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소설 속 여자, 현실로 나타난다면?

조회수 2018. 6. 8. 18: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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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토끼의 대중문화 에세이] 루비 스팍스 (Ruby Sparks, 2012)
글 : 김토끼
※ 본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상 속 애인이 현실에 나타난다면? 영화라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21세기형 피그말리온, 영화 <루비 스팍스>(2012년)에서 작가 '캘빈 위어필즈'(폴 다노)는 자신이 쓴 소설의 주인공 '루비 스팍스'(조 카잔)와 '현실 연애'를 하는데요.
여기서 '현실 연애'는 두 가지 의미가 있죠. 첫째는 '루비'와 '캘빈'이 연애하는 시공간이 '현실' 그 자체라는 점입니다. 소설을 뚫고 나온 '루비'는 '캘빈'의 삶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그 존재를 믿지 않던 '캘빈'의 형 '해리'(크리스 메시나)와 악수까지 할 수 있는데요.
둘째로 연인 사이 애틋한 감정과 불가해한 관계의 뒤틀림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현실 연애'를 보여주죠. 실제 커플인 두 주연배우의 열연, 그리고 '루비' 역의 조 카잔이 이 각본을 썼다는 점은 연애의 성찰을 담은 영화의 방향성을 짐작게 합니다.
'현실 연애'의 관점에서 <루비 스팍스>는 최근 몇 년 사이 재개봉된 <이터널 선샤인>(2004년)과 <500일의 썸머>(2009년)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두 영화는 커플들이 어떻게 사랑의 정점을 찍고 언제부터 내리막을 걷는지 현실적인 패턴을 보여주며, 늘 달콤할 수는 없는 연애의 기승전결을 돌아보게 하죠.
말하자면 <이터널 선샤인>과 <500일의 썸머>에서 관객이 보았던 것은 사랑의 성공이 아닌 사랑의 실패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루비 스팍스> 역시 꿀 떨어지는 연인 사이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판타지 로맨스답게 은유적으로 드러내는데요.
하지만 세 편의 로맨스는 그 패턴이 비슷할지라도, 영화의 결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죠. <이터널 선샤인>은 이별 후 기억을 지운 연인들이, 정체 모를 애틋함으로 다시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이를 통해 오해와 질투가 그림자처럼 연인들을 둘러싸고 있으며, 서로를 향한 강한 믿음과 사랑한 순간의 기억이 얼마나 지켜내기 어려운지 깨닫게 하는데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굳이 분류하자면 해피 엔딩이지만, 그 어떤 새드 엔딩보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죠.
반면 <500일의 썸머>는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영화는 '톰'(조셉 고든 레빗)의 시각에서 운명의 여자 '썸머'(주이 디샤넬)를 떠나보낸 뒤 연애를 반추하는 과정을 담아내는데요. 무질서하게 해체된 연애의 역사를 통해, 자기 합리화에 갇힌 독선과 수동적인 태도가 연애를 어떻게 망치는지 보여주죠.

특히 '썸머'의 파티에서 '톰'의 소망과 현실이 이중 분할된 장면은, 연인에 대한 기대가 현실에서 자주 빗나가는 씁쓸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톰'은 지난 연애를 발판삼아 여름에서 가을로, 연애의 한 계절을 건너가죠.
한편, <루비 스팍스>의 '캘빈'은 쓰는 대로 현실이 되는 맞춤형 애인 '루비'를 창조하는데요. 이 판타지적 설정이 '현실 연애'로 연결되는 지점은 꽤 흥미롭습니다. 외로움에 지친 '캘빈'은 자기 뜻대로 '루비'를 조종하게 되고, 이로써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루비'를 잃게 되죠.

상대가 내게 맞춰주기를 바라는 이기심이 연애의 균열로 이어지는 전개와 비슷한데요. 결국, 분노와 욕망에 뒤덮인 자신의 글이 '루비'를 헤치게 되자 '캘빈'은, "'루비'는 더 이상 '캘빈'의 창조물이 아니다"는 문장으로 '루비'를 놓아줍니다.
하지만 <루비 스팍스>가 앞선 두 영화와 달리 걸작으로 남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판타지적 요소로 신선한 감각을 보여준 이 영화는, '캘빈'이 작가로서 슬럼프를 극복하고 '루비'와 현실에서 재회하는 쉬운 결말로, 독특한 설정이 던져준 미학적 사색을 한순간에 덮어버리죠.
<루비 스팍스>는 깨끗한 플롯과 상큼한 영상에도, 로맨스 장르의 평균을 넘어서려는 치열한 고민의 부재가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폴 다노와 조 카잔의 현실 케미 돋는 달콤한 연기는, 죽어가는 연애 세포를 깨울 만큼 사랑스럽죠. 로맨스 영화를 기다린 관객이라면,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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