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 넘는 송전탑 위에 직접 올라가 열연한 배우들

조회수 2021. 2. 2.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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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려줌]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I Don't Fire Myself,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 영화사 진진
'정은'(유다인)은 회사에서 인정받는 우수 사원이었으나, 갑작스럽게 권고사직을 받는다. 꿋꿋하게 버티던 중 '정은'은 회사로부터 1년 동안 하청으로 파견을 가면, 이후 원청으로 복귀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어쩔 수 없이 제안을 수락하지만, 하청의 현실은 예상과는 다르고, '정은'은 낯선 도전에 직면한다.

송전탑 수리시설 하청 업체의 '소장'(김상규)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원청으로부터 파견 온 '정은'의 인건비까지 책임지게 되어 머리가 아프다. 송전탑을 오르내리며 점검하는 힘든 일을 시킴에도 불구하고, 포기를 모르는 '정은'과 본사 '인사팀장'(원태희)의 압박 사이에서 '소장'은 갈등한다.

한편, '막내'라 불리는 '충식'(오정세)은 송전탑 수리공, 편의점 아르바이트, 대리기사까지 하는 그야말로 N잡러다. 린 딸들을 부양하기 위한 부업으로 항상 피곤하고 틈날 때마다 눈을 붙이기 바쁜 와중에, '막내'는 원청에서 온 '정은'의 고군분투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지난해 '코로나 19'로 인해 OTT '웨이브'와 함께 온라인으로 진행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오정세가 배우상을 받은 영화다. 작품은 대학에서 탈출, 마당극을 연출했고, 배우로도 활동했으며, 이후엔 노동 문제를 다룬 영화로 연출을 시작한 이태겸 감독이 연출했다.
이태겸 감독은 "영화 제작이 무산되어 우울증을 겪던 중 '사무직 중년 여성이 지방 현장직으로 파견 발령을 받았고 그곳에서 굉장한 치욕을 겪었지만 버텨냈다'는 기사를 봤다"라면서, "그 기사를 보고 글을 쓰면서 나 자신부터 치료하고 싶었고, 그렇게 작품을 시작하게 됐다"라며 연출 계기를 밝혔다.

엄밀히 말하면 '정은'의 상황은 2019년 7월 개정된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항목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로 인한 처벌이 가능하다.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했으며, 근로자가 제대로 된 업무 수행을 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한 경우('정은'의 책상을 뺀 장면) 등이 등장하기 때문.

하지만 안타깝게도 괴롭힘 행위자가 '사용자'(사업주, 사업경영담당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위하는 자 등)인 경우, 그야말로 '솜방망이'에 가까운 것이 비일비재하며, 피해자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의 73.3%가 '괴롭힘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변할 정도로, 우리 사회엔 직장 내 괴롭힘이 광범위하게 발생했고, 2019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됐음에도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해고되거나, 비밀 유포 이유로 징계를 받는 역처벌 사례는 사회면 기사를 통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태겸 감독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정은'의 상황을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처럼,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라는 '나'라는 주어가 담긴 제목의 영화를 공개했다. 그는 제목에 대해 "최후의 보루에서 지켜야 할 나에 대한 긍정성을 명제화했다"라면서, "인물이 겪게 되는 사건은 힘들지만, 근본적으로는 긍정적인 힘을 가진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당신이 나를 해고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나를 해고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 자신을 해고하지 않겠다'라는 마음은 나를 긍정함으로써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최초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소개했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만연한 고용불안과 사측이 주도하는 '노노갈등', 직장 내 성차별 등 한국 사회의 여러 구조적 모순을 건드린다.

흥미로운 점은 '정은'이 구조적 모순을 겪게 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이동이 수반된다는 것. 권고사직을 받고, 성차별을 당하며, 제안을 빙자한 불법 파견 명령까지 받은 '정은'이지만 그 역시도 현장 노동자들의 대우는 몰랐던, 자신을 하청과는 다른 위치로 판단하는 원청의 직원이었다.
하청에서 현장 업무를 맡게 되며 작업복도 제공되지 않고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성과와 효율을 빌미로 감전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탑에 올라야 하는 이들의 현실을 목격하는 '정은'이 받게 되는 충격은 공감에서 나아가 연대 의식으로 이어진다.

하청 수리공 중 '정은'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인물, '막내'는 오정세의 열연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바꿔줬다. 연기한 오정세에 대해 이태겸 감독은 "현실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냥 선의를 베풀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타인을 돕는 '막내'의 묘함이 오정세 덕분에 표현이 잘 되었던 것 같다"라고 칭찬했다.

많은 노동 현장 중 송전탑 노동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태겸 감독은 "먼저 영화가 실화에서 모티프를 얻었으나, 그 실화 속 사무직 중년 여성이 하게 된 일이 송전탑 수리는 아니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라며, "그보다는 철탑을 인간 삶에 대한 은유라고 판단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철탑은 높고, 견고하고, 복잡하며, 기하학적인, 인간이 견뎌내기 힘든 환경이다. 그러나 송전탑 노동자는 그런 인간에게 맞지 않은 환경 속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철탑을 오르는 이들이다. 주인공이 자신을 압박해오는 상황을 끝내 극복하고 탑을 오르는 것처럼, 송전탑과 그 탑을 오르는 일이 곧 우리 삶과 닮았다"라고 밝혔다.
여기에 스위치만 누르면 전기가 들어오는 삶을 사는 현대인의 당연한 편리 뒤엔 특수노동자의 목숨을 건 일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노동에서 오는 편리는 취하되 노동자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으로 치부하는 현대인의 이중성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태겸 감독은 촬영과 음악으로 거대한 송전탑을 시청각화하는데 공을 들였다.

예를 들어, '정은'이 현장에서 송전탑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정은'의 시점샷은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1958년)을 연상시키는 흔들리는 앵글을 사용,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은 철골을 담아 멀리서만 보던 송전탑의 공포를 체감하게 한다.

그리고 영화 전반에 깔리는 일렉트로니컬한 음악은 송전탑에 흐르는 전류와 그 가까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자주 겪는 이명을 은유했다. 국악과 재즈를 전공한 음악그룹 탱글이 작곡한 이 음악에 대해 이 감독은 "실제 송전탑 소음을 음악에 활용했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음악이 영화를 설명하는 대신 영화와 평행선을 달리며 인물과 거리를 두는 긴장감을 주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참고로, 유다인, 오정세 두 배우는 10m가 넘는 송전탑을 직접 교육 이수 후에 올라가 연기를 펼쳤으며, 큰 사고 없이 촬영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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