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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사극의 제왕: 이준익의 귀환'

조회수 2021. 3. 21.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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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자산어보> (The Book of Fish,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자산어보>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역시나 이준익 감독의 사극은 믿고 봐도 되는 것이었다.

이준익 감독의 사극은 저마다 다른 결이 있음에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어떠한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가기보다는 그 시대를 사는 '인물 개인'에 포커스를 둔 것이다.

<황산벌>(2003년)만 하더라도 처절한 전투의 이면에 담긴 개인의 이야기가 맛깔나는 사투리와 섞여져 선보여졌으며, <왕의 남자>(2005년)도 인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데 극을 응축했다.

최근의 행보도 주목할 만했다.

<사도>(2015년)는 영도,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진 조선 왕조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심리극으로 표현했다.

<동주>(2016년) 역시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 열사의 청년 시절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내적 고민을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담아냈다.

<박열>(2017년)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더불어 삶의 의지를 노래했다.

<자산어보> 역시 이준익 감독의 기존 작품처럼, 인간의 내면을 관찰하는 데 집중했다.

여기에 <동주>, <박열>처럼 한 시대의 위인 옆에 있는 '또다른 위인'을 조명했다.

학자 '정약전'(설경구)이 쓴 어류 백과사전, <자산어보>에도 등장한 인물 '창대'(변요한)의 삶을 극화해낸 것.
<자산어보>는 재위 기간 중 여러 개혁을 추진한 '정조'(정진영)가 '정약전'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정씨 형제'를 신임하고 총애했으나, 노론 강경 세력은 이들을 노리고 있었다.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한 직후인 1801년, 수렴청정을 펼친 정순왕후는 '신유박해'를 지시한다.

표면적으로는 천주교에 대한 박해였지만, 그 내면엔 노론의 남인 인사 제거가 있었다.

이 박해로 '정약전'의 아우인 '정약종'(최원영)을 비롯해 주요 천주교도 100여 명 이상이 사형에 처했다.

또한, '정약전'과 '정약용'(류승룡)을 포함한 400여 명이 유배된다.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당했는데, 지금도 흑산도는 1년에 110일 정도는 풍랑으로 배가 결항하는 곳이며, 뭍인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약 2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머나먼 섬으로 유배된 그는 홍어, 문어, 짱뚱어처럼 육지에선 쉽사리 접할 수 없는 바다 생물과 섬마을 주민들의 일상을 보면서, 유배길에 잃어버린 호기심을 되찾는다.

한편, 흑산도에서 나고 자란 섬 토박이 '창대'(변요한)는 어릴 때부터 밥 먹듯이 해온 물질 덕분에 바다 생물과 물고기가 가는 길은 잘 아는 어부이지만,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글공부'다.
'천자문', '소학', '명심보감' 등 가리지 않고 책을 읽은 '창대'는 제대로 된 스승 없이 홀로 하는 글공부에 점점 한계를 느낀다.

그러던 중 '정약전'은 '창대'에게 물고기 지식을 알려주면 글 공부를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이에 성리학을 진리로 여기면서, '사학죄인'으로 유배 온 '정약전'과 말도 섞지 않으려 했던 '창대'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마음을 바꾸고 그와의 거래를 받아들인다.

한편, 강진으로 유배를 온 '정약용'의 수제자, '이강희'(강기영)는 수시로 스승의 편지와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에게 전달하면서, 멀리 떨어진 형제가 지속해서 교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창대'는 '이강희'와 함께 '정약용'을 찾아가고, '정약용' 앞에서 '창대'는 '정약전'의 배움에서 나온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 소문은 '창대'를 버리고 나주로 떠난 아버지 '장진사'(김의성)의 귀에 들리게 되고, 그제야 '장진사'는 '창대'를 보러 흑산도로 찾아온다.

'창대'는 본인의 실력과 '장진사'의 연줄 덕분에 나주목을 다스리는 '나주목사'(동방우) 밑에서 가르침을 받는다.

하지만 '나주목사'는 민생에 관심이 없었고, 아전들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한다.

이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따르던 '창대'의 이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자산어보>는 꽤 직설적인 메시지를 해학을 이용해 보여준다.

'코로나19'로 인해 개봉 시기가 한 해 늦춰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했다.

'정조'는 '정약전'에게 정치에서 일어나는 흙탕물 싸움에서 버티라고 말한다.

'성리학책'들만 외우기에만 급급한 모습에 대한 '정약전'의 일갈은 창의적인 학습보다는 정답만 존재하는 암기식 교육에 대한 주의처럼 보였다.

끝으로 나랏일을 하는 이들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이는 '정약전'과 '창대'의 끊임없는 부딪침과도 연결된다.

'정약전'은 왕도 필요 없는 오로지 민중의 힘으로 움직이는 세상을 꿈꿨고, '창대'는 그래도 군신은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작품에선 어떤 정답을 묻진 않는다.

이는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집필한 배경과도 연결된다.

'정약전'은 자신의 이상 세계를 지금은 이해할 수 없을 거라 믿고, 언젠가 누구나 지식을 배울 수 있으며, 그 지식은 또 다른 힘을 만들어 낼 것이라 믿었기에 '자산어보'를 집필한 것이었다.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기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으며, '시민'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거라는 믿음 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이런 메시지를 강요하진 않는다.

이것도 어찌 보면 영화를 읽고 싶어 하는 이들이 볼 수 있는 시선 중 하나일 터.

<자산어보>는 그 자체로만 봐도 훌륭한 이야기꾼이 만들어 낸 사극이다.

흑백의 시선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영화의 본질은 더욱 잘 드러났다.

마치 수묵화처럼 펼쳐진 자연환경(특히 밤바다에 쏟아지는 별 장면은 극장에서 봐야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은 그 본질을 더해줬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해줬다.

이런 영화가 '코로나 19'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2021/03/18 메가박스 코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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