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고 도타운 LP만의 디테일

조회수 2018. 7. 16. 12:01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어쿠스틱 솔리드 Solid Wood MPX

턴테이블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렸을 적 갖고 놀던 프라모델 같다는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박스를 열면 플라스틱 프레임에 여러 부품들이 달려 있고, 이를 정성스럽게 잘라내 본드로 붙여 천천히 완성한다. 모터로 움직이는 스포츠카가 됐든, 거의 구체관절 인형급의 무동력 로봇이 됐든 그 완성 모델을 품에 안고 온갖 상상을 해가며 행복한 잠자리에 들던 때가 떠오른다.


최근 독일 어쿠스틱 솔리드(Acoustic Solid)의 턴테이블 ‘Solid Wood MPX’를 시청하면서도 그 프라모델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육중한 알루미늄 플래터를 들어보고, 스핀들에 묻은 오일을 눈으로 확인하고, 적층 합판의 베이스를 주먹으로 쳐보고, 외장 AC모터가 실리콘 벨트로 플래터를 돌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치 내 손으로 완성한 견고한 프라모델을 품에 안은 듯했다.


장착된 톤암은 일본의 유명 톤암제작사 젤코(Jelco)의 스테디셀러 ‘SA-750D’, 카트리지는 일본 엑셀 사운드(Excel Sound)의 ‘Hana SL’ MC카트리지. 이미 세팅은 끝났고 필자의 애장 LP만 올려놓으면 된다. 중고장터에서 70만, 80만원을 호가하는 브라운아이드소울의 3집 ‘B.E.S’ LP를 올려놓고 ‘똑같다면’을 재생해본다. 역시 겉에서 풍기는 이미지만큼이나 견고하고 착실한, 무게중심이 낮고 디테일이 돋보이는 음이다. 프라모델을 만들던 그 소년의 마음으로 독일에서 건너온 이 턴테이블의 세계를 탐구해본다.


▲ Acoustic Solid Wood MPX

1997년 설립된 어쿠스틱 솔리드의 턴테이블은 현재 알루미늄 라인과 클래식 라인으로 분류된다. 알루미늄 라인은 베이스 재질이 알루미늄이고, 클래식 라인은 적층합판이나 MDF다. 하지만 어떤 라인, 어떤 모델에서도 일관되는 것은 묵직한 알루미늄 플래터다. 그것도 통알루미늄을 CNC 머신으로 깎아냈다.


라인업상 중급기인 ‘Solid Wood MPX’만 해도 플래터 두께가 60mm, 무게가 13kg이나 나간다. 턴테이블 본체 전체 무게(35kg)의 3분의 1 이상이 이 플래터가 차지하는 셈. ‘이렇게 무겁고 견고한 플래터로 아날로그 재생의 최대 적인 진동을 감쇄시킨다’. 이것이 필자가 파악한 어쿠스틱 솔리드의 턴테이블 기본 설계사상이다.


잘 아시는 대로 플래터는 회전하면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공진하고, 이는 카트리지에 불필요한 전기신호로 입력돼 음질 저하의 원인이 된다. 또한 어쿠스틱 솔리드가 즐겨 채택하는 교류(AC) 모터는 정속도와 빠른 속도조절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약간의 코깅(cogging torque) 현상을 동반하는 단점이 있다.


어쿠스틱 솔리드는 이 두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플래터 질량을 최대한 높이는 방식, 그것도 속이 꽉 찬 통알루미늄을 깎아내 플래터로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레가 턴테이블이 상급 모델에 주로 육중한 유리를 쓰는 것과 비교된다. 어쨌든 어쿠스틱 솔리드가 2010년과 2011년에 고가의 CNC 머신을 알트도르프(Altdorf) 공장에 들여놓은 이유다.

Solid Wood MPX 본격 탐구

▲ Acoustic Solid Wood MPX

‘Solid Wood MPX’는 기본적으로 벨트 드라이브형, AC모터 분리형, 리지드형 턴테이블이다. 그리고 다른 어쿠스틱 솔리드 턴테이블과 마찬가지로 모든 부품 제작과 조립이 독일 알트도르프 공장에서 이뤄진다. 정밀 기계가공 엔지니어링에 빛나는, ‘메이드 인 저머니’인 것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플래터 하단을 받치고 있는 튼튼한 베이스. MDF가 아닌 적층 합판으로 두께가 무려 70mm에 달한다. 모델명에 붙은 ‘MPX’도 사실 고가의 합판 메이커인 콜롬비아 포레스트 프로덕츠의 상표이름이다. 보기에도 멋질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진동에 강한 특성을 보인다.


상단은 체리목 베니어 마감이고, 하단은 높이 조절이 가능한 스파이크로 3점 지지된다. 35kg에 달하는 턴테이블 본체 자체가 출렁거림이 전혀 없는 리지드 방식으로 지지되는 구조다.

▲ Acoustic Solid Wood MPX

플래터 또한 육중하다. 두께가 60mm로 소재는 당연히 통알루미늄. 무게가 무려 13kg에 달한다. 무게를 최대한 늘려 관성 모멘텀을 높이고 이를 통해 속도 편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설계다. 플래터 상단에는 5mm 두께의 아크릴 매트와 천연가죽 매트가 차례대로 얹혀져 있다.


플래터 하단에는 스핀들 샤프트가 튀어나와 있는데 이를 베이스 중간에 있는 스핀들 홀에 끼우는 방식이다. 스핀들 샤프트에는 마찰계수가 적어 회전 능률을 높일 수 있는 세라믹 베어링이 부착되어있다. 스핀들 홀 아래에는 테플론 디스크가 있어 여기에 스핀들 오일을 주입한 후 플래터 샤프트를 끼우면 된다.


모터 어셈블리는 본체에서 분리돼 있다. 알루미늄 케이스의 무게가 상당해 덜렁거릴 위험은 전혀 없다. 이같은 분리형 설계는 모터의 진동이 베이스로 옮겨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하이엔드 턴테이블이 채택하는 방식. 얇은 실리콘 벨트를 모터 상단 풀리와 플래터에 걸어주면 된다. 마찰계수를 최소화한 스핀들 설계와 이같은 분리형 모터 방식 덕에 체감상 와우&플래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모터는 싱크로너스 AC모터를 사용하며, 모터 속도 조절은 별도의 스피드 컨트롤러를 통해 이뤄진다. 마이크로 프로세서로 제어되는 컨트롤러 역시 알루미늄 케이스에 담겼는데, 모터 온/오프는 물론 33 1/3 및 45RPM 선택이 가능하다. 속도 미세 컨트롤 기능까지 있어 매우 정확하게 속도를 맞출 수 있다. 별도 어댑터를 통해 전원을 받은 후 이를 다시 외장형 모터 어셈블리에 전해주는 흐름이다. 정상 속도에 이르면 녹색 LED가 점등이 된다.

SA-750D 톤암과 Hana SL MC카트리지

▲ Acoustic Solid Wood MPX

시청기에는 기존 제품에서 볼 수 있었던 레가 OEM 제작의 ‘WTB300’이나 ‘WTB211’이 아니라 일본 젤코의 ‘SA-750D’ 톤암이 장착됐다. 매우 간단한 마운트와 편리한 작동법 덕분에 인기가 높은 톤암이다. 또한 유니버설 헤드셀 타입이기 때문에 카트리지 탈부착도 간단히 이뤄진다.


어쿠스틱 솔리드가 자체 제작한 톤암 마운팅 플레이트도 주목할 만하다. 전용 렌치 하나만으로 톤암 파이프의 높낮이를 조절, LP와 수평이 되도록 할 수 있는 것. 레가 톤암처럼 VTA(Vertical Tracking Angle) 조절이 어려운 경우 아주 심플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카트리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VTA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카트리지는 엑셀 사운드의 ‘Hana SL’ MC카트리지. 0.5mV의 저출력 MC카트리지로, 스타일러스는 시바타 다이아몬드, 캔틸레버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적정 침압은 2g. 무게가 5g에 불과하고 로딩 임피던스가 400옴이라서 다양한 톤암에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재생 대역은 15Hz~32kHz를 보인다.


시청

시청에는 레가의 포노스테이지 ‘Fono MC’, 코드의 프리앰프 ‘CPA3000’, 누프라임의 플래그십 모노블럭 파워앰프 ‘Evolution One’을 동원했다. 스피커는 포칼의 ‘Sopra No.2’다.

Anne-Sophie Mutter, Herbert von Karajan, Wiener Philharmoniker ‘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in D major, op.35’(Tschaikowsky Violinkonzert)
1악장부터 음의 양감과 두께감, 바이올린 아티큘레이션의 디테일이 엄습해온다. 디지털 음원으로는 전혀 안들리던 정보량의 폭주가 시작된 것이다. 오케스트라 음이 쏟아질 때도 혼탁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루브와 스타일러스 사이에 한치의 빈틈도 없다는 인상이 강하다. 음의 실체가 그저 추상의 음원이 아니라 온기가 느껴지는 음악으로서 다가온다. 순수한 음의 맨얼굴을 간만에 보는 듯한 이 희열. 여리고 천천히 진행되는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에서도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 ‘Sopra No.2’가 사라지는 모습이 짜릿하다. 음의 색채감, 윤곽선의 선명함이 돋보이지만 그렇다고 클리어오디오 스타일의 쿨앤클리어한 성향은 결코 아니다.
브라운아이드소울 ‘똑같다면’(B.E.S)
드럼의 엄청난 다이내믹스에 전율이 인다. 큰 도끼로 아름드리 나무 밑둥을 내리찍는 타격감이 대단하다. 온몸이 무기인 무예타이 고수나 헤비복서의 훅에 얻어맞은 듯하다. 또한 이미지로 비유하면 색번짐이 없는 소리여서, 그루브에 담긴 정보를 모조리 긁어와 단단하게 전해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고역도 아주 끝까지 잘 뻗는다. 저중고역 모두가 어떻게 이렇게 동일한 촉감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감탄스럽기만 하다. 역시 ‘Solid Wood MPX’는 그 설계 이념 그대로 탄력적이고 묵직한 저역, 빈틈없이 정확한 리듬감이 돋보이는 턴테이블이다. 이어 들은 ‘Rainy’에서는 마치 R-2R 래더 DAC으로 듣던 그 진한 카푸치노 향이 전해진다. 쫄깃하며 밀도가 아주 높은 재생음이다.
Janos Starker ‘Boccherini Cello Sonata’(Starker Plays Italian Sonatas)
‘아, 리퀴드구나’. 처음부터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음의 표면이 퍼석거리지 않고 매끄럽고 촉촉했던 것이다. 슈타커 특유의 코로 숨쉬는 기척과 보잉의 디테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엄청난 리얼리즘이다. 역시 이같은 해상력이야말로 LP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사운드스테이지 또한 그 깊이감과 공간감이 장난이 아니다. 점점 이 턴테이블의 성향이 확실해진다. 음이 가볍지 않으면서 착색이 없는, 자기주장을 보태지 않는 그런 턴테이블이다. 음 하나하나가 진하고 무거워서 전혀 흩날리지를 않는다. 그런데도 피부에 와닿는 촉감은 경쾌하고 탄력적이며 리드미컬하다.
Lee Ritenour, Larry Carlton ‘After The Rain’(Larry & Lee)
음의 표면적이 무척 넓다. 기타는 입체적으로 출몰하고, 사운드스테이지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광활하게 펼쳐진다. 노이즈 역시 거의 느낄 수 없는 상황. 음 하나하나가 기분좋게 살아있다. 현의 튕김은 그야말로 10점 만점에 10점이다. 여린 음에서 오히려 그 존재감이 더 도드라지는 이 역설과 반전이 멋있다. 전체적으로 분명하고 똑부러지며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은 알루미늄 플래터를 꼭 닮았고, 음에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우드 베이스를 빼 닮았다. 한마디로 에너지감이 넘치면서도 산뜻한 음, 그래서 즐거운 음을 만끽했다.
※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총평

▲ Acoustic Solid Wood MPX

정리해본다. 어쿠스틱 솔리드의 ‘Solid Wood MPX’는 에스프레소 더블 샷처럼 깊고 풍부하며 입자감이 고운, 향까지 진한 그런 재생음을 들려줬다. 전체적으로 무게중심이 낮고 윤곽선이 또렷하며 디테일에 강한 턴테이블이다. 쿨앤클리어하거나 선명함에만 올인한 스타일은 전혀 아니다. 육중한 알루미늄 플래터와 적층 합판 베이스, 외장 AC모터, 세라믹 베어링 지지 스핀들이라는 4각 편대의 필연적인 결과물일 것이다.


톤암을 포함한 인터페이스도 칭찬할 만하다. 톤암의 경우 웨이트 밸런스와 침압 조절 레벨로 최적의 트래킹 환경을 적극적으로 구현할 수 있고, 스피드 컨트롤러로는 기본 회전속도 조절은 물론 미세한 속도조절까지 가능하다. 안정적인 속도에 이르면 녹색 LED가 켜지는 것도 사소한 것 같지만 직접 써보면 매우 호감이 간다. 클래식한 베이스와 모던한 플래터의 디자인적 시너지도 보는 맛을 높인다. 진하고 두터운 재생음, 촉감이 따스하고 온기 가득한 음, 그러면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정확한 재생음을 원하는 아날로그 애호가들에게 일청을 권한다.

글 : 김편

 S P E C I F I C A T I O N
Platter 60 mm thick aluminium machined from a single billet
Mat Natural leather with a 5mm thick acrylic layer
Tonearm WTB 370 with high quality phono cartridge
Control Microprocessor controlled power supply
Drive String-drive by a separately housed synchronous motor
Chassis 80 mm strong real wood veneers multiplex plywood panel
Dimensions 470 x 370 mm; 250 mm
Weight Approx 35 kg
수입원 헤이스(HEIS)
가격 440만원

추천 기사
우리가 LP에 열광하게 된 이유 - 엘립슨 Omega 100 Carbon
정밀공학에 감성을 더하다 - 어쿠스틱솔리드 Solid 113 Bubinga
매혹의 아날로그 - 노팅험아날로그 Anna Log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