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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은 건 알겠는데, 어떻게 읽어야하나요?

조회수 2018. 7. 7.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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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사연 100책
100사연 100책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민과 사연.
그 사연에 맞는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늦게나마 책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 힘이 많이 드네요. 책을 읽는 방법 이라든지, 문맥을 이해하는 습관이라든지, 그런 노하우가 있으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책 추천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 26세 대학생 이OO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몇 가지 있어요. 그 가운데 하나가 ‘읽는 속도가 느린데, 어떻게 하면 빨리 읽을 수 있나?’하는 겁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보통 다른 질문으로 시작해요. “무슨 책을 읽으시려고 하시나요?”하고 되묻는 거죠.
전공서라거나 신문을 읽으려고 한다고 하면 별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해드릴 수가 없어요. 저 역시 속독을 하지 않으니까요. 인문서나 문학을 읽으려고 한다면 오히려 지금의 속도로 꾸준히 읽어나가는 게 좋다고 답해드립니다. 빨리 읽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독이나 속독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책이 많죠. 그 방법이나 접근 역시 틀린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굳이 모든 책을 읽는 사람이 다독을 해야 하고, 속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방법의 문제고 선택의 문제일 뿐이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많이 읽어봐야,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 있지 않냐?”고 묻기도 합니다. 이 말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좋고 나쁨이란 게 뭔가요? 결국 ‘내 마음대로’ 아닐까요? 많이 읽지만 편중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좋아하는 것만 읽는 분도 적지 않죠. 하지만 이런 성향들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문맥에 대한 이해에 대해 고민하시는 걸 보니, 책을 읽는 데 있어 근본적인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이해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장이나 문맥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기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읽는 속도가 더 느려지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기까지 수험생들은 무수한 글과 문제를 읽고, 그 안에서 답을 찾기 위해 긴 시간을 들입니다. 제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이 바로 이거예요. 그렇게 많은 글을 읽었음에도 ‘왜, 읽기를 힘들어 할까?’하는 겁니다. 짚이는 건 있어요.
시 속에 쓰인 표현까지 정답을 규정해 문제를 푸는 데 익숙해지다 보니 문학의 자의적이고 자율적인 해석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 거부감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요?

저는 사람들에게 1권의 책을 100명이 읽는다면 100가지 감상이나 해석이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을 자주 합니다. 100명이 같은 생각을 갖는다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문학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같지 않은데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요? 저마다의 삶이 틀리고 맞을 수 없는데, 어떤 사람의 감상은 옳고, 다른 사람의 해석은 틀릴 수 있을까요? 책을 이해하는 데에는 관대함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스스로의 관대함이요.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책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입니다.
저자인 니나 상코비치가 소중한 존재였던 맏언니를 잃은 슬픔을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했던, ‘특별한 일’을 하며 보낸 1년의 기록을 담은 책입니다. ‘특별한 일’이란 일 년 동안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었어요. ‘일’이라고 한 이유는 저자 스스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보통의 서평집과는 달리 책 내용을 해석한다거나 늘어놓는다거나 하지 않아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저자에게 책은 자신의 삶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저자는 평론가인 시릴 코널리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야말로 도피처로 책을 이용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죠.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를 하라고 말입니다.

문맥의 이해, 작품의 이해의 방식은 어쩌면 단순하고 또 간단합니다. 책 속에 있는 내용을 자신의 삶과 생각으로 고스란히 옮겨보는 거죠. 그것이 거북하든, 마음에 들든, 싫든, 밉든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분석하려고 시간을 허비합니다. 하지만 삶이란 끝에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죠. 삶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당연히 그 삶에 비치는 이야기의 해석과 이해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죠.

저자는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읽었다’가 아니라 이 책 속의 이야기는 ‘내 삶에 이런 의미였다’고 말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마음이 가는대로 느껴보세요. 그러면 그 책과 책 속 이야기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겁니다.
글 | 플라이북 에디터  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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