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나라는 없다' 역사를 실감나게 담은 소설 5

조회수 2018. 7. 19. 09: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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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책
역사적 인물, 장면, 사건을 기반으로 한 소설의 리스트가 나날이 늘어갑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역사에서 배우는 기회와 함께 ‘만약 그때 이랬다면 어땠을까’하는 가정으로 독자의 호기심과 생각을 이끌죠. 역사, 과거 속 장면을 생생하게 되살려낸 소설을 소개합니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감행합니다. 이라크가 전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그 위험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에서요. 몇 년 후 미군이 이라크전 종전을 선언하고 철수하기 까지 크고 작은 교전과 테러가 계속됩니다. 이 비극은 미국 철수 후에도 이어져서 내전과 테러로 인한 공포로 악명 높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테러와 내전의 공포가 만연한 바그다드입니다.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저마다의 슬픔과 절망을 가슴에 품고 있죠. 전쟁에서 자식을 잃은 사람, 테러로 가족의 죽음을 견디는 사람, 정부를 위해 암약하는 사람, 기회를 틈타 부와 명예를 얻으려는 사람. 절망의 도시를 떠나지 않는 이유도 제각각 입니다. 그런 도시에 기괴한 연쇄 살인범이 등장합니다. 모습도, 살해 방식도, 존재도 기괴한 범인의 실체는 폭발로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을 모아 만든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이었습니다. 이름이 없어서 무명 씨인 이 괴물의 속사정과 그 주변 이야기가 전쟁의 참혹함에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2018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이 소설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닮아있지만 더 혼란스럽고, 참혹합니다. 마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현대 인류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갈등이 낳는 비극을 한 번 더 일깨우겠다는 듯이요. 언제까지 이 전쟁과 테러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지, 그 끝이 하루 빨리 찾아오길 바라고 바랍니다.

 제국주의 일본에 강제 동원됐던 위안부 희생자 김복득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남은 건 스물여덟 분뿐. 그러나 여전히 일본은 진정한 사과나 반성의 기미를 비치지 않고 뻔뻔하게 마지막 한 명까지 세상을 떠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시간이 흘러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만이 남은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밝히지 못했던 한 사람이 더 살아 있다며, 단 하루도 잊지 못했던 처참한 기억을 생생하게 되새겨 들려줍니다. 혹여 사람들이 잊어버릴까, 실제 일어났던 그들의 만행의 기록이 왜곡되고 지워질까 염려하듯 자세히 기록합니다.


 역사서에 아무리 자세히 적혀있다 해도 읽히지 않으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지워지기 마련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로 다시 만들어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직 지나가지 않은 과거, 현재로서의 역사를 보고, 듣고,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음을, 결코 가해자들이 바라듯 조용히 흐지부지되어 무마되지 않을 것임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 한 명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바로 잡아지길, 그 한이 풀리길 바랍니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사랑과 우정은 새롭게 피어납니다. 마치 절망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하듯, 희망은 있다고 증언하듯이. 어떤 이야기든 절망만 가득하다면 비슷한 다른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겁니다.


 이 소설은 1932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를 배경으로 한 독일 소년과 유대인 소년의 우정 이야기입니다. 히틀러 집권 후 점점 심해지는 유대인 탄압과 짙어지는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도 서로의 차이를 넘어 누구보다 가까워진 두 사람. 두 사람의 우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가 마음을 덜컹 하고 흔듭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의 희생자는 그 숫자를 정확히 알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희생의 거대함만큼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도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전쟁을 그만둬야 하는 이유, 피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확실하고 너무나 많음을 되새깁니다. 아무리 전쟁 속에 피어난 사랑이 위대하고, 우정이 아름답다고 해도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만큼 아름다울 수 없을 테니.

 ‘명예 살인’을 아시나요? 집안의 명예를 더럽힌 자식을 가족들이 살해 하거나, 피로 피를 씻는 복수를 거듭하는 법의 테두리 밖의 법, 바로 관습법 이야기입니다. 21세기에는 그런 일이 없을까요? 안타깝지만 여전히 세계 어딘가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소설은 알바니아 북부 고원지대에 고대부터 전해진 관습법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흘린 피를 회수함으로써 명예를 지키고,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가족 중 아들들이 희생되는 복수를 수십 년, 수백 년이나 거듭하는 비현실적인 세계. 누구도 피를 회수하는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남은 건 절망, 그리고 죽음뿐이죠.


 명예가 자식의 목숨보다 중요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세상의 시선이나 관습에 얽매여 희생을 강요하는 일은 지금도 얼마든지 벌어지고 있죠.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허울뿐인 명예와 관습에 얽매이는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되새기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역사가 있습니다. 간신히 밝혀 낸 가해자는 편안함 속에서 안락하게 마지막을 살고, 이제는 슬퍼할 힘도 남지 않을 만큼 모든 걸 쏟아낸 피해자는 고독과 고통 속에서 하루도 편안히 잠들지 못합니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그리 오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에 무참히 살해당한 무고한 희생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단지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내고자 하는 열망에 거리로 나섰다는 이유로 살해된 영혼들에 바치는 초혼가. 이것이 문자로 된, 종이에 인쇄된 소설인가 싶을 만큼 생생하고 절절해서 마침내 기어이 눈물을 쏟게 하는, 숨이 턱 막혀 오는 역사의 한 장면. 아직 그치지 않는 눈물과 비명이 들리는 듯한 아픈 이야기입니다.


 소설이 이 정도인데 현실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또 아프고 슬픕니다. 그럼에도 기억하지 않으면 같은 비극의 반복을 막을 수 없기에, 희생되고도 그 한을 풀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남은 이들의 몫이기에 읽습니다. 뒤틀린 역사가 바로 잡히기를, 그들이 흘린 피가 피 흘리게 한 이들에게 돌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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