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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미나리'에 주목했고, 우린 뭘 놓쳤나?

조회수 2021. 3. 7.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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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미나리> (Minari,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미나리> ⓒ 판씨네마(주)
* 영화 <미나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나리>는 한국적인 정서가 담기면서,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함께 정립된 독특한 영화다. <미나리>가 지금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후보에 오를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는 바로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현시대의 변화'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미나리>가 한국영화의 또 다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틀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난해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했으나, 안타깝게 '배우 지명'엔 실패했는데, 만약 윤여정 등 배우 부문에 지명이 된다면, '한국배우'로는 사상 첫 아카데미 후보 지명이기 때문에 이는 분명 큰 성취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는 한국인 배우들이 앞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큰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 특히 영어 연기가 아닌 한국어 연기가 할리우드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다. 윤여정의 차기작이 OTT '애플 TV+'의 신작 드라마인 <파친코>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엄연히 <미나리>는 미국의 자본으로 만들어지고,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연출한 미국영화이기 때문에, 좀 더 큰 관점에서 이 분위기를 살펴봐야 하겠다. 이 점을 놓친다면, <미나리>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반만 이해하는 셈이 된다. 작품의 '국적'이 중요한 이유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큰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의 전초전으로 알려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미나리>는 영어가 절반 이상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하고, '외국어영화상'에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공식 홈페이지엔 <미나리>의 이름과 'USA'의 이름이 동시에 기재됐다.

이에 아시아계 할리우드 영화인뿐 아니라,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에 대한 미국 메이저 매체의 비판이 이어졌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는 이번 후보 지명 사태를 이후로 변화에 대한 메시지를 남기긴 했으나, 오히려 이 점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큰 힘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의 투표 경향은 '작품성을 기본'으로 하면서, 동시에 그 시대의 공기를 전하는 작품들에게 손을 들어줬다. 언론의 중요성을 담은 <스포트라이트>(2015년), LGBTQ의 이야기를 담은 <문라이트>(2017년)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8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민권과 갈등의 화합을 담은 <그린 북>(2019년), 스스로 '글로벌 시상식'임을 확장하기 위해 선택한 <기생충>(2020년)이 그 예다.

사회의 이슈를 담아낸 영화가 오히려 주목을 받았고, <디파티드>(2007년), <아티스트>(2012년) 등과 같은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확률은 줄어들었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군 중 이른바 '빅3'로 예상되는 작품들은, 저마다 사회적 함의를 담은 영화다. 이번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노매드랜드>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떠돌이로 살아가던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2순위인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1960년대 실화를 바탕으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부당함을 비판하고자 한 영화였다. <미나리>는 여기에서 아시아계 이민자의 삶을 통해서, 최근 '코로나19' 이후 증가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범죄 등 차별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쪽으로 '오스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미나리>는 어떤 쪽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을까? 이 영화를 문득 보면 땅을 두고 벌이는 1940~50년대 작품이 떠오른다. 헨리 폰다 주연의 <분노의 포도>(1940년),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자이언트>(1956년), 그레고리 펙 주연의 <빅 컨츄리>(1958년) 등이 그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땅은 우리에게 너그럽지 않을지 몰라도, 그래도 개척해 반드시 살아간다는 내용을 담았다. 게다가 '제이콥'(스티븐 연)이 농작과 삶에 꼭 필요한 물을 찾아 나서는 장면은 클로드 베리 감독의 프랑스영화 <마농의 샘>(1986년)을 연상케 한다.

물론, <미나리>와 1940~50년대 작품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분명, 미국의 이상인 '개척정신'을 담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을 상징할 수 있는 '다문화주의'를 다루진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미국 이민사는 어느덧 120년이 넘었지만, 이를 제대로 담은 할리우드 영화는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비하의 내용으로 담긴 것이 전부다. 할리우드의 시선에서 한국인은 '돈 벌레'에 불과했다. 그 대표작이 <폴링 다운>(1993년)으로, 모멸에 가까운 묘사 덕분에 많은 한인 교포들의 비판을 받아야 했으며, 국내에서도 1997년에서야 정식 개봉된 바 있다.
<미나리> 역시 나오기 힘든 작품이었다. 그나마 <옥자>(2017년)에 출연했던 스티븐 연이 <옥자>로 함께 작업한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 '플랜B'에 <미나리>의 시나리오를 건네주면서 제작이 결정된 것.

심지어 <디파티드>, <노예 12년>(2013년), <문라이트>로 세 차례 아카데미 작품상을 품은 제작사, '플랜B' 조차도 이 시나리오에 자막이 매우 많기 때문에 부담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가진 힘을 알기에, '플랜B'는 제작을 결정지었다. 스티븐 연 역시 작품의 제작자로 참여하며, 힘을 보탰다.

영화에서 '미나리'는 다른 농작물보다 어디에서든 잘 자라는 농작물로 묘사된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은 곧 가족 간의 사랑으로 연결된 것이다. 여기서 '제이콥'과 '모니카'(한예리)는 서로 다른 가족의 가치관을 내세운다. '제이콥'은 가장으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무언가 이뤄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닌다.

하지만 생각처럼 농장일이 녹록지 않아, 복잡한 심경과 무게감을 느낀다. 그 대표적인 컷이 있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농장과 동시에 '병아리 감별사' 일을 하게 된다. 병아리 감별은 당시 한인들이 주로 했던 일 중 하나로, 감별을 통해 알을 낳지 못하는 수컷은 '폐기'된다.
'제이콥'은 첫 농작물을 팔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나, 거절당한다. 하필 그다음 장면이 수컷이 '폐기'되면서 등장하는 굴뚝의 검은 연기였다. 인상적인 편집을 통해 영화는 '제이콥'의 상황을 대신 체화할 수 있게 됐다. '모니카'는 '제이콥'과 달리, 세상의 파도로부터 함께 방파제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허나 '제이콥'의 계속된 불안감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아칸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품는다. 그사이에 등장한 존재가 바로 할머니 '순자'(윤여정)다. 아카데미에서 조연상을 받은 캐릭터는 주로 주인공들에게 어떤 갈등이나, 영감을 제공해주는 경우로 올바르게 작용하는 기준으로 선정될 때가 많았다.

'순자'는 심장이 아픈 손자 '데이빗'(앨런 김)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 씨를 들고 미국에 온다. '모니카'는 비좁은 트레일러에 모셔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순자'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심지어 재미있다고 답한다.

이처럼 '순자'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가족을 안심시키면서, 동시에 '뿌리'내릴 수 있게 돕는 존재로 나온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데이빗'의 심장이 호전되던 시기에, 멀쩡한 것처럼 보였던 '순자'는 반대로 아픔을 겪으며, 부부의 불화는 고조된다.
그렇게 고조된 영화는 '제이콥'이 길렀던 농작물이 저장된 창고에 불이 나면서 그 감정의 골을 풀어낸다. 정이삭 감독이 겪었던 일화를 바탕으로 한 사건임에도, 이 화재는 마치 '신의 뜻'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선 부수적으로 성경이나, 신앙에 관련된 내용이 다량 등장하기 때문.

정이삭 감독의 이름도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 <미나리>는 기독교 신앙을 나타내는 종교 영화는 아니지만, 기독교의 가치관인 사랑과 인내, 역경, 소망을 담았다. 그리고 그런 가치관이 우리의 삶과 살아가는 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미국의 공식적인 국교는 현재 없으나, 미국의 가치를 상징하는 표어로 달러에 적혀 있는 '신의 섭리 안에서, 우리는 굳건하다'(In God We Trust)가 있다. 심지어 미국의 대통령은 취임 선서를 할 때 '성경'을 왼손에 올려놓고 한다. 정리하자면, <미나리>는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한국의 정서와 미국의 가치관을 적절히 혼합하며,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영화다.

또한, 그렇게 밝지도, 그렇다고 마냥 어둡지도 않게 세밀히 아메리칸 드림과 개척정신을 그려냈다. 아시아계 관객에게도, 그렇지 않은 관객에게도 <미나리>가 어필된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2021/02/18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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