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북

시간이 멈춘 듯 느긋이 흐르는 곳
동네책방ㅣ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독립문 입구에 있는 북적거리는 영천시장 골목 안쪽, 고즈넉한 분위기를 품기는 동네서점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가 위치해있다.

요즘에는 특별한 개성을 드러내는 독립 책방들이 많이들 생겨나고 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봉준호 감독이 수상소감으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이라고 했던 말처럼 가장 한국스러운 멋으로 손님을 반겨준다.

책 마다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듯이 책방 또한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0년에 소개할 첫 번째 책방,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오픈한지 아직 1년이 채 안된 책방이다. 책방으로 걸음마를 시작한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어떤 이야기와 꿈을 가지고 시작되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20년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저도 참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많이 읽었어요. 많은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자면 내 시간을 하루 종일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생업을 만들어서 사는 거죠. 큰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적게 쓰며 나의 삶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일에 대한 생각과 개념이 책을 통해 조금씩 변화되었을 때 퇴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퇴사를 하고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일도 아닌 책방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선 저희 집에 책이 정말 많았어요. 일러스트 작가인 남편이 수집한 아트북, 아이들 책, 제가 읽었던 책들이 책방을 가득 채우고 옆방까지 침범했어요. 집에 있는 책들을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함께 읽고 싶어서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 공간이 생기면 저와 제 남편의 작업실이자 사람들과 문화교류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책을 만드는 작가님들을 참 좋아하는데 북토크를 통해 책을 더 깊이 만나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책을 열정과 정성으로 만드는 작가와 그 노력을 충분히 음미하는 독자들을 연결해 주는 일이 참 가치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시작한 책방은 손님들에게 호응을 얻기 전부터 동네 사람들의 격려를 먹으며 자란 것 같아요. 번화가나 세련된 골목이 아닌데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동네분들이 특히 좋아해 주셨죠"
-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대표 박현여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옛 모습을 기억하고 남기고 싶은 마음을 녹여내려고 했습니다. 책방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오래된 한옥을 부분부분 수리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어요. 옛 모습을 잘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이 저희 가족이 추구하는 가치이고 그런 가치를 잘 담아내는 책방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실 책방을 열기 전, 서울 곳곳의 모습을 담은 동명의 책 ‘서울 시간을 그리다’를 출판 했었어요. 서울 곳곳의 장소를 남편이 그림으로 그려내고 그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죠. 그 이름이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를 잘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방에도 같은 이름을 붙였어요. 그리다는 뜻은 사실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우선 그림을 그리다의 ‘그리다’ 그리고 그리워하다의 ‘그리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간을 그리워하고 담아내는 의미로 건물도 한옥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림을 그리다’라는 의미에 맞게 아트북을 많이 비치했습니다. 또 그림과 관련된 클래스나 모임도 많이 열고 있어요. 남편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책방이 남편의 작업 공간이자 수업공간으로도 쓰이고 있는 거죠."
-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대표 박현여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한옥의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가족이 운영하는 책방이라 그런지 딱딱한 서점이 아닌 어느 책이 많은 가정집에 방문한 느낌이 들었다. 한옥 곳곳에 스며든 책방지기 가족들의 색이 이곳을 더욱 아늑하고 포근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사실 서점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딱딱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서점보다는 북카페의 이미지로 조금 더 편하게 서서히 다가올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었어요. 이곳에 오시는 손님들에게 책을 사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여유와 쉼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가고 싶어요. 한옥이 주는 안락함 속에서 책을 함께 접할 수 있는 거죠. 실제로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잠시 들러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쉬었다가고 있어요. 저는 이곳에 오시는 분들을 제가 집에 초대해서 대접하는 느낌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나 음료들도 집에서 저희 가족끼리 즐겨마시는 것들로 메뉴판을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대표 박현여님

독립책방에서는 대형서점과는 달리 책방지기의 취향과 관심사가 가득 들어간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가 책방지기가 되어 자기가 읽었던 책들 중 좋았던 책, 그리고 의미 있었던 책들을 추천하고 있다. 책 속에 꽂힌 책갈피에는 책을 고른 마음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남편은 일러스트 작가이다 보니, 남편이 읽고 영감을 많이 받았던 책들 그리고 그가 보고 좋았던 책들도 추천을 하고 있어요. 남편의 그림체와 비슷한 작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의 외국 일러스트 작가들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에세이나 사회 분야 쪽으로 제가 읽고 좋았던 책들 중에서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을 선정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회사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책을 알게 되어 그런지 회사에 목메는 젊은 청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들이 곳곳에 많이 비치되어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읽고 좋아했던 그림책들을 큐레이션을 하고 있는데, 손님들에게 반응이 참 좋아요. 보통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무슨 책을 사줘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또래의 아이가 읽고 고른 책이라 믿고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후기들도 아주 좋아서 계속해서 아이들을 위한 책장도 업데이트가 되고 있습니다."
-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대표 박현여님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 때면 사람들의 열정이 책방을 가득 채운다. 책장을 가득 채운 책과 눈길을 끄는 아트북, 혹은 이 한옥이 주는 분위기에 매료된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들른다.

"이곳을 찾아주신 분들 중 특히나 기억나는 손님이 있어요. 모녀가 책방에 오셨는데 첫 질문이 책방 번지수를 물어보셨습니다. "옥천동 44-1입니다."라고 대답한 그 순간 두 분 모두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그 이유는 어머님이 이 집에서 8년 정도 시시면서 3남매를 낳으시고 70년대에 이사를 가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서 살고 있지만 가끔 근처에 올 때면 태어난 집이라고 밖에서만 보고 가셨는데 어느 날 책방이 되어서 깜짝 놀랐다면서 들어오셨어요. 이렇게 이 공간을 허물지 않고 남겨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종종 방문을 해 주고 있으세요.

또 기억에 남는 손님은 프랑스에서 오신 분들이었어요. 외관이 한옥이라 외국인들도 한 번씩 오곤 하는데요. 작년 가을, 이 근처에서 에어비앤비로 10일 동안 서울 체류하셨던 프랑스 노부부가 계셨는데, 며칠 동안 아침마다 오셔서 차를 마시고 가셨어요. 마지막 날에는 서울에 있는 따님과 오셔서 최호철 작가님의 책 <을지로순환선>과 그림책을 구입해 가셨습니다. 서울의 옛 공간을 프랑스 노부부가 느끼고, 서울의 모습을 담은 그림책을 구매하셔서 그런지 더욱 기억에 남는 손님들입니다."
-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대표 박현여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처음에 의도했던 것처럼 서울의 옛 모습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서울의 시간을 그려 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책방이 그려나갈 이야기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쉼을 누리고 책을 접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고 책방지기는 말한다. 한두 사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소수의 추억이 아닌 우리의 역사가 되어 우리 다음 세대에게도 서울의 멋과 가치를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를 서울 한복판에 위치해있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마음과 정신을 쉬었다 가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크고 화려한 공간을 만들어가기보다는 작고 소박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셔서 한옥이 주는 정감과 평온한 느낌을 받으시며 이 공간을 충분히 누리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서서히 스며들듯 책과 함께 찾아가려고 합니다. 책방보다는 카페로 여기시는 분들이 있는데, 책과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조금 더 인식시켜드리고 싶어요. 좋은 책을 함께 읽고 나누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거죠.

책과 쉼, 그리고 서울의 시간을 그리는 이곳에 작고 소박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그리고 읽는 공간으로 계속해서 운영할 계획입니다."
-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대표 박현여님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더 빠르게 흘러가길 바라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고 기억하지 않고 앞으로만 바쁘게 나아간다면 우리는 어떤 것들을 얻을 수 있을까?

책방지기가 말하는 것처럼 바쁘게 사는 삶 속에서 우리가 지나치고 있었던 우리의 모습과 쉼을 찾고 누려보면 어떨까? 세상에 더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변하는 세상 속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대로 이 삶을 누리면서 살아가다 보면, 하루하루 반복되는 날들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의 고즈넉한 한옥에서 책장에 둘러싸여 쉼을 얻고 싶다면, 혹은 지금 이 순간을 그리고 기억하고 싶다면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책방지기 책추천>

하루 종일 회사에 투자하지 말고 생업을 만들어서 살자고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일에 대한 개념과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 적게 벌고 조금 쓰며 나의 삶을 충분히 만끽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책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