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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에 등장하는 물방울은 어떤 의미인가?

조회수 2018. 3. 20. 11: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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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질 투고] 영화와 접촉하는 순간 by 달팽이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The Shape of Water, 2017)
글 : 달팽이
엘라이자가 해양 생물을 만날 때 그들 사이에는 유리벽이 있습니다. 투명성으로 인해 서로를 응시할 수 있지만 끝내 신체의 접촉이 성사되지 못함은 영화-관객의 구조와 닮아있는데요.
영화의 탭댄스 장면을 따라 하던 그녀가 일터와 집을 오가는 버스에서 창 바깥을 바라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인물 중 유일하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영화적 상상의 산물인 괴생명체와 사랑으로 맺어지는 사람은 엘라이자일 수밖에 없는데요.

엘라이자가 버스 창에 손가락을 대었을 때 표면에 붙은 물방울이 자석에 이끌린 듯 움직이는 순간은 스크린이라는 차단막을 허물고 이루어진 영화와 관객의 만남이 변화시킨 현실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극장 위의 다락방에서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도중 천장을 뚫고 물이 새어나갈 때 그것이 공교롭게도 스크린을 마주하지 않는 관객의 잠을 깨우는 것은 그들이 영화가 되었기 때문인데요.

실종된 해양 생물과 엘라이자가 만나는 공간은 텅 빈 극장입니다. 그때 상영되는 영화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장식적인 의상과 소품으로 미루어 보건대 성서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는 오로지 구전과 문자로만 기록되던 것을 상상해서 만든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엘라이자와 상상력이 구현해낸 해양 생물이 객석의 위치에 있는데요. 영화-관객의 구조가 모두 환상인 이 순간 어느 것이 영화이고 관객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 물방울이 하나가 되는 이미지처럼 영화와 현실은 하나가 되는데요.
엘라이자와 해양 생물이 물이 가득 찬 화장실에서 사랑을 나눌 때 원목 틈새로 뿜어져 나오다 문이 열리자 물이 쏟아져 나오는 범람의 이미지는 공교롭게도 성행위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미묘한 은유처럼 보입니다.

이때 사랑에 빠진 샐리 호킨스 (엘라이자)의 눈빛을 영화와 접촉한 황홀경으로 보는 것은 무리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처럼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사랑은 서로를 가로막는 장막을 제거한 뒤 나와 당신이 직접 살을 맞대는 육체성으로 표현됩니다. 스트릭랜드는 고문할 때 손을 대지 않으며 전기봉을 이용하고, 그 상처 입은 신체를 어루만지며 보듬는 건 엘라이자의 손인데요.

두 개의 물방울이 하나가 되는 육체적인 결합은 물을 가득 틀어두고 서로를 안아주는 그들의 사랑과 닮아있으며 이는 전형적인 미국 가장 스트릭랜드의 섹스가 남성적 지배 본능이 정점에 오른 피스톤 운동으로 묘사된 것과 명백히 대비됩니다.
해양 생물이 고양이를 먹어버렸을 때 자일스가 "본능 때문에 그런 거야"라고 하는 대목이 있는 것처럼 <셰이프 오브 워터> 가 지닌 사랑의 미덕은 플라토닉 한 사랑이나 아모르를 폐기하며 육체와 본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지점에서 발현되는데요.
스트릭랜드가 "너는 신이군"이라고 말하는 때가 해양 생물의 놀라운 치유능력을 바라본 직후인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해양 생물은 단지 물리적인 근력이 강할 뿐이며 특이 능력은 파괴가 아니라 치유의 지점에 있는데요.

그러니 잔혹한 묘사가 몇몇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생명의 영화입니다.

버스 창문의 물방울이 하나로 겹쳐질 때 그 흐름을 이어받아 화면이 물처럼 일렁이며 엘라이자의 빨간 구두로 전환되는 것처럼 여기에는 끊임없는 육화의 아름다움이 빛나는데요.
카메라는 고정된 축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시종일관 트래블링과 스테디캠을 이용한 유려한 움직임을 보이고, 숏-카운터 숏의 구조가 분명한 대화 장면에서도 화면은 조금이나마 일렁이고 있습니다. 물의 운동력을 체화한 기계 장치는 생명을 얻고 서사와 만나 생동하는 감정을 지닌 유기체적 시네마를 완성시키는데요.

엘라이자의 영화적 공간은 점층적으로 확대됩니다. 홀로 욕조에서 출발했던 엘라이자는 화장실을 물로 가득 채워 해양 생물과 사랑을 나누고, 마침내 그들이 어떠한 부유물도 없는 수중에 이르게 되는 엔딩에서 공간과 오브제는 완전히 소거되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푸른빛과 물의 흐름만이 그들을 감싸는데요. 중반부 뮤지컬 상상 장면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유는 환상과 현실이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엘라이자가 목소리를 내고 춤을 출 때 과도하게 장식적인 무대가 열리고, 흑백의 톤이 화면을 감쌀 때 그들은 단순히 영화의 배역으로 보이지만
현실과 환상이 희석되는 마지막 순간에는 화려한 복장도, 백댄서도, 안무와 뮤지컬도, 흑백 화면도 없는데요.
그들은 우주를 지배하고자 하늘을 올려다보는 냉전 시대에 반하기라도 하듯이 수중 지하 세계로 하강합니다.

엘라이자의 자위는 일상이라는 몽타주에 의해 짧은 커트로 제시됐지만 그들의 사랑 뒤에는 어떠한 쇼트도 없는데요. <셰이프 오브 워터>의 마지막은 영화와 접촉하는 순간을 영원히 유예하고픈 기예르모 델 토로의 사랑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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