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PMC 설립자를 만나다 !

조회수 2018. 12. 7. 15: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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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C 대표 피터 토마스 인터뷰

▲ 현 PMC CEO , 피터 토마스 (Peter Thomas)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늘 환한 미소를 짓는 그를 나는 오지 오스본이라고 부른다. 오지는 전설적인 해비 메탈 그룹 블랙 사베스의 리더 싱어였고, 솔로 아티스트로도 큰 족적을 남긴 뮤지션이다. 그는 내가 지은 별명이 마음에 드는지, 별로 반대를 하지 않는다. 아마도 가끔 그런 오해를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오디오 업계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버린 그를 갑자기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서 예고도 없이 맞닥트렸다. 이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평소 거의 해외 나들이를 하지 않는 그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나?


아무튼 오랜 기간 알고 지내면서 제대로 된 인터뷰 한번 한 적이 없어서, 내게는 이것이 절호의 기회였다. 그 주인공은 바로 PMC를 창업하고, 오랜 기간 걸작들을 발표해 온 디자이너 피터 토마스(Peter Thomas)씨다. 지금부터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내밀한 부분을 중심으로 다뤄보겠다. 덧붙여 최근에 발표된 신작 페네스트리아(Fenestria)에 대한 소식도 전하도록 하겠다. 편의상 토마스씨의 영문 이니셜 PT로 표기하고 인터뷰를 진행해본다.


▲ PMC 설립자 피터 토마스(좌)와 인터뷰 진행자 이종학님(우)

Lee. 이렇게 한국에서 만날 줄 몰랐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PT : 원래 여행을 잘 다니지 않지만, 페네스트리아가 나온 것을 계기로 아시아 국가들을 쭉 둘러보려고 결심했습니다. 한국이 그 첫 번째 방문지랍니다.

Lee. 사실 이런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은 만큼, 토마스씨의 개인적인 부분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들려주시죠.

PT : 저는 1955년에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저의 조부 때문입니다. 6살 무렵, 그 분이 쓰시던 축음기에 주목했기 때문이죠. 78회전 SP를 돌리는 이 기기는, 녹음 자체도 일절 일렉트로닉스가 개재되지 않은, 순수한 아날로그 형태입니다. 그 음이 어린 시절에 강하게 각인되었답니다. 현재도 제가 만드는 스피커 음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Lee. 축음기라고 하니, 상당히 인상적이군요.

PT : 1912년에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당시에도 이미 고물 취급을 받았지만, 녹음의 순도라던가 어쿠스틱한 음향을 생각하면 제게는 무척 소중한 체험이었죠. 이후, 10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과 하이파이에 빠져들었습니다.

Lee. 그 때가 1960년대인데, 브리티쉬 인베이션이라고 해서 영국에서 대단한 밴드가 많이 나왔죠 ?

PT : 맞습니다. 특히 저보다 11살 연상인 누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음악을 차곡차곡 LP로 사 모았으니까요. 그것을 들으며 감수성이 예민하던 10대 시절을 보냈죠. 당시 저희 집엔 LP를 무려 10장이나 쌓아놓고, 차례차례 들을 수 있는 오토 체인저 턴테이블이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10장을 질리지도 않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Lee. 요즘 그 시절 음악이 재조명되고, 특히 비틀즈의 후기 앨범들이 발매 50주년을 맞이해서 새로운 패키지로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PT : 사실 1967년 당시, 비틀즈의 < Sgt. Pepper > 앨범이 나왔을 때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오리지널 테잎으로 이 음반을 다시 들었습니다. 그때 사용된 스피커가 바로 PMC입니다. 여러모로 뜻깊은 순간이었죠.

Lee. 대단합니다. 역시 스튜디오와 홈 오디오 모든 부분에서 인정을 받는 PMC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혹, 음반도 컬렉션하십니까?

PT : 당연히 합니다. 조부의 78회전 SP에 대한 추억 때문에, SP는 주로 블루스, 재즈쪽을 많이 모았습니다. 거기에 45회전 도너츠 판이 4천장 정도 되고, LP는 약 7천장 정도 됩니다. 거기에 릴 테잎도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컬렉션 취미는 절대로 버리지 못할 것같습니다. (웃음)

Lee. 그렇군요. 그럼 10대 시절로 돌아가서, 하이파이 이야기를 해볼까요?

▲ IMF 사의 스피커

PT : 음악을 좋아했으므로, 오디오에도 당연히 관심이 많았죠. 하지만 남들이 좋다는 시스템을 들어봐도 통 만족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쿼드의 ESL 오리지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스피커에서 이런 음도 나올 수 있구나 처음 깨달았죠. 또 당시 최초로 트랜스미션 라인을 쓴 IMF 스피커를 만난 다음 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설계 방식이 다른 두 계통의 스피커가 나를 사로잡은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역시 디스토션이 적고, 중역대가 살아있는 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Lee. 운명적으로 IMF 스피커를 만나게 된 것이군요. 그때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PT : 당시 운이 좋아, KEF의 프로덕션 매니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추천한 스피커를 쓰면서 꽤 만족한 상태였습니다. 또 그를 통해 오디오에 관한 지식을 넓힐 수 있었죠. 그러다 하이파이 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를 통해 IMF 스피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서 들어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Lee. 그렇군요.

PT : 1970년대만 해도, 정말 오디오의 붐이 굉장했습니다. 영국만 하더라도 올림피아 홀과 같은 큰 곳에 다양한 하이파이를 전시해서 거창하게 행사를 진행했으니까요. 단, 당시 저로서는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을 만큼, IMF의 스피커는 비쌌습니다. 그래서 은행에 가서 대출 상담을 받기도 했답니다. (웃음)

Lee. 이제 20대 시절로 가볼까요?

PT : 제가 사는 곳은 캔터베리와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래서 캔터베리 대학에 들어가 전자공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부친이 큰 병환을 앓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다 취직한 곳이, 군에 쓰이는 전송기를 제조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일하면서, 부친을 간호하는 등, 3~4년 정도를 고향에서 지냈습니다. 이후, 캔터베리 대학에 돌아와 학업을 마칠 즈음,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Lee. 무슨 기회인지 궁금해지는군요.

PT : 바로 BBC 관계자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당시 BBC는 방송국 운영뿐 아니라, 각종 방송 기재에 관한 연구와 제조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부분의 엔지니어가 필요했죠. 그래서 각 대학을 돌며, 이른바 리쿠르트를 한 것이죠. 다행히 저는 인터뷰를 잘 해서, 드디어 BBC에 입사하게 됩니다.

Lee. 대단합니다. BBC라고 하면, 영국의 많은 오디오 설계자들이 배출된 곳이 아닙니까? 일종의 사관학교라고 해도 좋을 정도죠.

PT : 맞습니다. 돌이켜 보면, 여기서 참 오디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답니다. 일례로 취업후 6개월 동안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습니다. 그 과정은 일종의 컬리지에서 실시됩니다. 여기서 마이크로폰부터 해드폰, 앰프, 스피커 등 다양한 부분에 걸쳐 교육을 받습니다. 전문적인 녹음이나 편집은 물론이고요. 심지어 라디오 송출에 관한 부분이나 튜너의 원리같은 것도 배우게 됩니다. 이런 교육 과정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이죠.

Lee. 아하, 그래서 BBC 출신들이 오디오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군요.

PT : 지금은 이런 전문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지만, 당시 그런 트레이닝을 받은 분들이 오디오 업계에 꽤 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BBC의 다양한 부서에 그때 그때 배속되더라도 일체 지장이 없어야 했습니다. BBC는 뉴스, 드라마뿐 아니라 쇼도 있고, 어린이용 방송도 있고 다큐멘터리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프로그램에 투입되더라도 능숙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음악쪽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그쪽 일을 맡게 되어, 클래식뿐 아니라, 재즈, 팝, 록 등 다양한 음악을 녹음할 수 있었습니다.

Lee. 정말 음악 그 자체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던 환경이군요.

PT :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또 BBC엔 일종의 박물관 같은 곳이 있습니다. 여기엔 최초의 마이크부터 다채로운 앰프, 스피커 등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틈만 나면 그곳에 들러 과거 명기를 살펴보곤 했죠. 그런 내 성향을 알았는지,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Lee. 그게 뭔가요?

PT : R&D 계통의 일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BBC에 납품되는 스피커를 검침하고 또 문제가 생기면 수리하는 등, 한 마디로 본격적인 엔지니어링 일입니다. 덕분에 많은 회사들이 BBC에 가져오는 스피커를 듣고, 평가하고, 판단을 내리는 일을 한동안 했습니다. 그 와중에 과연 좋은 스피커는 어때야 하는가, 그 기준을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이를테면 탄노이나 JBL 등이 자주 쓰였습니다. 하지만 저희 판단으로는 BBC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뭔가 BBC다운 스피커가 있지 않을까 하다가, 그만 내 스스로 제조하기에 이른 겁니다.

Lee. 그게 바로 PMC의 모태가 되었군요.

▲ PMC 에서 최초로 BBC 심사를 통과한, BB5 모델

PT : 맞습니다. 당시 BBC의 비즈니스 파트에 애드리언 로더라는 친구가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오디오파일입니다. 그래서 함께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며 하이파이에 몰두했습니다. 무려 10년간 그렇게 함께 토론하다가 드디어 스피커를 함께 만들기에 이른 겁니다. 당시 BBC에선 커다란 스피커를 원했습니다.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8피트짜리 높이에 커다란 덕트를 갖춘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그게 바로 BB1입니다. 처음에는 채택하지 않고,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지적하더군요. 그래서 계속 수정해서 보내고 그러다 퇴짜 맞고 또 수정 사항이 나오고 하는 일이 반복되다가 최종적으로 BB5에 이르러 채택이 되었습니다. 정말 하늘을 날아오를 만큼 기뻤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Lee. 무슨 문제인가요?

PT : 당시 저는 BBC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BBC 입장에선 직원이 만든 제품을 돈 주고 산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저는 둘 중에 하나의 옵션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냥 스피커 제조를 포기하던가 아니면 퇴사해서 정식으로 납품을 하던가. 결국 저는 후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이후, 에드리언과 함께 1991년에 PMC를 창업했습니다.

▲ PMC 공동 창업자인 애드리안 로더 (좌), 피터 토마스 (우)

Lee. 아,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PT : 처음에는 제 집에서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개러지에 공방을 차린 것이죠. 하지만 비즈니스가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곧 전문적인 공장을 얻게 됩니다. 특히, 에드리언은 헐리웃이며 각종 녹음 스튜디오를 방문해서 직접 음을 들려주고, 오더를 따오는 등, 신생 브랜드치고는 매우 빠른 시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답니다. 그 후, 하이파이용으로 LB1을 런칭하면서 스튜디오뿐 아니라 홈용 오디오도 함께 만드는 회사로 성장했죠.

Lee. 이번에 만든 제품은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PT : 인간의 귀로 향하는 창문입니다. 말하자면 깨끗한 창을 통해 일절 왜곡이 없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듯, 저희 스피커를 통해 녹음된 음악을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듣기를 원해서 만든 것입니다.

Lee. 외관이 전통적인 PMC 스타일과 달라서 놀랐습니다.

PT : 여기엔 현재 저희 R&D 팀을 이끌고 있는 올리버 토마스의 공이 큽니다. 제 아들 칭찬하기가 뭐하지만, 원래 그는 F1 그랑프리의 레드 불 팀 소속입니다. 여기서 다양한 기술을 쌓은 다음, PMC에 와서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답니다. 그가 주축이 된 6명의 디자인 팀이 설계를 했고, 저도 상당 부분 관여했죠.

Lee. 이런 스피커를 설계할 정도면, PMC의 다음 세대에 대한 기대를 해도 좋을 것같습니다. 사실 많은 오디오 회사들이 후계자가 없어서 문을 닫는 경우가 많은데, PMC의 경우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느낌입니다. 이제 신작에 대해 개괄적인 내용을 소개해주시죠.

▲ PMC Fenestria 모델에 적용된 Laminair (포뮬러 1 머신에 적용된 공기역학기술)

PT : 우선 몇 가지 원칙을 갖고 접근했습니다. 첫 번째는 캐비닛에 관한 부분인데, 일절 진동이 없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저역과 중역 그리고 고역을 다 고립시키는 겁니다. 일절 상호 간섭이 없도록 하기 위해, 별도의 챔버에 담았습니다. 세 번째는 그 결과, 미드레인지의 경우 뒷면이 개방된 형태로 했습니다. 저희는 이것을 둥지(Nest)라고 부릅니다만, 이를 위해 마그넷 시스템을 독특하게 꾸몄습니다. 즉, 커다란 메탈 중앙을 그대로 파낸 형태로 해서, 완벽한 마그넷 구조를 실현한 것이죠. 네 번째는 트랜스미션 라인에 관한 부분입니다. 여기에 라미네어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것은 올리버가 F1에서 일하면서, 여기에 쓰이는 자동차가 공기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그 부분을 이용해서 설계한 것입니다. 그 결과 트랜스미션 라인을 흐르는 공기의 흐름이 보다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Lee. 사실 신작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설명하려면 소책자 정도가 필요할 것같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전문적인 리뷰가 있을 때 소개하기로 하고, 아무튼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PMC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PT : 감사합니다.


인터뷰 후, 토마스씨는 본격적인 발표회를 가졌다. 그 전에 잠깐 짬을 내어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나도 초대를 받아 가벼운 환담을 나눌 수 있었다. 이 와중에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하나 듣게 되었다.


예전에 스티비 원더가 영국에 공연을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스위트 룸에 묵으면서 갑자기 음악을 듣고 싶어졌단다. 그래서 부랴부랴 스피커를 섭외하게 되었는데, 당연히 선택은 PMC. 그래서 토마스씨가 직접 스피커를 차에 싣고 호텔로 갔다고 한다.


일단 스티비를 만나기 위해선, 리셉션을 통과해야 한다. 처음에는 무심코 스티비 원더를 찾아왔다고 하니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한다.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뭐 하나가 기억이 났다. 이런 슈퍼 스타는 늘 비밀리에 움직이므로, 자기와 같은 손님이 방문할 경우 암호를 따로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암호를 기억해서 말하니 자연스럽게 스위트 룸으로 안내되었다. 사실 거기에 스티비가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러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노크를 하니 이윽고 문이 열리고 드디어 스티비 원더가 나왔다. 바로 스티비가 !

조심스럽게 스피커를 설치하고 음악을 들려주면서 스티비의 표정을 살폈다. 한데 그가 활짝 웃으며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닌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덕분에 파티 초대까지 받았다. 며칠 후, 친한 지인 몇 명만 초대해서 벌이는, 아주 내밀한 프라이비트 파티가 있는데 꼭 와달라는 것이다. 처음엔 적극 사양했지만, 그가 하도 강하게 권유하는 바람에 결국 응낙하게 되었다.


이윽고 며칠 후, 그 파티에 갔다. 거기서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바로 스티비 원더가 연주하는 건반 악기 옆에 서서 직접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PMC를 제조하기에 경험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나누자면, 토마스씨와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같았다. 언제 기회가 되면 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끌어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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