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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가요?

소설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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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조해진 <빛의 호위> 
: 타인을 향한 온도

어린 시절의 친구, 그리고 기억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면, 그렇게 많은 것들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누구나 그렇듯 아주 큰 사고를 당했다거나 너무나도 행복했던 어떤 시점 말고는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 당장 어제 점심 메뉴도 기억나지 않는데 수년 전 어린 시절 기억을 불러오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기억이란 것이 언제나 그렇듯 마음대로 사라지기도 하고 스스로 기억하기 편한 대로 편집되기 십상이니 말이다.

만약 길을 지나다가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는 일도 흔하지 않지만, 만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때, 당신이 그 친구의 알아볼 확률은 얼마나 될까. 게다가 나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줄줄 늘어놓는다면? 혹시나 보험이나 상품을 사라고 권유를 하지 않을까 내심 불안한 마음과 동시에 시간의 먼지 아래로 가라앉아버린 어린 시절 기억을 뒤져보게 될 것이다. 이 험한 세상에서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 타인이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오랜 친구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조해진 단편 소설 <빛의 호위> 속 인물 ‘권은’도 ‘나’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여느 친구들의 재회가 그러하듯 시간 먼지를 털고 끄집어 올린 이야기를 왁자지껄하게 건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의 친구였고, 네가 건네준 카메라로 나는 그 지옥 같은 삶에서 도망칠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나 용감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참 그때 고마웠노라고. 너는 그동안 어떻게 살고 있었느냐고. 앞으로도 우리 가끔 연락하며 지내자고.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북까페 창밖으로 굵은 눈송이가 날리는게 보였다. 금방 그칠 눈 같지는 않네. 인터뷰 원고를 저장하며 혼잣말을 하는 내게 권은이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태엽이 멈추면 멜로디로 끝나고 눈도 그치겠죠. 보통의 사람들이 구사하지 않는 그녀의 표현이 재미있어서 수수께끼냐고 장난스럽게 물었지만 권은은 말없이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____조해진 <빛의 호위> 중에서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아는 척은 고사하고 그저 인터뷰이로써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는 것으로 첫 번째 재회는 끝이 난다. ‘권은’이 ‘나’에게 그런 말을 건네지 않았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캄캄하고 시리도록 추웠던 그 시절의 그녀를 세상으로 꺼내준 친구에게 그녀의 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너로 인해 나는 세상에 숨은 빛들을 찾아다니며 세상에서 지워져가는 벼랑 끝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우체부 같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이다.

어릴 적 두 친구는 긴 시간이 지나 어릴 적 한 소녀는 사진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진작가가 되었고, 한 소년은 글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가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어른이 되었다.
당신은 타인에게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가?
<빛의 호의>는 시사 잡지사에서 일하던 ‘나’라는 인물이 분쟁지역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사진작가 ‘권은’을 인터뷰이로 만나게 되면서 겪는 일들을 그린 이야기로, ‘나’라는 인물이 ‘권은’과 재회하게 되면서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기억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추어가게 되고, ‘권은’과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 유대인계 미국인 ‘알마 마이어’ 이 두 사람의 삶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따라가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 변화를 생각의 흐름 대로 담은 액자식 구성의 짧은 소설이다.

조해진 작가 특유의 작법과 등장인물들의 불우하고 결핍된 상황들이 어찌 보면 너무 뻔하다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속에서 그녀가 우리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하다. 이 짧은 이야기를 읽는 내내 스스로 부끄럽고 혼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아마 그 때문이리라.
편지 안에서 그녀가 내게 묻는다.

반장,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뭔지 알아? 편지 밖에서 나는 고개를 젓는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일 이라고. 그러니까......그러니까 내게 무슨일이 생기더라도 반장, 네가 준 카메라가 날 이미 살린 적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은이. 그 편지가 저장된 날은 그녀와 내가 을지로에서 만나 맥주를 마신 날이었다.
____조해진 <빛의 호위> 중에서
세상 속에 버려진 듯 살아가고 있던, 아니 존재하고 있던 ‘권은'에게 어린 시절 ‘내’가 건넨 필름 카메라는 세상으로 난 문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권은’에게 주었던 작은 호의와 연민이 그러하듯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본능적으로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연민과 보호본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타인에게 무관심해지거나 인색해진다. 요즘 세상이 워낙에 험해서라는 말이 그 이유가 될 것이지만,’권은’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조금 더 타인에게 너그러워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이야기에서 ‘권은’의 인생과 평행을 이루는 ‘알마 마이어’의 삶 또한 우리에게 같은 물음을 던진다. ‘권은’을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는 사진가로 만든 ‘헬게 한센’의 다큐에 등장했던 ‘알마 마이어’는 아들 ‘노먼 마이어’가 구호품 트럭 폭격으로 숨지고 난 후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사람들이 노먼을 시대의 양심이니 유대인의 마지막 희망이니 하는 수식어로 포장하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어요. 그런 거창한 수식어 뒤에 숨어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정의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건, 뭐랄까. 나에겐 천진한 기만 같아 보였죠. 알려 했다면 알았을 것들을 모른 척해놓고 나중에야 자신은 몰랐으므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____조해진 <빛의 호위> 중에서
어쩌면 우리는 그녀의 말처럼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변의 차갑게 식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지만, 선뜻 그것을 향해 손을 내밀기에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에도 바쁜 어른일 뿐이다. 우리는 당장 오늘 자신의 일들을 지키고 해결해 나가기에도 벅차고, 선의를 가지고 베풀었던 일들이 자신에게 되려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있기에 더욱더 무관심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향한 온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____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내가 타인에게 베풀었던 마지막 호의는 언제였나?’라는 물음을 던져본다면 조금 부끄러운 일이지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옛날 일인 듯하다.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부끄럽고 누군가에게 혼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내가 주춤하며 옆에 앉자, 테두리가 흐릿해지고 있는 발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권은이 말했다. 발자국 안에 빛이 들어있어. 빛을 가득 싫은 작은 조각배 같지 않아? (중략) 평소에는 장롱 뒤나 책상 서랍속, 아니면 빈병 속처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얄팍하게 접혀있던 빛 무더기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일제히 퍼져나와 파사체를 감싸주는 그 짧은 순간에 대해서라면.
____조해진 <빛의 호위> 중에서
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상 우리는 타인과 무관하게는 살아갈 수 없다.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세상에서 세상에 밀리고 밀려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렇게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이 세상 어딘가,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누군가와 만나게 됐을 때, 우리들은 그들에게 싸늘하고 매서운 비난의 말들을 던지기보단 어린아이처럼 알 수 없는 마음속 연민으로 그들의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어른들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온기를 가슴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온기가 그들의 세상에 전해져 그들 세상에 온기가 1도씩 더해질 때 우리는 더 단단하고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세상의 마이너리티들을 향해 꼭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들을 향한 이유 없는 비난만 던지지 않더라도 훨씬 나은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오늘, 스스로에게 꼭 질문 하나를 던져보길.
“당신은 타인에게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드라마 | 100분 | 감독 켄 로치 | 출연 데이브 존스 헤일리 스콰이어
평생을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이 지병인 심장병으로 실직을 하면서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에서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때문에 번번이 좌절하던 중, 두 아이와 함께 런던에서 이주한 싱글맘 케이트를 만나 도움을 주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영화로, 이야기 속 ‘권은’의 삶이 겹쳐지며 많은 물음을 던져주는 이야기
영화 <러빙>
드라마 | 123분 | 감독 제프 니콜스 | 출연 조엘 에저튼, 루스 네가, 마이클 섀넌
1958년, 타 인종 간의 결혼이 불법이었던 미국 버지니아 주 서로를 영원히 지켜주고, 언제든 함께하기로 맹세한 ‘러빙 부부’가 오직 사랑으로 세상을 바꾼 위대한 러브 스토리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이야기 속 ‘알마 마이어’의 삶이 떠오르며 이유 없이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
Someday at Christmas
- Stevie wonder, Andra Day
1967년 스티비 원더의 크리스마스 앨범에 수록되어 발매된 곡으로 최근 애플 TV 광고에서 안드라 데이와 함께 부른 버전이 발표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곡이다. 모두가 크리스마스에는 전쟁과 굶주림에서 힘겨워하는 아이들은 없어지고 행복해질 거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곡은 이야기 속 ‘권은’과 ‘알마 마이어’의 삶의 바램과 희망을 담은 곡 같아서 책과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 중 하나.
플라이북 에디터
황수빈
imbluebird@flyboo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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