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들로 분한 학생들, '의정부고 졸업사진' 뒷 이야기

조회수 2020. 8. 14. 23: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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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화제가 되는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 최근 공개된 졸업사진 중 한 장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백범 김구, 안중근 의사, 주기철 목사, 이봉창 의사 등으로 분해 찍은 사진입니다. 학생들은 M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직접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전화해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정보를 얻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학생들은 '진관사 태극기'에 관해 진관사에 직접 문의했더니, 진관사 측에서 이미지를 보내줬다고 전했습니다.

이 사진이 공개되자 네티즌들은 "기특하다" “올해는 너희가 1등이다”, “독립투사들은 그간의 졸업사진의 격을 높인 듯”이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백초월과 진관사 태극기

의정부고 학생들을 통해 재조명된 '진관사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는 뜻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백초월 스님을 되새기며, '진관사 태극기'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3·1운동 직후 만해 한용운 스님이 투옥되면서, 그 이후에 불교계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분은 백초월 스님입니다. 백초월 스님은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일본군에게 체포되고 고문을 받습니다. 고문 후유증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스님은 정신 이상자로 판정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이후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일제의 감시를 벗어난 백초월 스님. 백초월 스님은 은밀히 독립운동을 진행하셨고, 독립운동 본거지가 진관사였습니다.

1939년, 백초월스님은 용산에서 만주로 가는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를 새기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상징인 철도에 대한독립의지를 새기고자 했다고 합니다. 용산 일용직 노동자 '박수남'이 본인이 쓰겠다고 나섰고, 1939년 10월 14일 열차에 대한독립만세를 썼습니다. 이후 일본에 발각되어 박수남 열사는 고문 휴우증으로 순국합니다. 백초월 스님은 3년 형을 살고 석방되지만, 또 독립운동에 나서 청주 교도소에 수감되고 고문 휴우증으로 안타깝게도 조국 광복 1년전에 순국하셨습니다. 

(사진: 수감 당시 백초월 스님)

6.25전쟁 때 백초월 스님의 묘가 사라지고, 시신은 행방불명이 됐습니다. 초월 스님 관련 기록이 불타서 없어지고, 초월스님의 업적은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2009년 진관사 내 칠성각을 보수공사 하던 중 보따리가 발견되며 초월스님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보수공사중 벽을 뜯었는데, 기록물들이 발견됐고 이를 감싸고 있던 보자기가 태극기였습니다. 초월 스님은 일본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진관사에 소중한 자료를 숨겨 두신 것이었습니다.

백초월 스님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 이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덧대고 그려진 것입니다. 당시 일장기 훼손은 목숨을 건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백초월 스님은 목숨을 걸고 제국주의 위에 독립의 정신을 새겨 넣은 것이었습니다. '진관사 태극기'에는 '일본을 누르고 꼭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루겠다'는 백초월 스님의 일념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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