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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의 도둑질로 부와 명예를 날려버린 톱스타

조회수 2019. 8. 9.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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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의 주연 위노나 라이더

90년대 초반 X세대를 대표하는 청춘스타로 이름을 알리다 전성기에 단 한 번의 도둑질로 추락한 위노나 라이더. 최근 넷플릭스의 인기 TV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의 연이은 흥행으로 뒤늦게나마 명성을 회복할 정도로 굴곡진 인생을 산 그녀의 비하인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본명:위노나 라이더 (Winona Ryder, Winona Laura Horowitz) 

생년월일:1971년 10월 29일

신장:161cm

출생지:미국 미네소타

1. 히피 부모 덕분에 생긴 특이한 이름

그녀의 본명은 위노나 로라 호로위츠. 유대인 집안의 영향을 받은 이름이었으나, 그녀의 유년기였던 1970년은 히피 문화가 만연하던 시절로 그녀의 부모도 대표적인 히피들이었다. 지금 이름도 히피들이 2세들에게 특이한 이름을 지어주던 관례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위노나라는 이름은 그녀가 태어난 미네소타 옴스테드의 옆도시인 '위노나'에서 따왔으며, 성인 라이더는 히피 부모의 영향을 받은 그녀가 첫 영화 데뷔작에서 스스로 바꾼 케이스다. 1986년 출연작 <루카스>에 출연했을 당시, 그녀의 에이전트가 영화 크레딧에 어떤 이름을 올릴지를 묻자 아버지가 좋아하는 '미치 라이더'라는 록가수의 성을 따서 라이더로 바꿔 사용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활동명은 위노나 라이더가 되었다. 

2. 왕따를 당한 학창시절

위노나 라이더는 10살이 되던 해에 캘리포니아로 이사와 학교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입학한 지 일주일도 안 돼 '외모가 너무 보이시 하다' 라는 이유로 몇몇 동급생들에게 왕따와 폭행을 당하는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로 인해 학교생활을 적응하지 못하자 그녀의 부모는 위노나를 홈스쿨링으로 대처하게 된다. 2년간의 홈스쿨링을 마쳤을 당시, 연기에 관심을 보이게 되자 부모는 12살의 위노나를 예술학교에 입학시켰다.

3. 오디션 탈락 덕분에 첫 데뷔를 하게 된 사연

1983년 위노나 라이더는 가족 드라마 <열사의 꽃> 오디션에 지원해 합격했으나, 실제 배역은 다른 배우에게 넘어가는 불운을 맛보게 된다. 그 후 오랫동안 학교 연기와 연극 무대를 오가며 연기의 기반을 닦다가, 1986년 데이빗 셀쳐 감독으로부터 <루카스>라는 영화의 출연 제의를 받게 된다. 셀쳐 감독은 <열사의 꽃> 오디션을 주관했던 한 사람으로 십 대 시절 위노나 라이더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으며, 오랫동안 그녀를 예의주시해왔다. 실패의 쓴잔이 그녀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고, 이 작품에서 코리 하임, 케리 그린, 찰리 쉰과 함께 연기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좋은 연기 덕분에 다음 작품인 <스퀘어 댄스>에서 주연을 맡을 수 있었다. 

4.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준 팀 버튼의 작품들

하지만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들어준 감독과 작품을 꼽으라면 필수적으로 언급되는 연출자와 작품이 있으니, 바로 팀 버튼 감독과 1988년 작품 <비틀쥬스>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두 부부가 유령이 되어 자신들의 집으로 이사 온 가족들을 쫓아낸다는 이야기를 팀 버튼 특유의 B급적 상상력과 비주얼로 묘사해 큰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위노나 라이더는 극 중 리디아로 출연해 주인공 비틀쥬스(마이클 키튼)와 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비틀쥬스>의 기대 이상의 성공으로 위노나 라이더의 주가는 크게 오르게 되고 <1969>,<헤더스>의 주연으로 캐스팅되기에 이른다. 1990년 위노나 라이더는 다시 한번 팀 버튼 감독과 재회하게 되는데, 그와 함께한 두 번째 작품을 통해 90년대 최고의 인기스타이자 X세대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 작품이 바로 그녀의 인생작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가위손>.



 위노나 라이더의 청순한 금발 외모와 아름다움은 기괴한 에드워드로 분장한 조니 뎁과 환상의 조합을 이뤄내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게 된다. 

5. 조니 뎁에게 영원한 상처(?)를 남기다

<가위손>을 통해 위노나 라이더와 조니 뎁은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동거까지 하게 된 두 사람은 뎁이 26세, 라이더가 19세가 되던 시기에 약혼까지 하게 된다. 공식 석상에서도 함께할 정도로 너무나 사랑했던 사이였지만, 1993년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별을 하게 된다. 라이더는 조니 뎁과의 연애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뎁과 결별한 일은 내 인생의 가장 슬픈 일이었으며, 그와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라며 회고했다. 하지만 당시 라이더와의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던 뎁은 자신의 어깨에 '위노나 포에버'라는 문신을 새겼고, 결별 후 이 문신을 지우는 게 쉽지가 않자 '위노 포에버'로 수정하고 만다. 뎁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영원한 상처로 남겨진 셈이다. 

6. 그녀의 전남친들

1993년 조니 뎁과의 결별 이후 수많은 남자들과의 만남을 이어오게 된다. 그녀의 역대 애인들은 두 분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배우이며, 그 다음 하나는 록 뮤지션이다.


우선 배우 남친으로는 조니 뎁 이전에 찰리 쉰, 로브 로우,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있었으며, 지금의 '아이언맨'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는 '설'로만 알려졌다. 이후 조니 뎁과 결별한 이후에는 <드라큘라>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게리 올드만을 비롯해 <순수의 시대>,<크루서블>에서 함께 연기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도 염문을 뿌렸다. 이후의 남자관계는 루머를 통해 전해졌을 정도로 은밀한 관계속에 이뤄졌다. 토크쇼 진행자 출신인 지미 펄론을 비롯해 톰 그린, 발 킬머, 키아누 리브스 등이 그녀와 연인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스타들이었다. 이중 공식적인 연인관계를 유지한 사이로는 맷 데이먼으로 1998년 사귀다 2000년 결별하게 되었다. 라이더는 뎁과의 만남처럼 맷 데이먼과 결별했던 것을 아쉬워했다.


어린 시절 록 음악을 좋아했던 영향 탓에 록 뮤지션들과의 만남을 연이어 이어왔으며, 이 때문에 "소년들이 라이더와 사귀기 위해 뮤지션을 하려 한다"라는 유행어가 등장했을 정도였다. 조니 뎁과 결별한 지 얼마 안돼 록 밴드 '레몬 헤드'의 에반 댄도와 짧은 만남을 가졌고, '소울 어사일럼'의 데이브 퍼너와 만나 무려 3년 동안이나 연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1996년 결별한다. 이후 '서드 아이 블라인드'의 스티븐 젠킨스를 비롯해 벡 핸슨, 피터 욘, 크리스 아이삭, '그린데이' 의 트레 쿨과도 연이어 데이트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7. 거장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그녀

안정된 연기력과 수많은 팬덤을 불러오는 청순한 이미지를 지닌 탓에 전성기 시절 수많은 거장 감독들의 러블콜을 받아왔다. 1990년부터 함께 한 팀 버튼 감독은 물론이며, 1991년 짐 자무시 감독과 <지상의 밤>이라는 영화에서 함께 작업을 한 바 있다. 1992년 출연한 <드라큘라>는 <대부>의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연출작 이었으며, 1년 후 <순수의 시대>를 통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가르침을 받게되었다. <순수의 시대>는 미셸 파이퍼,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같은 명배우들과 함께 한 작품이자, 라이더를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부분에 노미네이트 시켜준 또 다른 대표작 이었다. 1997년 상업영화로 분류된 <에일리언 4>는 프랑스의 개성파 연출자 장피에르 주네 감독과 함께했으며, 이후 출연작인 <셀러브리티>를 통해 우디 앨런 감독과 만남을 갖게 된다. 

8. 그녀가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바로 '물'

여느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특이한 공포증을 갖고 있다. 12살 때 익사 당할뻔한 경험이 있어서 호수, 바다, 욕조의 물만 봐도 위협을 느끼는 '물 공포증'이 그것이다. 이때문에 <에일리언 4>의 물속 장면 촬영에서 꽤 고생해 여러 번의 재촬영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9. 갈색 머리인 줄 알았죠? 사실은 금발입니다

갈색의 숏컷으로 유명한 그녀지만, 사실 그녀의 진짜 머리 색깔은 금발이다. <루카스>로 데뷔했을 당시부터 검은색으로 염색한 탓에 이후 출연작에 연이어 같은 색깔의 머리 스타일을 유지해야만 했다. <가위손>에서 보여준 금발의 헤어스타일이 그녀의 생머리와 잘 어울린 색깔이었다고 한다. 

10. 키아누 리브스와 결혼(?)을 해 버린 황당 사연

8,90년대 최고의 청춘 스타로 명성을 알린 위노나 라이더와 키아누 리브스는 1992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에 출연하게 된다. 당시 위노나는 21살, 키아누는 28살 이었다.


영화에서 위노나 라이더는 미나를 연기했고, 키아누 리브슨는 조나단 하커 역을 맡았다. 영화 속 미나와 조나단은 루마니아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찍게 되었는데, 그 장면에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를 실제 루마니아 신부를 섭외에 결혼식을 집행하도록 했다. 당시 촬영은 마스터샷(컷을 나누지 않고 모든 상황을 계속 연기하는 상황을 촬영한 컷)으로 진행되었고, 신부는 절차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결혼식의 모든 과정을 진행했다.


너무나 사실같은 촬영방식 때문에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진짜 결혼을 한것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신부앞에 사랑의 서약을 하는것은 모두 진실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얼떨결에 신부의 물음에 무조건 '예스'라고 대답했다고


훗날 두 사람이 2018년 함께 찍은 영화 <데스티네이션 웨딩> 홍보차 인터뷰에서 위노나 라이더가 이 비하인드를 언급하자 키아누 리브스가 "맙소사 우린 진짜 결혼한거였어!" 라고 놀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두 사람의 결혼 서약이 법적 효력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11. 단 한방에 이미지를 추락시킨 절도사건

1990년부터 쌓아온 그녀의 명성을 단 한 번에 추락시킨 절도 사건으로, 이후의 출연작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위노나 라이더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2001년 12월 위노나 라이더는 LA 베벌리 힐스에 위치한 삭스 백화점에서 고가의 의류와 액세서리를 몰래 훔쳐 나가려는 경비원들에게 제지당하고 만다. 이 사건으로 라이더는 재판에 넘겨지게 되었는데, 그녀의 혐의를 조사중이던 검찰은 LA 외에도 뉴욕의 바니 스토어에도 2번의 절도 행각을 벌인 이력을 발견하게 된다. 무려 3, 4건의 절도 행각을 벌였을 정도로 상습범이었던 셈. 할리우드 유명 스타의 절도 행각은 미국 전역의 큰 이슈를 불러왔고, 그녀를 사랑했던 대중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위노나 라이더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여전히 많은 논란을 불러올 정도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재판 당시 "다음 배역을 위한 연습이었다"라는 황당한 변명으로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진통제를 너무 많이 복용해 이성을 잃어서 한 행동이었다"라고 대꾸했을 정도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여러수를 쓰는듯한 모습을 보여줘, 대중과 매체로부터 부정적인 인식만 남기게 되었다. 재판 초반부터 잘못을 시인했다면 무난하게 넘겼을 사건이 여러 변명과 행동으로 인해 그녀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추락시켰다.


게다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과거 절도 이력과 그 당시 아무도 그녀를 처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유명 스타에게만 법적인 호의를 배푼것 아니냐 라는 논란을 불러와 대중적인 분노를 넘어서 사회적 논란으로 퍼지게 된다. 결국 캘리포니아 법원은 위노나 라이더에게 유죄를 선언하며,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480시간, 그리고 1만 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게 된다. 재판 당시에는 오사만 빈 라덴과 관련한 여러 이슈 적 사건이 연이어 터졌으나, 이 모든 사건을 제쳤을 정도로 위노나 라이더의 재판은 미든 미국인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후 위노나 라이더는 모든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차 오랫동안 볼수 없게 되었다. 그녀를 불러준 곳은 아마추어, 단편 영화와 메이저 영화의 '깜짝 출연'이 전부였다. (그것도 밉상 역할이 대다수였다) 보통 이런 사건을 경험했으면 반성이 우선인게 정상이지만, 2007년 위노나 라이더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사람을 다치게 한 적도 없었고 그것이 그렇게 중대한 잘못이었는지 모르겠다."라고 망언에 가까운 대답을 해 다시 한번 대중의 분노를 사게 된다. 그렇게 그녀의 모든 경력은 박살이 났고, 끊이지 않았던 캐스팅 제의와 이성들과의 만남은 더이상 생기지 않았다. 이로인해 잊혀진 스타로 전락할 것으로 보였다. 

12. 그녀를 살려준 작품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

한동안 B급 마이너 영화와 중소규모의 작품을 전전하던 위노나 라이더는 2009년 <스타트렉:더 비기닝>, 2010년 <블랙 스완>의 특별 출연을 비롯해 '은인' 팀 버튼 감독의 <프랑켄위니>의 목소리 연기를 맡으며 서서히 메이저 무대로 복귀할 여운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어느 메이저 스튜디오도 그녀를 부르지 않아 6년 동안 마이너 영화 활동을 하며 자숙의 시간을 보내던 그때, 오리지널 작품을 제작중이던 넷플릭스가 그녀에게 주연 제안을 하게 된다.


제안을 한 작품은 8, 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판타지 호러 모험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로, 90년대 최고의 스타였던 위노나 라이더가 주연으로 출연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였다. 이미 스타로서의 가치가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40대의 나이를 맞이한 그녀였기에 <기묘한 이야기> 출연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라이더는 이 드라마에서 괴생명체에게 납치당한 아들 윌을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워킹맘 조이스 바이어스를 맡아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놀라운 열연을 선보이게 된다.


그녀의 열연은 오랜 시간 동안 묵혀둬야 했던 그녀의 연기적 열망과 한순간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속죄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위노나 라이더의 활약으로 <기묘한 이야기>는 대성공을 거두게 되고, 올해 시즌 3가 출시되어 엄청난 시청률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넷플릭스의 스타로 거듭난 위노나 라이더는 이제 자신을 외면했던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을 준비를 기다리며, 화려한 재기의 순간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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