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슴없이 추천할 만한 라트비아산 스피커

조회수 2019. 3. 15. 10: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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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School Monitor M2 V2

지금까지 소리에 깜짝 놀란 스피커는 꽤 많다. 그러나 디자인과 만듦새, 여기에 가격대까지 마음에 든 스피커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중 자신있게 남들한테도 추천할 수 있는 스피커를 꼽자면 이번 시청기인 올드스쿨(Old School)의 Monitor M2 V2를 반드시 포함시킬 것이다. 그만큼 매력적인 스피커였다.


올드스쿨의 탄생

먼저 정확히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개인적으로 올드스쿨을 그저 ‘라트비아 브랜드’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찾아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우선 올드스쿨은 2008년 설립된 러시아 메이커 아스랩 오디오 테크놀로지(Arslab Audio Technology)가 상위 모델들에 붙인 브랜드 이름이었다. 그러다 2016년 라트비아를 생산기지로 삼아 프리미엄 스피커만을 만드는 독자 회사로 출범한 것이 올드스쿨이다. 이 회사 스피커 명판에 ‘Made in EU’라고 씌어진 이유다.

▲ 아스랩 오디오는 대만에서 라트비아로 생산기지를 옮겨 2008년 독자 브랜드로 출범했다.

아스랩은 원래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대만 탱밴드(Tang Band)에 TB 스피커 시리즈를 납품하다가 덴마크 비파(Vifa) 스피커 출신 엔지니어를 영입하면서 2008년 독자 브랜드로 론칭했다. 생산 기지를 대만에서 라트비아로 옮긴 것은 2009년의 일. 어쨌든 이들이 스피커 곳곳에 쏟은 정성은 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인클로저 내부는 모두 역청(bitumen)을 발랐고, 폼 러버(foam rubber) 소재의 덴마크산 흡음재를 투입했으며, 얀센(Jantzen)과 오디오 코어(Audio Core) 폴리프로필렌 커패시터를 네트워크 회로에 썼다.


올드스쿨의 현재 라인업은 플로어스탠딩 Life와 My Way, 스탠드마운트 Classic One, Monitor M2, Music, Monitor M1으로 짜여져 있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 딜러인 오디오매니아(Audiomania)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이고, 실제로는 지난해 5월 인클로저 강성을 높인 V2 버전들이 새롭게 선을 보였다. 이번 시청기인 Monitor M2 역시 전후면 패널을 기존 MDF에서 MDF-폴리머-MDF라는 3중 레이어로 바꾼 V2 버전이다. 하지만 올드스쿨 본사 홈페이지는 아직 업데이트가 안돼있는 상태다.


Monitor M2 V2 외관과 스펙, 설계디자인

외관은 예의 올드스쿨 모습이다. 일단 붉은색 전면 배플과 두께 22mm의 핀란드산 자작나무 적층 합판이 강렬한 눈맛을 선사한다. 실제로 만져보면 그 마감 품질이 매우 높다. 또한 스탠드마운트라고는 하지만 덩치가 270mm(W), 530mm(H), 395mm(D), 무게가 23.1kg으로 상당히 크고 무거운 편이다. 박스형 캐비닛과 큼지막한 우퍼를 앞세운 3웨이 구성부터가 1980년대 ‘올드스쿨’ 스피커들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후면 위쪽에 나 있고, 바인딩 포스트는 싱글 와이어링 전용으로 WBT 제품을 썼다. 공칭 임피던스는 4옴, 감도는 88dB, 주파수응답특성은 35Hz~25kHz.

유닛을 살펴보면, 트위터가 왠지 익숙하다. 이스라엘의 보석 같은 존재 모렐(Morel)의 1.1인치 실크 돔 트위터다. 보이스코일에 헥사테크(Hexatech)라는 알루미늄 와이어를 사용했고, 아큐플렉스(Acuflex) 같은 모렐의 독보적인 기술을 적용했다. 벌집 모양의 알루미늄 코일 헥사테크는 내부 공기층을 감소시켜 트위터의 효율을 높였고, 일종의 댐핑 컴파운드인 아큐플렉스는 진동판의 공진점을 제거하는데 기여했다. 이밖에 트위터 유닛을 안쪽으로 집어넣고 옅은 혼 타입 웨이브가이드를 마련한 점이 눈길을 끈다. 고역의 확산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미드레인지는 페이즈 플러그가 달린 노르웨이 시어스(Seas)의 5인치 콘 드라이버, 우퍼는 웨이브코(Wavecor)의 8인치 밸런스드 드라이브(Balanced Drive) 유닛을 썼다. 미드 콘 재질은 넥스텔(Nextel)을 코팅한 페이퍼, 우퍼 콘 재질은 셀룰로오즈와 유리섬유 혼합재. 사실 V2 버전이 되면서 시어스 드라이버를 비롯해 각 유닛을 고급화시켰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오리지널 버전과 육안으로 비교해보면, 각 유닛의 고정 볼트 개수의 변화 정도만이 확인될 뿐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트위터와 미드레인지의 중심축이 우퍼 중심축과 살짝 어긋나 있다는 점. 소위 ‘오프셋’(offset) 구성으로, 이는 두 유닛에서 나온 방사음이 전면 배플 표면에 반사돼 음을 교란, 왜곡시키는 회절(diffraction)을 최대로 줄이기 위한 설계다. 잘 아시는 대로 유닛과 배플 모서리 사이의 거리가 동일할수록 회절이 더 많이 일어난다. 상급 모델인 Classic One도 이러한 오프셋 유닛 구성을 취했다.


구소련 라디오테크니카 S-90 스피커의 유산

그런데 이러한 오프셋 구성이 꼭 음향적 이득만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Monitor M2가 처음 등장했던 2016년 당시 러시아 유저들의 반응을 보면 꼭 언급되는 스피커가 있다. 1980년대 구소련 체제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라디오테크니카(Radiotehnika) S-90 스피커다. 전면에 달린 모드 변환 스위치만 빼놓으면 3웨이 유닛에 오프셋 구성, 박스형 인클로저까지 지금의 Monitor M2와 외형적으로 너무나 닮았다.


그만큼 80년대 초 지금의 체코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제작된 라디오테크니카 S-90이 러시아와 동구권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무엇보다 20Hz까지 떨어지는 저역과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인 25kHz까지 뻗는 고역이 매력이었다. 외국 인터넷 포럼을 보면 지금도 이 스피커를 사용 중인 애호가들이 꽤 많다. Monitor M2 V2를 시청하면서 느꼈던 풍부한 성량과 섬세한 소릿결은 30여년을 이어온 오랜 동구권 사운드 메이킹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올드스쿨’이라는 브랜드 이름도 이 1980년대 스피커 S-90와 라디오테크니카 스피커에 대한 오마주로 보인다. 실제로 라디오테크니카에서 오랫동안 수석 엔지니어로 일한 빅토르 라가르포프(Viktor Lagarpov)는 지난 2013년부터 아스랩의 수석 엔지니어 겸 기술 디렉터로 재직 중이다.


시청

시청에는 오렌더의 네트워크 뮤직서버 A100과 캐리오디오의 인티앰프 SI-300.2D를 동원했다. SI-300.2D는 클래스AB 증폭으로 8옴에서 300W, 4옴에서 450W를 낸다. AK4490EQ DAC칩을 내장, USB 입력시 최대 32비트/384kHz, DSD256까지 재생할 수 있다. 그러나 시청시에는 이를 바이패스, A100의 내장 DAC을 거치도록 했다. AK4490 칩을 쓴 A100은 최대 32비트/768kHz, DSD256 사양이다.

Michael Jackson ‘Jam’(Dangerous)
올드스쿨 Monitor M2 V2 시청 직전에 똑 같은 시스템으로 다른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를 들었는데, 표현력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였다. 물론 Monintor M2 V2가 더 비쌌지만 이를 감안해도 대역밸런스, 파워감, 입자감, 밀도감 등 거의 모든 항목에서 몇 발 앞섰다. 무엇보다 드넓게 펼쳐지는 사운드스테이지가 압권. 중저역의 양감과 밀도감도 돋보였으며 유닛으로부터의 음의 이탈감도 좋았다. 시원시원하게 음들이 뛰쳐나온다. 보컬의 표현력은 역시 페이퍼 콘을 쓴 시어스 미드레인지와 웨이브가이드를 단 모렐 트위터 덕분이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스피커를 진중하게 설계한 결과 표현력이 좋고 표정이 풍부한 음을 얻은 것 같다. 이어 들은 안네소피 폰 오터의 ‘Baby Plays Around’에서는 이 스피커의 높은 SNR이 두드러졌다. 깊은 산사에 들어와 맑은 샘물을 마시는 듯하니 음악의 감동 자체가 다르다. 저역에서 커다랗고 예리한 한 방이 있는 스피커임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에는 이를 감춘 여유와 숙성의 맛이 있다.
Hans Zimmer ‘Aggressive Expansion’(Dark Knight OST)
첫 음부터 도심의 큰 극장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확실히 이 스피커가 선사하는 저역의 펀치감은 놀랄 정도로 대단하다. 그러면서도 깨끗하고 투명한 저역, 섬세하고 탄력감이 넘치는 저역이다. 아마 이 덕목은 이 스피커를 처음 듣게 되는 거의 모든 애호가들이 공감하시리라고 본다. 또한, 입자감이 보드라운 점, 음압 자체가 높은 음들이 시원시원하게 터져나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역시 8인치 우퍼가 밀어내는 공기의 면적은 5.5인치나 6.5인치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최근 드보어 피델리티의 Orangutan O/96 시청에서도 절감했던 것이지만, 페이퍼 콘의 쌉싸름하고 정교한 표현력만큼은 다른 진동판 재질은 따라갈 수 없는 것 같다. 하여간 이 곡으로 인해 시청실 공기마저 확 바뀌고 말았다. 참으로 대단한 스피커다.
Kacey Musgraves ‘Space Cowboy’(Golden Hour)
기타의 고역이 실크 돔의 물성을 보기좋게 배반하며 선명하게 위로 쭉 뻗는다. 앞에 들었던 스피커와 비교해보면 보컬이 더 분명하고 달콤하게 들린다. 음의 윤곽선 역시 선명하고 또렷해졌다. 마침내 A100과 300W/450W 출력의 SI-300.2D가 제 실력을 내는 것 같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스피커는 음의 최종 출구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맛깔스러운 음, 만족도가 매우 높은 음이다. 거친 구석, 애매한 구석, 불분명한 구석이 일체 없다. 미세먼지가 싹 가신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은 것 같다. 고백컨대, 이 스피커의 안 좋은 모습을 찾아보려 해도 이미 반해버린 필자의 귀는 발견해내지 못했다. 이어 들은 마들렌 페이루의 ‘Dance Me To The End Of Love’는 스탠드마운트 스피커로는 상당한 내부용적이 저역의 양감과 밀도감을 높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처음 박스형 외관을 보면서 가졌던 ‘둔중하고 굼뜬 사운드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어느새 씻은 듯 사라졌다. 오히려 슬림한 스피커들보다 훨씬 섬세한 손길을 가진 스피커다.
Andris Nelsons, Boston Symphony Orchestra ‘Shostakovich Symphony No.5’(Shostakovich Under Stalin’s Shadow)
보무가 당당하다. 이래야 쇼스타코비치 5번이다. 이렇게 서늘한 바람이 매몰차게 불고, 음들은 저마다 강단있게 섬광을 뿌리며 행진을 해야 5번 4악장인 것이다. 무엇보다 저역의 양감이 받쳐준 덕분에 대역밸런스가 피라미드처럼 안정적으로 잡혔다. 또한 자작나무 합판 인클로저가 이 스피커가 내는 음에 일체 방해를 주지 않고 있다는 것도 청감상으로 느낄 수 있었다. 22mm 두께 합판과 내부 격벽, 역청 밀봉, 흡음재, 그리고 V2 버전이 되면서 변모한 3중 레이어 배플 덕분일 것이다. 음들이 총주에서 더욱 예리해지고 서로 섞여 혼탁해지지 않는 점도 대단했다. 제대로 된 총주 연주였다. ‘대는 소를 겸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이 스피커가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한다는 느낌이 끊이지 않았다. 막판 팀파니 8연타에서는 그 타격감의 파고가 아주 높았다.
※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총평

올드스쿨 Monitor M2 V2는 여성보컬곡과 소편성곡에서도 좋았지만 ‘불새’ 같은 대편성곡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오케스트라 곡을 어떻게 요리해서 어떻게 들려줘야 할지 처음부터 잘 아는 스피커였다. 이 가격대 스피커에서, 이 같은 박스형 스탠드마운트 스피커에서 ‘불새’와 쇼스타치비치를 이처럼 잘 들려준 스피커는 간만에 접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구소련과 동구권의 올드스쿨 스피커가 그 깊은 내공을 마음껏 펼친 현장이었다. 탐나는 스피커다. 자신있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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