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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영화, '김복동'·'주전장'을 꼭 봐야 하는 이유

[영화 리뷰 알려줌] 일본의 '욱일기' 사용 문화, 그리고 <주전장>·<김복동>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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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글 : 박세준 에디터

본 글은 위 '욱일기 사용은 왜 문제인가?' 영상과 "짱구·코난·원피스의 '역겨운' 공통점은?" 글에서 이어지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먼저 영상과 글을 확인하신 후 이번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우리에겐 '화냥년(환향녀)'이란 아주 못된 말이 있다. 병자호란 당시 중국으로 끌려갔던 50만 명의 여성들을 일컫는 말로, 그 속내는 오랑캐의 성 노리개 역할을 하던 여자이니 몸이 더럽혀졌다는 뜻이다.

'임진'과 '정유' 양난에 일본으로 끌려간 여성들이 돌아올 때도 동포의 손가락질은 여전했다. 그녀들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은 포로로 끌려가 수모를 당한 것만큼이나 잔혹했던 고국의 외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2차 가해는 가장 최근인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다시 한번 반복된다. 바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김복동>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 한 분인 '김복동' 님을 기린 다큐멘터리 장편 영화다. BBC에 실린 김복동 님의 부고 기사 중 인용된 "이 사회에서 그 여성들이 대중 앞에 나설 곳이 없었다(There was not space in this society for the women to go public)"라는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의 말처럼,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고통은 광복 후 수십 년간 빛을 보지 못했다. 1991년, '위안부 기림의 날'로 지정된 8월 14일 故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이 있기 전까진 말이다.

김복동 님의 인생은 피해자가 되려 죄책감 혹은 수치심을 갖고 살아온 이상하고 역겨운 현대사의 전형이다. 영화를 통해 김복동 님은 어머니와 남편에게 모종의 죄책감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가장 큰 피해자임에도 (후유증으로 인해) 임신과 출산이 불가하다는 사실은 가족 앞에서 당당할 수 없었던 이유가 되고 만다.

출처영화 <김복동> 표지 및 이하 사진 ⓒ (주)엣나인필름

가부장적인 동아시아 국가의 사회 분위기가 그럴듯한 이론적 설명이 될지 모르지만, 그 가운데엔 절대다수 국민의 무관심 역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김복동 님을 비롯한 모든 피해자 할머니가 단상에 올라 스스로 피해자임을 밝힐 때 남들과 다름에 느껴지는 수치심 역시 국가나, 동포가 막아주지 못했다. 평화의 집으로 날아온다는 일본 극우 세력의 편지는 영화를 보는 내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씨네 21'을 비롯한 다수의 영화 관련 매체에서 이 영화에 점수를 매기는 현상을 봤다. 과연 이 영화를 우리가 평가할 수 있을까? 평생에 걸친 김복동 님의 투쟁에 6점이니 7점이니 하는 점수가 의미가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감정에 흔들려 값싼 눈물을 소비하며 나오긴 싫었다. 그렇게 눈물을 훔치고 '참 안됐다' 하며 돌아서면 그만일까? 수많은 훌쩍거림이 스마트폰을 매만지며 각자의 사생활로 돌아가는 동안,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텅텅 비어있는 상영관의 빈 좌석들이었다.

이내 <주전장>을 관람했다. <김복동>이 기록 영화에 가깝다면, <주전장>은 보다 정치 다큐멘터리에 부합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는 일본 내 인종차별에 대한 자신의 발언에 극심한 반응을 보이는 극우 세력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미키 데자키 감독은 소녀상 건립 등 위안부 문제에 편집증적으로 반발하는 일본 내 우파와 그들을 지지하는 미국인, 그리고 각계각층 전문가들(변호사, 역사가, 인권운동가 등)의 다각적 시각을 통해 절대 해소되지 않은 일본의 '위안부' 문제를 객관화하고 재정립하고자 한다.

일본 극우 시각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존재하면서도, 그 주장이란 것이 가지는 억지와 퇴보하는 시대성을 비웃을 수 있다는 통쾌함도 있다.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시적 분노로 대응하는 것보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배경을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현재 일명 '일본 불매 운동'이 왜 일어났고 또 중요한지 생각해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주전장>은 좋은 영화다.

출처영화 <주전장> 이하 사진 ⓒ (주)시네마달

"해방 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인해 국민이 분열했다." 지난 8월 14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말한 내용 중 일부다. '우파는 곧 친일'이란 인식에 대해 일어나는 방어기제적 발언일 수도, 반일 감정을 우려한 정치인의 충직한 마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이 분열되지 말고 힘을 합쳐 '일단'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이러한 통일된 목표지향적 관점이 <김복동>과 <주전장> 속 피해자들을 두 번 상처 입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외교부 차관이 평화의 집을 찾아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면하는 장면이 두 영화에서 모두 나타난다. 피해자 중 한 분인 이용수 님은 차관의 면전에 "당신이 내 인생 대신 살아주는 것이냐"며 반문한다.

당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대(對)동아시아 정책 때문에 일본과의 화해를 강요받은 국제 정치 질서를 이해하면서도, 그런 과정에서 '위안부'를 포함한 수많은 개인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너무 막대하고 잔혹한 것이었다.

'일본 불매 운동'을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다시 초일류 국가가 된 일본과 극단적으로 치닫는 외교 관계가 분명 좋은 현상만은 아니다.

하지만 또다시 국가의 이익이란 명분으로 개인의 명예가 소실되는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김복동>과 <주전장>은 적어도 그런 기본명제를 한 번 더 일깨워주는 소중한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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