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에 나타난 숨은 고수

조회수 2019. 3. 8. 10: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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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솔루션 Figaro M 스피커

▲ Audiosolutions Figaro Series

‘뭐야, 소리가 좋잖아!’ 최근 수입사 탑오디오에서 처음 듣는 오디오 브랜드 오디오솔루션(AudioSolutions)의 스피커를 접했다. 원래 미국 BAT에서 새로 나온 DAC를 리뷰하러 찾았는데 마침 몰라몰라 파워앰프에 물려 있었던 것이다. 이름은 Figaro M. 3웨이 4유닛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였다. 트위터가 미드레인지 밑에 있고,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후면에 큼지막하게 나있었다. 외관은 수수한 편. 그런데 곡이 계속될수록 눈길이 갔다. 마치 은둔 고수가 마침내 강호에 내려온 듯했다. 정말, 세상에는 좋은 스피커가 많다.


오디오솔루션과 Figaro

출처: - 이미지출처 : StereoMagazine
▲ 오디오솔루션 설립자, 게디미나스 가이델리스 (Gediminas Gaidelis)

오디오솔루션은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게디미나스 가이델리스(Gediminas Gaidelis)가 2011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Vilnius)에 세운 스피커 제작사다. 인터뷰를 보니 5살 때 스피커를 처음 만들었고, 16살 때 친구 의뢰로 스피커를 제작해 용돈을 벌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자신은 기계공학에 더 관심이 많아 스피커 제작을 선택했다는 일화도 흥미롭다.

▲ Vantage 5th Anniversary 모델

현재 오디오솔루션의 라인업은 위부터 

Vantage 5th Anniversary(밴티지 5주년 애니버서리), 

Vantage Classic(밴티지 클래식), 

Guimbarde(겜바드), Figaro(피가로), Overture (오버추어)

순으로 이어진다. 상위 빈타지 라인업은 한눈에 그 실체가 파악되지 않을 만큼 디자인과 유닛 구성이 복잡하다. 그만큼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소리를 위해 남들과 다른 접근을 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에 비해 가장 최근에 합류한 피가로 라인업은 일단 겉보기에는 보통 스피커에서 연상되는 일반적인 구성을 취했다.


피가로 라인업은 총 6개 모델이 포진해 있는데, 옷 사이즈로 구분한 점이 재미있다. 라인업 플래그십이 XL, 그 다음이 L, 이번 시청기인 M, 그리고 S 순이다. 여기까지가 3웨이 플로어스탠딩이고, 2웨이 북쉘프가 B, 센터 스피커가 C다. 플로어스탠딩 4개 모델의 경우 무엇보다 6인치 미드레인지의 커버범위가 400Hz~4kHz에 이를 정도로 넓은 점이 눈길을 끈다. 핵심 중역대를 크로스오버로 건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 Figaro 라인업. Figaro 스피커는 의류 사이즈로 모델을 구분한다.
▲ Audiosolutions Rhapsody 130 모델

한편 오디오솔루션의 모든 스피커는 빌뉴스 공장에서 핸드메이드로 제작된다. 드라이버 유닛은 시어스, SB어쿠스틱스, 피어리스, 스캔스픽 제품을 라인업과 모델별 특성에 맞춰 쓴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플로어스탠딩 Rhapsody(랩소디) 130인데, 2011년 회사 출범 때부터 출시된 이 랩소디 라인업을 대체하며 등장한 것이 바로 피가로다. 플래그십 밴티지는 3만 유로에 달한다. 제작자 본인이 집에서 쓰는 모델은 겜바드라고 한다.


Figaro M, 외관과 스펙

피가로 M의 첫인상은 다부지다는 것이었다. 높이 1120mm에 안길이가 470mm나 되고 무게는 41kg에 달한다. 무엇보다 무채색 드라이버 유닛들이 위상차를 줄이기 위해 가운데 트위터를 두고 촘촘하게 집결해 있는데다, 배플이 양옆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어 이러한 당당한 인상을 풍기는 것 같다. 캐비넷 색상은 무려 17가지 피아노 글로스 마감 중에서 고를 수 있다. WBT 넥스트젠 바인딩 포스트는 후면 아랫쪽에 1조가 마련됐다.

▲ Figaro 시리즈는 유닛과 배플을 제외한 캐비넷 색상 선택이 가능하다. 무려 17가지를 지원한다.

유닛은 위부터 6인치(15.2cm) ER 페이퍼 콘 미드레인지, 1인치(2.5cm) 실크 돔 트위터, 7.2인치(18.3cm) ER 페이퍼 콘 우퍼다. 중저역대 유닛이 모두 페이퍼 콘 진동판을 채택한 점이 눈길을 끈다. 가볍고 응답특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즘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들었던 드보어 피델리티의 Orangutan O/96도 페이퍼 콘을 채택하고 있다. 앞에 붙은 ‘ER’은 ‘Extra Rigid’의 약자로 내구성을 높인 페이퍼 콘이라는 뜻이다.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 방식의 피가로 M의 스펙은 준수한 편. 일단 기본적으로 4옴 스피커에 감도가 91.5dB나 나가는 고감도 스피커로, 주파수응답특성이 32Hz~25kHz에 달할 정도로 광대역을 보인다. 이에 비해 6인치 우퍼 2발을 채택한 아래 S 모델은 저역 하한이 37Hz에 그치고, 상위 L 모델은 9.2인치 우퍼 2발을 써서 저역 하한을 25Hz까지 더 떨어뜨렸다. 크로스오버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400Hz와 4kHz에서 잘랐다.


Figaro M, 설계디자인

세상은 역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겉보기에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던 오디오솔루션만의 설계 디자인이 피가로 M 곳곳에 배풀어져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 피가로 M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인클로저 설계다. 스피커의 주범이라 할 진동 제거를 위해 서로 다른 공진 주파수를 가진 패널을 샌드위치식으로 조합, 캐비넷을 만든 것이다. 그것도 18mm에서 50mm까지 서로 다른 두께의 패널을 활용했다. 제작사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주 패널은 MDF로 보인다. 오디오솔루션에서는 이 캐비넷 설계를 ‘Self-Locking Design’(셀프 록킹 디자인)이라고 명명했는데, 맞물린 각 패널이 서로를 댐핑시켜 쓸데없는 진동을 제거했다는 뜻일 것이다.

실크 돔 트위터 주변이 옅은 혼 구조로 돼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사실 이 ‘Mini-horn’(미니 혼) 트위터야말로 오디오솔루션 모든 스피커에 채택된 핵심 설계디자인이다. 옅은 혼이 일종의 웨이브가이드 역할을 함으로써 고역, 특히 높은 볼륨에서 고역이 쏘는 것을 완화시켜준다. 참고로 드보어 피델리티의 O/96의 실크 돔 트위터도 비슷한 혼 타입의 웨이브가이드를 달고 있다.


피가로 M의 숨은 비기는 전면 배플을 탈부착할 수 있다는 것. 역시 MDF로 보이는 배플과 천 소재 배플, 2가지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장착하면 된다. 천 소재 배플은 일반 그릴과 마찬가지로 유닛을 모두 덮게 된다. 제작사에서는 이를 ’Stealth Grille’(스텔스 그릴)이라고 부르는데 배플 자체가 그릴 역할을 겸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스텔스 그릴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시청시 그릴을 떼어낼 필요가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이번 시청에서는 유닛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MDF 배플을 선택했다.

▲ Figaro 시리즈의 배플은 MDF 와 패브릭(천) 소재 중에 선택이 가능하다. (사진은 MDF 배플의 공정 모습)

시청

시청에는 BAT의 REX DAC, 몰라몰라(Mola-Mola)의 프리앰프 Makua(마쿠아), 모노블럭 파워앰프 Kaluga(칼루가)를 동원했다. 마쿠아에 내장된 DAC은 바이패스, 룬 코어로 쓰고 있는 필자의 맥북에어에 REX DAC을 USB 케이블로 연결했다. 칼루가는 Ncore NC1200 클래스D 증폭모듈을 채택, 8옴에서 400W, 4옴에서 700W를 뿜어낸다. 시청은 주로 룬을 통해 타이달과 코부즈 음원을 들었다.

Andris Nelsons, Boston Symphony Orchestra ‘Shostakovich Symphony No.5’(Shostakovich Under Stalin’s Shadow)

매끄럽고 보드라우며 해상력이 높은 소리라서 감탄하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스피커가 사라진 점에 놀랐다. 외관만 보면 다부지고 존재감을 크게 어필하는 타입인데 실제 곡이 시작되자마자 그 존재감을 휘발시켜버린 것이다. 스피커가 시청실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먹었을 정도다. 트위터가 미드레인지 밑에 있는 구조, 7.2인치 우퍼 2발, 후면 포트, 정재파를 없앤 인클로저 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스피커 특유의 잡내가 없어 좋다. 이 말은 결국 피가로 M이 그마큼 공진관리를 잘 했다는 반증이다. 여린 음들에서도 에너지감을 잃지 않는다. 4악장 막판 팀파니 8연타에서는 마구 떨어대는 팀파니의 스킨이 눈에 보일 만큼 그 탄력감이 상당하다. 이어 들은 ‘다크나이트’ OST의 ‘Aggressive Expansion’에서는 가슴이 철렁거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극장사운드가 터져나왔다. 7.2인치 우퍼 2발의 협공 덕분이다. 피가로 M, 음의 표현력과 저역을 밀어내는 힘이 돋보이는 스피커다. 물컹한 음이 아니라 단단한 음인 점도 마음에 든다.

Michael Jackson ‘Jam’(Dangerous)

처음 유리창 깨지는 소리의 디테일이 장난이 아니다. DAC, 프리, 파워, 스피커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순간순간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각 악기들의 앞뒤 레이어감도 대단해서 맨 앞 악기와 맨 뒤 악기의 거리가 최소 10m 정도로 느껴진다. 이 입체감과 공간감이야말로 스테레오 오디오가 선사하는 최대의 매직이다. 어쨌든 안드레아스 코흐가 DAC 파트를 설계한 REX DAC과 피가로 M 모두 해상력이 높다. 스피드도 빠르다. 전체적으로 불만이 전혀 없는, 아니 새로운 또 하나의 표준으로 삼아도 될 만한 재생음이 나오고 있다. 단단하고 파괴적이며 펀치력이 아주 센 음들이다. 좀전에 쇼스타코비치의 그 여린 음들을 살뜰하게 내줬던 그 스피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야누스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국 표현력이 좋고, 표정이 풍부한 스피커라는 이야기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어떤 곡을 만나서도 자기 주장이 없는, 그래서 뉴트럴하고 내추럴한 성향의 스피커라 할 수 있다.

Philippe Hereweghe, Collegium Vocale ‘Cum Sancto Spiritu’(Bach Mass in B Minor)

정말 음수가 많고 음의 표면이 보드랍다. 피가로 M은 그야말로 강호에 고수가 내려온 느낌이다. 특히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원수가 점점 늘어나는 대목에서는, 그 홀로그래픽한 이미지가 마치 분재를 보는 것 같다. 이쪽에는 작은 활엽수, 저쪽에는 큰 침엽수가 아기자기하게 미니어처로 자리잡은 그 분재의 이미지. 그러면서 요즘 더욱 보고 싶은 그 미세먼지 사라진 파란 하늘처럼 투명하고 깨끗한 음들을 들려준다. 스피커 외관만 보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음의 잔치다. 조용하게 공기청정기를 틀어놓은 방, 넓은 통유리창을 통해 햇볕이 기분좋게 들어는 방에 앉아있는 것 같다. 여성단원 목소리가 여성답게 들리고, 단원들 저마다 톤이 서로 뭉치지 않고 사람수만큼 서로 다르게 펼쳐지는 것을 보면 DAC과 스피커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Vladimir Ashkenazy, Ada Meinich ‘Shostakovich Viola Sonata’(Shostakovich Piano Trios 1&2, Viola Sonata)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적막한 배경이다. 음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달빛이 내리는 소리가 있다면 그마저도 들릴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 피아노 왼손이 내는 음은 한없이 내려간다. 스펙상 32Hz라는 저역 하한은 괜한 수치가 아니다. 수십번은 들었을 이 곡이 이날 따라 낯설게 느껴져 그 이유가 뭔가 생각해봤더니 그것은 바로 음이 살아있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죽은 녹음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연주하는 듯한 음이었던 것이다. 이어 에릭 클랩튼의 라이브 음원 ‘Wonderful Tonight’을 들어보면 섬세하고 고운 입자를 가진 음, 선명하고 깨끗한 음, 잡티가 없는 음, 그렇다고 차갑거나 냉랭하지 않은 음 등 지금까지 파악한 피가로 M(을 포함한 전체 시스템)의 특성들이 모두 드러난다. 피가로 M은 가격대를 떠나서도 성능이 출중한 스피커다. ‘알고보니 고수’ 이런 느낌이다.

※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총평

고백컨대 요즘 스피커에 대해 생각이 많다. 그동안 집에서 잘 써오던 스피커에 왜 그렇게 불만이 생기는지 제어가 안될 정도다. 급한 마음에 조그만 북쉘프를 하나 들여놓긴 했지만, 역시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급은 아니다. 적어도 나와 함께 할 스피커라면 기본적으로 광대역에 잡맛이 없는 소리를 들려줘야 한다. 위아래가 잘린 소리, 진동판과 보이스코일과 마그넷이 느껴지는 소리, 캐비넷과 포트가 내는 노이즈 가득한 소리는 아무래도 안된다. 못난 디자인도 용납이 안된다.


이런 맥락에서 오디오솔루션의 피가로 M은 눈여겨 볼 만한 스피커였다. 32Hz까지 떨어지는 저역은 일단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7.2인치 우퍼 2발이 내는 저역의 펀치감은 청감상으로도 대단했다. 극장 사운드를 뿜어낸 ‘다크나이트’ OST가 그 증거다. 특히 페이퍼 콘 미드와 우퍼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역시 페이퍼 콘은 디테일과 풋워크 측면에서 변함없는 ‘갑’임을 새삼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단단한 캐비넷 설계도 공진을 내쫓아버렸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런 고수가 느닷없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전통의 유럽과 미국 스피커들은 바짝 긴장을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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