어났다. 여러 악기들의 레이어감, 무대의 입체감, 경쾌하고 날렵한 풋워크 등 PH100의 여러 장점들이 여전한 가운데 제법 두터운 저역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하다. 이어 ‘Changing All Those Changes’를 들어봐도 분명한 발음과 함께, 그녀의 들숨과 립스틱 향이 느껴질 만큼 디테일하고 적나라한 해상력이 필자의 혼을 쏙 빼놓는다. 이 가격대 포노앰프를 물려 이런 음을 듣게 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Eric Johnson ‘Venus Isle’(Venus Isle)
역시 PH100은 해상력의 포노, 섬섬옥수로 카트리지 음을 소중하게 다루는 포노임이 확실하다. 전원부까지 좌우채널을 듀얼모노로 설계해 크로스토크 노이즈를 대폭 낮춘데다, 특히 트랜스부터 정전압 레귤레이터, 커패시터까지 꼼꼼하게 설계한 전원부 덕을 크게 본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배경이 조용한 음, 어느 대역에서도 여린 음들, 그러니까 로우 레벨(low level) 음들이 드센 음에 파묻히거나 노이즈에 깎이는 경우가 없다. 따지고 보면 중량감이 조금 아쉬웠던 것도 워낙 플로어 노이즈가 낮기 때문에 벌어진 상대적 불이익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곡은 볼륨을 높여 한 번 더 들었는데, 기대했던 대로 만족스러운 음량이 확보되는 동시에 저역의 양감과 두께감마저 몰라보게 늘어났다. 악기들이 필자 방에서 즐겁게 연주하는 듯한 기분 좋은 시청이었다.
※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총평

아톨은 제품을 접하면 접할수록 매력적인 프랑스 제작사다. 프랑스라는 이미지와는 맞지 않게(?) 수수한 외관과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하면서도 의외의 기성비 음질을 던져준다. 이번 PH100도 그랬다. 무게가 2.5kg에 불과한 가볍고 얇은 포노앰프이지만, 그 들려준 음은 생각 이상으로 선도가 높고 해상력이 가득했다. 음이 좀더 보드랍고 에너지감이 넘쳤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더 이상은 욕심이다. 후면의 DIP 스위치로 이것저것 건드려볼 수 있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MM과 MC 카트리지를 모두 지원하는 점이 기특하다. 크게 부담 가지 않는 선에서 똘망한 포노앰프를 원하는 애호가들에게 일청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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