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LP 라이프를 위한 아날로그 급행열차
결국 LP인가. 몇년 전부터 LP는 핫 아이템이 됐다. 이를 증명할 수치와 증거는 차고 넘친다. 친하게 지내는 음반가게 주인 말을 들어보면 요즘 20대 젊은층이 구매하는 것은 CD가 아니라 LP다. 그들 말이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듣고, 음반은 LP로 소장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과거 명반들이 속속 LP로 재발매되는 것도 이같은 트렌드에 재빨리 올라타기 위해서다.
그러나 LP는 디지털 스트리밍이나 CD재생보다 요구사항이 많다. 턴테이블과 포노앰프가 있어야 하고, 턴테이블은 기본적으로 톤암과 카트리지를 갖춰야 한다. 더욱이 턴테이블은 아날로그 모터 시스템이다 보니 ‘불규칙한 회전’ 혹은 ‘고장’에 대한 염려 스트레스도 분명히 있다. 게다가 유료가입 한번으로 끝나는 스트리밍과는 달리, LP는 자기가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 반드시 하나하나 구매해야 한다.
그럼에도 LP는 디지털 음원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만족도가 있다. 클럭과 오버샘플링, 필터 따위가 필요없는 자연스러운 소릿결, 흔히 말하는 아날로그 사운드가 그 첫째다. CD와는 비교가 안되는 큼직한 재킷도 마치 캔버스를 보는 듯한 눈맛을 선사한다. 유저가 세팅하기에 따라 음질이 확확 바뀌는 점, 부품 하나하나를 바꿔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취미성 확장성도 매력적이다.
문제는 선택지가 너무 많다는 것. 조그만 스피커까지 딸린 그야말로 올인원 턴테이블부터, 톤암을 따로 구매해야 하는 톤암리스 턴테이블까지 많아도 너무 많다. ‘일단은 입문형으로 시작하고 나중에 고급으로 넘어가면 돼’라는 달콤한 유혹도 있고, ‘처음부터 좋은 걸로 시작해. 그게 결국 남는 거야’라는 솔깃한 부추김도 있다. 자칫하다가는 ‘결정장애’를 일으킬 만한 지경이다.
필자의 가이드라인은 이것이다. 1) 브랜드의 업력, 2) 조작성, 3) 확장성, 4) 만듦새, 5) 스펙이다. 물론 음질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 자신의 구매 예산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최근 풀레인지 시청실에서 들어본 데논(Denon)의 ‘DP-400’ 턴테이블은 이런 가이드라인 모두를 만족시켰다. 한마디로, 만약 필자가 예전 턴테이블 구매 당시로 돌아간다면 주저없이 선택했을 제품이다.
데논과 아날로그 플레이어
데논은 설립 100년이 훨씬 지난 관록의 브랜드다. 1910년 설립된 일본축음기상회가 1946년 일본 컬럼비아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했고, 이후 1963년 일본전기음향(Nippon Denki Onkyo)을 흡수하면서 이 회사 브랜드였던 ‘Denon’을 지금의 사명으로 채택했다. ‘Denon’은 전기(Denki)와 음향(Onkyo)의 앞 두 글자를 따온 것이다. 데논은 이후 2002년 마란츠와 합병, D&M홀딩스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어쨌든 모태였던 일본축음기상회와 일본 컬럼비아 주식회사가 레코드, 1939년 일본 최초의 녹음기 메이커로 출범한 일본전기음향이 녹음기, 톤암, 카트리지 전문이었으므로 지금의 데논은 LP와 아날로그 플레이어 모두를 아우르는 흔치않는 업력을 자랑한다.
일본 최초의 축음기(닛포노폰. 1910년), 일본 최초의 모노럴 MM카트리지(P16A. 1941년)가 바로 데논이 만든 제품이다. 데논의 베스트셀러 MC카트리지인 ‘DL-103’의 경우 NHK와 공동으로 개발, 1964년 11월부터 NHK에 납품된 것은 물론 민영방송사에도 거의 표준장비처럼 채용됐다.
데논이 홈오디오에 본격 뛰어든 것은 1970년대부터다. 턴테이블 ‘DP-5000’(71년)과 ‘DP-3000’(72년), 인티앰프 ‘PMA-500’(72년)과 ‘PMA-700’(73년) 등이 빠르게 당시 시장을 잠식한 대표 모델들이다. 프로오디오 분야에서 세계 최초의 디지털 방식에 의한 PCM 녹음기 ‘DN-023R’(72년)을 내놓은 것도 데논이었다.
1970년대~80년대 초 LP 전성기 시절을 주름잡았던 데논의 주요 턴테이블을 요약하면 이렇다.
DP-5000(1971년) | 원반형 턴테이블 본체(캐비넷에 담은 모델은 DP-5500), 암리스, 다이렉트 드라이브, 2상 AC모터, 알루미늄 플래터(1.1kg), 33 1/3, 45rpm, 와우&플러터 0.03%, SNR 60dB |
DP-3000(1972년) | DP-5000의 저가형 모델, 원반형 턴테이블 본체(캐비넷에 담은 모델은 DP03500), 2상이 아닌 단상 AC모터 구동인 점을 빼면 다른 사양은 DP-5000과 동일 |
DP-1000(1974년) | DP-3000의 저가형 및 컴팩트 모델, 무게 6kg |
DP-790(1975년) | 스태틱 밸런스형 S타입 유니버셜 톤암 및 MM카트리지 DL-8(3mV) 장착, 다이렉트 드라이브, AC모터, 알루미늄 플래터(1.1kg), 33 1/3, 45rpm, 와우&플러터 0.03%, 합판 캐비넷, 무게 9.6kg |
DP-50L(1978년) | 오토 리프트, 스태틱 밸런스형 S타입 유니버셜 톤암 장착, 다이렉트 드라이브, AC모터, 알루미늄 플래터(1.2kg), 33 1/3, 45rpm, 와우&플러터 0.015%, SNR 75dB, PVC 커버 합판 캐비넷, 무게 11kg |
DP-80(1978년) | 원반형 턴테이블 본체, 암리스, 다이렉트 드라이브, 3상 AC모터, 더블 알루미늄 플래터(3kg), 33 1/3, 45rpm, 와우&플러터 0.015%, SNR 77dB, 무게 10kg |
DP-60L(1980년) | 오토 리프트, 스태틱 밸런스형 S타입 톤암 장착, 다이렉트 드라이브, AC모터, 알루미늄 플래터, 33 1/3, 45rpm, 와우&플러터 0.015%, SNR 78dB, 파티클 보드 캐비넷, 무게 13kg |
DP-100(1981년) | 암리스(톤암 장착 모델은 DP-100M), 다이렉트 드라이브, 하이토크 3상 AC모터, 더블 알루미늄 플래터(6.5kg), 플로팅 암보드, 33 1/3, 45, 78rpm, 와우&플러터 0.003%, SNR 90dB, 알루미늄 프레임, 무게 46kg |
DP-900M(1996년) | 스태틱 밸런스형 S타입 유니버셜 톤암 장착(헤드쉘 별매), 다이렉트 드라이브, AC모터, 알루미늄 플래터, 33 1/3, 45rpm, 와우&플러터 0.02%, SNR 78dB, MDF 캐비넷, 무게 13kg |
DP-A100(2010년) | 데논 설립 100주년 기념모델, 9.6인치 스태틱 밸런스형 S타입 유니버설 톤암 및 MC카트리지 DL-A100(0.3mV, 100옴) 장착, 다이렉트 드라이브, AC모터, 알루미늄+실리콘 플래터, 알루미늄 암보드, 33 1/3, 45rpm, 와우&플러터 0.02%, 하이글로스 마감 원목 캐비넷, 무게 15.7kg |
현재 데논의 턴테이블 라인업은 엔트리 모델인 ‘DP-29F’(2003년 출시), 중견 ‘DP-200USB’(2009년 출시), 고급 ‘DP-300F’(2008년 출시)와 이번 시청기인 ‘DP-400’로 나뉜다. ‘DP-400’의 자매 모델로 USB 포트를 통해 LP 음원을 mp3나 WAV 파일로 디지털 변환할 수 있는 ‘DP-450USB’도 있다. 70~90년대 모델들이 AC모터에 의한 다이렉트 드라이빙 방식이었던 것에 비해 이들은 DC모터, 벨트 드라이브 타입에 톤암과 MM카트리지, MM포노 스테이지까지 갖췄다.
한편 카트리지는 ‘DL-103’(1964년 출시. 0.3mV, 40옴), ‘DL-103R’(1994년 출시. 0.25mV, 14옴), ‘DL-110’(1983년 출시. 1.6mV, 160옴)이 있다. 모두 MC카트리지다.
DP-400, MM포노 내장 아날로그 플레이어
지난 9월 출시된 ‘DP-400’은 S타입 톤암에 MM카트리지, MM포노스테이지를 갖춘 올인원 아날로그 플레이어. 플래터 회전속도는 33과 1/3, 45, 78rpm에서 선택할 수 있고, 재생이 끝나면 톤암이 자동으로 올라오고 플래터는 멈추는 ‘오토 리프트&스톱’ 기능까지 있다. 이에 비해 전작이라 할 ‘DP-300F’는 78rpm 회전 기능이 없었고, 톤암은 오토 리프트&스톱은 물론 다시 암레스트로 돌아가는 ‘풀(Full) 오토매틱’ 시스템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톤암부가 가장 마음에 든다. 붙박이어서 다른 톤암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탈부착이 가능한 유니버셜 헤드쉘 타입이기 때문에 다른 헤드쉘로 갈아 낄 수 있는 취미성이 크다. 물론 기본 헤드쉘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스타일러스만 바꾸거나 다른 MM 혹은 MC 카트리지를 장착할 수도 있다. 카운터웨이트 앞쪽에 눈금 링이 있어 침압을 정교하게 맞출 수 있는 점, 안티스케이팅 다이얼까지 갖춘 점도 가격대를 감안하면 만족스럽다.
본격적으로 따져보자. ‘DP-400’은 기본적으로 벨트 드라이브 턴테이블이다. 내장 DC 서보모터가 고무벨트로 플래터를 돌린다. 겉으로는 안보이지만 고무 매트를 들어올려 보면, 플래터에 난 네모난 구멍을 통해 본체 롤러와 플래터가 벨트로 연결돼 있는 모습이 보인다. 본체에 있는 회전수 조절 다이얼을 ‘오프’로 돌리면 플래터가 재빨리 멈추는데, 이는 이 롤러와 실제 벨트가 걸려있는 안쪽 플래터 사이의 간격이 매우 가까운 덕분으로 보여진다.
톤암은 알루미늄 재질의 9인치 S타입. 톤암 피벗과 침선까지의 유효거리는 220mm, 침선과 스핀들 중심부까지의 오버행은 16mm를 보인다. ‘DP-400’ 톤암은 추(카운터웨이트)를 돌려 침압을 조정하는 스태틱 밸런스형. 때문에 1) 톤암 뒤쪽에 달린 카운터웨이터를 돌려 톤암을 수평맞춤한 후(오프셋 각도 23도), 2) 카운터웨이터 앞부분의 링을 0점 조정한 다음, 3) 링의 눈금을 다시 카트리지 적정 침압에 맞춰 돌려주면 된다.p>
시청시에는 ‘DP-400’에 기본 장착된 MM카트리지(버전 CN-6518)의 적정 침압이 2g이기 때문에 눈금 ‘2’에 맞췄다. 데논에 따르면 무게 5g의 이 MM카트리지는 2.5mV 출력을 내며 400시간 동안 재생할 수 있다. MM카트리지이기 때문에 바늘(스타일러스)만 교체할 수 있는데, 데논의 ‘DSN-85’ MM스타일러스와 호환 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스타일러스가 아니라 MM, MC 카트리지로 통째로 바꿀 수 있다. 카트리지 무게가 5~13g이면 된다.
톤암 중심부 오른쪽에는 또한 안티스케이팅 조절을 위한 눈금 다이얼이 달려 있다. 안티스케이팅(anti-skating)은 말 그대로 카트리지가 LP 그루브를 정확히 트래킹하지 않고 안쪽이나 바깥쪽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컨트롤. 때문에 이 안티스케이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스타일러스 바늘이 쉽게 마모되고 소리의 좌우밸런스도 무너지게 된다. 눈금이 있는 안티스케이팅 다이얼의 경우 침압과 동일하게 맞추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DP-400’ 시청시에는 이 안티스케이팅 다이알 눈금을 ‘2’에 맞췄다.
내장 포노스테이지는 MM카트리지에만 대응한다. MC카트리지의 경우 별도의 포노스테이지가 필요한데, 이 경우에는 ‘DP-400’의 내장 포노스테이지를 바이패스하면 된다. 후면에 온오프 스위치가 있다. 물론 자신이 갖고 있는 포노스테이지를 처음부터 쓰고 싶은 경우에도 이 스위치를 오프시키면 된다. 내장 포노스테이지 출력은 150mV, 주파수응답특성은 20Hz~20kH. 출력은 RCA 단자 1조를 통해 이뤄진다. 음질 향상을 위해 ‘DP-300F’에 비해 공급전압을 3배 강화시켰다고 한다.
‘오토 리프트&스톱’ 기능 역시 무척 편리했다. 실제 테스트를 해보니, 스타일러스가 LP 가운데에 있는 라벨에 닿자마자 자동으로 올라가고 곧바로 플래터가 멈췄다. 하지만 후면 스위치로 이 기능을 끌 수도 있다. 이밖에 플래터는 알루미늄 재질이며, 본체 캐비넷은 MDF다. 플래터의 와우&플러터 수치는 0.08%로, ‘DP-300F’(0.10%)보다 개선됐다.
‘DP-400’의 전체 중량은 더스트 커버 포함, 5.8kg을 보인다. 아크릴 재질의 더스트 커버는 일반적인 힌지 타입이 아니라 턴테이블 스핀들에 고정 시키는 타입. 따라서 LP를 재생하지 않을 때에만 쓸 수 있다. 대신 진동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힌지형보다 나아 보인다. LP 재킷을 세워 디스플레이할 수 있도록 받침대를 마련한 디자인도 기발하다.
셋업 및 시청
시청에는 빈센트(Vincent)의 인티앰프 ‘SV700’, 비엔나 어쿠스틱스(Vienna Acoustics)의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 ‘Beethoven Concert Grand SE’를 동원했다. ‘SV700’은 프리부에 진공관, 파워부에 트랜지스터를 쓴 하이브리드 타입 인티앰프로, 클래스AB 증폭 선택시 8옴에서 100W, 클래스A 선택시 8옴에서 50W를 뿜어낸다.
‘베토벤 콘서트 그랜드 SE(심포니 에디션)’는 1.1인치 실크 돔 트위터, 6인치 X3P 콘, 7인치 XPP 스파이더 콘 3발을 갖춘 베이스 리플렉스 타입. 비엔나 어쿠스틱스의 상징인 투명한 미드, 우퍼 유닛이 인상적이다. 주파수 응답특성은 28Hz~22kHz, 공칭 임피던스는 4옴에 감도는 91dB.
총평
개인적으로도 점점 LP를 듣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더욱이 10월 가을에는 LP의 따스한 아날로그 사운드가 제격이다. 스펙 따라잡느라 몇 년을 고생했던 그 DAC이나 클럭이 없는 재생이어서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턴테이블의 플래터가 돌아가고, 카트리지가 LP를 따라가는 모습 자체가 재생음의 한 부분이다. 이런 LP 사운드를 처음부터 제대로 만끽하고 싶은 애호가들에게 이번 ‘DP-400’을 추천한다.
일단 드라이빙 시스템과 내장 포노앰프의 기계적 완성도가 높다. MM카트리지의 성능 역시 ‘DL-103’의 데논답다. 우습게 여기다간 큰 코다칠 만한 음질이다. 블랙톤의 외관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상당히 고급스럽고, 오토 리프트&스톱 기능은 스타일러스나 유저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다. 톤암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침압과 안티스케이팅을 비교적 정밀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점, 유니버설 헤드쉘 타입인 점이 마음에 든다. ‘DP-400’은 시행착오 없이 단번에 LP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아날로그행 급행열차다.
S P E C I F I C A T I O N
Rated Output | 2.5 mV / 1 kHz |
Frequency Range | 20 Hz - 20 kHz |
S/N ratio | 65 dB |
Rated Output Phono EQ | 150 mV / 1 kHz |
Frequency Range Phono EQ | 20 Hz - 20 kHz |
Available Colours | Black |
Maximum Dimensions (W x D x H) in mm | 414 x 342 x 132 |
Weight in kg | 5.8 (w/ Dust cover) |
I M P O R T E R & P R I C E
수입원 | D&M 세일즈 마케팅 코리아 (02)715 - 9041 |
가격 | 66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