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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 해석! 흙수저 작가의 성장기?

[영화읽고 알려줌] 버닝 (Burnin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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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
글 : 영화읽어주는남자

※ 본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화제인 영화, <버닝>의 불길이 국내까지 옮겨붙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답게 강렬한 감정과 함께, 묵직한 물음을 남긴 이 영화는 난해한데요. <버닝>에 다가가는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이번 영상에서는 "흙수저 '종수'(유아인)가 작가가 되는 성장기"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려 합니다.

'벤'(스티븐 연)과 '종수'는 극과 극의 모습을 보이죠. '벤'은 강남에 살며 스포츠카를 물고, 으리으리한 집에서 파스타를 만듭니다. '종수'는 서울밖에 살며 낡은 트럭을 몰고, 오래된 집에서 파리를 쫓으며 요리를 하는데요. '벤'이 별다른 직업이 없고, 재미를 갈구하는 한량이라면, '종수'는 생계를 위해 즐거움을 포기한 청년이죠.

이렇게 <버닝>은 두 남자의 비교항을 차례로 대조하는데, 이를 통해 계층의 차이를 선명히 드러냅니다. 그를 통해 본 흙수저 '종수'의 현실은 갑갑했고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요. 이런 상황에 맞게, <버닝>의 화면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답답하죠. 넓게 펼친 화면을 잘 보여주지 않으며, 좁은 화면에 '종수'를 억지로 구겨 넣은 인상도 줍니다.

'벤'과 '해미'의 대비 및 그들을 바라보는 '종수'의 구도도 흥미로운데요. '벤'은 메타포로 말하는 인간이죠. "제물을 바친다", "불을 지른다" 등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비유해 드러냅니다.

반대로 '해미'는 마임으로 말하는'듯한' 인물인데요. 그녀는 현실에 없는 걸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하죠. 한 명은 진짜 행위를 가리고, 다른 한 명은 없는 걸 있는 척합니다. 그리고 '종수'는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진실을 찾는 데 항상 실패하는데요.

우선, '종수'는 '벤'의 메타포를 이해하지 못하죠. '벤'이 말한 '불을 지른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종수'는 매일 비닐하우스를 점검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해미'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종수'는 '해미'의 진심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요. 앞서 마임으로 말하는'듯한'이라고 했는데, 이는 '종수'의 착각을 표현하고자 한 말이죠.

'해미'는 늘 '종수'에게 진실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지만, '종수'는 의심부터 했습니다. '종수'는 고양이의 존재를 의심하고, '해미'가 빠졌다는 우물도 의심하는데요. 나중에 '벤'의 집에서 발견되는 고양이와 '종수'의 엄마를 통해, '해미'가 진실을 말했음이 드러나죠.

'종수'의 가장 큰 실수는 '해미'가 춤을 출 때 범해지는데요. 그녀가 삶의 의미를 고민하며 그레이트 헝거의 춤을 출 때, '종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창녀'라는 말을 뱉습니다. 그녀는 함께 고민할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인데요.

그리고 '해미'가 고양이를 맡기고, 우물 이야기를 했던 건 '종수'를 향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었죠. 하지만 '종수'는 그녀의 진심을 못 보고, 의심부터 하는데요.

첫 만남부터 '해미'는 '종수'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죠. 오히려 자신이 성형했다며, 솔직하게 말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종수'가 소설을 쓰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죠. 그는 본질을 둘러싼 메타포는 사실로 오해하면서 진실한 행동은 의심하는데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성숙하지 못한 작가입니다. 이는 그가 처한 상황 탓이기도 한데, 흙수저인 그는 혹독한 현실 앞에 메타포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못했었는데요.

이와 비교해 '벤'은 메타포 섞인 말을 현란하게 구사하고, '해미'의 마음을 가지고 놀 여유가 있었죠.

그래서 '종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해미'와 같이 있다"는 말로 '벤'을 유인했습니다. "네가 '해미'를 죽였다는 걸 알아"라는 말을 메타포로 돌려 말한 것이죠. 그리고 그는 '해미'의 방에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뒤늦게나마 그녀의 진심을 이해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이렇게 전에 모르던 걸 알 만큼 성숙했기에, '종수'는 근사한 소설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죠. 아니면, 관객이 여태 본 게 그의 소설이 아니었을까요? <버닝>은 어렵고, 그만큼 영화를 읽는 게 즐거운 영화였습니다.

엄지 척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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