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깊이가 달라지는 책, 뭐 없을까요?"

조회수 2018. 7. 28.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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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사연 100책
100사연 100책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민과 사연.
그 사연에 맞는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엄마입니다. 적당히 책을 좋아하고, 앉으면 책을 펴서 읽곤 해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깊이 있는 책은 읽지 않네요. 그래서 고전을 함께 읽으려고 하는데, 딸과 함께 읽을만한 좋은 책 알려주세요.
- 정* 님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편하게 읽는 습관을 들이는 건 좋은 일입니다. 특히 책이 어렵거나 복잡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라는 기억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지요. 어떤 이들은 책 읽는 습관이 중요하니 많이 읽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책들을 잔뜩 사다 주며 숙제시키듯 읽히기도 한다는데, 그런 독서 경험은 즐거울 수 없겠지요.

'이거 읽어봐'가 아닌 '읽어 볼래?'
생소한 것을 읽는다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낯설고 막연한 일입니다. 뭔지 모를 소리라고 생각되면 흥미도 생길 수 없죠. 같은 책이고,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고전'이라는 말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생소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소함은 종종 어려움과 혼동되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부모님과 함께 읽는 겁니다. 함께 읽는다고 해서 꼭 얼굴을 맞대고 같은 페이지의 같은 줄을 읽으라는 것은 아니에요. 엄마나 아빠가 먼저 읽고, 아이가 흥미를 가질만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부담을 줄이고 호기심을 일으키는 겁니다. 아이가 호기심을 느낄 때 비로소 "너도 읽어 볼래?"하고 물어보는 거죠.

자녀를 위한 깊이 있는 책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책,
'안네 프랑크'<안네의 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안네라는 소녀의 일기입니다.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선물 받은 노트에 '키티'라는 별명을 달아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적었던 거죠. 안네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가 '참된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자신이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털어놓을 친구도, 그 말을 들어줄 친구도 없기 때문이라고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안네의 일기>는 2차대전 막바지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극에 치닫던 시기에 쓴 것입니다. 그리고 일기의 주인공인 안네 역시 그 학살을 피하지 못하고 희생되고 맙니다.

만약 안네의 일기가 전문적으로 히틀러와 나치를 공격하고, 비판한 글이었다면 지금까지 남아, 세계 곳곳에서 읽히지도,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 수도, 분노하게 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오히려 한 평범한 소녀의 이야기였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겁니다.

안네가 쓴 일기에는 긴박하고 위험한 상태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이 빼앗지 못한 가장 인간적이고 순수한 모습이 남아 있던 거죠. 마치 '이것이 소녀의 마음속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이 책을 꼭 전쟁 문학이나, 고전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자녀분께는 "열세 살 언니가 쓴 일기래"하고 소개해도 좋을 겁니다. 책 내용을 계기로 자녀의 일상과 생각을 묻고, 들어볼 수도 있을 거예요.

분명하게 몇 살로 정해진 것은 없겠지만, 어떤 나이를 넘어서면 어른과 아이가 읽어야 할 책을 구분하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초등학생 용으로 나온 고전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어른이라고 해서 아이들의 책을 읽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깊이'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생텍쥐 페리의 <어린 왕자>는 깊이 있는 책입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네, 깊이 있는 책입니다"하고 답할 겁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과 모자 이야기, 양과 장미 이야기, 사막과 여우 이야기. 이런 소재들은 모두 어린아이의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소재지만 그 소재들을 통해 깊이 있는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깨달음을 주니까요.

안네 이야기는 반대입니다. <안네의 일기>의 배경은 2차대전이고, 인종의 차별과 유대인 학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일기의 주인공은 결국 희생당합니다. 모두 깊이를 넘어 무겁고, 잔인한 소재라서 아이들이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여요. 하지만 그 일을 겪은 것도,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열세 살 소녀 안네입니다. 아이의 마음은 오히려 아이들이 더 잘, 더 깊이 이해할 수도 있는 거겠죠.

기억해야 하는 것은 깊이의 주체는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직접 깊이를 제시하지 않고, 조금 이끌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더 깊은 곳으로,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며 자녀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아이들은 부모라는 책을 보며 자라고, 생각을 키워가니까요.

아이에게 그 어떤 책보다 깊이 있는 책은 부모입니다.
글 | 플라이북 에디터 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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