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여대생과 스캔들이 난 60대 배우

조회수 2019. 2. 23. 09: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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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빙빙이 여기서 왜 나와? 홍금보 비하인드 스토리 - 2부

오래도록 우리에게 친숙한 홍콩 무술영화계의 거장 홍금보, 지금도 여전히 영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의 인생과 필모그라피를 1편에 이어 돌아본다. 

1. 판빙빙과 스캔들이 터진 사연은?

영화계의 대부이다 보니 여러 선후배 연기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제 70을 바라보고 있지만 젊은 후배들과도 잘 지내고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판빙빙이다. 중국 영화계에서 두 사람을 부녀 관계로 규정할 정도로 두 사람이 친분을 유지하는 장면이 종종 언론을 통해 비춰졌다.


30살이 넘는 나이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친분 관계 때문에 때아닌 '스폰서설'이 등장했다. 홍금보가 판빙빙을 무명시절부터 지원했고, 심지어 2백만 위안(3억6천만원)이 넘는 아파트 구입비를 보태 함께 동거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져 스캔들로 비화되기 까지 했다. 이 스캔들이 확대되어서 판빙빙의 19살 연하 동생 판청청이 홍금보와의 관계에서 낳은 사생아라는 설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이런 스캔들을 부정하며 루머 유포자들을 대상으로 법정 소송까지 불사했다.


하지만 홍금보의 유연하지 못한 대처가 지속적인 오해를 불러오게 했다. 스캔들이 전해진 가운데도 두 사람의 사적인 만남이 이어져 2018년 한 기자가 판빙빙과의 관계를 집요하게 캐묻자, 홍금보가 "덮어두는 것이 제일 좋다. 파탄이 일어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말해 사실상 스캔들을 인정한거 아니냐는 해석으로 이어져 다시금 논란의 불을 지폈다.

2. 끊이지 않는 스캔들, 21세 여대생과의 불륜설까지...
▲홍금보와 왕신이의 스캔들 보도 기사

전성기 시절부터 여배우와의 스캔들은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 루머로 치부되고는 했지만, 한국인 부인이 이 문제로 이혼까지 신청했던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사실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2년에는 중국영화학원에 재학 중인 21세 여대생 왕신이와 3박 4일을 함께 보냈다는 소식과 함께 두 사람이 다정하게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공개돼 논란을 불러왔다. 이때는 새로운 아내인 고려홍과 지내고 있던 터라 두 번째 이혼으로 이어지나 싶었지만, 스캔들은 이내 잠잠해지게 되었다.


3. 한국인 부인 사이에서 낳은 3남 1녀 모두 연예인

한국인 전 부인과의 사이에 둔 3남 1녀 전부 중국 연예계에서 연예인으로 활동 중이다.


첫째 아들 훙천명은 22세 때 연예계에 데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했으며, 방송 MC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미스홍콩 출신의 배우 쟈넷 초우와 결혼해 더 화제가 되었다.


둘째 아들 훙천상도 가수와 배우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중화권 최고의 인기 스타다. 셋째 아들 훙천조도 배우로도 활동 중이며, 형들보다 데뷔가 늦었으나, 유덕화와 같은 중화권 최고 베테랑 배우들과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출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넷째이자 유일한 여동생인 훙쉬위는 평범한 은행원으로 지냈으나, 연예인 가족의 끼와 인기를 지닌 탓에 연예계에 발을 들였으나, 큰 인기를 끌지 못해 현재는 홍콩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조용히 살고 있다고 한다.


자료출처: 아시아투데이 [찰리우드 스타의 뒷이야기] 2017년 3월 28일 기사 참조


4. 절친과 애증의 관계 사이인 성룡

희극학교 시절부터 형제처럼 지내면서 나중에는 가화삼보로 활동하며 홍콩영화계의 명성을 떨친 절친한 사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깊은 애증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희극학교 시절 첫째였던 홍금보에게 너무 많이 혼나고 시달렸던 시절이 있어서, 그에 따른 원망이 깊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칠소복 시절부터 성룡은 리더였던 홍금보에게 유일하게 반항하며 자주 충돌했다. 가화삼보 시절에는 홍금보가 원표에게 돈을 빌린 다음 갚지 않자 대신 나서서 싸우기까지 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충돌은 빈번했다. 이후 홍금보가 칠소복의 이야기를 영화화 했을 때도 성룡은 "홍금보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미화했다. 그에게는 추억이지만, 우리에게는 끔찍한 기억이었다"라고 말했다.

5. 성룡과 홍금보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계기

애증의 관계였지만, 의형제와 같은 사이였기에 두 사람은 여러 번 함께 영화를 찍고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도 두 사람이 심하게 다퉈 오랫동안 협력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가화삼보로 전성기를 이끌던 시절, 성룡이 서부극과 쿵푸를 혼합한 영화의 아이디어를 홍금보에게 제안했는데, 처음 홍금보는 그런 영화는 홍콩에서 통하지 않는다며 반대했었다. 그런데 1986년 성룡이 <용형호제>의 부상 여파로 활동을 중지하고 있을때, 홍금보는 원표를 불러 <부귀열차>라는 서부극과 쿵푸를 섞은 영화를 찍게 된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도용된 사실을 안 성룡은 불같이 화를 내며, 홍금보가 제안한 여러 프로젝트를 거절하며, 함께 촬영했던 <프로젝트 A>의 후속편을 단독 주연으로 찍게 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그러다 1988년 어렵게나마 <비룡맹장> 이라는 영화로 다시 의기투함 하게 되지만, 서로에 앙금이 남아있었던 탓에 촬영하는 내내 두 사람은 의견 충돌로 싸우기 일수였고, 이를 말리려는 스태프들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88년 <비룡맹장> 이후 두 사람은 더 이상 함께 영화 출연을 하지 않았다. 1997년 성룡의 할리우드 진출작 <나이스 가이>의 연출을 홍금보가 맡았을때만 해도 화해의 기미가 보이는 듯 했으나, 두 사람은 당시 작업을 비즈니스 관계에서 진행한 것일 뿐 이라며 화해설을 일축했다.


2000년대가 되서야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화해를 하며 앙금을 풀게 되었고, 2004년 성룡의 영화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홍금보는 특별출연을 하게 된다.

6. 같으면서도 다른 무술 스타일

두 사람의 무술 스타일의 차이점은 이들이 각각 만든 스턴트 팀의 작업 스타일을 보면 알 수 있다. 홍금보의 스턴트 팀인 홍가반(洪家班)은 다이나믹하고 현실적인 액션과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며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위험한 아크로바틱한 모션을 중시한다면, 성룡의 성가반(成家班)은 구성원이 똘똘 뭉쳐 치밀하게 합을 짜서, 완벽한 구성과 장면을 연출하는 데 중점을 둔다. 따라서 액션의 리듬감이라든가 구성 등 디테일에서 둘은 꽤 차이를 보인다. 이렇듯 두 사람의 무술 스타일이 다른 탓에 <비룡맹장>의 후반부에는 홍금보는 홍가반 멤버들과, 성룡은 성가반 멤버들과 합을 겨뤘다.

7. 입가에 왜 흉터가 나있지?
▲성룡, 홍금보의 십 대 시절

홍금보에 입가에는 큰 흉터 자국이 있는데, 이는 구순구개열 수술을 받다가 생긴 흔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역 시절의 입술을 보면 수술흔적이나 구순구개열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루머지만 이 흉터 자국은 홍금보가 거리에서 싸우다 깨진 병에 찔려 생긴 자국이라는 설이 있다.

8. 홍금보 진짜 삼합회 간부야?

홍금보가 홍콩 조폭인 삼합회의 간부라는 루머는 오래전부터 전해져온 이야기인데, 이는 사실이 아닌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홍금보와 애증의 관계인 성룡도 삼합회 루머를 강하게 부정하며 "오히려 홍금보가 내가 삼합회의 협박에 시달렸을 때 직접 막아줬다"라고 말하며 고마움을 표시한 적이 있었다. 홍금보의 삼합회 간부설 루머가 난 배경에는 그가 너무 적극적으로 삼합회와 맞섰기 때문이었다.


삼합회가 홍콩 영화계 산업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하려 할 때 영화인중 유일하게 앞장서며, 삼합회의 개입을 막으려 했고, 조직원들이 배우들을 협박할 때 마다 직접 나서서 이를 막아섰다고 한다. 홍금보가 지금도 홍콩 영화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이처럼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삼합회와 맞선 그였기에 "조직의 간부이기에 이러한 '깡따구'가 있었던 것 아니냐?" 라는 엉뚱한 의혹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9. 촬영장의 폭군, 악마로 불리다

이처럼 영화계의 큰 형님으로 존경받고 있지만, 촬영장에서는 폭군으로 불릴 정도로 명성에 흠이가는 악명을 떨치고 있다.


무술 영화계의 혁신을 이끈 위대한 무술인이지만, 사실 그가 지도하는 액션은 너무나 위험하다. 스턴트맨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모한 액션이 대부분이어서, 그의 무술팀 홍가반에서는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하기 일쑤였다. 이로 인해 몸을 사리고 불만을 표출하는 스턴트맨들도 적지 않은데, 그런 의견을 제시하면 곧바로 해고하는 게 홍금보의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이상하리만큼 이야기의 개연성에 방해가 되는 고위험 액션을 고집해 시종일관 스턴트맨들을 괴롭혔다. 완벽한 장면을 만들기 위한 완벽주의로 볼 수 있지만, 수십 번도 넘게 같은 액션신을 반복하면서 정작 사용하는 컷은 첫 번째 테이크 장면이 대다수였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예민한 성격을 지닌 탓에 정신병에 가까운 히스테리 증상을 지니고 있어, 촬영장의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홍가반 팀을 불러 때리고 갈구며 화풀이를 반복한다고 한다. 오랫동안 홍금보와 작업한 홍가반의 팀장 조영이 그의 히스테리를 못 견뎌, 같은 팀원이자 동료인 한국인 스턴트맨을 붙잡고 울면서 하소연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이로인해 홍콩 영화계에서는 홍금보는 존경하지만, 그와 함께 작업하는 것을 기피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10. 최근 활동

이제는 나이가 들어 성룡, 원표와 다시 호흡을 맞추기 힘들어졌지만, 여전히 액션 영화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견자단과 호흡을 맞춰 <살파랑>에서는 이종격투기를 선보이며 악역다운 카리스마를 보여줬고, <엽문 2>에서는 홍가권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에는 <홍금보의 보디가드>라는 영화에 출연하며 60대의 나이에도 날렵하고 강렬한 살상 액션을 선보여 여전히 살아있는 액션 기계임을 확인시켜주었다. 그 외에도 <대상해><몽키킹> 시리즈, <파라독스> 등의 화제작의 출연과 무술감독을 도맡으며 새로운 무술을 액션에 접목하기 위한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홍금보는 홍콩 영화계의 대부로, 우리에겐 영원한 홍콩 골든 트리오 중 한명으로 각인되어 있다. 수 많은 스캔들과 개인적 평가가 엇갈리지만 그가 이룩한 무술 영화계의 업적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damovie2019@gmail.com


사진=IMDB, 온라인 커뮤니티 ※ 저작권자 ⓒ 필 더 무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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